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는 지금 진료영역 뺏기 '萬人의 투쟁'

  • 김민철 기자

    입력 : 2011.12.30 03:03

    불황에 경쟁 치열한데다 의료기기 좋아져… 의사·약사 등 겹치는 영역 놓고 갈등
    근육내 자극치료 - 의사 "면허범위 안의 시술" 한의사 "침술 침해" 고발
    사후 피임약 - "전문의약품, 의사 처방 필수"… "약사들이 바로 팔 수 있어야"
    보톡스·필러 - 의사 "영역침해" 치과의 고발, 치과의 "우리 일과 관련있다"
    초음파 검사 - "영상의가 검사·판독 다 해야"… "검사는 방사선사가 해도 돼"

    의료계 곳곳에서 영역을 지키고 빼앗기 위한 분쟁이 치열하다. 경기 침체로 의료기관들이 영역을 확대하는 데다, 의료기기들이 좋아져 겹치는 진료 영역이 늘어나면서 의료계가 '기득권 쟁탈전'에 휩싸인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의사와 한의사들이 싸우는 근육내 자극치료(IMS)다. IMS는 근육 깊은 곳에 바늘을 넣어 전기적 자극을 주는 치료 기법이다. 의사협회는 IMS가 "현대의학에 기반한 의사면허범위 내의 의료행위"라고 주장하는 반면, 한의사협회는 "명칭이 어떻든 의사의 침 사용은 불법"이라며 이 시술을 하는 의사들을 고발하고 있다.

    최근 서울고법이 침술을 시행한 의사 엄씨가 낸 의사면허자격 정지처분 취소소송 판결에서 "엄씨의 시술 행위는 IMS가 아니라 침술"이라며 자격정지 처분이 유효하다고 결론 내렸지만, 이 판결의 해석을 놓고 의협과 한의협이 다시 의견이 갈리면서 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의협은 최근 국회에서 심의 중인 '미용·이용 등 뷰티산업진흥·관리법'도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의협은 "법안대로 저출력 의료기기를 미용기기로 전환하는 것은 미용사들이 사실상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미용사회중앙회 서영민 홍보국장은 "위험하지 않은 기기를 미용기기로 분류해 미용사들이 쓸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지, 의료행위를 허용해준다는 것은 오해"라고 반박했다.

    의사와 약사들은 사후 피임약, 처방전 리필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사후 피임약의 경우 의사 처방을 받도록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사들의 주장과 일반약으로 전환해 약사들이 바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약사회 주장이 맞서 있다.

    만성질환의 경우 처방전을 다시 사용하게 하자는 '처방전 리필제'를 놓고도 의사들은 수입 감소 등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지만 약사들은 찬성하고 있다.

    의사와 치과의사들은 보톡스·필러 시술을 놓고 고발전이 한창이다. 의사들은 "치과의사들이 미용 목적으로 보톡스·필러 시술을 하는 것은 명백한 의료영역 침해"라며 해당 치과의사들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치과의사협회 이강운 법제이사는 "치료 목적이든 미용 목적이든 치과 진료와 관련 있는 것이면 당연히 치과의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수년 전부터 일반진료를 확대해온 보건소는 개원 의사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올 들어 지방 소도시 보건소가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무상 진료에 약값까지 지급하고, 서울시가 최근 보건소 야간·휴일 클리닉 운영 등을 위한 예산 100억원을 배정하자, 개원 의사들은 "보건소가 질병 예방과 교육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 채 1차 진료를 확대하면서 개원 의사들의 경영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반발하고 있다.

    영상의학전문의들과 방사선사들은 초음파 검사 주체를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영상의학회는 "초음파 검사는 찍힌 사진을 판독하는 CT (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와 달리 실시간 질병을 진단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가 직접 검사와 판독을 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방사선사협회는 "방사선사가 초음파검사를 진행하고 의사가 판독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서울대 김진현 교수는 "경제 침체로 의료 주체들이 계속 진료영역을 넓히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의료기기 사용이 간편해지면서 필연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라며 "영역을 칼로 무 자르듯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수요에 맞춰 전통적인 영역을 조정할 필요도 있기 때문에 영역 분쟁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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