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부산 민심 “이번엔 한나라 안찍어”

한겨레신문 | 기사전송 2012/01/24 20:26

[한겨레] [르포] 설 민심기행
소설가 박주영이 본 ‘부산 민심’
2010년 6·2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공천 발표가 났을 즈음이었다. 이제부터 바빠지시겠네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대답은 이랬다. 바쁜 건 이제 다 끝났습니다. 이것이 얼마 전까지의 부산의 극단적인 정치 현실이었다.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인식되는 부산에서는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보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는 것이 더 중요했다. 부산의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인물에 관계없이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이 흐름이 바뀔 수 있을까.

얼마 전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옆자리의 60대 아저씨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한나라당을 절대 찍지 않겠다고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한나라당에 대한 부산의 분위기까지 이렇게까지 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번에는 한나라당을 찍지 않을 테지만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한나라당에 표를 줄 것을 우려했다. 나는 변하는데 나 이외의 부산 사람들은 여전하니 결국 변하는 것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걱정이었다. 이제 한나라당은 안 되겠다, 혹은 지금의 한나라당은 안 된다는 정서가 있지만 그 마음 이후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변화는 6·2 지방선거 때도 있었다. 나는 정말 오래간만에 투표를 했는데, 내 주변인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변화는 지난 대선과 총선에는 투표하지 않았던 이들이 투표장으로 갔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부산은 안 돼’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도 자신의 표가 승산이 없다는 걸 인지하고도 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내 표가 당선에 유효한 표가 아닐지라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보여줄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아니지만…민주당은 아니었다문재인의 깔끔함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부산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다선들과 비교해
신뢰감이 크다 할 수 있을까 민주당도 잘한 거 없고
잘할 수 있을 때조차도
잘못하기도 했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므로 새 민주통합당에
쉽게 마음을 주지도 못한다 변화의 조짐은 있으나
흐름이 바뀔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지금은 결정 내리지 못한 채
두고 보겠다는 의견이 팽배
지켜보기 시작했단 말이다
부처님 말씀에 훌륭한 말은 채찍이 닿기 전에 움직이고 좋은 말은 살짝만 닿아도 달리고 나쁜 말은 고통을 느끼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고 정말 나쁜 말은 채찍이 골수를 뚫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정치인이든 유권자든 지금 우리는 정말 나쁜 말의 상황에 있다. 진정성, 도덕성이 없으면,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는 일들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타협에 의한 보수화 가면이 효과가 없다면 진보된 내면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어지는 것 아닌가. 표의 실효성이 전혀 없어 투표하지 않던 이들이 그래도 투표를 하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야권의 유력인사들이 잇달아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문성근의 추진력에 놀라고, 문재인의 깔끔함에 호감을 갖고 있으며, 김정길을 오랫동안 보아왔다고 하는 부산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인지도나 정치적 신뢰감을 부산 출신 한나라당 다선 위원들과 비교해서 크다고 할 수 있을까. 30대 중반인 내 지인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이 국회의원이라는 존재를 인식한 이후부터 똑같은 사람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는 곳의 국회의원이었다고 한다. 그 국회의원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아들이 그 지역구를 물려받았고 현재 그 지역의 국회의원이다. 반면 사하구, 강서구 등 중소기업이 밀집해있는 곳은 야당세가 강한 편이다. 온몸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부산의 경우 변화의 조짐은 있으나 흐름이 바뀔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대부분 문재인 이사장을 노무현이라는 이름과 함께 기억한다. 문제는 문재인 이사장에게 노무현의 그림자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정치적 이상과 정책이 보이지 않거나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 경남이 낳은 본격적 대통령이었음에도, 시민들은 부산 경남의 대통령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실제 그의 정치적 기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그는 제 뿌리에서 나고 자란 적자가 아니었고, 또한 그 역시 부산 경남 사람들의 대통령이 되려 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 잔혹한 사정의 칼날조차 문재인 이사장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만큼 깨끗하고 청렴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를 능력 있는 정치인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누군가는 진부한 비유를 들며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정치하려면 너무 깨끗해도 안 돼.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아. 참으로 관대하다. 어쩌면 문재인 이사장은 너무나 관대한 부산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나 깨끗하게 구별되어서 논외에 둔 대상일지도 모른다.

문재인 이사장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 방울의 깨끗한 물이 시궁창을 정화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만으로도 더 나은 사회가 되고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줘야 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진정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엘 고어의 말처럼 문재인 이사장은, 무서운 기존의 권력을 다스릴 수 있다는 가능성과 영감을 우리에게 불어 넣어 주어야 한다.

부산 사람들에게는 결국 한나라당이 부산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부산에는 한나라당이 낫지 않겠느냐는 심리 또한 여전하다. 부산의 국회의원이 대부분 한나라당인데 우리 지역만 다른 당이면 불이익이 있고 소외되리라고 생각한다.

문재인은 청렴한 사람
하지만 능력있는 정치인으로
판단하진 않는다
문재인은 보여줘야 한다
무서운 기존의 권력을
다스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박근혜를
믿는 사람들도 많다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다
반쯤 돌아선 이들도 있다
속이 비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부자들과 다른 부자이다
반면 전투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아
정말 투표하러 가게 되면
찍을지 확신없다는 이들도
지금의 한나라당은 신뢰하지 않지만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믿는 사람들도 많다. 부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누군가는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박근혜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다. 믿을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다. 나는 물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박근혜의 원칙은 무엇인가? 자신의 원칙을 박근혜는 무엇이라고 말했나? 그는 대답 대신 골똘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대답하였다. 나는 정치인들의 말을 믿지 않아. 정치는 말로 하는 게 아니야.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서 반쯤 돌아선 이들도 있다. 박근혜가 보여준 강단과 신뢰감이 누구보다는 낫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게 정도 이상이라서 속이 비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는 것이다.

부산 경남에서 안철수 원장은 오히려 자유로운 평가의 대상인 것 같다. 문재인을 지지한다거나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말과 달리 안철수를 지지한다는 말은 사상과 성향,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 실제로 안철수 원장의 정치사상과 성향, 지역기반을 판단할 수 없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당장 안철수 원장이 부산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다만 그는 혜안을 갖춰 자수성가한 경제인,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인 것이다. 부정과 야합, 편법과 변절로 물든 지난 역사의 인물들과 다른 존재인 것이다. 기업인들과 다른 기업인, 부자들과 다른 부자이며 정치인이 아닌 정치적 인물이다.

안철수의 편을 따로 가를 수도 없다. 차별의 가능성, 보복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게 느껴진다. 결국 이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안철수에 대한 지지 의견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만든다. 바꿔 말하면, 안철수는 밖으로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인 것이다. 반면 안철수를 지지하지만 그가 정치력이나 특히 전투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아서 정말 투표하러 가게 되면 찍을지 확신이 없다는 이들도 있다. 안철수가 대표하고 상징하는 무언가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확실한 데 그 무언가가 지지하는 이들이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 없다.

1961년에 수행한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의 복종이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전기충격이 학습효과를 높인다는 전제 하에 문제를 맞히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전기충격으로 고통을 가한다. 상대방은 괴로워하지만 박사는 실험을 계속하라고 하고 아주 많은 이들이 그 실험의 권위에 복종한다. 이 실험에 옆에서 반대하는 사람을 추가로 두면 실험 결과가 달라진다. 권위에 맞서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같이 행동하게 된다. 못하겠다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대세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용기를 얻는 걸 수도 있겠다. 한 사람이 차이점을 만든다. 그 한 사람을 모두들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

문재인 이사장도 그렇고 문성근 최고위원도 그렇고 정치를 하고 싶지 않았으나 세상이 너무 엉망이라서 정치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부산의 진보성향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엉망이라서 이제는 두고 볼 수 없어 투표를 해야겠다고 말한다. 그들은 싫은 것은 분명한 데 좋은 것을 결정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정치에도 진정성이 필요하고, 정치 또한 나 자신을 신뢰해나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는 정당으로 한나라당은 충분할지 모르지만 민주당은 아니었다. 민주당도 잘한 거 없고 잘해야 할 때 잘할 수 있을 때조차도 잘못하기도 했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므로 새로운 민주통합당에 쉽게 마음을 주지도 못한다. 지금 부산의 분위기는 지금 이대로의 한나라당은 아니지만 그 ‘아니다’가 새로운 한나라당일 가능성이 크지 야권으로는 보이지는 않는다.

지금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두고 보겠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지켜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 마음의 움직임이 쇄신하는 한나라당이 될지, 새로운 민주통합당이 될지, 아니면 강력하게 연합한 야권이 될지, 선택은 유권자가 하지만 보여주고 증명해야 할 책무는 정치인들에게 있다.

롯데 자이언츠 야구와 비유하자면 롯데가 내리 꼴찌만 해도 야구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다. 계속 지면 지는 게 화가 나고 보기 싫어 관심을 끊게 된다. 요즘 롯데가 잘한다더라 하는 소식이 들리면 기다렸다는 듯 다시 사직야구장을 찾는다. 지는 선수, 질게 뻔 한 게임에는 관심을 갖기 어렵다. 사람들은 승자의 편이 되길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도전자를 원한다. 새로움과 참신함, 게다가 노련함을 갖춘, 무엇보다 정정당당한.

커트 보네거트의 <타임퀘이크>란 소설이 있다. 그 소설에서 사람들은 10년 전으로 갑자기 시간이 돌아가 이미 산 10년을 똑같이 산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반복이 끝나면서 정말 새로운 날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왕좌왕할 뿐이다. 마비되어 있던 그 사람들에게 소설 속의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유의지를 되찾아 주었다. “당신은 아팠지만 이제 나았고, 해야 할 일이 있소.” 다시 정치의 계절이 왔다. 아팠지만 나아질 수 있고 그러려면 해야 할 일이 있다. 자유의지로.

부산/박주영·소설가 박주영씨는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교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고, 지금도 해운대에서 살고 있다. 부산대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시간이 나를 쓴다면>으로 등단해, 2006년 장편 <백수생활백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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