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꿈을 이야기 합시다
작성자이재성 (pem21@hanmail.net)
2004. 10. 24. 주일 오전

꿈을 이야기합시다
민수기 14:26-18

레빈 박사는 우연히 어떤 사람은 행복해지고, 어떤 사람은 불행해 지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리고 연구한 결과 다음과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행복한 언어를 듣고 자랐으며, 지금도 행복의 언어를 듣고 사는 사람들이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불행한 언어를 듣고 산 사람이라는 거였습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말로 표현하면서 살고, 말한 것을 실천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죽겠다'고 말할 때 어깨가 축 늘어지고, 몸의 구조와 세포와 신경이 죽을 준비를 하고,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몸의 모든 조직과 세포와 신경이 살 준비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오늘 28절 말씀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Say to them, 'As I live,' says the Lord, 'just as you have spoken in My hearing, so I will do to you."
하나님도 우리가 말하는 것에 대단히 민감하신 분이신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뭐라고 하든 그대로 이루어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도대체 누가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인가?
민수기 13장 32-33절에 보면, 거기엔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 정탐 자들 중에 10명의 정탐 자들이 자기 백성들에게 보고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다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자기들이 메뚜기 같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곳에 들어가는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습니다.

거기에 반대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믿고 따르면 불가능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이 하는 말을 다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말한 대로 내가 그대로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능히 그 땅을 취할 수 있다>고 했으니 그대로 해줄 것이나,
다른 정탐 자들은 자기들이 메뚜기 같다고 했으니 그대로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그들의 운명이 갈리는 순간입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가나안 땅의 출입구(出入口)입니다.
그곳만 들어가면 바로 약속의 땅입니다.
아, 얼마나 바라고 사모하던 땅입니까?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모든 고통과 역경을 무릅쓰고 이곳을 향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승리의 문 앞에서 좌절이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오랜 세월의 꿈이 좌절되는 순간입니다.
이들이 그처럼 무너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이 그 땅 거민의 강함과 자기들의 무력함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까?
그들이 약속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만족할만한 대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꿈이 분명하고 그 꿈을 이루려는 의지가 굳은 사람은 아무리 큰 장애물이 있다고 해도 뒤로 물러가는 일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에겐 어떤 장애물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장애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반면 꿈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장애물부터 봅니다.
더욱이 어떤 일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핑계 댈 것부터 찾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주저 않고 맙니다.

이렇게 보면 부정적인 정탐꾼들이 가진 문제는 두 가지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는 확실한 꿈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물을 먼저 보고 뒤로 넘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은 약속을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물 앞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라고 하셨을 때는 무조건 그 땅을 주신다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그 약속 안에는 어떻게 그 약속을 이루어 가는가 하는 세부사항이 또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가나안이라는 목표만 생각했지 그 계획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세부 사항은 생각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지래 겁을 먹고 넘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꿈과 현실의 차이는 굉장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현실에서 인생의 최종 목표만을 바라본다면 좌절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작은 목동이 애굽의 총리가 될 꿈을 꾼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거기엔 도무지 이룰 수 없는 너무나 큰 갭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그 꿈은, 최종 목표는 가슴에 묻어두고, 무조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한 걸음씩만 순종하며 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굽의 총리까지 된 것입니다.
피터슨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설계로
모든 것이 선으로 이루어짐을
우리가 아네
주님의 성스런 목적을 위해
우리의 발걸음을 명령하시네

All things work out for good, we know-
Such is God's great design;
He orders all our steps below
For purposes divine. -Peterson


또한 뮬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한 사람의 발걸음뿐 아니라
그의 멈춤도 또한 주님께서 주관하신다.

The stops of a good man
are ordered by the Lord
as well as his steps. -Muller

오늘 말씀을 놓고 보면 생(生)에 큰 비전을 이루려면 먼저 꿈을 분명히 세워야하고,
그 다음엔 그 꿈을 자신이 확인하면서 하나님께 자꾸만 알려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도 자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합니다.
자기 마음을 분명하고 진실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더욱이 우리의 목표를 하나님께 들려주지 않아서 되겠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말하자면 꿈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술로 말하는 것을 직접 들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출애굽기 3장 7-8절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의 구원하셨던 방식도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부르짖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셨던 것입니다.
이 과정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이 말씀에 나오는 동사만 간추려 읽어보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보고, 듣고, 알고, 건져내고.'
즉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과 수고를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에 개입하시는 방법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통해 들으셨고, 이를 통해 아셨고, 결국은 개입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꿈을 지니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꾸는 사람들은 많습니다만 성취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꿈을 꾸는 것과 꿈을 이루는 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절벽 위에서 목적지를 눈으로 확인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곧장 그 길로 달려갈 수는 없습니다. 그대로 가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길로 내려가야 합니다. 뒤로 돌아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때로는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딴 길을 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류 태영 교수의 자전적 에세이,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마을에 큰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물이 빠지기 시작해서 깊은 물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줄어들면서 주변 바닥이 드러나고 물고기들은 물 밖으로 밀려나면서 허우적거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물고기에 탐이 나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 들어 맨손으로 고기 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옷을 입은 채 바지만 걷어올리고 뛰어들고, 어떤 사람은 저고리를 벗은 채 뛰어들어 고기 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너나없이 때를 놓칠세라 끼어 들었습니다.

한 사람만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뛰어들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면서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한 구석에 넣어두었던 그물을 끄집어내어 해진 곳을 깁고 찢어진 곳을 열심히 손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열심히 보던 아내가 답답해하며 한마디 던졌습니다.
"당신 그물 고치는 사이에 물고기는 다른 사람들이 다 잡아가겠수."

아내는 투덜거려도 그 사람은 하루 종일 그물만 수선하는 것이었습니다.
해질 녘에야 그물이 모두 수선되었고, 이분은 그들을 어깨에 메고 저수지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은 고기를 잡느라 아우성이었습니다만 잡히는 것은 모두 잔챙이들이지 먹을 만한 고기들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그물을 들고 유유히 저수지 가운데로 들어가 그물을 던졌습니다. 굵직한 고기들은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혔습니다.

고기를 잡으려는 데만 급급하지 고기를 잡을만한 적절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고기를 잡고자 하는 꿈이 있다면, 그 꿈을 분명히 하고, 그리고 가는 길을 하나님께 물으면서 인도를 따라 가야 합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에게 목표를 주신 하나님은 그 안에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사다리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실하게 그 약속을 붙들고 우리의 꿈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을 기대할 때 그곳에는 놀라운 성취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등장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
한 부류는 꿈을 주신 분과 그 꿈을 이루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아멘합니다.
그러나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꿈을 주신 분을 신뢰하지 못했고, 그 방법에 전혀 동의하거나 순종할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부정적인 말로 자기 인생을 파멸로 이끌어 간 사람들이 몰랐던 것은 여호수아서의 내용입니다. 여호수아서는 하나님을 향한 꿈과 비젼을 가슴에 품고, 그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하는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첫걸음을 내딛은 여호수아는 맨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만 걸어간 사람입니다.
그가 약속의 땅을 얻어 가는 일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편안한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로만 걸어가서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천교회가 꿈을 꾸는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대하게 주신 그 꿈!
신림동과 이 나라와 민족과 전 세계를 향한 그 거대한 복음의 중심에 서는 교회이기를 소망하는 그 거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소유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꿈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오늘 여기서 우리가 감당해야할 그 사명을 순종함으로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때로는 어려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거대한 아낙 자손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전쟁의 위협이 우리를 덮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 곁에서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확인시켜주시려는 거대한 계획임을 알고 적극적으로 신뢰함으로 순종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류 태영 교수는 그의 책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주님이 계시는 한) 너무 힘이 들어 불가능하다는 말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다만 신념과 노력을 다한 후 목숨이 끊어져 관속에 들어가 관 뚜껑에 못이 박일 때 비로소 이 일이 네게서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포기의 하나님이 아니라 불가능을 가능케하시는 분이십니다.

리빙스턴의 다음과 같은 말을 확인하십시오.
“사명이 있는 사람은 그 사명을 이룰 때 까지 결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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