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슈퍼판매 국회 제동에 비난 '봇물'>

연합뉴스 | 기사전송 2011/11/20 06:50

"뚜렷한 명분 없는 반대" "국민 요구 외면"총선 눈치보기 밀려 결국 19대 국회로 넘어갈 위기

(서울=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감기약 등 가정상비약의 약국외 판매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약사에 이어 국회의원들마저 국민의 편의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반대론자들이 내세운 근거 중 일부는 예외적인 상황의 위험을 과장하거나 지나치게 정치적인 해석에 의존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내년 총선을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눈치보기라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약사 눈치보기 급급…국민은 '핫바지'냐" = 20일 복지부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정부가 제출한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 안건에서 아예 빠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정치권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11일, 여야 간사회의에서 민주당의 반대로 약사법 개정안 상정이 불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트위터를 중심으로 온라인 공간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대세를 이뤘다.

트위터 아이디 ybk***의 한 누리꾼은 "국회의원들이 약사들의 밥그릇 지켜주느라 (약사법 개정안을 상정)처리하지 않았다"며 "약사들의 표는 무섭고 83%의 국민은 핫바지 취급한다"고 일갈했다.

아이디 vag***인 누리꾼은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개정안을 6만 약사들의 눈치를 보며 상정조차 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집단이기주의"라며 "국민이 준 배지 왜 달았습니까"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아이디 ryu***의 한 누리꾼도 "민의의 국회가 국민의 편익보다는 직능단체의 이익을 우선시했다"며 개탄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이 같은 실망감은 국민이 지금까지 의약품 약국외 판매 정책에 보여왔던 높은 관심과 기대감을 반영한다.

지난 9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참여자의 83%가 감기약 등 가정상비약을 약국이 아닌 가까운 장소에서 판매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앞서 진행된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도 전체의 70%가 일반의약품 슈퍼마켓 판매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약사법 개정되면 광고시장 확대된다? = 이처럼 찬성 여론이 절대적으로 우세함에도 불구 약사와 야당의원들이 약사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약품 중독에 대한 우려다.

특히 민주당과 일부 여당 인사들은 이런 논리를 과대 포장해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추진 중인 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 재분류 결과를 지켜본 뒤 약사법 개정안을 심의해도 늦지 않는다며, 법안의 상임위 전체회의 상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대부분 약사법 개정 이후 고려해야 할 문제이거나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의약품 재분류는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가운데 서로 영역을 바꿀 것이 있는지를 살피는 과정이지, 약국외 판매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약국외 판매 대상 분류는 법 개정이 이뤄진 이후에나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 약사단체와 일부 정치권이 약사법 개정 반대 논리로 내세우는 약화(藥禍) 사고 등 우려도 과도하다는 것이 소비자단체의 견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최근 성명에서 의약품 오남용 문제에 대해 "국민이 요구하는 약국외 판매 의약품은 소비자가 직접 선택하더라도 부작용 우려가 거의 없는 의약품"이라며 "이를 잘 선별해 약국외 판매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뒤 시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일각에서는 약사법 개정안이 종합편성채널의 광고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동원된 정책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약국외 판매 의약품이 늘면 광고 품목이 늘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방송광고 시장의 확대로 이어진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약국외 판매 의약품은 이미 일반의약품에 속하기 때문에 지금도 광고가 가능한 품목이다. 새로 출시되는 제품이 늘어나지 않는 한 약국외 판매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대상은 이미 일반의약품이기 때문에 광고시장 확대와는 거의 관계가 없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추측이다.

의약품 재분류를 통해 일반의약품 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재분류를 통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 수는 시민단체가 제시한 10여개 품목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허용한다고 해서 광고 품목이 늘어난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찬반 여부 묻자 "총선 때문에…" =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고 반대 근거조차 미약함에도 불구 약사법 개정안 처리가 난항을 겪는 이유는 결국 '총선'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야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지난 9월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 약사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말에 "솔직히 말해 내년 선거 때문에 민감한 상황"이라며 "찬반 의견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실제 국정감사에서 여야 불문하고 한 목소리로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반대했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지켜본 뒤 유보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약사들의 압력과 돌아선 여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정치인들은 결국 전체회의 안건에서 약사법 개정안을 빼버렸고 사실상 이번 회기처리는 물 건너간 꼴이 됐다.

내년 2월 임시국회는 총선이 임박한 시점이기 때문에 개정안 처리를 기대하기는 더 힘든 상황이다. 18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종료되는 내년 5월까지 약사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하면 결국 약사법 개정은 원점으로 회귀하게 된다.

roc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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