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혁명이 오고있다


인류가 출현한 이래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혁명적인 변화가 몇 차례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변혁의 공통점은 삶의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공간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인류의 삶의 방식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제1차 공간혁명은 그 전까지만 해도 온 산야를 떠돌아다니며 유목민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각자의 보금자리를 정하고 정착민의 삶을 살기 시작한 ‘농업혁명’이었다. 농업혁명 이후 사람들은 물리적인 주거공간과 생산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소유’라는 개념에 눈을 뜨게 된다.

다음으로 제2차 공간혁명은 도시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기계와 공장에서 각종 생산물을 대량으로 토해내기 시작한 ‘산업혁명’을 들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의 삶은 도시를 중심으로 규모와 집적의 경제원리가 지배하는 형태로 바꿔졌다.

제3차 공간혁명은 물리공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인터넷의 무한한 가상 세계를 탄생시킨 ‘정보혁명’을 말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구속에서 벗어나 전자공간이라는 또 하나의 지구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제4차 공간혁명은 물리공간에 전자공간을 연결하여 언제 어디서나 접속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통합한 공간으로서, 이것이 곧 ‘유비쿼터스혁명’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유비쿼터스혁명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컴퓨터의 등장으로 막이 열린 정보혁명은 각자의 책상 위에 외롭게 존재하던 전 세계의 컴퓨터들을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WWW)으로 네트워크화 함으로써 빅뱅을 맞게 되었다. 정보혁명의 토양이 된 전자공간은 ‘제2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불릴 만큼이나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했다.

이제 우리는 전자공간에서 단 한 번의 마우스 클릭만으로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있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몸체를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땅 한 평 없이도 얼마든지 거대한 쇼핑몰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쇼핑몰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며 안방에서 편안하고 쾌적한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전자공간은 기존의 물리적 거리나 도시의 존재 가치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 신속성·편리성·효율성 때문에 전자공간의 거대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물리공간은 인류의 중심 무대에서 사라진 채 영원한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물리공간이 그렇게 호락호락 권좌를 내줄 만큼 힘이 약한 존재가 아니다. 전자공간에서 제 아무리 수백억 원 어치의 물건을 사고판다 해도 제품을 만드는 생산공장이 없고 물리공간을 누비고 다닐 택배회사가 없다면 모든 것은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다. 물리공간의 기반이 없는 전자공간은 아무 의미가 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은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는 공간이 아니라 보완하고 융합해야 하는 관계에 있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기 위해 도로가 있어야 하고, 강과 강을 연결하기 위해 다리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을 서로 연결하는 도로이자 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제3의 공간인 유비쿼터스공간이다. 그리고 이 제3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삶의 내용이 유비쿼터스혁명의 본질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정보혁명이 컴퓨터 속에 물리공간을 집어넣은 혁명이라면, 유비쿼터스혁명은 컴퓨터를 물리공간에 집어넣는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공간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던 물리공간을 다시 부활시켜 생명력을 불어넣은 마지막 단계의 공간혁명이 바로 유비쿼터스혁명인 것이다.

일본의 오마에 겐이치는 『보이지 않는 대륙(The Invisible Continent)』에서 ‘앞으로 모든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은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무한한 전자공간의 대륙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승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것은 사이버공간의 위력과 잠재가치를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명의 충돌』에서 저자인 새뮤얼 헌팅턴이 세계사의 변화를 문명 간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진단했다면, 21세기는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세계 질서를 새롭게 진단할 필요가 있다.

한 차원 더 나아가 유비쿼터스혁명을 통하여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물리공간’과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전자공간’을 어떻게 하면 가장 이상적으로 융합할 것인가에 국가와 기업과 개인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올바른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유비쿼터스는 앞으로 올 세상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세상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지금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도 미래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사회의 변화는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결국 대세로 굳어지곤 한다. 우리 사회의 도도한 물결은 이미 유비쿼터스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좋든 싫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물결을 따라 흘러갈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인 2015년에 우리가 생활하는 모습을 10년 전인 2005년과 비교해볼 기회가 있다면, 우리 생활이 10년 사이에 많이 유비쿼터스화 되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것이다.

유비쿼터스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다. 유비쿼터스는 일부 전문가나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활이자 문화가 될 것이다. 과연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변화에 대해 더욱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그 변화의 기운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예의주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년만 일찍 알았더라면 내 삶이 바꿔졌을텐데'가 아니라, '지금부터 알아가면 10년 후의 내 삶이 바뀐다'는 생각을 가지고 삶에 임해야 한다. 일단 유비쿼터스에 대해 알아야 유비쿼터스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래야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가 윤곽이 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유비쿼터스의 시대다. 그리고 우리의 지금 선택이 10년 후의 미래의 삶을 좌우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시작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영원히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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