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빠르고 몸 많이 움직이는 건 가벼운 조증"
[온라인 중앙일보]입력 2013.04.14 06:48 / 수정 2013.04.14 10:28
행동·음성·정신 분석 통해 본 ‘29세 김정은’의 도발 심리
지난 2월 28일 평양으로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을 초청해 함께 농구경기를 관람하는 김정은. [AP=뉴시스]
오윤성 ▶육군사관학교, 동국대 행정학 석사ㆍ경찰행정학과 박사 ▶국방부 조사본부 자문위원, 군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 심리부검위원
한·미·일은 물론 세계 각국의 주요 정보기관들은 김정은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진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북한 전문가였던 조셉 디트래니 미주리주립대학 교수는 “그의 나이가 28살인지, 29살인지도 모른다. 서구 사회는 물론 북한의 우방인 중국에도 알려진 게 별로 없다”고 언급할 정도다. 카메라 앞에선 미 프로농구(NBA) 스타였던 데니스 로드맨과 웃고 담소를 나누면서, 뒤편으론 전쟁 준비를 지시하는 두 얼굴의 사나이로 부각되고 있다.
중앙SUNDAY는 각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김정은의 행동분석, 음성분석, 정신분석을 했다. 입체적 분석을 통해 그의 심리상태를 추정하기 위해서다. 이는 또 북한이 호언장담하는 핵전쟁 게임의 속내를 가늠케 해준다.
오른손은 나폴레옹처럼 코트 주머니에
냉전 시대에 CIA 등 서방 정보기관들은 공산권 지도자를 분석할 때 선전 영상을 많이 활용했다. 정보가 제한돼 화면에서 나타난 행동을 관찰하면서 해당 인물의 심리상태를 추론하는 방식이었다. 순천향대 오윤성(경찰행정학) 교수는 올 들어 김정은이 등장했던 10개의 조선중앙TV 동정 기사를 비슷한 방식으로 분석해봤다. 김정은의 표정·눈빛·제스처 등을 지켜보면 무의식 심리를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오 교수는 “김정은은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행동 의지가 강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김정은은 지도자로서의 신념과 확신을 갖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에 의해 더 강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순간순간 무의식적으로 불안감을 표출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김정은이 지난달 29일 한밤중에 최고사령부에서 이영길 총참모부 작전국장 등 군부 인사들을 모아놓고 긴급 회의를 연 장면이다. 당시 미국이 B-2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하는 데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김정은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 참모들을 세워놓고 회의를 진행했다. 또 재떨이를 옆에 두고 담배를 손가락에 끼웠다. 오 교수는 “아버지 뻘인 참모와 군부 인사들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 내부에서 과시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은 단추가 두 줄 달린 코트를 즐겨 입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장교들은 단추가 두 줄인 트렌치 코트를 입었다. 한 줄 코트보다는 훨씬 더 권위적인 이미지를 준다. 김정은은 할아버지(김일성 주석)와 아버지(김정일 국방위원장)를 따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보행 땐 배를 내밀고 팔자걸음으로 이동한다. 보통 왼손은 주머니에 넣는 경우가 많다. 오른손으로 지시를 내리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코트 앞 단추 사이에 손을 끼워넣는 ‘나폴레옹 자세’를 취한다. 오 교수는 “김정은이 유럽에서 자랐을 때 나폴레옹과 스스로를 동일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지난달 크고 안전한 군함 대신 목선을 타고 서해 5도 근처의 장재도·무도·월래도를 잇따라 방문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체험을 자발적으로 하면 대중에겐 그런 과정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마련이다. 오 교수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청소년기 심리가 아직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할아버지 김일성을 닮도록 성형수술을 받고 일부러 살을 찌웠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일 수 있다”는 게 오 교수의 평가다. 김정은은 기회가 되면 몸을 기대는 경향이 있다. 실내에선 항상 가구 근처로 다가간다. 지난달 11일 월래도 방어대로부터 브리핑을 받으면서 지도를 펼친 책상에 몸을 받쳤다. 오 교수는 “원래 비만 체형이 아니고 최근 체중이 부쩍 늘어 났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또 “김정은이 군 작전에 대해 모르면서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하려는 강박관념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곳에서보다 군부대에서 지시를 할 때 손짓, 몸짓이 가장 크다. 김정은은 지휘봉을 들었을 때 평소보다 인상을 찌푸리거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그러나 인민군 부대 시찰 도중 권총을 겨냥하는 시늉을 하더니 금방 부하에게 권총을 건넸다. 북한의 관영 매체는 사격술을 지도했다고 보도했지만 오 교수의 평가는 다르다. 그는 “총알은 지도자 동지(김정은)를 배려하지 않는다. 진짜 사격 실력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지난달 24일 만경대 혁명학원과 강반석 혁명학원 학생들의 외투 견본을 점검했다. 직접 옷을 만져보는 행동이 무척 자연스럽고 진지했다. 오 교수는 “다른 나라의 평범한 20대 젊은이처럼 디자인과 패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심리가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광명성 3호 언급할 때 기대감 지수 최고
김정은의 목소리도 심리상태를 엿볼 만한 단초를 제공한다. 김정은은 지난 1월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직접 신년사를 낭독한 것은 김일성 주석의 생전 마지막 해인 1994년 이후 19년 만이었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경제 강국의 건설 ▶인민생활의 향상 ▶남북관계의 복원 등 경제 우선 메시지를 전달했다. 미국의 대(對)공산권 단파방송인 라디오 프리 아시아(RFA)는 한국의 음성분석 기술업체인 SE(Social Engineering)와 함께 미묘한 음성의 차이를 통해 김정은의 감정과 심리상태를 추정했다.
RFA에 따르면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의 목소리는 지난해 두 차례의 연설보다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차분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감성지수, 스트레스 수치가 높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경제 강국 건설, 북남 대결의 해소를 언급할 땐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갔다. RFA는 또 북한의 장거리 로켓인 ‘광명성 3호’를 언급할 때 기대감 지수가 가장 높았다고 말했다. 당시 RFA는 ‘앞으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계속 추진할 조짐’이라고 판단했다.
낮은 자존감 감추려 과장된 적대감 드러내
김정은은 지난달 최전방 군부대 방문 행보를 이어가며 과격하고 호전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이런 심리의 기저엔 집권 2년차 29세 독재자의 불안감이 깔려있다고 정신분석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절대 통치자 위치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초조함을 공격성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대 권준수(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존감이 낮고 자기 뜻대로 일이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과장되게 적대감을 드러낸다. 불안함을 숨기기 위해 허풍을 치고 뻐기는 골목대장의 허세 같은 심리상태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윤대현(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신이 완벽한 지도자이고 할아버지·아버지보다 더 세고 더 잔혹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또 “자기를 절대선으로 생각하는 흑백논리에 빠져 나쁜 적에게는 어떤 짓을 해도 된다는 발언으로 볼 때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결핍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발언 중 “(내가) 명령만 내리면”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분석심리학자인 이나미(정신과 전문의) 박사는 “자꾸 ‘나’의 권위를 강조하는 건 집권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지도자의 다급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분석은 해외에서도 나온다. 조셉 디트래니도 “지도자 위치에 오를 준비가 되지 않은 인물인 만큼 자신의 군대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젊으니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29세라는 나이도 김정은의 도발 심리를 푸는 열쇠 중 하나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아직 사춘기적인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고 봤다. 권 교수는 “사춘기까지는 뇌 발달 단계상 욕망·충동의 성향이 강하고 20대까지 전두엽이 발달하면서 억제와 균형을 배우게 된다. 김정은은 젊은 나이여서 충동적 성향이 아직 더 강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자격지심이 있기 때문에 더 무섭고 더 공격적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갑자기 큰 권력을 맛보게 된 아이와 같다”고 표현했다.
성장과정이 호전성을 기른 측면도 있다. 권 교수는 “김정은은 승부욕이 강한 성격인데 막내로서 가만히 있으면 인정을 받기 어려워 어릴 때부터 골목대장 성향을 더 키웠을 것”이라며 “자기 위주로 기존 질서를 뒤집어엎고 싶다는 심리가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위스에서 수년간 공부하며 쌓여온 서방에 대한 열등감도 적대감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박사는 “선진국에서 좋은 학교를 다니다 보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너희들이 나 무시했지? 하지만 나 사실 강해’라는 식의 한풀이 심리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위스 유학 시절 김정은과 함께 생활한 동급생들은 그를 조용한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이를 두고 이 박사는 “일종의 조울증 증세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스위스 시절은 울증에 해당하고 지금은 조증에 해당한다. 신년사 발표 등 공개 연설 때 말을 빠르게 하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걸 보면 경조증(hypomania) 조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급격한 체중 증가에도 주목했다. “1년 반 전과 비교해보면 사람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며 “비만에서 오는 피로감에다 갑자기 불어난 체중 때문에 심리적 스트레스도 상당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철재·전수진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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