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이들 전유물이 아니네
ADHD 아이들 전유물 아니네…성인 10명중 1명꼴 증상
기사입력 2013.07.17 17:11:15 | 최종수정 2013.07.18 1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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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5년째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 A씨는 최근 들어 짜증스러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고역을 치르고 있다. 상사의 지시를 잘 이행하고 동료 직원들과도 원활하게 지내 회사에서는 `똘똘한 사원`이라고 칭찬을 받지만 집에 돌아오면 그의 태도는 돌변한다.

방 안에 틀어박혀 누워만 있다가 잠들기 일쑤이고, 어떤 날은 몸은 피곤해도 머리가 복잡해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인터넷을 뒤지다 밤을 지새운다. 방 정리는 하지 않은 지 오래다. 직장 초년생 때는 상사의 지시만 잘 따르면 됐는데, 이젠 정확한 지시가 없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불안감이 심해져 병원을 찾은 A씨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ADHD라고 하면 아이들에게나 해당하는 증상으로 알고 있었던 A씨는 정작 본인이 ADHD 환자라는 설명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주로 아동 정신질환이라고 알려져 있는 ADHD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성인이 전체 10명 중 1명꼴인 것으로 나타나 주목되고 있다.

이원익 신경정신과 전문의(마음누리 신경정신과의원 원장)는 최근 서울 시내 소재 4개 회사에 근무하는 19~56세 남녀 직장인 5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중 9.4%인 52명이 ADHD 증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 중 88.9%는 대졸 이상 학력이었으며 ADHD로 의심되는 환자들 중 청소년기에 진단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 원장은 "성인 ADHD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범죄자나 사회 부적응자들이 갖고 있는 질환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번듯한 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 중에도 ADHD 의심자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ADHD는 뇌의 전전두엽 기능의 불균형으로 집중력과 주의력이 타인에 비해 떨어지는 증상이다. 주의력 저하로 인한 혼란이 계속되면서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사회적으로도 위축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다양한 증상이 생긴다. 대개 우울증이나 조급증, 분노 조절 장애, 의욕 상실, 불안증, 수면장애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직장인의 경우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본인도 고통을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성인 ADHD는 아직 생소하지만 `희귀한` 질환이 아니다.

2002년 미국에서 진행한 대규모 역학조사에 따르면 18~44세 미국 성인 중 ADHD는 4.4%로 900만명에 달한다. 미국 정신과학회에서 올해 새로 제정한 정신질환 진단 기준(DSM-V)을 적용하면 이 범위가 전 국민의 20%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과잉행동이나 충동성, 주의 산만함 등 증상이 행동으로 나타나 주변에서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어린이 ADHD와 달리 성인 ADHD는 행동에서 두드러지지 않은 대신 불안감이나 지나친 예민함, 조급증 등으로 변형돼 나타나 파악하기가 어렵다.

정유숙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직 성인 ADHD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우울증과 불안과 같은 공존 질환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까지 18세 미만 환자들만 ADHD 치료제 처방 시 건강보험 적용을 받다가 올해 초부터는 18세 이전에 ADHD 확진을 받은 환자들에 한해 성인들도 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ADHD 진단을 받은 경우에는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치료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정 교수는 "성인기에도 ADHD 치료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환자들에게 보다 적절한 치료와 진단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과 유럽 등은 소아와 성인 제한 없이 ADHD 급여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같이 `반쪽 급여`를 실시하는 국가는 호주 정도다.

이 원장은 "성인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ADHD 진단을 받은 환자가 90% 이상이었다"며 "이들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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