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중산층 늘어난 한국, 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

[중앙일보]입력 2013.04.15 01:51 / 수정 2013.04.15 02:19

맥킨지, 15년 만에 한국 보고서 … 돕스 소장-서동록 파트너 인터뷰
기업 성장한 만큼 소득은 안 늘어
중산층 적자재정에 출산율 하락
이번 보고서 중국 정부와 공유

돕스 소장(左), 서동록 파트너(右)
“한국 경제는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는 물 속의 개구리 같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의 리처드 돕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 소장은 한국 경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경제성장률이 8%→5%→2%로 갈수록 떨어지고 가계부채는 해마다 악화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본은 20년 만에 위기를 인식하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한국도 변화하지 않으면 죽어가는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맥킨지는 1998년 대기업의 부채를 지적한 한국 보고서를 처음 낸 뒤 15년 만에 한국을 주제로 두 번째 보고서 ‘신성장 공식’을 14일 발표했다. 돕스 소장과 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 서동록 맥킨지 파트너가 주축이 돼 작성한 이 보고서는 중산층의 재정난이 뒤흔드는 한국 경제를 진단하고 새로운 성장모델에 필요한 핵심 요소를 제시하고 있다. 12일 서울 수하동 맥킨지 사무실에서 돕스 소장과 서 파트너를 만났다.

 -15년 만에 한국 보고서를 낸 이유는.

 ▶돕스 소장: “한국은 기로에 서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구축하지 않으면 성장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전 세계의 개발도상국가에 초미의 관심사다. 한국처럼 단기간에 성장을 거듭한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이 한국에 관심이 많다. 보고서도 중국 정부와 공유했다. 중국은 한국이 체제는 다르지만 경제성장 경로가 비슷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서 파트너: “15년 전 보고서를 냈을 때 가장 큰 문제가 기업이었다면 이번엔 가계다. 그동안 한국 기업은 성공신화를 일궜다. 2000년 세계 100대 기업에 한국 기업이 한 곳도 없었지만 2011년에는 세 개나 올랐다. 그런데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94년 세계 최고 수준이던 가계저축률(20%)은 선진국 중 최저 수준인 3%대로 주저앉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나.

 ▶돕스 소장: “ 한국 경제의 성장과 가계 소득 증가 사이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60~90년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 가계 소득도 늘어났다. 하지만 그 후론 경제가 성장한 만큼 가계 소득이 늘지 않았다. 기업이 생산을 해외 기지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95년에서 2010년 사이 대기업(제조부문)의 연간 생산성은 9.3%씩 성장했는데 고용은 해마다 2%씩 줄었다. 요즘 임금 상승률은 경제성장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서 파트너: “빈곤한 중산층도 큰 문제다. 한국 중산층의 재정문제는 소득 정체뿐만 아니라 과도한 주택비와 교육비에도 있다. 빈곤 중산층의 비율은 55%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재정적자 스트레스는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경제활동 인구도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국내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겠다.

 ▶서 파트너: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대기업에 한국 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중산층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중견기업 육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전체의 0.07%에 불과하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중소기업 육성보다는 중소기업 소유주 보호에 있어서다. 예를 들어 10년 이상인 중기의 경우 상속자산이 100억원 이하면 상속세 부담하지 않고도 해당 사업체를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 기업주가 사업 확장에 적극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왜 한국엔 중소기업청만 있고 중견기업청은 없나.”

 -그럼 한국 경제는 어디로 가야 하나.

 ▶돕스 소장: “주택담보대출을 단기에서 장기 고정금리로 전환하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를 완화해 중산층의 재정 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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