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3D 프린터 공습, 내 일자리는 괜찮을까

| 2014.05.07

3D 프린터 바람이 뜨겁다. 특히 3D 프린터가 제조업 분야를 혁신한다는 기대가 크다. 유통이나 복잡한 과정을 걷어내 제품 설계부터 제작까지 단계가 간단해진다는 얘기다.

3D 프린터가 가져올 혁신 한편엔 3D 프린터가 바꾼 세상 속에 살아야 할 사람이 있다. 3D 프린터가 제조업계 구조를 바꾸면 그곳에 사람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전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3D 프린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지도 모르는 제조업 현장에서는 3D 프린터 열풍을 어떻게 느낄까.

치과 원장 “치기공사 일자리 줄어들 것” vs 치기공사 “생각해본 적 없다”

치아 모델 ▲치아 모형 (출처 : 위키미디어 CC-BY Xauxa)

페리오플란트치과 서울 이수점 이진균 원장은 직접 3D 프린터를 활용하고 있다. 환자 구강을 3D로 스캐닝해 페트병과 비슷한 재질로 투명 교정 장치를 만든다. 이전까지는 석고 모형을 떠서 했던 작업이다. 이진균 원장은 3D 프린터를 쓰면 여러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일단 재료 무게가 줄고 비용을 아끼는 효과가 있어요. 조작성도 이전보다 훨씬 좋고요. 석고 모형은 일일이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하는데 3D 프린터는 컴퓨터 3D 영상으로 보며 이리저리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교정 장치를 만드는 일이 한결 편합니다. 또 컴퓨터 데이터로 기록하기 때문에 보관과 이동이 쉽고 파손될 일도 적어요.”

치과 업계는 3D 프린터 기술을 가장 발빠르게 도입한 분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아직 치아를 대신하는 보철물이나 인공치아를 만드는 수준은 아니라고 이진균 원장은 전했다. 지금 보급된 기술은 여러 한계 때문에 후가공을 따로 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 아직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이진균 원장은 3D 프린터 기술이 더 발전하면 치과 업계 지형도 변하리라 내다봤다.

“정밀도가 높아지면 재료 낭비가 없어지고 제작 시간도 단축될 걸로 보여요. 대신 치과 보철물을 만들던 사람들은 점점 필요가 줄어들 겁니다. 치과기공사가 할 일이 사라진다는 거겠죠.”

치과의사가 치과기공사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는 반면, 당사자인 치기공사 쪽은 고민조차 못 해본 모습이었다. 대한치기공사협회 관계자는 “기공물을 (3D 프린터로) 제작하기는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조사해 본 적도 없다”며 “준비된 자료도 없고 조사를 해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D 프린터 재빨리 도입한 신생 업체  vs  ”지켜 보겠다”는 전통 제작업체

서울 홍익대학교 앞에 위치한 모형제작소 글룩은 젊은 디자이너 4명이 5달 전에 꾸린 신생 업체다. 글룩은 입체 조형물을 출력해주고 3D 프린터를 이용한 콘텐츠를 개발한다. 이자열 글룩 프로젝트 매니저는 “자릿값이 비싸지만 홍익대 미대 수요가 있을 것 같아 일부러 홍대에 자리를 잡았다”라고 말했다. 모형을 만들 일이 많은 미대 학생을 겨냥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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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홍보도 하기 전에 일감이 쏟아졌다.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에 설계에서 모형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3D 프린트로 하는 수업이 개설된 덕이다. 이 수업을 듣는 학생 대다수가 글룩을 찾아 조언을 구하고 과제물을 만들어 갔다.

글룩은 단순히 3D 프린터만 빌려주지는 않는다. 3D 프린터만 있다고 결과물이 뚝딱 나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 프린터에서 결과물을 얻으려면 문서 파일이 필요하듯 3D 프린터로 무언가 만들려면 ‘라이노’나 ‘맥스’, ‘마야’ 같은 3D 설계 프로그램으로 그린 도면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이 많아 글룩 멤버가 옆에서 설계도를 손봐주며 작업을 돕는다.

글룩이 3D 프린터로 새로 기회를 찾은 업체라면, 기존 모형 제작 업체는 어떻게 상황일까. 3D 프린터 쪽으로 수요가 모이면 일감이 줄어들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3D프린터와 기존 목업 제작 방식 비교
▲ FDM방식 3D프린터(왼쪽) 재료는 ABS다. 실처럼 감겨있는 ABS를 녹여 쌓으며 제품을 만든다. 기존 시제품 제작 방식(오른쪽 사진)은 ABS 덩어리를 깎아 완성품을 만든다.

기존 방식으로 목업 작업을 하는 중소규모 목업 업체 명성기획 얘기를 들어 봤다. 김종구 명성기획 실장은 “우리는 워킹 목업을 주로 하기 때문에 타격이 좀 늦게 올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중에 3D 프린터를 보유한 곳이 많은데, 디자인 용도로 우선 보고 워킹 목업을 만들어 달라고 다시 의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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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디자인 목업과 워킹 목업이다. 디자인 목업은 형상과 구조, 색상 등을 검토하기 위한 목업이다. 워킹 목업은 제품의 부품 등을 설계도에 따라 내부 작동성과 조립성, 양산성, 내구성 등 금형제작 전 단계에서 오차를 검토하기 위한 목업을 말한다. 그래서 들어가는 재료도 최대한 실제 제품과 비슷한 것으로 한다. 앞서 소개한 글룩은 디자인 목업을 만들고 명성기획은 워킹 목업을 만든다.

워킹 목업을 만드는 명성기획은 3D 프린터 열풍에선 조금 비껴 서 있다. 워킹 목업은 디자인 목업보다 완제품에 더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더 튼튼하고 정밀하게 제작해야 하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3D 프린터로 워킹 목업을 만들기엔 강도나 정밀도, 소재의 한계가 있다.

그는 “3D 프린터 때문에 아직까지 큰 타격은 없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명성기획에 목업을 만들어달라고 일을 맡기던 업체가 3D 프린터를 도입해 자체적으로 목업형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구 실장은 “3D 프린터 관련한 특허가 풀리면서 그런 움직임이 더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명성기획 거래업체 가운데도 3D 프린터를 사들인 곳도 있다. 대표 사례는 현금인출기(ATM)를 만드는 효성이다.

김 실장은 “3D 프린터 기술력이 우리를 넘어서는 날이 올 거라는 위기감은 있지만 아직 별다른 준비는 안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3D 프린터는 생산비가 우리의 30% 수준”이라며 “앞으로 인건비가 많이 줄어들 것 같다”고 내다봤다.

구상권 게임인재단 3D랩장 역시 3D 프린터가 보급되면 인건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구상권 3D랩장은 “3D 프린터를 도입하면 4명이 하는 일을 3명이 하게 된다”라며 “손으로 (모형을) 깎을 일이 없어 손을 놀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이 할 일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구상권 3D랩장은 줄어든 인건비가 장비를 갖추는 데 투자될 것으로 내다봤다.

“아직은 먼 미래”…대응책 미흡

새 기술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다. 현금자동인출기가 생기자 은행 직원 수는 줄었다. 무인 경비 시스템은 경비원을 대체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무인 경비 시스템을 도입한 뒤 경비원 고용을 줄인 아파트가 2010년 20.2%로 늘었다.  3D 프린터도 누군가의 일자리를 앗아간다는 보고서도 나오는 마당이지만, 일선 현장에선 아직 3D 프린터 가져올 영향에 대한 대응을 먼 미래로 미루고 있는 모습이었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어떤 경제시스템과 사회체계도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새 기술에 의한 인간 노동의 대체 현상에 대응책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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