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지리산 은둔 수행자 현기 스님



지리산의 현기 스님 지리산 현장 르포


지리산 현기 스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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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은자 현기(74) 스님이 상경해 서울 조계사에서 대중 들과 상봉했다.


 ‘부처님 오신 날’(5월17일)을 앞두고, 선원수좌회가 4월 24일부터 5월 2일까지 9명을 초청해 여는‘대선사 법회’에서다.

 그가 길도 인적도 끊긴 지리산 1100고지 상무주암에서 홀로 지낸지 32년만이다. 강산이 세번도 더 변했을 세월이다. 그 긴 세월 고향을 떠난 방랑자는 우리인가, 그인가.


 “아이는 뭔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생각이 나면 그것들을 쫓아 제 발로 어디든 걸어간다. 거기에 현혹돼 부모의 말도 들리지않는다. 그렇게 밖으로 내달리다보면 결국 부모와 헤어지고, 부모와 원수도 된다. 그래서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춥고 배고픈 고초를 겪으면 부모와 고향이 그리워진다.”


우리가 버린 그 산골을 홀로 지킨 산승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상기시킨다. 온갖 세상사에 끌려다니느라 언제 떠나온지조차 까마득한 ‘마음의 고향’이다. 30여년 전과 달리 고층빌딩으로 둘러싼 조계가 앞마당에서 태고적 고향을 이야기하는 그가 꿈을 꾸는 것인가,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잠자리에서 잠을 자도 꿈을 꿔 천리 만리 밖을 돌아다니는게 생각이다. 꿈을 꾸다가 눈을 떠야만 꿈 속 방랑을 그친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면 강 속에 달을 건지겠다고 강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천강에 비친 달이 하늘에 뜬 달 그림자이듯 지금 내가 실제라고 믿는 모든 것이 실은 상(相·모양이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 상을 쫓아 밖으로 내달리는 마음을 잘라버리는게 ‘화두’다. 형상에도 머물지 않고, 소리도 쫓지않고, 생각조차 끊어진다면, ‘이 뭐꼬?’(‘이것이 무엇인가’의 경상도식 표현인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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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스님과 보살들-.jpg



 선사가 내리친 검에 온갖 유혹과 걱정을 따라 이리 저리 방황하는 마음이 싹둑 베어진 것인가. 2천여 대중이 가득 메운 조계사 마당이건만 직전의 그 마당이 아니다. 상념을 여의니 무념이고, 번다함을 놓으니 고요하고, 방랑을 쉬니 고향이다.


“우리의 자성(본래 성품)은 그처럼 청정한데, 마음이 미(迷·미혹함)해서 번뇌가 뿌리 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땅은 원래 비어있건만 콩씨를 던지면 콩이 자라고, 팥씨를 던지면 팥이 자란다는 것이다. 이처럼 무엇이든 인연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바깥 경계에 끌려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이날 화두선의 묘미를 세상에 전하려는 선원수좌회(선승들의 모임)의 간곡한 요청을 뿌리치지 못한 그는 법석에서도, 법회 뒤 가진 간담회에서도 지리산에서와 다름 없이 시종일관 ‘고향’을 떠나지않았다.


 그는 ‘온갖 세파 속에서 살아가는 중생들이 어떻게 산승처럼 수도를 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중생이 따로 있고,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 따로 있고, 번뇌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중생이 곧 부처요, 번뇌가 곧 보리(菩提·깨달음)다. 또한 세상이 무상(허망하게 변함)하고 고통이 있기에 공부(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 탓, 상황 탓 말라’는 것이다. 그 세상, 그 상황이 바로 공부심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진흙 속에서도, 불 속에서도 연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 불교 공부의 묘미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무주암에서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엔 “철저하게 살지 못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솥뚜껑처럼 군살이 박힌 손이 매일 새벽 2시40분이면 기상해 수도하고 직접 밥하고 빨래하고 밭을 일구는 삶을 숨길래야 숨기지 못한다.


누군가 고지에서 홀로 사는 노승에 대한 걱정에 ‘앞으로는 어찌할 것인가’며 묻자, “일념(한 생각)이 여시(如是·바로 지금 여기)”라고 했다. 지나간 과거에도 다가올 미래를 향해 천리 만리 방황하며 생멸 윤회를 반복하는 미혹을 내리치는 비수다. 한 순간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스님이 시·공을 쫓아 다니는 마음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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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고승 보조 지눌이 견성한 지리산 1100고지 상무주암에서 포행 중인 현기 스님 사진 조현



 “‘부처님이 도솔천(천상세계의 하나로 석가가 세상에 오기 전 머물던 곳)을 여의지않고 왕궁에 내려오고, 모태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중생을 다 제도(구제)했다’고 하는데 도솔천과 왕궁과는 공간적 거리가 있고, 부처님이 태어난 시대와 지금 중생들이 사는 때는 시간적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다는 것인가. 마음이 밖으로 내달리면 공간과 시간의 간격이 있다. 그러나 바깥 경계를 끊어버리면 시공의 간격이 사라진다.”


 시공이 멎은 듯 고요해졌을 때, 현기 스님이 “석가모니 부처와 지금 자신과 자타로 나뉘지않고 간격이 없다는 것이 믿어지느냐”고 물었을 때 대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했다. 잃어버린 고향을 찾은 듯이,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것처럼. 선법회에서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운, 희유한 광경이다.


‘부처님 오신 날’은 언제이며,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대중들이 마음을 쉬니, 날마다 ‘부처님 오신 날’, 사람마다 부처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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