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헌드레드’ 시대 … 한국인 삶 리모델링해야

[중앙일보]입력 2011.12.09 00:33 / 수정 2011.12.09 00:33

‘역동적 100세 시대’ 콘퍼런스

8일 종로구 경운동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찾은 노인들이 당구를 즐기고 있다. [김성룡 기자]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

 인류 조상을 호모 사피엔스로 부르는 것에 비유해 유엔이 2009년 보고서에서 100세 장수가 보편화되는 시대를 지칭해 만든 조어다. 보고서는 평균수명이 80세를 넘는 국가가 2000년에는 6개국뿐이었지만 2020년엔 31개국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며 이를 ‘호모 헌드레드 시대’로 정의했다.

 2011년 한국은 여전히 ‘80세 시대’에 머물러 있다. 20대 초·중반까지 배운 지식으로 50대까지 일하고 60대 이후엔 은퇴해 80세까지 산다. 연금·복지·보건·국가재정은 물론 교육·취업·정년제도, 개인의 재테크와 인생플랜까지 모두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2020년 이후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 ‘80세 시대’에 머물러 있는 한국 사회의 모든 제도·시스템과 국민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강호인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100세 시대에는 배우고 일하고 쉬는 게 생애주기별로 나뉘는 게 아니라 항상 같이 가야 한다”며 “60대 이후에도 청년기나 장년기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배우고 일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기획재정부 등 11개 부처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국책연구기관은 “100세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선 전 생애에 걸쳐 인생을 관리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8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역동적인 100세 사회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를 주제로 열린 회의에서다.


 첫 발표에 나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이수영 교수는 “노인 문제에 대한 기존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노인 인구 증가와 그에 따른 대책을 세우는 방식으로 100세 시대를 대비할 것이 아니라 생애 전 주기를 포괄하는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며 “100세 시대를 노인 문제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교육·은퇴시기 등 삶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길어진 노후를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삶 전체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윤소영 책임연구원은 “근로 기간의 단축으로 일과 삶의 균형은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된다”며 “일 중심으로 접근하던 기존 ‘80세 패러다임’이 아닌 평생 배우고 오래 건강하게 일하는 100세 패러다임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은퇴자-청소년 간 멘토-멘티 프로그램, 노인의 세부 연령대별 차별화된 은퇴 후 교육제도 도입 등을 제안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대식 연구위원은 농어촌 주민 35.6%가 100세 시대에 대해 ‘축복이 아니다’고 대답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식에게 부담이 될 것 같다’는 등 경제적인 이유를 들었다.

 노인의 사회 참여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소정 부연구위원은 “생산성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에서 노인들은 부차적인 인력으로 치부되고 있다”며 “이 인식을 바꾸지 못하고 평균 퇴직연령이 55세로 유지된다면 우리는 45년의 ‘부차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년기를 ‘부차적 삶’에서 ‘자아실현의 기회’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최소한 60~65세까지 은퇴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면 축사에서 “과거 오복(五福) 중 하나였던 장수가 더 이상 축복이 아닌 시대가 왔다”며 “인류가 처음 경험하는 100세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꾸준한 준비를 해 나가겠다”고 했다.

최선욱 기자


◆100세 시대=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연령을 뜻하는 최빈사망연령이 90대가 되는 시점을 ‘100세 시대’로 정의한다. 연구회는 대략 2020~2025년에는 100세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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