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5G 일상… 무너진 가상현실 경계
미리 보는 5G 일상. 신동준 기자

아침 6시 홀로그램 비서의 모닝콜과 함께 거실의 커튼이 열리고 화장실이 따뜻해진다. TV에선 주요 뉴스와 회사까지 출근길 교통 상황이 들려오고, 화장대 거울이 지난밤 깊은 수면이 부족했다는 정보와 오늘 일정을 띄워준다.

주방 로봇이 만들어 준 샐러드를 먹고 택시를 호출하며 현관으로 향한다. “토마토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미리 주문해 둘까요?”라고 묻는 로봇 셰프에 그러라고 답한 뒤 운전대가 텅 빈 무인 택시에 오른다.

 

뒷좌석에 늘어지듯 앉아 가상현실(VR) 기기로 방금 미국에서 시작한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를 시청하며 도착한 회사 1층. 로봇 바리스타에 미리 주문한 커피를 챙겨 사무실에 들어서니 해외에 흩어져 있는 팀원들이 접속했다는 알림이 뜬다. 클라우드 서버에 올려둔 3차원(3D) 설계 도면을 VR 공간에 모인 동료들 앞에 펼친다.

 

점심시간 틈을 내 사무실에 새로 들이려고 눈여겨 둔 의자를 가상으로 배치해 보며 시간을 보낸 뒤, 오전에 정리된 변경 내용을 적용한 3D 설계도를 증강현실(AR)로 사무실 책상에 띄워 옆자리 직원들과 공유한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할 즘 음식 배달 로봇이 아파트 정문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탔다는 알람이 울린다.

 

저녁을 먹으면서 야구 경기장에 원격 접속하자 미리 약속해둔 친구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며칠 전 예매해 둔 좋아하는 가수의 도쿄돔 콘서트가 곧 시작한다는 말에 바로 접속경로를 바꾼다. 코앞에서 펼쳐지는 황홀한 무대에 주변 관객들과 섞여 실컷 뛰놀고, 잠들기 전 수면 상태를 추적해 줄 헬스케어 팔찌를 손목에 찬다.

 

먼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미 몇몇 서비스들은 출격 준비를 마쳤다. SK텔레콤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VR 공간에 모여 3D 콘텐츠를 감상ㆍ공유하며 커뮤니케이션하는 ‘소셜VR’(가칭) 개발이 막바지 단계고, 출발지와 목적지만 스마트폰 앱에 입력하면 무인 자율주행차가 사람을 태워 주는 서비스 시연에 성공했다.

 

바리스타 로봇만 일하는 KT 무인 카페가 최근 강남 한복판에 오픈했으며, LG유플러스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태양의 서커스’를 3D VR로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은 VR 기기로 NBA 경기를 360도로 시청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 서비스들은 상용화가 가능한 안정적 통신환경 구축만 기다리고 있다. 바로 5세대(5G) 통신이다.

 

이동통신기술의 진화. 신동준 기자
◇초고속망으로 빅데이터 동시처리

5G 특성은 △초고속 △초저지연 △초연결로 대표된다. 더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고주파 대역을 쓰는 5G의 이론상 최고 속도는 20기가비피에스(Gbps), 4G 속도의 20배다.

 

 전송하는 데이터양도 100배 많다. 지금이야 인공지능(AI) 스피커와 날씨 등 간단한 질문을 주고받는 수준이지만 AI 비서가 각종 가전 기기와 로봇을 제어하며 집안일을 대신하고 동시에 건강, 생활 습관 등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려면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서울 서초동 5G 로봇카페의 유일한 직원인 로봇팔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제조를 마친 뒤 선반에 내려놓고 있다. 맹하경 기자

KT 무인카페에 적용된 5G 역시 수많은 주문을 접수하면서 원두, 시럽, 우유 등 재료 위생상태, 손님 도착 정보 등을 실시간 관리하는 기반 환경을 제공한다.

 

서울 서초동에 문을 연 세계 최초 5G 로봇카페에 설치된 로봇팔은 손님이 앱으로 주문한 음료 종류와 사이즈에 맞게 커피머신을 작동시키고 완성된 음료를 픽업 대에 놓는다. 음료 1잔 제조에 걸리는 시간은 1분 이내다. 주문 처리를 하면서 미세한 로봇팔의 동작 인식 상태와 운전 상황, 재료 유통기한 등 각종 데이터를 관제센터와 주고받는다. 대용량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5G 덕분에 가능하다. 사람이 일일이 관리해야 하는 단순 자판기와 가장 큰 차별점이기도 하다.

 

◇가상에서 펼쳐지는 ‘리얼라이프’

하지만 전문가들은 5G를 ‘빠른 속도’로만 정의하는 건 과소평가라고 입을 모은다. 20Gbps 속도라면 영화 한 편을 내려받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지만, 굳이 영화를 1초 내로 내려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5G의 핵심이자 잠재적 가치는 초저지연과 초연결성에 있다.

 

영화 ‘킹스맨’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이 두 가지 특성은 영화 ‘킹스맨’에서 요원들이 원탁회의를 하는 장면에 담겨있다. 요원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지만 각자의 모습이 실시간 전송돼 마치 본부 원탁에 지금 같이 둘러앉은 듯한 착각을 준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뿐만 아니라 서로 술잔도 기울인다.

 

 홀로그램으로 다른 세상을 그려내고 그 세상에 접속까지 하는 영화 ‘아바타’가 그린 상상도 같은 맥락이다. 초저지연과 초연결이 극대화되면 이와 같은 ‘텔레프레전스’(telepresenceㆍ원격 실재)가 가능해진다. 일반 소비자가 5G 세계에서 가장 큰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서비스들도 대부분 텔레프레전스 기술에 기반한 것들이 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망이다.

텔레프레전스는 물리적 공간을 단숨에 초월한다. 우리가 쓰는 데이터는 기지국, 교환기, 데이터센터 등을 거쳐 이동하는데 이 과정들을 거치면서 ‘지연속도’가 생긴다. 4G에서는 0.004초인 지연속도가 5G에선 1㎳(0.001초)에 불과하다. 데이터를 주고받는 속도가 ‘동시’에 가까워진다.

 

 조익환 SK텔레콤 미디어랩스 ARㆍVR개발팀장은 “동시에 주고받는 정보가 음성이나 1차원적인 영상을 넘어서 3D 콘텐츠, 각자의 동작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현실 세계와 삶 자체를 가상 공간에서 동시에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곳에 있는 SK텔레콤 연구원들이 하나의 가상공간에 모여 3차원(3D)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함께 살펴보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 소셜VR의 경우는 원격에서 동시에 10명이 접속해 가상공간에서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설계도면 등을 띄워 3D로 돌려보면서 수정, 스케치 등을 할 수 있고 누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텍스트로 자동 변환되는 기능도 탑재돼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옆에 있는 것처럼 커뮤니케이션하는 서비스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일상을 바꾸는 서비스’ 중심으로 5G를 전개하겠다는 LG유플러스도 물리적 공간 한계를 많이 느끼는 콘텐츠에 텔레프레전스를 입힌다. 김새라 LG유플러스 마케팅그룹장(상무)은 “경제적, 시간적, 물리적, 공간적 제약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공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게 5G”라며 “가고 싶은 여행지, 보고 싶은 공연을 내 방안에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좋아하는 아이돌이 눈앞에서 춤추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실시간 공연 영상을 제공하는 기존 서비스 ‘U+아이돌 Live’에 5G 기반 VR 기능을 접목한다. 기자가 미리 체험해 본 서비스에서는 눈을 마주치며 춤추고 있는 아이돌의 머리카락 움직임과 날리는 땀방울까지 생생하게 전달됐다.

 

조익환 팀장은 “서비스 초기인 내년에는 가상공간이 하나의 방처럼 구현되겠지만, ‘월드’로 키워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고 이곳에서 사람을 만나 뉴스도 보고 쇼핑도 같이하는 신개념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추구하고 있다”며 “5G 시대에서 가장 큰 변화는 그야말로 ‘입체적인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라고 자신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