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은 덕수이씨 12대 손이다.
그의 시조인 이돈수(李敦守)는 고려중엽 고종 때 신호위 중랑장(神虎衛 中郞將)의 벼슬을 지냈으며 그 선조는 나타나지 않고 다만 1218년 거란의 침입 때 출정한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다.
4대조 때 조선왕조의 개칭을 맞이하면서 문반으로서의 두각을 나타내 조선시대에 105명의 문과급제자와 정승 7명, 대제학 5명, 공신 4명, 청백리 2명을 낸 덕수이씨는 중종에서 영조 때까지의 3백년간이 가장 융성을 누린 시기로 나타나고 있다.

7대조인 이변(李邊)은 영중추부사 홍문관 대제학을 지냈다.
그의 증조부인 이거(李據)는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한 후 홍문관 수찬, 사간원 정언, 사헌부 장령, 이조 좌랑 등 청요직을 역임하면서 엄격한 탄핵과 간쟁을 서슴지 않아 ‘호랑이 장령’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순신의 조부 이백록(李百祿)은 기묘사화에 연루돼 고난을 겪었다.
이로 인해서 아버지 이정(李貞)은 벼슬에 뜻이 없이 평민으로 지냈다. 때문에 집안 형편은 더욱 기울어졌다. 하급 무관직인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냈다고는 하지만, 이는
정규관리가 아니라 임시직이나 명예직쯤으로 여겨진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초계 변씨(卞氏)이다.
이순신의 형제로는 희신(羲臣), 요신(堯臣), 순신(舜臣), 우신(禹臣) 등 4형제가 있다.

덕수이씨 종중에서는 이순신과 이율곡(栗谷) 그리고 이식(李植 : 1584 ~ 1647) 등 몇몇
집안을 명문으로 치고 있지만, 이순신과 이율곡은 제 4대 조상 때에 나누어져 이순신은
제 12대가 되고, 이율곡은 제 13대가 되어 두 사람의 촌수는 19촌 숙질간이 되며, 이율곡과 이식은 이율곡의 증조부 때에 서로 나누어져 이식은 제 15대가 되고, 이순신은 이식의 먼 증조 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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