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창업 15년만에 세계적 바이오시밀러회사 일군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젊은이의 자산은 하루라는 시간…어떻게 쓰느냐가 성패 좌우"
2018년은 셀트리온 퀀텀점프 원년…벌써 가슴이 뜁니다

  • 신찬옥 기자
  • 입력 : 2017.12.12 17:08:55   수정 : 2017.12.12 21: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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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보물지도를 가진 당신, 축하합니다. 이미 절반은 이룬 것이니, 나머지 반은 묵묵히 완주하기만 하면 됩니다. 도전하고 또 도전하세요. 죽기 전까지는 끝이 아닙니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인생에 얼씬도 못하게 하세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겁니다.
"

지난 6월 30일 매일경제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함께 개최한 'MK 바이오스타 오디션&창업 페스티벌' 개막식 동영상에서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62)은 이처럼 말했다. 예비 창업자들과 이른바 '죽음의 계곡(데스밸리)'을 지나고 있는 바이오벤처에 보내는 든든한 응원이었다. 보물지도란 표면적으로는 벤처를 창업할 수 있는 원천기술과 아이디어를 의미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기업가정신과 인생을 걸 만한 꿈을 일컫는 말이다.

서 회장은 직진이다.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제약사들조차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에 대한 확신이 없던 시절, 서 회장은 바이오시밀러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팔았다고 했다.

―보물지도를 따라가는 탐험대장 역할이 잘 어울린다.

▷17년이다. 나와 우리 직원들은 아무도 믿지 않던 보물지도를 따라 끝까지 가봤다. 이렇게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경쟁력인지 아는가. 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신약으로 가는 보물지도'를 받아 들었는데 하나도 두렵지가 않았다. 10년이 걸리든 15년이 걸리든, 잠시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멈추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서정진의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면, 성공할지 못할지 알 수 있다는데.

▷그렇다. SKY(서울·고려·연세대) 출신입니까? 45세 안 넘었죠? 자본금 있습니까? 이렇게 세 가지다. 세계지식포럼 오픈세션 때 연단에 올라왔던 분은 이 조건을 가뿐히 넘었다. 분명 나보다 크게 되실 분이라고 말했다. 난 서른두 살에 대우그룹 최연소 임원을 달았지만 마흔다섯 살에 백수가 됐고 마누라가 준 자본금 5000만원을 가지고 창업해서 여기까지 왔다. 굳이 SKY 출신이냐고 묻는 것은 내 성공에서 학벌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다. 생명공학 전공자도 아닌 내가 한국에서 세계가 알아주는 제약바이오기업을 키우지 않았는가.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더 중요한 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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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남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 처음에는 내가 똑똑해서 성공한 줄 알았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우리 직원들 덕분이라는 걸 알고 고마운 마음이 커졌다. 김형기 셀트리온 대표를 비롯해 지금 우리 사장단 9명 중 6명이 창업 초기 멤버다. 모두가 셀트리온을 의심할 때부터 '묻지마 투자'를 해준 우리 주주들에게도 감사하다. 기업을 키우려고 물심양면으로 애쓰는 정부와 나라를 걱정하는 매일경제 같은 언론에도 고맙다. 요즘 젊은이들을 만나면 "한국에서 시작하라"고 말해준다. 한국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알고, 방향성만 맞게 정해주면 어떻게든 해내는 한국인의 저력 덕분이다.

―세계지식포럼 강연 때 언급했던 자살 시도 일화에 청중이 울다 웃다 하더라.

▷'내 생애 마지막 보름' 말인가. 창업 후 7년간 자금 압박에 시달리면서 너무 힘들어 자살을 계획했다. 차로 액셀을 밟고 강으로 돌진하려고 양수리에 갔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건너편에서 트럭이 돌진해 하마터면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거다. 난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한 것이지 트럭에 치여 죽으려고 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 오늘은 일진이 안 좋네. 딱 보름만 더 살다가 죽자" 하고 돌아왔다(웃음). 덤으로 얻은 보름이라고 생각하니 주위 사람 모두에게 고맙고 미안해지더라. 만나는 사람마다 "고맙다, 미안하다" 하면서 보름을 살았더니 거짓말처럼 자살할 이유가 사라졌다.

―진짜 비결은 그런 마음가짐인 것 같다.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으려는 심성과 남들보다 두둑한 배짱은 있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수저론'이 싫다. 대학 때는 나라에서 가정교사(과외)를 못하게 해서 택시 운전 아르바이트를 했다. 24시간 택시를 몰고 와서 다음 24시간은 공부하는 날들이었다. 그러면서도 4.3점 만점에 평균 4.18점으로 공대 출신으로는 드물게 조기 졸업을 했다. 대우를 다니면서도 셀트리온을 경영하면서도 똑같았다. 중요한 것은 습관이다.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자산은 하루라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쓰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이다.

―청년들 일자리 찾기가 만만치 않다.

▷셀트리온 TV 광고가 두 편 있는데 내가 콘티를 짜고 카피를 썼다. 거기 '거꾸로 달리기'라는 말이 나온다. 난 취업이 안 돼서 창업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창업 전까지 약 이름이라고는 '아스피린'밖에 몰랐다. 공부해 보니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한 의약품 원료 물질은 400개밖에 안 되더라.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나. 절실하면 하게 돼 있다. 외국어를 배워 보면 안다. 돈 내고 학교를 다니면 진도가 느린데, 계약을 따고 돈 벌려고 공부하면 금방 한다.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했는데.

▷청년들이 헤쳐나가야 할 미래는 '정답 없는 세상'이다. 정답이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네가 틀렸다"거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한마디씩 할 것이다. 누군가는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당신의 결정을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웃기는 게 무엇인 줄 아는가. 세상의 호들갑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밀어붙여서 성공하고 나면 그걸 정답이라고 부른다. 거짓말쟁이, 사기꾼 소리를 들어가면서 10년 가까이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그리고 2012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램시마 허가를 받아왔는데도 계속 의심하더라. 2015~2016년 미국과 유럽의 인정을 받고 나서야 "정답을 맞췄다"며 인정해줬다. 세상은 그런 곳이다. 나를 믿지 못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절대로 숙이지 말라.

―'사업가 학교 5학년'이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창업했던 것 같다. 직장을 잃었고 재취업이 안 되니 뭐라도 해야 했다. 사업가 1학년은 망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하는 시기였다. 2학년은 돈을 좀 벌고 싶고 제대로 써 보고도 싶어서 열심히 했다. 3학년 때는 여기저기서 애국자라고 치켜세우니 우쭐해서했다. 4학년쯤 되니까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5학년이 된 지금은 다음 세대에 창피하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자녀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모습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다." 이 한 마디면 족하다. 나를 떠올릴 때 후대를 위해 최선을 다해 풍요를 일궜고, 덕분에 행복하게 살고 있노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이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저는 오늘도 하루를 1년처럼 열심히 살겠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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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 그룹에 2018년은 중요한 분기점이다. 내년 2월 셀트리온이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이전상장을 하는 한편 3공장이 이전할 해외 용지도 상반기 중 발표된다. 서 회장은 지난 9월 코스피 이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임시 주주총회에 깜짝 등장해서 국외 유통 파트너사들의 요청 등을 감안해 당초 송도에 지을 예정이던 3공장을 해외에 짓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유럽시장을 석권하고 미국에 진출한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는 단일 품목으로 연 매출 1조원의 신화를 쓰고 있고, 뒤를 이은 허쥬마와 트룩시마도 셀트리온 브랜드 효과에 힘입어 실적 호조가 예상된다.

―내년 굵직한 이벤트가 예정돼 있는데.

▷올해가 셀트리온 창립 15주년이다. 포토스토리북(사사)도 펴내고 기념식도 열었다. 기념식이 지난 2월 27일이었는데 15년간 울고 웃고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날 몇 번이나 무대에 올라갔는지 모른다. 하반기 들어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10조원대 주식 갑부네 어쩌네 하는 뉴스가 나왔지만 그보다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학생들 앞에서 몇 번의 강연을 했던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2018년은 '퀀텀점프 원년'이라고 할까. 셀트리온에도 우리나라에도 좋은 뉴스가 많이 나올 것이다.

―셀트리온이 기대하고 있는 굿뉴스는.

▷램시마, 허쥬마, 트룩시마가 우리 회사 '바이오시밀러 삼총사'다. 내년이 3개 제품 모두 글로벌시장에 진출하는 원년이 될 것이다. 유방암 치료제 허쥬마가 유럽의약품청(EMA) 허가를 기다리고 있고, 허쥬마와 함께 혈액암 치료제 트룩시마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기대하고 있다. 램시마 매출 그래프를 보면 시장 진입 초기에는 완만하다가 어느 정도 인지도와 신뢰가 쌓인 뒤에는 급격한 우상향을 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3공장을 해외에 짓겠다고 선언한 이후, 한반도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지속적인 생산을 보장받고 싶어하는 외국 파트너사들의 요청 때문이다. 내가 우리나라 저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얼마나 사랑하는데 굳이 나가고 싶겠는가. 반드시 해외에 짓겠다기보다 국내외 모두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정도로 생각해달라.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모든 그룹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에 대처할 방법을 생각할 것이다. 제가 주목하는 건 기술의 융합과 진보가 새로운 산업만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실업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양지와 음지가 공존하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존의 질서'를 만드는 일이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즐기는 것 같다.


▷가장 안 좋은 것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쓸 틈도 없고 무언가 시도해볼 수 있는 틈도 없는 것이 최악이다. 위기이자 기회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피할 수 없다면 목숨을 걸고 기회로 만드는 게 내 스타일이다. 사람들이 '서정진도 했는데 나라고 왜 못해?'라는 생각을 하면 참 좋겠다.

서정진 회장은...

△1957년 충북 청주 출생 △1977년 제물포고 졸업 △1983년 건국대 산업공학 학사 △1983년 삼성전기 입사 △1992년 대우자동차 상임고문 △2002년 (주)셀트리온 대표이사 회장 △2015년~ (주)셀트리온 회장

[신찬옥 기자 / 사진 = 류준희 럭스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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