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파괴적 혁신' 전도사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 한국경제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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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1.23 03:24 / 수정 : 2010.01.23 21:12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가… 시장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라
3년만에 다시 온 크리스텐슨 교수…
癌도 그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지 못했다

"한국 경제는 이미 위급한 상황입니다. 지금부터 천천히 생각해서 5~10년 후에 솔루션을 내놓을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단지 대다수 국민들이 이런 위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이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hristensen·58)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부터 쏟아냈다.

세계 경제가 80년 만에 최악의 경기 침체에 빠졌다는 지난해, 삼성전자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대표 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지금, 한국 경제에 대한 칭찬은커녕 위기를 말하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선두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위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개발한 파괴적 혁신 이론은 '잘 나가는 기업도 한방에 끝장날 수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업계 1위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로 첨단 신제품을 개발해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것에 몰두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싸고 단순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에 야금야금 시장을 빼앗기고, 결국 몰락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파괴적 혁신’이론으로 유명한 세계적 경영 구루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Weekly BIZ는 그를 3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이번엔 암 투병 중에 머리칼이 없어져 외모가 낯설었다. 그런데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한국에 신랄하고도 애정에 찬 조언들을 해줬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고도 성장기에 일본 기업들은 앞서가고 있던 많은 미국 기업들을 파괴적 혁신을 통해서 추월했습니다. 예를 들어 도요타와 소니는 소형차와 트랜지스터 라디오처럼 아주 단순하고도 값싼 솔루션을 가지고 시장의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한 발자국씩 고가 시장을 점령해 나갔습니다. 1990년대가 되자 많은 일본 기업들이 시장의 정점에 올라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었지요. 그러나 이런 하이엔드(high-end) 시장을 점령한 기업들에 발생하는 문제는, 정점에 오르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점에 오르면, 새로운 경쟁자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본 경제가 성장을 멈추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한국·대만·싱가포르에 있는 기업들이 과거 일본 기업들이 했던 똑같은 파괴적 혁신의 방법으로 일본 경제를 공략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많은 일본 기업들이 시장에서 쫓겨나는 운명이 됐죠."

그는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하드웨어는 중국이, 소프트웨어는 인도가 치고 올라오고 있죠. 이는 한국처럼 앞서 있는 국가들에게는 매우 큰 위협이에요. 그들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위기가 선두 기업의 숙명이라면 대비책은 무엇일까? 크리스텐슨 교수의 대답은 "시장 밑바닥으로 다시 내려가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재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시장 아래쪽인 로엔드(low-end)에서 치고 올라오는 위협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중국 기업들, 특히 하이얼 같은 기업들은 꾸준히 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래쪽에서 오는 위협이지요. 대기업들이 알아야 할 것은 시장에서 점점 하이엔드로 나아가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성장 가능성은 시장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은 파괴(disruption)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기업이 다른 분야에서 스스로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은, 처음부터 밑바닥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지 모른다. 무엇보다 기존 조직이 변화를 싫어하고 저항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크리스텐슨 교수는 기존 조직과 별도로 다른 회사를 설립하거나 사업부문을 만드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Weekly BIZ는 3년 전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3년 만에 다시 만난 그의 외모는 과거와 크게 달라져 있었다. 그에겐 머리칼이 없었다.

"암이에요, 위암. 항암제를 먹어서 머리가 빠졌어요."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듣는 이에겐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장거리 여행을 삼가라는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왔다는 그에게 이유를 묻자, 또렷한 한국말로 "그냥 오고 싶어서 왔어요, 내게 한국은 고향 같은 곳이거든요"라고 했다. 그는 1971년부터 2년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일명 모르몬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 춘천과 부산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그는 암 투병 중인 환자임에도 많은 사례를 들어가며 놀라운 열정으로 대화를 리드했다. 대가다운 인간적 깊이와 프로 의식이 생생히 전해져 왔다. 1시간 20분간 그는 특별히 주문한 두 컵의 오렌지 주스를 모두 마시면서 쉬지 않고 말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한국 이름도 갖고 있다. '구창선'이 그것이다. 과거 한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할 때 크리스텐슨이란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워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을 사랑하고,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007년 3월 24일자 위클리비즈에 등장한 크리스텐슨 교수.
―Weekly BIZ 독자들을 위해 '파괴적 혁신'에 대해 다시 간단히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혁신에는 '존속적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있습니다. 존속적 혁신은 과거보다 더 나은 성능의 고급품을 선호하는 고객들을 목표로 기존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보다 높은 가격에 제공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반면 파괴적 혁신은 현재 시장의 대표적인 제품의 성능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품을 도입해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존에 고객이 아니던 사람이나 덜 까다로운 고객들을 사로잡는, 간단하고 편리하고 저렴한 제품들을 출시하는 전략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기반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것이나, 중국 기업들이 저가 시장을 위한 저렴한 솔루션을 출시하는 것들이 바로 좋은 예가 되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향후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위협의 하나는 파괴적 혁신을 기반으로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중국과 같은 경쟁국일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한국과 대만은 정점에 매우 근접해 있고, 동시에 중국과 인도가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만보다는 한국 경제가 걱정 됩니다. 제가 대만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명함을 두 장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원래 일하고 있던 직장의 명함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새로 시작한 사업을 위한 명함이었습니다. 기업가 정신이 매우 생생하게 살아있는 문화이지요. 그러나 한국은 좀 더 일본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이 아래에서 한국 시장을 파괴적으로 흔들 때 더 많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크리스텐슨 교수는 "밑바닥으로 다시 내려가는 것"과 함께 "외국의 인재들에게 문을 열라"고 충고했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 성공적인 기업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 설립한 기업입니다. 실리콘 밸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스탠퍼드와 UC버클리가 전 세계에서 우수한 인재와 기술을 끌어들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 역시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한국인이 갑자기 기업가 정신을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구조적으로 바뀌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자들이 서울대로 와서 공부하고 싶게 만든다면, 또 '우와, 한국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구나! 여기에 정착해서 기업을 세우자'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지금 한국이 가진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입니다."

■파괴적 혁신은 '결핍'을 먹고 자란다

―쇠퇴 산업과 성장 산업은 파괴적 혁신에서 얻는 시사점도 다를 것 같습니다. 쇠퇴 산업은 밑에서 치고 올라가는 기업이 기존 기업들을 따라잡기가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일반적이지요. 그런데 어떤 산업이 쇠퇴하는 이유는 그 산업이 다른 곳에서부터 파괴당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신문 산업은 빠른 속도로 쇠퇴하고 있는데, 파괴 요인을 살펴보면 인터넷 기반 광고나 구글 같은 포털업체 등 다양합니다. 신문 업계가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시각에서만 바라본다면 이런 요인들은 자신들과는 별 상관없는 것이므로 원래 하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면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편리해지고 저렴해지므로 새로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신문사들이 이런 엄청난 성장 기회를 보고도 자신들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신문사는 결국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경제가 호황기인 경우와 불황기인 경우에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기업들은 혁신을 위해 자원을 사용하는 데 제약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제약 때문에 오히려 파괴적 혁신이 빨리 진행될 수 있어요. 기업들은 단순한 형태의 혁신을 가지고 재빨리 시장에 진입하고, 그 다음에 하나씩 발전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이죠.

반면 기업들이 충분한 자원과 좋은 시장 여건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오히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연구개발을 하고 그 결과로 매우 복잡한 형태의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진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들은 그런 제품을 오히려 외면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이 필요치 않는 훨씬 복잡한 사양들을 높은 가격에 출시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볼 때, 우리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파괴적 혁신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가 오히려 파괴적 혁신에 더욱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결국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더 복잡한 제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고, 시장을 파괴하는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은 더욱 단순하고 쓰기 편한 솔루션을 내놓을 가능성이 훨씬 높겠군요. 이런 경우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한 가지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주 좋은 예가 있습니다. 바로 태양 에너지 부문입니다. 태양 에너지를 가지고 한국이나 일본·싱가포르·북미·유럽 등지에서 새로운 시장 개척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가 태양에너지에 대한 사용 할당량을 정하는 등 많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장들은 매우 전력 사용량이 많은 시장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군요. 일반적으로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대체 에너지에 대한 수요 역시 더욱 높을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다. 역설적이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태양 에너지가 경쟁력을 발휘한 곳은 제 딸이 선교사로 활동했던 몽골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놀라운 것을 봤습니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큰 시장에 갔더니 엄청나게 싼 값으로 태양전지판을 팔고 있는 상점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 태양전지판과 함께 안테나와 6인치짜리 흑백 텔레비전을 같이 포장하여 팔고 있었습니다. 그 물건들이 얼마나 잘 팔리는지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몽골 인구의 절반가량은 전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태양전지판은, 비록 기술적으로도 낮은 수준이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무한히 좋은 대안이었던 것이죠. 이런 시장을 보고 나니 저는 태양전지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사람들은 서울대나 MIT에 있는 기술자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양전지와 관련된 해결책은 몽골·인도·아프리카에 있는 기업들이 단순한 제품을 더 싸게 제공하기 위해 고심하면서 제품을 개발해 그것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서 도출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실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혁신적인 기술을 가지고 겉보기에 가장 매력적인 시장을 공략하기보다, 단순한 단계의 혁신으로 시장 밑바닥을 공략해 지속적으로 한 단계씩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중국의 파괴적 혁신을 경계하라

―파괴적 혁신의 전도사로서 한국 CEO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시고 싶으신가요?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기업의 규모가 크다고 해서 파괴적 혁신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재벌 CEO들에게 드리고 싶은 메시지는, 본인이 세운 기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기억하신다면, 절대로 중국이 가진 파괴적 혁신의 힘을 얕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현대가 조선업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 밑바닥으로 내려가 거기서부터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중국도 단순한 제품에서 시작해 시장 아래서부터 올라오고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방식이 바로 한국이 일본을 무너뜨린 전략이고, 또 중국이 한국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전략이란 것입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또 하나 하고 싶은 말은, 기술 자체보다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좋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에 실리콘을 제조하는 다우코닝이라는 화학회사가 있습니다. 다우코닝은 소비자들에게 꼭 맞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부문에서 맞춤화된 제품을 개발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위기가 찾아옵니다. 중국 기업들이 유사한 제품을 20%나 저렴하게 출시한 것입니다. 다우코닝은 저가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에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우코닝의 경영진들은 파괴적 혁신을 기반으로 중국 기업들과 경쟁하는 전략을 짜냈습니다.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도 20% 더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한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모든 주문을 인터넷을 통해 하고, 주문을 받은 뒤에 생산하고 배송하는 모델이 그것입니다. 다우코닝은 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기존 조직과 분리해 자이아미터(Xiameter)라는 사업부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다우코닝은 똑같은 품질의 실리콘을 20% 낮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었고, 사업부를 설립한 지 1년 만에 출하량이 40% 늘어났습니다. 이제 다우코닝은 가격을 가지고 불평하는 고객들은 자이아미터로, 그리고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에게는 기존의 다우코닝이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면서 이익을 900%나 증가시켰습니다."

대담=박남규 서울대 경영대 교수
―대단하군요. 마치 한지붕 두 가족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통하여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군요.

"그렇습니다. 기존 사업을 잠식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하여 중국 기업들에 빼앗기던 사업을 다시 회복시킨 것입니다. 현재는 다우코닝이 출하하는 제품의 60% 정도가 자이아미터에서 나옵니다. 한국의 CEO들이 이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은, 중국의 추격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기술 혁신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즈니스 모델을 재구성하는 데 있어서 CEO들이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내부에서의 저항일 것입니다. 기존의 조직 구성원들이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것이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방안이 있나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완벽한 해법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텔의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1990년대 말 인텔은 사이릭스(Cyrix)라는 기업이 훨씬 더 단순하고 값싼 프로세서를 출시하자 시장 지위가 위협받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런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텔은 한 번에 100명 정도의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1년 동안 18번에 걸친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거의 2000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파괴적 혁신에 대한 이론과 생각의 틀을 배웠습니다. 세미나에서 인텔 임직원들은'인텔이 어떻게 시장을 파괴적으로 혁신할 수 있을까?'에 대해 심도있게 토론했습니다. 이런 토론 중에 시장 맨 아래로 다시 내려와 저가의 셀러론(Celeron)이란 칩을 개발해 사이릭스를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구글도 파괴적 혁신이 부족하다

―기업이 파괴적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종업원의 창의성을 북돋워줘야 할 텐데 이와 관련해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가령 어느 직원의 머릿속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합시다. 그가 어렵게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면 가장 먼저 영업부서 매니저가 해당 직원을 찾아옵니다. 첫마디는 대개 이렇죠. '당신, 영업부서에서 일해본 적 없죠? 이런 제품은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CFO가 찾아옵니다. 회사 예산 사정을 이유로 사업 계획을 일부 수정해 가격 등 여러 부분을 고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CFO가 가고 나면 엔지니어링 부서에서 찾아와 이런 디자인은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하며, 실제 제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부분의 디자인이 변경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실제 사업화가 되고 난 뒤에는 처음 제출했던 아이디어와는 거의 완전히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실제 시장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안에 존재하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에 짜맞추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없이 수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 경영진이 기존 모델에서 약간씩 변형된 '미투 제품(me-too product)'들을 보며 "우리는 창의성이 필요해"라고 아무리 외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개인의 창의성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 바로 이러한 사고와 태도를 고치는 것입니다."

구글은 파괴적 혁신의 대명사와도 같은 기업입니다만, 구글도 다른 기업의 파괴적 혁신으로 위협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구글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은 그들이 파괴적인 신제품들을 개발하는 데에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비즈니스 모델 쪽에서의 파괴적인 혁신은 한 번밖에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바로 애드워즈(AdWords·구글의 광고 시스템)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성공적인 기업들이 전통적으로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처음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소위 '홈런'을 날린 뒤엔 그 비즈니스 모델로 벌어들인 돈을 사용해 계속해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혁신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비즈니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혁신시킬 필요가 있는데도 말이죠. 제가 구글에 대해 걱정하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너무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도 비즈니스 모델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2년부터 같은 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업을 직접 경영한 경험도 있다. 1984년 MIT 교수들과 전자·통신 부품업체를 설립해 회장을 지냈고, 2000년대엔 두 개의 컨설팅회사를 차례로 설립해 경영했다.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 등 '파괴적 혁신' 이론을 다룬 저서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인 경영이론가로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 더타임스 등이 선정한 '세계 비즈니스 사상가 5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박남규 교수는

뉴욕대(NYU)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06년부터 서울대 경영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화이트칼라 혁신', 강의는 '경영전략론'을 맡고 있다. 2006·2007년 서울대 경영대 최우수 강의상을 받았다. 저서로 〈전략적 사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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