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예수로부터 배운 인재 경영" 한국 리더들 이끄는 회장님

  • 김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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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7.12.16 06:00 | 수정 : 2017.12.19 08:12

    43년간 새벽같이 깨어 정재계 인사들에게 ‘인간됨' 가르친 인간개발연구원 장만기 회장
    김대중 전 대통령 경제인과 대면시켜고, 이명박 전 대통령 ‘고 정주영 회장과 화해' 권유
    “한국인은 이스라엘 민족과 유사, ‘국민, 주권, 영토’ 중 국민이 가장 강한 나라”

    인간개발연구원 장만기 회장(80세). 인간개발연구원의 ‘인간개발경영자조찬회'는 1975년 2월에 시작해서 1,960회를 돌파했다. 43년간 ‘생산력'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잠재력과 인권을 지닌 주인공으로서 인간 중심의 기업 문화를 경영인들에게 가르쳤다./사진=이진한 기자
    인간개발연구원 장만기 회장(80세). 인간개발연구원의 ‘인간개발경영자조찬회'는 1975년 2월에 시작해서 1,960회를 돌파했다. 43년간 ‘생산력'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잠재력과 인권을 지닌 주인공으로서 인간 중심의 기업 문화를 경영인들에게 가르쳤다./사진=이진한 기자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람이 궁금하면, 그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대통령, 장관, 대기업 회장은 물론이고 정계 재계 학계의 영향력 있는 명사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가 ‘지혜를 나누자’고 초청하면, 적이고 아군이고 대립각을 풀고 헤드라이트를 켠 채 새벽길을 달려왔다.

    권위주의 시대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3김 정치인과 조순, 김동길, 반기문 등이 그러했고, 경제 호황기에 손정의, 정주영, 김우중, 구자경 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 권오현, 손경식, 신창재 등 기업인들이 그러했다.

    이어령, 함석헌, 김동리, 정호승, 임권택, 이해인 같은 문화계 인물은 두말할 것도 없다. 권력의 핵심 가까이 있었으나 권력 행사를 한 적 없고, 정상의 기업인들과 호형호제했으나 돈은 벌지 못한 신비한 존재. 인간개발연구원 장만기 회장(80세) 이야기다.

    ◆ 1975년부터 한국 조찬문화의 창시자… 12.12사태 때도 ‘경영자조찬모임’ 거르지 않아

    그가 43년간 대한민국의 핵심 리더들과 나눈 새벽 강연 이야기를 엮어 ‘아름다운 사람, 당신이 희망입니다'라는 책을 냈다.

    출판기념회에 가봤더니 CJ 그룹 손경식 회장, 김황식 전 총리 등 난다긴다하는 장안의 명사들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사회를 맡은 한비야는 ‘장꼼못(장만기가 부르면 꼼짝 못 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으로 자기를 소개했다. 외국의 대사들은 그를 ‘글로벌 네트워크의 거인' ‘브렉퍼스트 미팅의 코파더'라고 불렀다.

    1975년 2월 5일 목요일 아침 7시에 시작한 인간개발연구원의 ‘경영자 조찬모임’은 대한민국 조찬문화의 시작이다. 1979년 신군부의 12·12사태가 있던 날도 코리아나 호텔에서 아침 7시에 어김없이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가 열렸다.

    IMF 당시 하루에도 수십 개씩 회사가 쓰러져 나갈 때도 계속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43년간 한 번도 거른 날이 없었다. 연사로 초청된 UCLA 경영대학원 원장이 폭설로 김포 공항 상공을 헤매다 새벽녘에 겨우 눈 밟으며 하얏트 호텔로 달려간 일도 있다.

    장만기 회장이 만든 인간개발원의 ‘조찬모임'은 정상에 선 기업인들에겐 자기 스토리를 풀어낼 ‘말문'이었고(고 정주영 회장이 이곳에서 첫 공개 스피치를 했다), 자기 소신과 행정력이 있는 관료에겐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으로 통용되었다(차관급 행정 관료도 강연 후 장관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엄혹한 권위주의 시대에 정치적 살얼음판을 오가는 정치인들의 해빙의 ‘언로'가 되기도 했다(김대중, 김영상, 김종필 3김이 강연했다).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을 만났다. 강추위에도 코트와 모자를 단정히 차려입고 온 장 회장은 온화한 표정으로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시인처럼 보였다. ‘인간개발'이라는 그의 대서사시는 모두 새벽에 쓰였다.

    -왜 새벽인가요?

    “저는 전남 고흥의 거금도라는 섬마을에서 태어났어요. 그곳에 일제시대부터 있던 교회가 있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교회의 새벽 예배를 다녔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저 혼자 다녔어요. 그런데 그게 제 인생을 바꿨어요. 중학교 갈 형편이 안돼 집안일을 도우며 지낼 때도 새벽 예배는 빠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저를 저희 집에 잠시 기거하던 한 건축사업가가 눈여겨보시고는 아버지를 설득해 순천의 중학교에 입학하게 길을 열어 주었지요. 지금의 제가 이 모습으로 존재하는 건 새벽에 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영자들은 바빠요. 바쁘지만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다른 공부가 아니라 사람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해요. 기업 경영은 사람에 대한 공부가 없으면 나중에 큰 대가를 치릅니다. 기업가가 먼저 ‘내가 어떤 인간인가' 사람이 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데 새벽만큼 좋은 시간이 없지요.”

    스스로를 '아직도 꿈꾸는 팔순 청년'으로 칭하는 그는 얼마전 그가 만난 리더들을 모아 ‘아름다운 사람, 당신이 희망입니다'라는 책을 펴냈다./사진=이진한 기자
    스스로를 '아직도 꿈꾸는 팔순 청년'으로 칭하는 그는 얼마전 그가 만난 리더들을 모아 ‘아름다운 사람, 당신이 희망입니다'라는 책을 펴냈다./사진=이진한 기자
    -새벽에 깨서 무엇을 하십니까?

    “새벽 2시 반에서 3시 정도에 일어나요. 마쓰시다 고노스케에게 배웠죠. 눈뜨면 동시에 벌떡 일어나서 무조건 화장실로 가요. 내 인생에 가장 좋은 습관입니다(웃음). 30분 정도 아령으로 운동을 하고 명상 같은 기도를 한 후 성경을 읽어요. 성경엔 고귀한 인간부터 잡스러운 인간까지 인간의 모든 유형이 다 들어있어요. 인간사의 집대성이지요. 예수가 제자들을 키운 걸 보면서 ‘인간 경영'에 대해 생각합니다.”

    -예수에게 배운 인간 경영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예수는 이웃만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원수도 사랑하라고 했죠. 그런데 미운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받겠습니까? 결국 그 시작은 나거든요. 내가 미워하는 내 모습, 내 잘못을 용서하는 것부터 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새벽에 과오가 떠오르면, 저 자신을 용서하는 걸 습관으로 들였습니다. 나를 용서해야 남도 용서할 수 있지요.”

    그는 한남대학교 영문과를 나와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명지대 교수 시절 만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관 한기욱 박사로부터 국가 홍보를 의뢰받은 후 ‘코리아 스페셜 서플먼트'라는 기획으로 뉴욕타임스 8면을 전부 한국과 기업에 관한 기사를 싣는 데 성공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국제 사회에 한국과 기업을 알리는 일을 시작했다.

    인간개발연구원은 장 회장이 그렇게 만난 기업가에게 본격적으로 ‘인간'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다. 그의 신념에 의하면 ‘기업은 곧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성공한 사람들의 말을 듣기를 원한다’는 사실과 새벽 기도를 결합해 그가 시작한 ‘경영자 조찬모임'은 어느덧 대한민국에 수많은 ‘아침형 인간들'을 만들어냈다.

    새벽, 기업가 그리고 공부. 그 후로 80세에 이르기까지 장만기의 인생에는 이 세 가지가 화두가 되어 펼쳐졌다.

    -‘장만기가 만난 대한민국의 대표 리더 52명' 중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장 첫 번째 인물로 기록하셨더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강사로 초청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신군부 시절이라 위험인물로 낙인이 찍혀있었거든요. 그런데 나는 철저하게 비정치적인 인물이라 오히려 터부가 없었어요. 정보기관에서 강연을 취소하라고 압력이 많았지만, 나는 88올림픽을 유치하려면 국제사회에 언로가 열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좋을 거로 생각했어요. 과감하게 용기를 냈지요(웃음).

    다행히 김 전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경제민주화에 대해 부드럽게 강연을 했고, 반응이 정말 좋았습니다. ‘경제의 주체가 되고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려면 민주사회가 되어야 한다. 정치가 기업을 좌지우지하고 공작정치 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기업인들은 생산에 같이 참여한 종업원들에게 정당한 처우를 해주고 번 돈으로 부동산 투자하는 대신 확대 재생산해서 좋은 물건을 더 값싸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 뒤로 동교동 자택에 초대받아 이희호 여사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았는데, 그때 제가 좀 직언을 했어요. ‘사회에서 나를 어떻게 보나?’ 물으셔서 ‘민주투사라고들 하는데, 내 보기엔 투사 이미지보다 매스컴에 나올 때 옷도 잘 입고 웃음도 지어서 국민들 긴장 풀어주는 게 먼저다. 인간개발연구원원장으로 드릴 수 있는 말은 사람 한번 쓰면 버리지 말고 소중하게 쓰고 인사가 만사이니 가까운 사람부터 잘 관리하시라' 그랬지요. 경청하면서 메모를 하셨는데, 얼굴은 모래 씹은 표정이었어요(웃음).”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예수로부터 배운 인재 경영" 한국 리더들 이끄는 회장님
    -그 외에 또 특별히 어떤 분이 기억에 남으십니까?

    “정주영 회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실 때가 참 기억이 납니다. 정주영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까지 수행하고 있어서 모시기가 대통령보다 어려웠어요. 그런데 실제 만나보니 호기심이 많고 강연에도 호의적이었어요. 외부 스피치 경험이 전혀 없어서 당시 조선일보 최청림 편집국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전국경영자세미나라는 행사였는데 호응이 아주 좋았어요. ‘살아보니 직업 중에 가장 어려운 건 전쟁 지휘관이다. 사업가는 오늘 못 이룬 것은 내일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신 건 정주영 회장과의 매듭을 풀어주기 위해서였어요. 정주영 회장 장례식장에 다녀오는 길에 그분을 만나서 ‘정 회장과 영혼의 화해를 하라'고 제가 권했지요. 정 회장이 이명박을 현대 건설 사장으로 앉히면서 ‘신화'를 만들어줬는데, 이후 정계 진출 문제로 틀어져 개와 고양이 사이가 돼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동양에서는 자기를 길러준 사람을 배반하면 큰 인물이 아니라고 본다. 앞으로 정치를 계속하려면 ‘정주영이 당신 인생에 무엇이었는지 진실하게 토로하고 가야 한다.’ 그랬지요. 그분을 막무가내 찬양하라는 게 아니라 기업인으로 좋은 특징을 얘기하며 화해절차를 밟아야 한다고요.

    그래서 마침내 2001년 6월, 서울 시장이 되기 전에 ‘정주영 회장의 경영철학,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강연을 하게 됐어요. 정주영 회장의 개척 정신과 과감한 인재 등용은 인정하면서, ‘현대가 정권을 잡으면 삼성도 대우도 나설 텐데 국가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정 회장의 대선 출마를 반대해서 갈라서게 됐다는 입장은 또 분명히 했어요. 사선을 오가는 듯 아슬아슬했습니다(웃음).”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와도 두루 교류하며 그들의 정치역정과 기업인들의 경영철학을 들었지만, ‘비정치, 비영리, 비종교'라는 3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했다. 그럴수록 권력은 없으나 영향력은 더욱 커져갔다. 실제 그는 소련과 공식 수교 전인 1988년 러시아 상공협의회와 ‘한러친선협회'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인간개발원은 정계 재계 학계 문화계에서 앞선 가르침을 얻는다는 것도 있지만, 네트워크에 대한 힘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과 기회란 결국 관계로 인해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한다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귀인’ 즉 기회를 줄 ‘좋은 사람'은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제게 인상이 좋다고 하더군요(웃음). 표정이 좋으면 처음 접근할 때 저항이 없어요. 더불어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고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면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저는 누구를 만날 때 주장하기보다 항상 “아! 그렇군요" “아! 그러세요?” 하면서 잘 들어줍니다. 다 들은 후 마지막에 슬쩍 제 상황을 얹어 물어보지요.

    나치 독일에서 도망쳐 나와 하버드에서 교수가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에 따르면 20세기 최고의 발견은 ‘인간이 마음을 바꾸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습관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이 된다는 논리죠.

    관계를 맺을 때 상대를 좋아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도 나를 원하면 경계 없이 다 만나주려고 합니다. 영양가 없다고 지위가 낮다고, 그런 이유로 가리지 않아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남의 말 끊지 않고 들어주면 언제 어디서든 그가 ‘귀인'이 되거나 혹은 ‘귀인’을 물고 옵니다.”

    푸시킨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장만기 회장. 그는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 교류를 위해 소설가 박경리의 동상을 러시아에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그에 앞서 푸틴 대통령 방한에 맞춰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의 동상을 롯데호텔에 세웠다./사진=이진한 기자
    푸시킨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장만기 회장. 그는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 교류를 위해 소설가 박경리의 동상을 러시아에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그에 앞서 푸틴 대통령 방한에 맞춰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의 동상을 롯데호텔에 세웠다./사진=이진한 기자
    -출판기념회에 가보니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참석자들 또한 중절모를 쓴 어른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노인을 보는 존경 없는 시선에 섭섭함은 없으신지요? 시대가 너무 급변해서 세대가 서로의 세계를 문화적으로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만.

    “100세 시대를 맞아서 제가 얼마 전 중국의 장강상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어요. 아시아 최고 갑부 이가성이 세운 대학인데 마윈이 동창회장이고 재계 인사와 정부 고위급 관료들이 모이는 아주 유명한 대학이에요. 내가 거기서 최고령자였어요. 팔십 먹은 노인이 졸지 않고 공부한다고 다들 날 참 좋아했어요. 졸업식 날, 재계 2세와 부유한 젊은이들이 나하고 사진 찍자고 몰려들더군(웃음).

    고령화 시대에 젊은이들과 어울려 살려면 공부해야 해요. 그래야 마음이 늙지 않고 젊어져. 노인들이 과거 습관 유지하면서 ‘나를 따르라'고 하면 비웃음만 사지요. 젊은이들이 노인을 고려장에 보낼 수도 없고(웃음). 서로 융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노인들이 웃으며 다가가야죠. 나는 손주 녀석들이 게임에 빠져있어도 “큰일 났네"하지 않고 “뭐가 그렇게 재밌어?”하고 물어요.

    나이 차이에서 오는 이격을 좁히는 방법은 젊은이가 노인에게 배울 게 있다고 인정하는 것밖에 없어요. 그러니 노인은 공부해야죠. 특히 사람 공부를 끝까지 게을리하지 말아야죠.”

    -12·12 사태 때도 목요조찬회를 멈추지 않았다는 게 참 놀랍습니다. 분명히 피치 못할 사정이 많았을 텐데... 꾸준함이라는 게 그토록 중요합니까?

    “이런 이유든 저런 이유든 무너지기 시작하면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핑계 대지 않고 꾸준하게 하면 어떤 일이든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없어요(웃음). 쉬지 않고 했어요. 조찬 모임이 있는 목요일이 공휴일이면, 하루 앞당겨 수요일에 했지요. 법인 연회비 500만 원을 받고 했는데, 사실 호텔 비용 치르고 나면 적자 날 때가 많았어요. 악성 부채도 많았지만 정부나 대기업 지원같은 거 안받았어요. 오직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직자 같은 마음으로 했습니다(웃음).”

    -43년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인간개발연구원'의 아침 강연을 열어보니 인간은 어떤 존재라는 깨달음이 있으신지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공자는 ‘격물치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했습니다. 잘 관찰하기만 한다면 나도 남도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지요. 알게 되면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게 리더십의 원리입니다.

    왕양명은 지행합일을 강하게 주장했어요. 앎과 행동이 모두 마음 하나에서 나온 거라는 겁니다. 마음이 전부라는 말은 4차산업혁명으로 달려가는 이 시대에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얼마나 오묘한가 하면 하늘과 자연과 인간 질서를 다 좋은 쪽으로 깨쳐야 비로소 바뀌는 겁니다.

    인간은, 아니 인간의 마음은 그래서 참으로 신비로워요. 저 또한 정치를 안 하면서 정치인에게 직언했고, 돈을 못 벌면서 기업인을 움직였어요. 그건 내가 ‘나를 따르라'고 앞장서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지요.”

    -다섯 딸에게는 어떤 아버지입니까?

    “딸들에겐 자유를 줬지요. 방목을 했습니다(웃음). 저는 당대에 가장 잘 나가는 정계와 재계의 유력 인사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냈지만, 돈은 못 벌었어요. 돈과 권력을 추구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그게 오히려 부모 자녀 관계를 좋게 한 듯싶습니다. 과외 한번 제대로 못 시켜줬지만 다들 착실하게 공부했고, 성실한 배우자를 만났어요.

    한번은 유명 기업인과 친분이 깊어져 사돈을 맺자 했는데, 제 딸이 거절하더군요(웃음). 그 아이는 자기 직업에 최선을 다해 살다 해외에 나가 외국인과 결혼했어요. 나중에 그러더군요. 그건 아빠에 대한 배려였다고(웃음). 꿈을 이뤄도 가정 경영에 실패하는 사람이 많아요. 다행히 저는 돈으로 도움은 못 줬어도 자녀들에게 덕을 가르친 듯합니다.”

    인력개발이나 인격개발이 아닌 ‘인간개발'에 생애를 바친 장만기 회장. 그는 평생을 인간교육의 전도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영감을 준 멘토로 미국 인재교육의 선구자 격인 폴 마이어를 꼽았다./사진=이진한 기자
    인력개발이나 인격개발이 아닌 ‘인간개발'에 생애를 바친 장만기 회장. 그는 평생을 인간교육의 전도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영감을 준 멘토로 미국 인재교육의 선구자 격인 폴 마이어를 꼽았다./사진=이진한 기자
    -대한민국은 2017년 격동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 사회의 어른으로 내년을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한국은 이스라엘과 비슷한 면이 많아요. 5천 년 역사를 가졌고 민족 정통성에 대한 집념도 강합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시대를 거쳐 6.25와 분단까지 시련을 많이 겪었지요. 분한 생각도 들지만, 그 어떤 때보다 정신을 차려야 할 때예요. 베트남이 호찌민이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것처럼, 우리도 리더를 중심으로 모여야 합니다만, 현 상황이 쉽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경제 양극화와 교육 계급화가 심해요. 사회통합도 특정 세력이 주도하기를 기대하기 어렵죠. 어쩔 수 없이 지금은 지도자와 집단에 바라기보다 개인들이 변화의 중심에 서야 해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지요. 한 개인의 중심이 돼서 창조주와의 관계, 자연 물질세계와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격동의 한국을 살리려면 정치인들이 겸허해져야 합니다. 지도자가 국민들한테 자신 있으면 뺨 맞아도 웃고 넘길 수 있어요. 자기가 다 할 수 있다고 승자 독식하면 위험해요.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용해야 합니다. 야당에 쓸만한 사람은 뽑아다 써야 적이 없어집니다. 다 정치리더십에 달렸지요. 좋은 멘토들이 나서서 대통령이 바른 결정을 하도록 도와야 해요.

    한국은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어려움도 많아요. 시진핑은 사드를 자기 리더십 강화에 제대로 이용해먹었어요. 문재인 정부는 시진핑, 트럼프, 아베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적극적으로 오해를 풀어야 해요. 한국은 영토와 주권과 국민 중에서 국민이 가장 강한 나라예요. 너그러움과 힘으로 북한을 포용하려면 국민들도 ‘인간에 대한 지혜’를 더 넓혀야 합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예수로부터 배운 인재 경영" 한국 리더들 이끄는 회장님
    그는 ‘인간경영'이라는 큰 주제로 조찬모임을 하다 보니 이것이 기업인들에게만 필요한 교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재벌 3세의 갑질, 가정 내 폭언과 폭행, 직장 성추행 문제 등등 인간의 몸에 밴 과거의 악습이 정보화 사회를 맞아 아우성치듯 터져 나오고 있다. 모든 문제는 지위가 높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타인을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가정, 학교, 기업, 정부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인간 문제에 대한 총체적 해법으로 장만기 회장이 제시하는 것이 ‘피플 테크놀러지(People Technology)’ 즉 지혜의 인간학이다.

    “제 꿈은 멋진 기업인들이 출자해서 세계 곳곳에 ‘인간경영 학교’를 세우는 겁니다. 뉴욕, 상하이, 도쿄, 서울 등 우리 기업이 진출한 세계 주요 도시 180여 곳에 공자학당 같은 인간경영 학교를 짓고 싶어요. 삼성 같은 대기업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입니까?

    “동물에게 리더십이 있습니까? 사물에게 있습니까?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리더가 해야 할 것은 오직 사랑하는 것인데, 저는 사랑이란 말을 용서로 바꾸고 싶습니다. 사랑과 용서는 동의어입니다. 그게 리더십의 비밀입니다. 그리고 리더 스스로도 결함 많은 자신을 반성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관용적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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