정부가 지난 5일에 한미 쇠고기 협상 합의문을 공개했다. '자구 수정'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아 민변의 행정법원 제소까지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예상보다 이른 공개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유는 4일에 미국 인터넷(www.bilaterals.org)에서 영문 합의문이 먼저 공개됐기에 어쩔 수 없이 공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합의문은 '광우병 괴담'이더이상 괴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광우병 괴담? 괴담 아닌 '사실'

9항을 주목해야 한다. '특정위험물질'을 SRM(광우병 위험물질)로 규정지으면서, 다음 부위로 한정지었다.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1조 항목이다.
ⓒ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모든 월령의 소의 편도(tonsils) 및 회장원위부(distal ileum).

*도축 당시 30개월령 이상된 소의 뇌(brain)·눈(eyes)·척수(spinal cord)·머리뼈(skull)·등배신경절(dorsal root ganglia) 및 척주(vertebral column (단, 꼬리뼈(the vertebrae of the tail), 경추·흉추·요추의 횡돌기와 극돌기(transverse processes and spinous processes of the cervical, thoracic and lumbar vertebrae), 천추의 정중천골능선과 날개(median crest and the wings of the sacrum)는 제외한다)를 말한다.

다시 한번 쉽게 정리하면, 30개월 미만의 소는 편도와 소장 끝부분의 2개 부위를, 30개월 이상의 소는 △편도 △소장 끝부분 △등뼈 △등뼈 속 신경 △머리뼈 △뇌 △눈 등 7개 부위의 수입 금지를 합의한 것이다.

경악스러운 것은, 설령 30개월 미만의 소라 할지라도 미국 현지에서는 SRM 위험부위 7개 중 2개만 빼고 다 수입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7가지 모두를 유통금지한다.

게다가, 애초부터 '30개월'이라는 기준선이 정해진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합의문에 따르면, 30개월 이상의 소는 SRM과 뇌와 척수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수입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30개월'이라는 기준선은 프리온 인자가 소의 전체 부위로 전이되는 시점이다.

'미친 소'를 먹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괴담'이 아니라 '사실(fact)'이었다.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합의문 4조와 5조에 나와있다.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4조와 5조 항목.
ⓒ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4. 미국 정부는, 미국의 규정에 따라 BSE를 효과적으로 발견하고, 이의 유입 및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이 조치들은 OIE의 BSE 위험통제국 지위에 대한 지침에 부합되거나 그 이상인 조치들이다. 미국 정부는 BSE와 관련된 어떠한 조치를 폐지 또는 개정할 경우, 미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의무에 따라 WTO에 통지할 것이며 한국에도 이 내용을 알려줄 것이다.

5. 미국에 BSE가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미국정부는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하여야 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정부에 알려야 한다. 미국정부는 조사 내용에 대해 한국정부와 협의한다. 추가 발생 사례로 인해 OIE의 미국 BSE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경우 한국정부는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이거야말로, 이명박 대통령이 '카트라이더' 한게임 즐긴 댓가로 '검역주권'을 넘겼다는 강력한 증거다. BSE란 '우해면양뇌증', 즉 광우병을 말한다. OIE는 국제수역사무국, 5조는 "OIE가 미국의 BSE 지위 분류를 변동해야만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게 '검역주권'을 넘겨준 것이 아니면 뭘까?

이 결과는 곧장 합의문 23조·24조와 연계시킬 수 있다.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23조의 초반부다. 후반부와 24조의 항목은 아래의 이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합의문 길이관계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
ⓒ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쇠고기 협상 영문 합의문, 23조 항목 일부와 24조 항목.
ⓒ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23. 검역 검사 과정 중 한 로트에서 식품 안전 위해를 발견하였을 경우, 한국정부는 해당 로트를 불합격 조치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미국정부에 이에 관하여 통보하고 협의하여야 하며 필요하다면 개선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특정 위험 물질이 발견될 경우, 미국 식품안전검사청은 해당 문제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실시할 것이다.

해당 육류작업장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수입검역검사는 지속되어야 한다. 다만, 한국정부는 해당 육류작업장에서 이후 수입되는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에 대한 검사 비율을 높일 것이다. 동일 제품의 동등 이상 물량 수입분에 대한 5회 검사에서 식품안전 위해가 발견되지 않았을 경우, 한국정부는 정상 검사절차 및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

24. 동일한 육류 작업장에서 생산된 별개의 로트에서 최소 2회의 식품 안전 위해가 발견된 경우, 해당 육류 작업장은 개선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중단될 수 있다. 해당 육류작업장에서 생산되고 중단일 이전에 증명된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에 대한 수입검역검사는 지속되어야 한다.

작업장은 미국 정부가 개선조치가 완료 되었음을 한국 정부에게 입증할 때까지 중단상태로 남는다. 미국 정부는 육류 작업장의 개선 조치와 중단이 해제된 일자를 통보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 대한 차기 시스템 점검시 해당 작업장에 대한 현지 점검을 포함시킬 수 있다.

위의 23조와 24조의 치명적인 맹점은, 미국 쇠고기에 대해 '전수검사'가 아닌 '샘플검사'만 해야 하며, '광우병 위험물질(합의문에서는 '특정위험물질')이 발견돼도 '즉각적인 수입 중단 조치'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같은 작업장에서 '최소 2회' 이상의 '식품 안전 위해'가 발견돼만, 그것도 '해당 작업장의 쇠고기'만 중단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단시켜도 '미국 정부의 개선조치'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것에 의해 수입이 재개된다는 내용의 조항이기 때문이다.

'사실' 드러내는 더 확실한 증거들

가장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를 조항이라면 합의문 22조와 부칙 4항을 꼽을 수 있겠다.

쇠고기 협상 영문 합의문 22조 항목.
ⓒ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22.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은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기재한 미국정부 수의당국에서 발행한 수출위생증명서와 한국 수출용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증명서를 동반하였을 때 수입 검역검사를 받을 수 있으며 동 증명서는 한국정부의 수의당국에 제출되어야 한다.

1. 상기 2조, 10조, 15조~20조에 명시된 사항

2. 품명(축종 포함), 포장 수량 및 최종 가공작업장 별로 기재한 중량(실중량)

3. 도축장, 식육가공장, 보관장의 명칭, 주소 및 작업장번호

4. 도축기간 그리고/또는 가공기간(일/월/년 - 일/월/년)

5. 수출자 및 수입자의 성명, 주소

6. 검역증명서의 발급일자 및 발급자의 성명·서명

7. 컨테이너번호 및 봉인번호

8. 수입 검역검사 및 규제 조치

이 조항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려면 수출 위생증명서와 제품증명서가 동반돼야 한다. 그리고, 이 수출 위생증명서와 제품 증명서에는 모두 8가지의 필수조건이 표시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필요료 하는 '연령' 표시가 없다.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땅을 밟는 그 순간, '30개월'을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필요로 달아놓은 것이 '부칙 4항'인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국민 우롱'이다. 부칙 4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쇠고기 협상 영문 합의문 부칙 4항의 초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 관계로 페이지 마지막에 표시됐다. 이후의 내용은 다음 이미지에서 확인해보자.
ⓒ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쇠고기 협상 영문 합의문 부칙 4항.
ⓒ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본 수입위생조건 시행일 후 첫 180일 동안 티본스테이크와 포터하우스스테이크 수출 시에는 이들 제품이 30개월령 미만의 소에서 생산되었음을 한국정부 관리에게 확인시켜주는 어떠한 표시가 상자에 부착될 것이다. 한국정부와 미국정부는 180일 기간이 종료된 후에 표시가 쇠고기 교역과 검사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 후 우려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측면에서 협의하기로 합의하였다."

'티본'과 '포터하우스'는 모두 뼈가 달려 있는 부위다. '180일'이라는 기준으로 그 전에는 '30개월 미만'이라는 확인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180일 이후', 그 이후에는 "교역과 검사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우려사항 해결 측면에서'만'('을'이 아니라 '만'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협의를 합의한 것이다.

그런 전제조건이 아니라면 괜찮다는 이야기일텐데, 뼈가 달라붙어 있는 부위의 '30개월 이상' 수입을 우려사항 해결 측면에서만 협의한다는 것, 도대체 어떤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이것으로도 모자라 더욱 강력한 한방을 남겨놓았다. 이번엔 합의문 10조를 돌아보자. 이것이야말로 '미국산 쇠고기'를 넘어선 '광우병 위험 쇠고기' 전체에 걸쳐 한국인이 무차별적으로 위험에 노출됐다는 증거다.

쇠고기 협상 영문 합의문 10조 항목.
ⓒ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은 미국 내에서 출생·사육된 소, 한국정부가 한국으로 쇠고기 또는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허용한 국가로부터 미국으로 합법적으로 수입된 소, 또는 도축 전 최소한 100일 이상 미국 내에서 사육된 소에서 생산된 것이어야 한다."

광우병이 자주 발견된 캐나다산 쇠고기도 사실상 수입이 시작됐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께서도 알고 계실 것이다. 게다가, 캐나다산 쇠고기가 미국으로 수입되거나, 미국 현지에서 100일 이상 사육되면 '미국산'이라는 딱지를 달고 '미국산 쇠고기'로 한국을 밟는다는 이야기다. '미국산'을 넘어서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모두 취급하게 된 대한민국, 내 말은 이 합의문 10항에 근거해 '과장'이 아님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 이게 무슨 짓인가

더더욱 골치아픈 것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만들려 하더라도, 한미FTA 타결로 인해 '투자자의 정부제소권'이 자리잡게 되면, 더 큰 속수무책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 정부의 조치'에 의해 '미국 도축업자'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즉각 한국정부를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제소할 수 있다. 이 판결 여부에 따라 관련규정은 폐지되며 배상금까지 국민 세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한미FTA와 맞물려, 한국인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의 위험에 노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만 하겠다. 이명박 정부,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서민들한테 무슨 한이 그리 맺혔길래 이런 협상을 협상이랍시고 합의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일까? 영문 합의문 맨 아래에 나온 합의문 조인 서명을 보니,공연히 할말이 없어진다. 이로써, 우리 학생들과 현역 군 장병들, 그 입에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언제 어디서 들어갈지 모르게 됐다.

'민동석'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서글프게 다가올 줄이야...
ⓒ 쇠고기협상 영문 합의문
출처 :창천항로(蒼天航路) 원문보기 글쓴이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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