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건강 클리닉] 삼각형의 생활패턴을 만들어보자 삼성스포츠|입력2013.11.1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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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삼성병원]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질문을 받을 때 우스개 소리로 "학교, 도서관, 집밖에 모르는 아이였어요"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인즉 학교 갔다가, 도서관 가서 공부하다가, 집에 와서 잤다는 말. 엄청난 모범생이었다는 말의 유희적 표현이다. 가끔 이런 얘기는 슬프게 들리기도 하는데 그만큼 다른 활동이나 여가생활은 접어두고 공부에만 몰두했단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을 둔 부모님은 엄청나게 좋아할 일 같지만 실상 이 학생 본인은 어디에서 스트레스를 풀었을지 궁금해진다.

진료 시 우리 차트에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 이라는 칸이 있다. 대개 초진 때 이를 물어보게 되는데 많은 직장인 및 주부들이 "특별히 하는 게 없는데요" 라고 대답하는 일이 많아서 놀라게 된다. "예전에는 그래도 헬스클럽 가서 운동도 좀 하고 했는데 요즘은 먹고 살기 바빠서 좀처럼 하기 힘드네요. 집에 가면 애들과 좀 놀아주다가 애들 자면 나도 자기 바빠요", "집안일이 많아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애들 학교 끝나고 오고 애들 챙기고 남편 퇴근 후 챙기고 하면 하루가 번개처럼 가네요" 대개 이런 레퍼토리이다. 먹고 사는 문제, 즉 '먹고사니즘'은 모든 대한민국 가정의 우선 문제이다 보니 이를 해결함에 모든 전력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다 보니 쉬고 노는 것은 사치스러운 말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분들에게 그러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냐고 물어보면 "특별히 뭐 없는데요" 아니면 "그냥 참지요" 가 대부분이고, 일부에서는 "그냥 자요" 아니면 "술 마셔요" 등의 방법을 얘기하고는 한다. 이런 것들을 보면 학생 때의 학교-도서관-집의 패턴이 그대로 나이가 먹고 난 후 직장-집의 패턴으로 옮겨져 온 듯 하다.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면서 마치 사람들은 힐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깊은 산속 암자나 전문 센터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명상에 잠기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힐링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요가, 템플 스테이, 유기농 식사, 해외여행 등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경우일까? 현대 사회에 힐링이라는 개념이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별개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개념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힐링은 사치스럽고 나와는 먼 얘기'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힐링(healing) 이라는 단어 자체도 영어 단어라서 그런지 뭔가 고상해 보이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우리 차트에 나오는 말처럼 '스트레스 쌓이면 뭘 하십니까' ' 자기만의 시간을 좀 가지고 계십니까' 라고 묻는 게 더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힐링이라는 건 시간과 돈이 필요하고 나에겐 사치스럽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운동을 하시고 주무시기 전에는 책도 좀 읽으시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명상도 꾸준히 하시면 좋습니다" 라는 얘기들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거창한 덕목으로 힐링을 소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우선적으로 '절대적인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라' 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정신 없이 직장에서 일하고 퇴근하면 애들과 좀 놀아주다가 애들 잠들면 나도 잠들고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마치 초등학생들 방학 시간표 짜는 것처럼 당신의 하루 시간표를 머리 속에 그려보자. 어디에서 자투리 시간을 만들 수 있나? 직장에 따라서는 근무 시간 동안에도 조금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퇴근 후 및 심야 시간에도 이, 삼십 분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드라마를 보든지 컴퓨터 게임을 하든지 아니면 그냥 소파에 삐딱하게 누워서 과자를 씹어가면서 만화책을 봐도 좋겠다. 이도 저도 귀찮으면 그냥 멍하게 하릴없이 앉아있는 것도 좋다. 당신은 오늘도 너무 피곤한 하루를 보냈고 당신의 뇌는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좀 쉬어줄 필요가 있다. 몸만 피곤한가? 머리도 피곤한 것이다. 한가롭게 인터넷 서핑하고 케이블 TV 영화 보는 것이 운동이나 독서보다 모자랄 게 있을까?

순전히 나만을 위한, 나를 relax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의 근원임을 얘기하고 싶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힐링의 럭셔리한 이미지는 지워버리자. 나만을 위한 소박하지만 맞춤형 힐링을 만들어 보자. 직장과 집을 잇는 변 위의 공간에 다른 점을 하나 찍어서 삼각형을 만드는 것이다. '난 수면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것조차 할 시간이 없는데요'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다. '30분 적게 잔다고 무슨 일 생기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면 화낼까?

칼럼니스트 : 이승민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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