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만 만들다 대학생활 끝났다`

"이력서만 만들다 대학생활 끝났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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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11.27 18:39

|수정 2011.11.27 18:39

|누가 봤을까? 20대 남성,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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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위권 대학 경제학과에 다니는 이 모씨(4년)는 지난해 말 공인회계사(CPA)시험 준비를 접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스펙'을 쌓기 시작했다.

토익 960점, 토익스피킹 레벨 7, 프랑스어 자격증 레벨 6, 스페인어 B1 등 각종 외국어 특기를 살리고 올해 초 모발이식 수술까지 받으며 외모도 가꿨다.

이렇게 지난 1년간 취업 준비에 들어간 돈은 무려 1400만여 원. 지난 2년간 CPA 준비에 쓴 돈 1000만원까지 합하면 총규모는 2500만원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올해 그에게 취업 시장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씨는 "다른 친구들처럼 최소한의 스펙을 맞추려고 한 것뿐인데 등록금과 생활비를 빼고 매월 50만~60만원을 지출했다"며 "부모님 지원과 아르바이트로 비용을 댈 수 있었지만 마이너스통장을 만드는 다른 학생들을 보며 참담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토로했다.

학점과 토익, 자격증 등 취업을 위한 자격 조건을 뜻하는 '스펙'.

그러나 '스펙 인플레이션'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7일 매일경제신문이 서울 소재 10개 대학의 취업준비생(4년생) 2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학생들은 4년간 스펙을 쌓기 위해 평균 1500만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게는 3000만원 이상 지출하는 사례도 조사됐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스펙을 갖추기 위해 시험 응시료가 100만원이 넘는 자격증에 도전하거나 이력서에 '외국 경험' 한 줄을 넣기 위해 유학을 떠나는 대학생도 늘어나면서 스펙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서울 중상위권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권에 취업한 박 모씨(30)는 "학창 시절 '이력서 만들기'를 빼고는 뭘 했는지 생각도 안 난다"고 털어놨다.

학점 3.8점(4.5점 만점), 토익 985점, 토익스피킹 레벨 6, 한자 2급 자격증과 같은 기본 스펙은 물론이고 펀드투자상담사(AFPK), 국제재무설계사(CFP), 증권투자상담사, 은행권 공모전, 9개월짜리 어학연수(영국) 등을 두루 갖추는 데 3000만원 넘게 들었다.

그는 "연 1000만원의 등록금과 치솟는 생활비도 감당해야 하는데 취업에 실패했으면 스펙 비용 손실을 메우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 중에는 스펙과 담을 쌓고도 취업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스토리(story)' 개발이다. 스펙보다는 직장에 대한 가치관과 목표의식 등을 키우는 자신만의 스토리가 훨씬 더 취업에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광운대 소프트웨어학과를 졸업하고 LG전자에 입사한 오상교 씨(27)의 스펙은 토익과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1개뿐이다. 4년 내내 스펙 쌓는 데는 오직 25만원만 썼다. 대신 오씨는 학창 시절 인문학ㆍ경영학 서적을 100권 가까이 읽었다. 그는 "사마천의 '사기' 등 역사책을 탐독하면서 공대생에게 볼 수 없는 모습을 면접관에게 보여줬던 게 주효했다"며 "기술적인 면에 집착하는 공대생보다는 기술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경영학적 마인드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오씨는 당시 면접관에게서 "컨설턴트 같다" "어떻게 해야 사업성이 있는 아이템을 찾는지 아는 것 같다" 등 칭찬을 받았다. 오씨는 "자신감과 목표, 인생의 가치관 등 자신만의 '스토리'가 진짜 스펙"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취업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으로 생겨난 스펙 인플레이션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김성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많은 학생이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미국 대학생들도 경시대회나 봉사활동 등 스펙은 화려한데 스펙의 단순 나열이 아니라 자신만의 '스토리'를 강조하고 기업도 스펙이 지원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검증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취업준비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종필 건국대 취직지원센터팀장은 "학생들에게 스펙이 아닌 다른 것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업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자들의 역량과 인재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학생들이 그런 정보를 모르니 대부분 영어 시험과 자격증에만 목숨을 걸게 된다"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 배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