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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는 동물농장에서 외국인 에니멀 커뮤니티케이터인 하이디 여사가 동물 애호가들이 애완 동물들을 기르며

일어나는 어려움들을 그 동물들을 찾아가 그 동물을 설득 시켜 주인과 다시 친밀하게 지낼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내용의 방송을 보며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단지 인간과 동물이 통할수 있는 언어만 없을 뿐이지 동물이 사람의 마음과 하나도 다름 없이 생각하고 행동한다

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젠 닭을 보는 시선도 180 도 달리 해서 봐야 겠다는 생각을 일깨워준 감동적인 사건 이었습니다.............

어제 주인도 못 말리는 말도 나오고~고양이도 나오고 개도 나왔는대 동물 하나 하나 모두 생각이 있다는 것을

깊이 느낀 기회 였습니다.하이디 여사는 정말 대단한 분...

 

-펌-

 

최근에 TV 동물농장 보다가 알게 되었는데요.

세상에 이런 일이..강아지와 대화를 하는거에요

 

대략적인 사연을 소개할게요.

 

어느 날 동물병원 앞에 버려진 꽃님이를 수의사와 간호사들이 발견했어요.

나이는 대략 15살 전후로 추정되고 백내장 악성종양이 있고 건강상태가 무척 안 좋았데요.

버려진 강아지를 그냥 둘 수 없어 동물병원 측에서 응급치료를 해주고

다시 버릴 수도 없는터라 강아지 생이 끝날 때 까지 함께 지내기로 했다는데요...

 

사람과 함께 지내는 동안 이 꽃님이가 동물병원 사람들에게 보여준 태도는

 

 

 

철저한 무.관.심 이었어요.

사람이 와도 쳐다보지 않고 언제나 벽만 바라보고 누워있었는데 그렇게 1년 8개월이 지났나봐요.

강아지 건강상태는 최악이고 거동조차 매우 불편해 보였어요.

우선 잘 먹지 않는데다 가벼운 운동도 하질 않으니 도무지 회생가능성이 없어 보였어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는데요

 

 

 

그 때 등장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 여사!

동물과 교감이 가능하고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는

신비의 외국인 -ㅁ-;;

 

 

하이디 여사가 와서 외국어로 쏼라쏼라~

물론 꽃님이의 반응은 냉담합니다.

동물병원 식구들에게 했던 것처럼 주변 어떤 것에 대해서도

무관심했어요.

 

 

 

아직까진 아무런 성과도 없이..

꽃님이의 상태만을 보고하는 중이에요.

이 정도는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부분이어서

아직까진 하이디 여사에 대해 의심을 품었어요. 

 

 

몇 번 대화를 시도하다 좌절하시는 하이디 여사..OTL

역시 안되는건가..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시고 천천히 대화를 진행시켜 나가던 찰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진가가 드뎌 드러납니다.

꽃님이가 동물병원 식구들에게 할 말이 있다며

긴급소집(?) 해달라고 했나봐요.

 

 

 

 

 

 

 

꽃님이의 사연을 쭈욱 들려주시고는..

동물병원 식구들도 꽃님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이디여사를 통해 들려주는데요.

그 순간 1년 8개월 간의 무관심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 지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항상 벽만 바라보며 지내던 꽃님이가 동물병원 식구들에게

관심의 표시를 하게되는거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일까요?

 

저희들은 강아지 성격이나 습성, 특성을 잘 알잖아요.

강아지 나이가 무려 15살 전후이고..

거기에 2년 가까이 아무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강아지였어요.

캡쳐는 못했습니다만 방송내용 중에 강아지에게 밥을 먹이려거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나왔는데요.

밥도 피하고 이름을 불러도 아무런 반응도 없던 녀석이었어요.

 

그렇게 2년 가까이 살아온 강아지가 한 순간 이렇게 바뀌었다는건

도무지 기존의 강아지 훈련이나 행동교정으론 설명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강아지에게 카메라가 안 돌아갈 때

복종훈련을 시켰을까요?

좋아하는 음식으로 몰래 유인하였을까요?

저도 강아지를 기르지만 이런 물음에 대해선 부정적입니다.

 

 

 

며칠인가..한달인가..

그 뒤에 꽃님이를 다시 찾아가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러 가는 장면인데요

무려 털이 저토록 많이 자라있고 윤기도 흐르는 것 같습니다.

물론 노쇠하여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고는 했습니다만..

 

 

이렇게 산책도 가능할 정도로 호전되었다고 하네요.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녀석이었는데..

무려 1년 8개월 동안 방구석에서 벽만 바라보던 녀석이었는데..

이젠 곧잘 사람 말도 잘 듣고

이렇게 산책까지 가능하게 된 사연!

 

 

 

 

 

너무 신기했어요.

강아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하이디라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와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진심을 알게되고 난 뒤로는 이토록 큰 변화가 있게 되는걸 보곤

정말 동물과 대화라는게 가능하구나 실감했습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말로는

강아지는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낸다고 합니다.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싫은지

내가 왜 이렇게 짖고 있는건지, 내가 왜 아무 곳에나 오줌을 싸는건지

내가 왜 함께 지내는 녀석을 한시라도 가만히 두지 않는지에 대해서

구구절절히 주인에게 말을 한다고 합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없었을 뿐..

 

 

만일 우리가 이들에게 신호로 괜찮다는 말이나

걱정하지 말라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이들이 알 수 있는 언어로 대화할 수 있다면

이건 혁명적인 사건 아닐까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누구나 다 조금씩 연습만 하면 기초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반려견과 기초적인 대화 즉, 무엇이 먹고 싶은지 어디가 아픈지에 대한 것만이라도

서로 통할 수 있다면 이건 견주로서 더할나위 없는 기쁨일 것 입니다.

 

안타까운건 아직 이 분야가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고

국내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한 분 밖에 없어

전적으로 이분에게만 의존해야 되는 상황도 조금 마음에 걸리구요.

 

 

여튼 반려견과 대화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저는

애기는 갖고 싶냐고 물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잘 짖는 미니핀 녀석에겐 왜 그렇게 짖냐고도 물어보고 싶구요 ㅋㅋ


 

청소년 우울증 심리치료 /청소년 분노(폭력) 심리치료 전문가 과정 게시판

2009/07/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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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우울증 심리치료 /청소년 분노(폭력) 심리치료 전문가 과정

많은 분들이 지방에서 세미나를 요청을 하여 7월 8월 동안 여름방학을 이용하여지방순회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하루동안 청소년 우울증에 대한 심층적인 이론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청소년 우울증 심리치료 기법을 배울 수 있고, 분노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문적인 이론과 청소년 분노(폭력)조절을 할 수 있는 심리치료 기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제목: 청소년 우울증 심리치료 /청소년 분노(폭력) 심리치료 전문가 과정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장소: (서울/부산/대구/광주/제주)
교육비: 12만원 (점심+교재+자료집+CD 포함)
인원: 20명 (선착순 모집)
접수: 김신영 간사   (02) 545-4494  . 545-7080  
계좌번호: 702-24-0185-240   국민은행   예금주 (강용)

강사: 강용 소장 (한국우울증연구소)
       한국심리상담센터 원장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상담실장
       서울신대 상담대학원 졸업
       미네소타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한국심리상담센터  홈페이지   http://mykpcc.com
한국우울증연구소  홈페이지   http://www.mykdi.co.kr

7월 11일 (토)  --부산
장소:부산광역시 청소년종합지원센터
        (지하철 2호선 모덕역 3번 출구)--대중교통 이용바람
        홈페이지: http://www.bs1388.or.kr

7월 18일(토) --제주
  장소: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제주기독교선교회관 6층 세미나실
         (제주시 연동 삼무공원 옆)

8월   8일(토) --광주
8월 15일(토) --서울
8월 22일(토) --대구


혜택
1.수료증 수여
2.교재 증정
3.분노치료 프로그램에 사용할 수 있는 심리검사지 증정
4.자료집 CD (분노치료에 관련된 자료집 A4 1300장 분량의 방대한 자료)
5.분노치료 명상자료 CD (명상음악+이미지 자료+명상글 모음집)
6.우울증 인지카드
7.아동.청소년 우울증 자료집 C D 1개
8.우울증 심리검사지 증정-5개( 소아.아동.청소년.성인.노인)
9.스트레스 검사지. 홧병 검사지, 불안척도. 문장완성검사(S.C.T)-19개 증정  


청소년 분노치료

1) 분노의 유형과 원인
2) 분노치료 심리검사 활용법
3) 면접 및 심리검사
4) 청소년 분노치료 프로그램


청소년 우울증 심리치료

1) 우울증이란?
2) 우울증의 원인
3) 우울증 증상 및 진단
4) 우울증 예방 및 극복
5) 청소년 개인 우울증 심리치료
6) 면접 및 초기상담
7) 치료계획 세우기
    

심리치료 교육을 수료하신 분들에게만 드리는 혜택

1. 한국판 우울증 척도(K-BDI)  
2. 한국형 치매검사 (MMSE-K)
3. 한국형 노인 우울증 척도(KGDS)
4. 아동 우울증 척도
5. 청소년 우울증 척도
6. Bbck 불안척도(BAI)
7. 번즈 불안척도
8. 소아 상태불안 척도(SAIC)
9. 소아 특성불안 척도(TAIC)
10.한국판 우울형용사 체크리스트(K-DACL)
11.Zung 자기평가 우울척도(SDS)
12.Hamiltion 우울평가척도(HRSD)
13.한국판 역학연구 우울척도(ES-D)
14.Beck 자살생각척도(SSI-Beck)
15.Reynolds 자살생각 척도(SIQ-Reynolds)
16.성인용 문장완성검사(S.C.T)
17.아동용 문장완성검사(S.C.T)
18.노바코 분노척도
19.외상후 스트레스 진단척도
20.한국형 스트레스 검사지
21.스트레스 측정 질문지
22.스트레스 맾
23.홧병(분노) 검사지
기사 관련 사진
 정혜신 정신과 박사(마인드프리즘 대표)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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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증으로 피부가 빨갛고 탱탱하게 부풀 때 메스(칼)를 대면 통증은 엄청 심해지고 상처는 더 덧나잖아요. 고름이 충분히 잡힐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그때 메스를 대면 빠르게 치료되고요."

정혜신 정신과 박사(마인드 프리즘 대표)는 정부가 추진 중인 세월호 침몰사고 유가족 심리치료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같이 비유했다. 유가족은 여전히 외상을 입고 있기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상담 방식을 적용하기 이르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PTSD의 심리상담이란, 치유자가 심리적 메스를 가지고 피해자의 상처 근원까지 피하지 않고 함께 들어가서 치유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며 "지금은 아직 (유가족의) 외상이 진행 중이라 메스를 들이댈 시기가 아니다, 메스를 대면 더 덧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심리 상담이 아니라 상담 받으라는 떼쓰기"

정부는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즉시 유가족 심리 지원에 들어갔다. 주로 심리 상담 등의 방식이다. 안산에는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해 유가족 방문상담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접근에 문제가 있다는 게 정 박사의 주장이다.

그는 "정부 쪽 심리상담 요원들이 계속 유족을 찾아다니며 '빨리 상담 받아야 한다, 시기 놓치면 큰일 난다'며 상담을 강권한다"며 "대부분의 유족이 분노와 짜증으로 상담을 거부하는데도 권한다"고 전했다. 한 유족은 "상담이 아니라 상담 받으라는 떼쓰기"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 박사는 "지금은 일상을 챙겨주고 함께 울어주며, 아직도 외상을 반복적으로 가하는 이들에게 함께 따지고 분노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 비율이 높은 안산에서 유족과 생존자를 만나온 정 박사는 아예 이 지역에 계속 머무르면서 치유 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부 주도의 트라우마센터가 생겼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피해자들이 마음을 열지 않으려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민간 주도의 치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마인드프리즘을 그만두고 안산으로 들어간다"며 "이명수 심리기획자와 함께 '사회 치유적 모델'을 고민하며 기획하고 있다"며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점점 더 많은 분들의 손길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정 박사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 전문이다.

1. 유족 부모님들이 늘 목에 걸고 다니는 번호 명찰이 있습니다. 팽목항에서 시신이 인양된 순서에 따라 붙여진 일련 번호. 그 숫자는 이제 그 아이(혹은 부모)의 출석부 번호처럼 됐습니다. 그런데 앞 번호대의 부모님들은 자기보다 뒷 번호대 부모를 보면 거의 무조건이라 할만큼 죄의식을 느낍니다. 아이를 찾느라고 나보다 더 피가 말랐던 부모에 대한 처절한 공감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직 아이를 찾지 못한 실종자 부모들에게 느끼는 죄의식은 어떻겠어요. 자기 아이를 잃은 슬픔이나 애도도 지금은 뒤로 미루는 상황입니다. 이 죄의식의 크기와 깊이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비슷한 번호대 부모끼리는 동질감 같은 것도 있습니다. 내 아이와 같은 시기에 인양된 아이는 내 아이와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한 아이일거란 생각때문이겠지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동질감, 가장 슬픈 연대의식입니다..

유족 부모님들은 분향소 주변에 늘 반별로 함께 모여계세요. 집에 혼자 있으면 넘 힘이 드니까요. 어떤 엄마가 며칠 안 나온다 싶으면 즉시 연락하고 서로 찾아가고 챙깁니다. 유족 부모님들은 지금 어떤 상담자보다도 뛰어난 '상처입은 치유자'들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없는 밀착과 위로, 치유를 주고받는 협심자(協心者)들입니다.

2. 지금 상황은 정신과 의사들이 유족 부모님들에게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안 되는 시기입니다. 염증으로 피부가 빨갛고 탱탱하게 부풀 때 메스를 대면 통증은 엄청 심해지고 상처는 더 덧나잖아요. 고름이 충분히 잡힐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그때 메스를 대면 빠르게 치료되고요. 지금 유족 부모님들의 마음은 염증으로 치자면 빨갛게 하루하루 더 탱탱하게 부풀어가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상이 끝나고 고름이 깊게 잡혀있는, 외상 후(後) 스트레스 증후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분들의 외상은 여전히 진행 중(中) 입니다. 염증이 하루하루 더 탱탱하고 빨갛게 덧나고 있는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그 핵심은 아직도 남아있는 '실종자의 존재'이지만 정부가 날마다 날리는 다양한 비수들에 유가족들은 하루하루 더 깊이 찔리고 있습니다. 계속 되는 망언도 한몫을 단단히 합니다.

PTSD의 심리상담이란, 치유자가 심리적 메스를 가지고 피해자의 상처 근원까지 피하지 않고 함께 들어가서 치유를 이끌어내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메스를 들이댈 시기가 아니란 겁니다. 메스를 대면 더 덧나는 시기입니다.

이들에게 지금은 날카로운 전문가보다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통과하는 고통스런 일초 일초를 담요처럼 싸안고 일상을 챙겨주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 아직도 외상을 반복적으로 가하는 이들에게 함께 따지고 분노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빨갛고 탱탱했던 염증에 고름이 잡히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때는 메스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부 쪽 심리상담요원들이 계속 유족을 찾아다니며 '빨리 상담 받아야 한다, 시기 놓치면 큰일 난다'며 상담을 강권합니다. 대부분의 유족들이 분노와 짜증으로 상담을 거부하고. 그래도 계속 강권하고.

한 유족 부모님이 그러십니다. 이건 상담이 아니라 상담 받으라는 떼쓰기라고요. 유족들이 지금 상담 안 받아도 시기 놓치는 거 아닙니다. 오히려 시기가 덜 된 분들 훨씬 많습니다. 진정으로 이들의 자살을 막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조금 다른데 있습니다.

지금은 전문가 아닌 '사람'이 이들에게 최고의 치유자입니다. 그래서 저도 정신과 의사가 아닌 '사람'으로 이 분들 주위를 여러 방식으로 돌고 또 돌며 간간히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곧 때가 올 겁니다. 그러면 그때는, 잠시 아플 순 있어도 종래 아프지 않게 되는, 그런 치유적인 메스를 주저 없이 들 겁니다. 그때까지는 이분들을 극진하게 살피고 있겠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3. 지금 심리 치유가 적극 진행돼야 하고, 진행할 수 있는 집단은 생존자들입니다. 우선 소아청소년정신과 선생님과 연대하며 저도 생존 학생들 치유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의 진심과 노력도 절절합니다.

생존 학생이나 그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심각한 증상들과 그로인한 고통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유족 부모나 실종자 부모들에게 느끼는 죄의식과 책임감 역시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간 생존 학생들의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저도 입박으로 꺼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생존학생들의 치유 상황에 대해 말하면 아마 생존학생들과 그 부모님들은 자기 아픔보다 먼저 유족 부모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힘들고 위축될 겁니다. 

단원고 교사들의 고통에 대해 제가 언급하면 교사들은 생존학생과 부모, 유족들 모두에게 순식간에 죄인 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유족들의 고통에 대해 제가 말하면 오히려 유족들이 실종자 가족들이 받을 상대적 결핍감, 박탈감 때문에 더 많은 부담을 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세월호 참사의 가해자들은 털끝만큼도 죄의식을 안 느끼는데 피해자들끼리 모여서 스스로를 '상대적 가해자'로 느끼거나 그리 될까봐 자기검열을 모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죄의식, 책임감이 종래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상처입은 치유자'로 승화될 수 있을거라는 예감을 저는 합니다. 이분들 벌써 서로에게 그러기 시작했습니다. 정말이지 놀랍고 감동스런 분들입니다.

4. 제가 지금 만나는 분들 중 중요한 그룹이 피해자가 많은 동네의 통반장님, 안산의 사회복지사들, 안산의 시민운동가들입니다. 피해자들과 가장 밀접하게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이웃이고 친인척지간도 많고요. 저는 이분들에게 피해자를 만날 때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도움이 되는 것,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강의를 하며 다닙니다. 피해자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결국 피해자들에게 가장 많은,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이 분들을 도와드려야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갈 수 있습니다.

강의 중에 이분들은 정말 열심히 듣고, 꼬치꼬치 묻고, 눈물로 다짐합니다. 그러곤 불철주야 행동하고 계십니다. 이 분들도 얼마나 감동적인지 모릅니다.

이분들의 진심과 열정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세월호트라우마의 '사회 치유적 모델'>을 이명수 샘과 함께 깊이 고민하며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이미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조만간 여러분들께도 자세히 설명 드릴게요. 그러고 싶어요.
알면 공감하게 되고 공감하면 행동하게 되니까요. 앞으로 많이 도와주시길.

5. 저는 한 달 여 안산을 오가며 제 삶의 중요한 결정 하나를 내렸습니다. 세월호 트라우마의 치유는 제가 부분적으로 시간을 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부 주도의 트라우마 센터도 생겼지만 피해자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마음을 주지도, 열지도 않으려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민간 주도의 치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을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마인드프리즘을 그만두고 안산으로 들어갑니다. 이명수 샘과 함께요.

저는 마인드프리즘을 그만두지만 마인드프리즘은 저와 이명수 샘(선생님)을 적극 도와서 세월호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에는 여러 방식으로 힘을 보탤 예정입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점점 더 많은 분들의 손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때는 우리 직접 만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두 손 모아.

지그문트 프로이트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Sigismund Schlomo Freud,1856.5.6~1939.9.23

1939.9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고 83세를 일기로 사망하다

지기스문트 슐로모 프로이트는 1856년 5월 6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모라비아의 작은 도시 프라이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유대계 사업가인 그의 아버지는 40세 때 20세의 여성과 재혼해 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맏이가 바로 ‘지기’였다. 얼마 후 프로이트 일가는 빈으로 이주했으며, 당시 다섯 살이었던 ‘지기’는 훗날 나치의 탄압으로 망명을 떠날 때까지 무려 70년 넘게 이 도시에 살았다. 비록 인종차별이 있긴 했지만 빈의 유대인은 다른 유럽 여러 지역에 비해서는 현지인과 잘 융화되어서, 당시 그곳의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가운데 절반가량이 유대인이었다.

프로이트의 생애 무명의 생리학자에서 정신분석의 창시자로

1873년, 빈 의과대학에 입학한 지기스문트(Sigismund)는 이때부터 이름을 지그문트(Sigmund)로 바꾼다. 생리학을 전공한 프로이트는 어류와 갑각류 등의 신경계 구조를 연구해 1881년에 학위를 받았다. 1882년에 그는 훗날 아내가 되는 마르타 베르나이스를 만나 약혼하고, 안정된 생활을 위해 연구직을 포기하고 빈 종합병원에 들어가 몇 년 동안 일한다. 최대한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 프로이트는 그 당시 각광받던 새로운 마취제 코카인의 효력을 연구하는 일에 뛰어드는데, 이때 코카인의 중독성을 과소평가한 것은 그의 일생일대 실책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1885년, 프로이트는 장학금을 받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고, 5개월 동안 저명한 의사 장 마르탱 샤르코(1825-1893)의 강의를 듣는다. 샤르코는 여성의 히스테리를 비롯한 발작증 치료에서 최면술을 이용해 큰 효과를 보았다. 프로이트는 샤르코의 치료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이후 반세기 동안 자신의 화두가 될 인간의 심신 관계에 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1886년에 빈으로 돌아온 프로이트는 종합병원을 그만두고 신경질환 전문의로 개업하는 한편, 약혼 4년 만에 마르타와 결혼해서 첫 아이를 얻는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만약 프로이트가 결혼 때문에 병원을 개업하지 않았다면 정신분석학은 결코 탄생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역시 신경질환 전문의였던 요제프 브로이어(1842-1925)와의 만남은 프로이트의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다. 브로이어는 훗날 임상보고서의 주인공으로 유명해진 안나 O.를 비롯한 여러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 문제에 중요한 힌트를 제공했다. 두 사람은 <히스테리 연구>(1895)라는 공저를 내놓았지만, 성(性)을 히스테리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한 프로이트와 그렇지 않다고 본 브로이어 간에는 불화가 빚어진다. 브로이어와 결별한 프로이트는 이비인후과 의사인 빌헬름 플리스(1858-1928)의 도움으로 이른바 과학적 심리학의 이론을 구상한다. 그리고 1896년에 이르러 자신의 방법을 ‘정신분석’으로 명명한다.

1909년 미국 방문 당시 기념촬영. 프로이트(앞줄 왼쪽),융(앞줄 오른쪽),어니스트 존스(뒷줄 가운데)의 모습이 보인다

1896년, 아버지의 사망을 계기로 스스로에 대한 정신분석을 시도한 프로이트는 연구 영역을 더욱 넓혀 나간다. 이후에 간행된 <꿈의 해석>(1899),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1901),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1905) 등의 저서는 정신질환자가 아닌 일반인의 심리 분석을 통해 인간 무의식의 근본 구조를 규명하려는 시도였다. 그런 한편으로 프로이트는 자신의 연구에 공감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1902년에 수요 심리학회를 창설하고, 1908년에 이르러 빈 정신분석학회로 개명한다. 알프레트 아들러(1870-1937)나 칼 융(1875-1961)과 같은 촉망 받는 정신의학자들이 프로이트의 주위에 몰려든 것도 바로 이때였다.

1910-20년대에는 세계 각지에 정신분석학회가 설립되면서 프로이트의 명성도 높아졌지만, 아들러와 융을 비롯한 차세대 정신의학자들은 프로이트의 의견에 반대해 연이어 결별을 선언했다. 이 시기 동안 프로이트는 꾸준히 저술을 내놓으며 정신분석의 개념을 보다 명료히 하는 데에 주력한다. <쾌락 원칙을 넘어서>(1920)는 삶의 본능(에로스)과 죽음의 본능(타나토스)이라는 유명한 개념을 제안했고, <자아와 그것>(1923)은 이른바 에고(자아)-이드(그것)-슈퍼에고(초자아)의 3박자 도식을 제안했다. <환상의 미래>(1927)와 <문명과 불만>(1929)은 그의 이론을 종교와 문명 등의 더 넓은 주제에 적용하려 한 사례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자 유대계인 프로이트의 저서도 공격의 대상이 되어 공개 화형에 처해진다. 주위에서는 망명을 권했지만 프로이트는 줄곧 이런 제안을 거절하고 빈에 남아 있었다. 이미 그는 심신이 지쳐 있었다. 1923년에 구강암 선고를 받고 여러 번에 걸쳐 수술을 했지만, 1937년에 암이 재발해서 통증으로 고생했던 것이다. 1938년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나치 돌격대가 프로이트의 집에 쳐들어와 가택 수색을 실시하는 일이 벌어진다. 마침내 프로이트도 망명에 동의했고, 여러 사람의 주선 끝에 파리를 거쳐 영국 런던에 도착했다. 그러나 얼마 뒤인 1939년 9월 23일,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망명지인 런던에서 눈을 감았다.

프로이트의 사상: 무의식의 발견과 그 작동 방식에 관한 연구

프로이트의 가장 큰 업적은 뭐니뭐니해도 ‘무의식’의 발견이다. 애초에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를 통해서 심리적 원인이 신체적 질환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알아냈다. 이때 히스테리의 원인이란 보통 어린 시절의 충격적 경험(트라우마)인데, 대개는 성(性)과 연관된 내밀한 것들이었다. 히스테리 환자는 일찍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가 억압을 통해 무의식으로 가라앉아 버린 이 원인을 의사의 도움으로 기억해내고 인지함으로써, 즉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통해 증상이 치유되곤 했다. 이것이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인간의 무의식에 접근하게 된 계기였다. 무의식의 작동 방식을 연구하던 프로이트는 이것이 단순히 정신질환 환자의 경우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점을 눈치 챘다. 나아가 히스테리 환자의 치료 과정에서 최면술, 압박술, 자유연상 등의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꿈이나 실언 등의 무의식적 행위가 어떤 억압된 것의 표출이라는 점을 눈치 채게 되었다. 이른바 에고(자아)-이드(그것)-슈퍼에고(초자아)의 3박자 도식은 무의식의 작동 방식에 대한 프로이트의 최종적인 설명이다.

나아가 그는 성적 충동(리비도)이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의 중요한 본능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삶의 본능(에로스)과 반대되는 죽음의 본능(타나토스)의 존재를 설정했다.프로이트의 이론은 흔히 만사를 성(性)으로 설명하려 든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이는 특히 인간의 발달 과정에 관한 설명에서 두드러졌다. 프로이트는 유아기와 유년기에 벌어진 사건이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주장하며, 발달 단계에 따라 구강기(입으로부터 성적 쾌감을 얻는 시기)와 항문기(항문으로부터 성적 쾌감을 얻는 시기)와 남근기(남성의 성기에 관심을 갖는 시기) 등을 구분했다. 나아가 남자아이의 경우에는 어머니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고 아버지에게 거세 공포를 느끼는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시기가 있으며,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남근 선망’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후자의 주장은 프로이트 활동 당시의 남성중심주의를 반영한 발언으로 평가되며, 종종 페미니즘 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원인이기도 하다.

프로이트에 대한 평가: 혁명적 이론인가 사이비 과학인가?

프로이트의 업적이란 그야말로 ‘혁명적’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그 덕분에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보다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의 내면에는 ‘자아’라는 단단하고 확고한 실체 대신 차마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있다는 사실을 프로이트는 처음으로 폭로했던 것이다. 인간의 시야를 더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의 업적은 다윈과 아인슈타인이 가져온 사상적 혁명에 비견할 만하다. 19세기 말에 그의 학설은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의 주장에서 성(性)에 대한 언급이 종종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의 정신의학자 중에서도 성(性)의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은 많았지만,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한 것은 프로이트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1925년 오스트리아 빈의 진료실에서 애완견과 함께 한 프로이트

성(性)의 역할에 대한 강조는 프로이트의 사상이 초기에 냉대를 받은 원인인 한편으로, 프로이트가 세상만사를 그쪽으로 해석하려 한다는 가장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 요인이었다. 물론 프로이트는 성(性)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지는 않았고, 그것이 당시의 통념 이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처음으로 직시했을 뿐이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성(性) 이론은 ‘양성’(兩性)이 아니라 ‘남성’(男性)만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 한계라는 비판만큼은 일리가 있다. 페미니즘 진영의 주장에 따르면, 프로이트 본인이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을 주로 놓고, 여성을 종으로 놓아 가령 남근선망 같은 잘못된 추측들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신분석이 사이비 과학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외양과는 달리 과학적 요구조건을 만족시키지는 못하며, 막상 프로이트 본인이 치료한 환자 중에서도 완치 여부가 불확실한 경우가 많았을 정도로 그 효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한 비판이 나올 경우, 그 ‘무의식적 동기’를 파헤침으로써 어떠한 공격조차도 무력화시켰던 프로이트의 몇 가지 선례 역시 정신분석의 객관성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나아가 프로이트가 이른바 정신분석학회를 설립하고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면서, 자신의 학설과는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려 시도한 일부 인사들을 냉정히 제거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학설 역시 일종의 종교적 교리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이처럼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닌 것도 사실이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은 여전히 강력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여전히 불가해한 대상으로 남아있는 인간의 무의식이란 대상을 향한 프로이트의 통찰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에 대한 수많은 비판과 해석, 그리고 재비판과 재해석이야말로 어쩌면 그의 이론이 지닌 탁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이론을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을 의식한 듯, 프로이트는 말년에 아인슈타인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쓴 적이 있다. “물리학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감히 선생님의 주장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심리학을 모르는 사람조차도 제 주장에 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아인슈타인 선생님께서는 정말 복 받으신 분입니다.”

프로이트의 주변 인물들

그의 막내딸 안나 프로이트(1895-1982)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정신분석학자가 되었으며 특히 아동 심리학의 권위자가 되었다. 아버지의 말년에 간호와 비서 노릇을 도맡았으며, 아버지의 사후에 사실상의 유언집행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때 그의 편이었으나 훗날 불화로 인해 등을 돌린 사람 중에서는 특히 알프레트 아들러(1870-1937)와 칼 융(1875-1961)이 유명하다. 아들러는 1911년에, 융은 1914년에 프로이트와 결별했으며 이후 각자의 독자적인 심리학 이론을 구축하며 일가를 이루었다. 두 사람 모두 프로이트가 성(性)을 지나치게 강조한 점을 불만스럽게 생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1933년에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세계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아인슈타인 역시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유대계였으며, 나치의 탄압을 피해 훗날 미국으로 망명했다. 나아가 두 사람 모두 무신론자와 평화주의자였다.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미지 1

프로이트의 전기로는 그의 추종자였던 정신분석가 어니스트 존스의 것과 유럽 지성사 전문가인 피터 게이의 것이 유명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으며 그에 버금갈 만한 본격적인 전기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아쉬운 대로 그의 삶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는 책으로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중 하나인 피에르 바뱅의 <프로이트: 20세기의 해몽가>(1995)와 옥스퍼드 위대한 과학자 시리즈 중 하나인 마가렛 머켄하우프트의 <정신분석과 프로이트>(김문영 옮김, 바다출판사, 2002)가 있다.

마르트 로베르의 <정신분석혁명: 프로이트의 삶과 저작>(이재형 옮김, 문예출판사, 2000)과 그 개정판인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상>(2007)은 프로이트의 주요 저술 및 관련 자료에서 선별한 여러 인용문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유용한 저서다. 다만 사상에 비해 생애에 관한 서술 부분이 지나치게 간략하게 서술되었다는 점은 아쉽다. 고흐와 미켈란젤로 등의 전기 소설로 유명한 어빙 스톤의 <프로이트>(전3권, 설영환 옮김, 오늘, 1993)도 전기 소설이긴 하지만 아쉬운 대로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C. S. 홀의 <프로이트 심리학 입문>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유일무이한 개론서 역할을 해 왔다. 리처드 오스본의 <만화로 보는 프로이트>(정영목 옮김, 청미래, 1996)와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 중 하나인 리차드 아피냐네시의 <프로이트>(박지숙 옮김, 김영사, 2002)는 만화 형식을 취한 교양서라고 해서 얕볼 수 없을 정도의 알찬 내용을 제공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듯이, 프로이트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자료는 바로 프로이트 본인의 저서다. <프로이트 전집>(열린책들)은 1997년에 20권으로 초판 간행되었다가, 2003년에 15권으로 재편집되어 간행되었으며, 2005년에 <정신분석의 탄생>과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이라는 초기 저작집 2권이 추가되었다. <우리의 마음은 남쪽을 향한다>(천미수 옮김, 웅진북스, 2003)는 1895년부터 1923년까지 프로이트가 여행 중에 보낸 서간 모음집이다. 장 라플랑슈 외 공저 <정신분석학 사전>(임진수 옮김, 열린책들, 2005)은 프로이트의 저서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개념어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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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서 | 출판기획자, 번역가
글쓴이 박중서는 [약소국 그랜드 펜윅] 시리즈인 [뉴욕 침공기]와 [월스트리트 공략기] 등 수 십권의 책을 우리 말로 옮긴 번역가다. 1만권이 넘는 책을 소장했으며, 독서 관련 칼럼을 쓰고 있다. [불굴의 용기], [끝없는 탐구] 등 인물 논픽션을 번역했으며 외국 인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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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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