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최강희 감독, 너무 영리했고 너무 교활했다
최강희호가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대표팀은 우즈벡을 4-2로 격파했다. 결과도 만족스러웠고 처음 호흡을 맞춘 것치고는 내용도 좋았다. 최강희 감독도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경기를 치렀다"고 자평했다. 대표팀은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쿠웨이트를 맞는다. 무승부 이상만 거두면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당연히 승리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우즈벡전을 통해 확인했다. 우즈벡전에서 보여준 최강희호의 특징은 무엇인가, 최강희 감독은 쿠웨이트전에 대비해 어떤 실험을 했을까. 그리고 궁극적으로 최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는 어떤 색깔일까.





■닥공은 기본, 수비도 공격적으로 한다=가장 눈에 띄는 점이다. 대표팀은 4-1-4-1을 주로 썼다. 상당히 공격적인 시스템이다. 공격요원이 5명이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4골이나 뽑았다. 그러나 4-1-4-1에서 주목해볼 점은 적극적인 수비법이다. 5명 공격요원들이 펼치는 전방 압박이 무척 강했다. 우즈벡이 한동안 전진패스를 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방 압박의 노림수는 두 가지다. 공격에서는 전방에서 볼을 다시 빼앗아 상대 수비진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골을 넣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전방 압박에 이은 수비법이다. 우즈벡은 우리 전방 압박을 뚫을 만큼 패스워크가 좋지 않다. 그래서 선택한 길은 단 하나, 전방으로 길게 내차는 롱 킥이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수비하기 편하다. 수비 숫자가 우즈벡 공격 숫자보다 많은 것은 기본. 또 우리 수비수는 공을 보면서 앞으로 점프해 헤딩하지만 우즈벡은 뒤로 물러서면서 공을 보다가 뒤로 점프해야한다. 우리 선수들이 헤딩볼을 따낼 가능성이 높은 건 당연하다. 그러면 볼은 용이하게 우리 소유가 될 수 있다. 다만 그게 잘 이뤄지지 않은 장면히 하나 있었다. 후반 16분 발생한 위기 상황이었다. 우리 진영으로 날아온 우즈벡의 롱킥 한방에 우리 수비진이 무너졌고 상대 슈팅이 골문을 넘어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영락없는 실점이 될 뻔 했다. 이런 장면이 없어야만 전방 압박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모든 걸 다 보여주면서 허를 찌른 절묘한 교란작전=최감독은 우즈벡전에 앞서 고민이 많았다. 우리는 쿠웨이트를 알지만 쿠웨이트는 새롭게 구성된 우리를 모르는 상황. 그래서 최감독은 우즈벡전의 득실에 대해 장고했다. 아마 다른 감독 같으면 유니폼 번호를 다르게 한다든가, 아니면 전력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요한 것을 숨기는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감독은 완전히 반대였다. 모든 걸 다 보여주는 정공법이었다. 우즈벡전에서 한국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시스템 변화, 할 수 있는 용병술, 수비법과 공격법, 조커 운용법 등을 모두 보여줬다. 한국은 전반 4-1-4-1로 출발해 후반 들어 4-4-2, 4-2-3-1, 4-1-4-1로 변했다. 하프타임 때 5명이나 동시에 바꿨다. 마지막 교체카드도 후반 15분 이전에 꺼냈다. 전반 출전한 이동국이 2골을 넣었고 후반 조커 김치우가 2골을 보탰다. 골 장면 이외에서도 김상식, 김두현, 한상운, 이근호 등 많은 선수들이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를 지켜본 쿠웨이트 감독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걸로 한국 분석 끝, 이길 수 있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도대체 누구를 어떻게 막아야하는 거야'라며 머리가 더 복잡해졌을까. 아마 후자일 것이다. 물론 우리도 실점장면 등에서 단점을 노출했다. 쿠웨이트도 그걸 공략하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부분도 우리는 크게 고민할 게 없다. 평가전의 의미는 우리의 단점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알았고 그렇다면 대비만 잘 하면 된다.





■모든 실전용 테스트, 딱 한경기로 끝=최감독은 너무 영리했다. 우즈벡전 단 한경기로 하고 싶은 모든 실험을 거의 다 해봤다. 공격형 미드필더 2명을 내세워 전진하는 수비인 전방압박도 해봤다. 반대로 하대성 신형민을 더블 볼란테로 세워 물러서는 수비도 잠시 맛봤다. 이동국을 원톱으로 하는 스리톱도 기동했고 이동국-김신욱 투톱도 써봤다. 시간이 부족한 가운데 골을 뽑아야할 때 꺼낼 수 있는 전략이 '포스트 플레이에 이은 리바운드볼 따내기'다. 그걸 실험하기 위해 장신 공격수 김신욱 원톱에 김치우, 최태욱 등 발이 빠르고 침투력이 뛰어난 조커도 넣어봤다. 한상운, 김치우, 김두현, 곽태휘, 김재성 등 프리키커들도 다양하게 실험해봤다. 공격의 핵인 김두현에게는 이례적으로 풀타임을 뛰게 해 어시스트, 돌파 능력 등 플레이메이커로서 전반적인 기량을 부족함 없이 점검했다. 수비에서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잘못 써 위기를 겪었다. 조성환의 실수로 페널티킥까지 허용해 골도 내줬다. 전체적으로 3-0으로 앞서다 5분 만에 두 골을 내주며 턱밑까지 쫓겨보기도 했다. 그리고 수비를 잘 해 이겨도 될 막판에 오히려 추가골을 넣어 찝찝한 승리를 시원한 완승으로 마무리했다. 우즈벡전에 다양한 장면들이 많이 발생했다. 그건 쿠웨이트전에 대비해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국내파가 해외파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했나=우즈벡전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그동안 많은 팬들은 해외파가 한국 전력의 거의 전부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최감독은 K리거로도 충분히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팬들도 K리거들의 실력과 힘을 알게 됐다. K리거들은 그동안 해외파에 밀려 벤치를 지킨 설움을 달랬다. 한 때 "우리가 열심히 훈련하면 뭐합니까. 어차피 해외파가 들어오면 걔네들이 몸이 좋든 안 좋든 선발로 뛸 텐데"라는 볼멘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그동안 주전을 사실상 굳힌 것으로 생각해온 해외파들도 바짝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대표팀 전력의 전반적으로 상승될 것은 분명하다. 지금 상황이라면 박주영이 들어와도 주전으로 뛴다는 보장도, 최소한 조커로도 나설 거라는 예상도 못한다. 박주영과 상황은 조금 달라도 기성용도 전체적으로는 대동소이하다. 김상식이 전반에 보여준 경기조율능력, 부챗살 같은 패스, 감각적인 논스톱 패스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최감독은 우즈벡전을 정말 잘 이용했다. 얻은 게 너무 많은 반면 잃은 건 별로 없었다. 최감독이 보여준 전략과 전술 및 경기 운영법이 모두 훌륭했고 선수들은 운명이 걸린 쿠웨이트전에 앞서 정말 많은 걸 미리 경험했다. 남은 건 우즈벡전에서 드러난 단점을 보완하는 것 뿐이다. 그것도 3일이면 충분할 것 같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