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Story] 진화하는 최고 비전기업 다시 100년을 향한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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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10.01 03:03

'승리한 거북이 기업' 3M 조지 버클리 CEO
연마재부터 시작한 사업 켜켜이 쌓아온 기술 그 결과물로 나온 5만5000개의 제품들…

Craig Lassig
"자연에서 최고의 절단면을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뾰족한 삼각형의 상어 이빨입니다. 직원 누군가가 '우리 연마재(硏磨材·돌이나 쇠를 갈고 닦을 때 사용하는 사포와 같은 상품)의 입자를 상어 이빨처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시간이 지나도 무뎌지지 않도록 상어 이빨 모양을 계속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지난 8월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 본사에서 만난 3M의 조지 버클리(Buckley·64) CEO는 탁자에 있던 노란색 포스트잇 한 장을 떼어냈다. 정사각형 포스트잇을 삼각형 모양으로 접은 뒤 절반을 잘라 두 개의 삼각형 조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삼각형 조각을 다시 잘라 같은 모양의 삼각형 4조각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무한 반복, 이 조각처럼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같은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사물의 '프랙탈(fractal)' 속성입니다. 연마재 입자는 그전까지 유리를 깨듯이 재료를 조각 내서 만들었어요. 서로 다른 모양의 조각들로 이뤄져 연마력이 쉽게 떨어졌지요. 우리 직원들은 연마 과정에서 입자가 깨져도 전과 같은 상어 이빨 모양을 유지하는 속성의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미세 복제기술을 활용한 '큐비트론(cubitron)Ⅱ' 이지요. 이번 혁신으로 입자의 수명을 6배, 연마 속도를 3배 끌어올렸습니다."

연마재는 광산에서 강옥(鋼玉)을 채취하다 도산한 3M에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준 사실상 창업 제품이다. 3M의 창립 연도는 1902년. 기업도, 기술도 100년이 넘었다. 하지만 지금도 3M은 연마재 분야에서 연 1억달러 매출을 올리고 있다. 크고 작은 혁신이 나이테처럼 쌓여 커다란 기술의 나무를 만든 것이다. 3M은 35개 사업 분야의 5만5000개 나무(제품)가 100년 혁신을 통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기업이다. 3M의 상징으로 잘 알려진 스카치테이프와 포스트잇, 교통 표지판의 반사(反射) 소재, LCD TV용 광학 필름, 청진기·반창고….

버클리 CEO는 "우리에게 혁신은 일회성 이벤트(one time event)가 아니다"고 말했다. "혁신은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의 이벤트입니다. 우리에게 혁신은 문화적 이슈이지요. 정체성, 가치,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세계적인 경영사상가 짐 콜린스(Collins)는 3M을 '세계 최고의 비전(vision) 기업'으로 꼽았다(저서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 그에 따르면, 3M은 "진화하는 기계"다. 그는 "향후 50~100년 동안 지속적인 성공과 적응력을 지닌 기업 하나를 꼽는다면, 당연히 3M을 선택할 것이다. 3M을 통해 장거리 달리기의 최종 승자는 토끼가 아닌 거북이임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0일 Weekly BIZ가 버클리 CEO를 만나 109년 동안 달려온 '승자(勝者) 거북이' 3M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3M은 IT기업이 아니다. 하지만 '혁신'에 있어선 어깨를 나란히 한다.올해 4월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인 부즈앤컴퍼니(Booz & Company)가글로벌 기업 임원 4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발표한'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10대 기업' 순위에서 3M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위는 애플, 2위는 구글이었다. 연마재 판매로 사업이 자리 잡기 시작한1914년 26만4000달러였던 매출은 작년 266억달러로 증가했고,시가총액은 522억달러까지 늘었다.하지만 3M의 실력은 신제품활력지수(NPVI)란 지표에서 드러난다.최근 5년 동안 개발된 제품에서 얻는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즉 기업의 신진대사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다. 3M의 작년 NPVI는 31%.

Craig Lassig
카리스마가 없는 기업

3M은 묘한 회사다. 3M은 유명하지만 100년 역사를 지휘한 사령탑 13명은 모두 무명에 가깝다. 3M을 오늘의 3M으로 만든 윌리엄 맥나이트(McKnight·1929~ 1949년 회장 재임)조차 경영사상가인 짐 콜린스가 그의 업적을 1994년 베스트셀러 저서에 상세하게 기술하기 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짐 콜린스는 "3M 이야기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3M 자체가 맥나이트와 다른 모든 개인들을 뛰어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변화하는 기계'처럼, 누가 사장이 되든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힘이 3M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미국 미네소타주(州) 세인트 폴의 3M 본사에서 만난 조지 버클리 CEO도 카리스마와 거리 먼 인물이었다. 그는 3M의 CEO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혁신을 위한 핵심 에이전트이지요. 혁신을 고취하기 위해 있는 사람입니다. CEO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조사를 보면, 직원들은 '혁신을 이끌어가는 책임의 70%가 CEO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이고 넘버원이지요. 그렇다고 모든 것에 관여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직원들은 '이거, 괜찮은데?'라고 생각하면, 본능적으로 '우리 CEO는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궁금해하지요. 이때 CEO가 '이건 이래서 안 되고, 내 마음에 안 들고…'라고 얘기하면 직원들은 행복하지 않겠지요. 어떤 '가욋일'도 안 할 겁니다. 3M의 문화인 자유와 실패에 대한 관용도 사라지겠죠. 3M의 CEO는 혁신을 위한 치어리더(cheer leader)입니다. 실제로 춤까지 춘 적은 없지만."

3M도 변신을 시도한 적이 있다. 2001년 GE 출신인 제임스 맥너니(McNerney)가 사상 첫 외부 영입 CEO로 사령탑을 맡았을 때였다. 그는 당시 각광을 받던 GE의 경영기법 '식스 시그마(품질과 성과에 대한 정량적 평가와 효율성을 강조하고 개발·제조 과정에서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를 도입해 영업이익을 연평균 22%씩 끌어올렸다. 괄목할 성과였다. 하지만 3M이 만들어 낸 히트상품 포스트잇의 발명자 아트 프라이(Fry)는 "폭넓은 자유를 부여하던 제품 개발 과정에 경영진이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고 그를 비판했다. 3M은 다시 3M으로 유턴했다. 2005년 조지 버클리 CEO의 취임이 전기였다. 미국에서 GE 신화가 깨지기 3년 전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시도하라, 지금 당장"

1969년 7월 20일.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Armstrong)은 흰색 부츠를 신고 있었다. 당시 달 표면 온도는 섭씨 영하 150도. 극저온으로부터 우주비행사들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미 항공우주국(NASA)이 특수 제작한 신발이었다. '신슐레이트(Thinsulate)'라는 보온 소재가 사용된 이 부츠의 밑바닥 자국이 달 표면에 찍혔다.

2000년 9월 호주 시드니 올림픽. 단거리 육상스타 마이클 존슨(미국)의 남자 400m 2연패만큼 화제가 된 것은 '황금 신발'이었다. 나이키는 마지막이 될 그의 올림픽 출전을 위해 금 24캐럿을 함유한 특수 반사 소재를 사용해 운동화를 특별 제작했다. 반사력을 높여 돋보이게 하면서 최대한 가벼워야 했기 때문에 첨단 기술이 요구됐다.

NASA와 나이키의 신발엔 모두 3M의 기술력이 녹아 있었다. 신슐레이트 소재는 1960년대부터 3M이 갈고 닦은 초미세 합성섬유 기술 개발의 결실이었고, '황금 신발'은 나이키의 의뢰를 받은 3M이 자사(自社)의 스카치라이트(Scotchlite) 반사 소재와 금을 결합해 만들었다.

버클리 CEO는 "우리가 작년에 내놓은 신제품이 1200개"라고 말했다. "지금도 수백 개에서 1000개에 이르는 새 아이디어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직원 개개인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고를 받고 측정해서 나온 숫자는 아닙니다. 그저 평균적인 수치이지요. 멍청하게 들리더라도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항상 들어주는 것이 우리 문화입니다. 직접 물어보면 알겠지만, 그래서 직원들이 여기서 일하는 것에 굉장히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M은 "무엇을 하는 회사"라고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업 분야를 가지고 있다. 짐 콜린스는 "3M은 어떤 경영 컨설팅 회사라도 탐낼 만한 부문별 사업 포트폴리오를 일관되게 구성해 왔다"고 평가했다. 겉으로는 완벽하게 창조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변화와 선택이란 계획되지 않은 진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포트폴리오란 얘기다. 그래서 그는 3M을 "돌연변이 기계"라고 표현했다.

버클리 CEO는 이런 평가와 관련해 3M의 두 가지 문화적 특징을 설명했다.

"첫째 우리는 '이윤'을 추구합니다. 우리 직원들은 단지 발명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좋은 과학자라는 평가도 받고 싶어하지만, 많은 이윤을 낸 과학자라는 평가도 받고 싶어하죠. 그래서 이윤을 내는 작업에 단결력을 발휘합니다. 둘째 우리는 '균형'을 추구합니다. TV 시장을 보면 삼성·LG·파나소닉·소니 등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변동성이 심하죠.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분야만 60개 정도이지요. 소비재, 산업용, 우주산업, 병원, 자동차, 안전·보안, 군수(軍需)까지. 그래서 변동성이 적고 사이클에 둔감한 편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스냅샷으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자유와 공유의 문화

짐 콜린스는 "비록 포스트잇 개발이 우연히 이뤄졌다고 해도, 그것을 가능하게 한 3M의 환경은 결코 우연히 창조된 것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가장 대표적인 환경이 '15% 룰(rule)'이다. 구글이 '20% 룰'로 벤치마킹한 시스템이다. 경영기법이라고 할까, 문화라고 할까. 모든 직원이 근무 시간의 15%를 자신이 생각한 창조적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3M의 '15% 룰'은 전임 맥너니 CEO 때 폐지됐다가 버클리 CEO 취임 후 부활했다.

그는 "15라는 숫자가 아니라 15% 룰이 갖는 '자유'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룰을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입니다. 젊은 직원들은 자유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좋은 아이디어나 프로젝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회사라는 자동차의 핸들에 자기 손을 조금이라도 얹어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내가 혁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성취함으로써 자신이 쓸모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요."

'15% 룰'이 자유의 문화라면, 3M이 60년 동안 운영해온 '테크 포럼(Technology Forum)'은 공유(共有)의 문화를 상징한다. 약 1만명인 3M의 연구·기술 인재들이 매년 9월 미네소타주 본사에 열리는 '글로벌 테크 포럼'에 모여 진행 중인 기초기술 연구와 제품 개발 현황 등을 발표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평균 3000명이 참석하는 과학 토론회다.

"3M의 혁신 기술과 제품은 우리가 보유한 핵심 기초기술들을 융합해 나온 결과물입니다. 융합을 위해선 기술에 대한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겠지요. 테크 포럼은 3M이 지닌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는 공식·비공식 네트워크를 만들어온 핵심 고리입니다."

혁신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이뤄질까?

버클리 CEO는 "3M에서 혁신은 일상 업무"라고 말했다. "금전적 보상은 없습니다. 다만 3M의 혁신에 공헌한 연구자를 칼튼 협회(Carlton Society) 회원으로 인정합니다. 최초의 연구개발사업 부장인 리처드 칼튼을 기념하는 모임으로 지금까지 167명의 과학자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칼튼 협회 가입은 3M R&D 인력이 최고의 훈장으로 여기는 명예입니다. 신규 사업의 매출이 1000만 달러를 넘어서면 골든스텝(Golden Step)상을, 15% 룰을 통해 신사업을 창출하면 혁신가상(Inventor Award)을 줍니다. 모두 명예이지요."

리더의 평상심

버클리 CEO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다. "모두가 두려워했죠. 하지만 저는 한 걸음 물러서서 지난 100년 동안의 세계 경제 역사를 되돌아 봤습니다. 최대한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이 위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경기 회복은 언제쯤 가능할지' 연구하고 직원들에게 설명했어요. 회사 직원들은 자기보다 두려움에 떠는 리더를 따르지 않습니다."

영국 셰필드 출생인 버클리 CEO는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부모 손에 버려진 고아였다. 할머니와 양어머니가 그를 차례로 길렀다. 건강이 나빠 어릴 때부터 빈혈과 만성 기관지염에 시달렸다. "할머니께선 매우 터프하면서 현명한 여자였고, 양어머니는 부드럽고 친절한 분이셨어요. 위기의 순간에 평상심을 유지하고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을 두 사람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사람들에게 신뢰를 쌓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려 깊게 행동하고 상대를 항상 존중하는 겁니다. '사람'이 없으면 3M의 혁신도 불가능하니까요."

불우한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는 엔지니어의 꿈을 키웠다. 배우지 않으면 남은 인생을 바보처럼 살 것 같아서 공부에 매진했다. 장학금을 받아 전자공학 박사가 됐다. 그는 미 경제전문지 포춘의 500대 글로벌 기업 CEO 가운데 유일한 영국인이다. 지난 6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업인으로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爵位)를 받았다.

"어릴 땐 라디오나 세탁기 같은 걸 분해하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크레인이나 자동차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도 좋아했어요. 물론 중고품이었습니다. 무척 가난했으니까…. 그래도 항상 새로운 걸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할머니도 항상 엔지니어가 되라고 응원해 주셨죠."

포스트잇, 실패의 산물


3M의 포스트잇은 실패와 우연의 산물이다. 3M의 과학자 아트 플라이는 매주 교회 합창 연습 때마다 불편을 느꼈다. 합창단이 부를 찬송가 페이지를 표시하기 위해 찬송가 책에 종이를 끼워뒀지만, 종이가 자주 빠지는 바람에 페이지를 놓치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종이를 책에 임시로 끼워둘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3M의 한 연구원이 발표회에서 소개한 접착제를 떠올렸다. 그 연구원은 강력한 접착력을 가진 제품을 만들려고 했지만, 개발된 접착제는 접착력이 약하고 실용성이 떨어지는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플라이는 그 연구원과 임시 북마크 연구에 착수했고, 활용도를 메모지로 넓혔다. 그는 제품 견본을 사내에 배포하면서 시장성을 설득했고 1980년에 시판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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