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간경화 말기환자 쑥뜸으로 목숨건진 사연
2007/03/08 오후 8:47 | 아름다운 사람

간경화 말기환자 쑥뜸으로 목숨건진 사연
[현직 판사가 쓰는 민중의술] 민중의술의 유형별 치료사례 <3>

울산지방법원 황종국 부장(hjkook2000@yahoo.co.kr)는 현직 판사이면서도 민중의술 살리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그는 유명한 민중의술을 시술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고, 민중의술을 시술하다 혹연 문제가 되어 사법적 판단을 필요로할 때는 관대한 처벌로 민중의술을 지켜주는 역할도 담당해왔다.

그는 "나는 12년간 병원을 다니며 앓던 콧병을 너무도 간단한 쑥뜸으로 고친 후 지금까지 22년 동안 민중의술의 경이로운 치료능력을 수없이 경험하고 확인하였다. 전신이 마비되어 식물인간 상태인 67세의 할머니가 30일간의 단식을 통하여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다."고 전하면서 "말기 간경화증으로 절박한 죽음의 고비를 몇 번 넘긴 어느 분에게 쑥뜸을 하게 하여 서너 달만에 병원에서 검사결과가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기도 하였다. 중풍으로 한방병원에 열흘 넘게 입원하였으나 증세가 점점 악화되어가던 친형님을 퇴원시켜 30분간 침을 맞고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관절과 근육을 다쳐 화장실 출입도 업혀서 하던 사람이 침을 세 번 맞고 거의 정상적으로 걸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오른 팔이 올라가지 아니하여 수십 번 병원을 드나들었으나 효과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을 잠깐 만져 채 1분도 안되어 팔을 빙빙 돌리도록 만드는 것도 보았다. 이런 사례는 끝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현직 판사가 쓰는 민중의술" 시리즈에는 황종국 부장 판사가 직접 전국을 순례하거나, 기자처럼 직접 취재-체험한 내용을 기록한 전통-민중의술의 기록이다. (편집자 주)

3. 쑥뜸

▲황종국 울산지법 부장판사 ⓒ유장훈 기자

나는 젊은 시절, 축농증·비염·비골만곡증 등의 콧병으로 유명 병원(당시의 고려병원. 현재의 강북삼성병원)에서 수술을 두 번 받고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며 십 수년간 굉장히 고생을 하였다. 그러다가 김수웅 선생님에게서 단식을 지도 받을 때 양쪽 귀 뒤쪽 움푹한 곳에 쌀알 반만큼 한 쑥뜸을 뜨는 치료법을 배운 이후로는 그 고생에 종지부를 찍고 병원과 약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콧병이 완벽하게 나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경이로웠고, 동시에,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오랫동안 쓸데없는 고생을 한 것이 통분하였다. 몇 년 전에는 4개월 가량의 쑥뜸으로 지병이던 기침의 뿌리를 뽑았다.

내가 활용하는 쑥뜸은 구당(灸堂) 김남수 선생님이 창안한 무극보양(無極保養)뜸으로서, 쌀알 반정도 크기의 뜸쑥을 8개 주요 경혈 12군데 자리에 놓고 뜨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구당 선생님은 EBS TV에 자주 등장하였고 역대 대통령을 거의 치료해준 분으로, 올해 90세인데, 매일 12시간 이상을 선 채로 환자를 보고도 지칠 줄 모르고, 아무리 먼 외국을 가도 시차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오랫동안 관찰해본 이분의 체력은 30대 이하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 건강은 평생 쑥뜸을 뜬 덕택이라고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환자를 평등하게 대하고, 누구에게나 인자하고 따뜻하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침구사 제도를 부활시켜 침구 종주국의 명맥을 잇고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투철한 신념으로 평생을 그 목표를 위해 헌신해 오신 이분의 참된 인술(仁術)을 보고 나는 후학(後學)으로서 또 법률가로서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분은 일제(日帝) 시대에 받은 침구사자격증으로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이 나라의 몇 안 되는 생존 침구사 중 한 분인데, 이 나라의 법이 금지하는 행위가 일제의 자격증에 의하여 활용되면서 사람을 살리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의 조카딸은 병원에서 수술 명령을 받은 담석증을 수술을 거부하고 쑥뜸으로 치료하였는데, 담석증 증세가 깨끗이 사라진 것은 물론, 처녀 때부터 허약하던 몸이 전체적으로 건강해졌다. 또 다른 담석증 환자 분은 초음파검사 결과 최초에 1.8㎝이던 담석이 20여 일간 쑥뜸을 한 결과 8.7㎜로 줄어들었고, 그 후로도 매일 쑥뜸을 하면서 계속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였다.

나는 간경화 말기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울산중앙병원에서 주는 알약으로 연명하고 있던 40대의 어느 가정주부에게 쑥뜸을 가르쳐주어 뜨게 한 적이 있는데, 3개월 가량 지난 뒤 병원에 가서 간 검사를 한 결과 수치가 정상인과 같이 나왔고, 5개월 가량 지난 뒤부터는 종전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던 불면증이 없어지는 등 일상생활이 거의 정상화되었으며, 계속 뜸을 뜬 결과 완전히 정상인이 되었다.

인산 김일훈 선생 문하에 있던 부산의 이 아무개 씨는 급성간염으로 황달까지 생겼는데, 처음에는 간 치료를 잘한다는 대구 동인병원을 왕래하면서 약을 받아먹었으나 독하여 그만두고 간 주변에 몇 군데 쑥뜸을 하였더니 신속히 완치되었다고 한다.

불면증에는, 수십 년 된 고질적인 병이라도 쑥뜸이 매우 효과적임을 몇 사람의 사례를 통해서 확인하였다. 자궁 내 혹을 수술하기로 한, 친구의 부인은 나의 권유로 수술을 연기하고 쑥뜸을 하였는데, 그 날 밤 오랜만에 잠을 편하게 잤고 수술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다가 병원에 입원하러가던 나의 사형은 나의 권유를 받아들여 입원을 연기하고 그 길로 쑥뜸을 시작한 뒤 사람다운 모습을 회복하였다.

'단식'편에서 사례로 든, 광주의 윤준호 씨는 2002년 여름에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며 고름이 나오는 병을 앓게 되었는데, 피부과·내과 등에 다니며 소염제 등의 약을 먹었으나 효과를 못 보다가 자신이 온구기로 환부에 1주일 정도 아침저녁으로 쑥뜸을 하였더니 고름이 빠지고 새살이 돋아나며 완치되더라는 이야기도 내게 전해왔다.

내가 아는 어느 선생님은 침과 쑥뜸을 병용해서 말기 폐암 환자를 거의 완치시키고 있다. 부산의 유명한 종합병원 두 군데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60여세의 아주머니를 우선 거처를 통영 바닷가로 옮기게 하고 치료해 왔는데, 외형상의 증상이 모두 사라졌고, 병원에서도 증상이 없어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다.

부산 법원에 같이 근무하는 후배 법관이 내게 찾아와서 그의 장인 어른이 구안와사(口眼와斜)로 고생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상의를 하였다. 처음 발병하여 인천 길병원에 10일 가량 입원했는데, 며칠 동안 검사만 하고 별다른 치료도 안 하면서, 빠르면 3개월, 늦으면 6개월 걸리겠다고 하더란다. 답답해서 서울 삼성병원에 갔더니 역시 마찬가지더란다.

나는 서울 청량리 홍릉갈비 사거리에 있는 '남수침술원'에 찾아가서 김남수 선생님에게 침과 쑥뜸으로 치료받으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장인어른이 "유명한 병원에서도 잘 못 고치는데 침뜸 같은 것으로 되겠느냐"고 회의를 표한단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이 분도 경험이 없으시구나' 싶어서 "김남수 선생님은 역대 대통령을 고친 분이니 일단 가서 만나보고 신뢰가 가면 치료를 받으시고 신뢰가 안 가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하였다. 사실 구안와사 정도는 침구인들에게는 병도 아니다.

구당 선생님은 찾아온 그 환자에게 침과 뜸을 한번 시술해 주고는 이제 집에 가서 쑥뜸을 계속 하면 되니 올 필요 없다고 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환자는 그 뒤로 서너 번 더 찾아가 시술을 받았고 현저한 효과를 보았을 뿐더러, 그 동안 아팠던 허리, 무릎까지 치료를 받고 침뜸에 매료되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쑥뜸은 크고 작은 모든 병에 무소불위의 효력을 발휘한다. 백혈병, 말기에 이르기 이전의 각종 암 등도 치료한다. 특히 유방암 같은 것은 쑥뜸으로 거의 치료된다고 한다. 나는 쑥뜸을 뜨기 시작한 후 감기를 한번도 앓지 아니하였다. 무극보양뜸은 우리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의 일상 건강법이 되었다. 뜸을 세는 단위를 장(壯)이라고 하는데, 뜸 하나에 한 사람의 힘이 들어있다고 하여 붙여진 호칭이다.

쑥뜸을 주로 하면서 침술을 병행하면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쑥뜸은 침술보다 더 뛰어난 미덕이 있다. 우선 침은 항상 전문가에게 가서 시술을 받아야 하지만 쑥뜸은 한번만 전문가에게서 뜸자리를 잡으면 집에서 가족끼리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가족끼리 살을 어루만지면서 시술하고, 시술하면서 자연히 대화하므로 가정의 화목에 그만이다. 침은 맞을수록 기운이 빼앗기나 쑥뜸은 할수록 기운이 증강된다. 3천원 짜리 뜸쑥 1통을 사면 1인용일 경우 매일 떠도 3개월 이상 뜰 수 있으므로 비용이 너무 저렴하다.

무엇보다도, 쑥은 옛부터 영초(靈草)로서 단순히 병을 낫게 할 뿐 아니라 환자의 정신까지 신령스럽게 이끄는 힘이 있어 왔다. 우리의 건국역사에 쑥이 마늘과 함께 등장하여 곰족의 평범한 여인을 신인(神人)인 한웅과 같은 반열에 설 수 있을 정도로 영적 성장을 시켰다는 이야기는 쑥의 뛰어난 영성을 짐작케 하는데, 그 때 사용된 쑥은 먹는 쑥이 아니라 뜸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한단고기』의 「삼성기 하편」과 「태백일사」중 〈신시본기〉, 그리고 『삼국유사』등에는 한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신령한 쑥 일주(一炷)와 마늘 이십매(二十枚)를 주어 먹게(食之) 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는바, 일주(一炷)를 쑥 한 다발로 번역하고 있으나, 주(炷)는 '심지 주'자로서 등불을 밝히는 데 쓰는 심지를 의미하므로 일주(一炷)를 쑥 한 다발로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오히려 뜸을 뜰 때 쑥을 비벼 만든 기둥을 쑥심지라고 하므로 쑥심지를 한 덩어리 주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 뒤에 나오는 '먹게 하였다(食之)'는 표현 때문에 먹는 쑥으로 보고 한 다발로 번역하였을지 모르겠으나, 만약에 책을 쓴 사람이 쑥뜸을 모르는 분이었다면 쑥을 먹는 것으로만 생각하였든지 아니면 쑥에 이어 나오는 마늘에만 치중하여 먹는다는 표현을 썼을 수도 있으리라.

더구나 쑥 중에서 약효가 가장 뛰어난 뜸쑥은 우리 나라의 강화도·백령도와 남양만 일대, 그리고 서해안 일부에서만 자라는 싸주아리쑥이라고 한다.

세계 모든 나라에 쑥이 자라지만 그 성질이 각기 다르다. 유럽과 러시아에 자라는 웜우드라고 하는 쑥은 독성이 강해 먹을 수가 없다. 프랑스·독일 등지에서 자라는 쑥은 압생트 술의 원료로 쓰이는데, 간질 발작이나 환각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프랑스의 시인 알프레드 뮈세, 화가 로트렉, 빈센트 반 고호 등이 압생트 술 중독으로 인한 간질 발작으로 목숨을 잃거나 자살했다).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자라는 쑥도 우리 나라의 쑥과는 조금 다르다. 다른 나라에서 자라는 쑥들은 모두 독성이 있어 음식으로도 약으로도 쓰지 않지만, 우리 나라에서 자라는 쑥만은 독성이 약하거나 없다.

세계적으로 침술은 널리 보급되어 있으나 쑥뜸은 아직 그렇지 아니하다. 그리고 가장 양질의 쑥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침술보다 더 뛰어난 약효와 실용성을 가진 쑥뜸을 대중적인 의술로 모든 가정에서 활용하도록 보급하고 세계적인 의술로 수출하는 것이 여러모로 매우 유익한 소이(所以)가 여기에 있다.

2003년 초부터 괴질로 불리면서 중국, 홍콩 등을 주로 하여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며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 일명 「사스」(SARS.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는, 호흡기병을 오랫동안 앓다가 쑥뜸으로 치료해 본 내 경험으로 종합하여 판단하기에는 쑥뜸을 뜨면 일주일 내에 퇴치될 것이 분명한데, 이 신묘한 치료법이 활용되어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릴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은 엉터리 의료제도 때문이니,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

우리 민족의 건국역사에 마늘과 함께 등장하여 보통의 인간 웅녀(熊女)를 신령(神靈)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용을 한 쑥. 사기(邪氣)를 없애는 것은 물론 뛰어난 영성(靈性)적 효능을 가지고 있어 영초(靈草)로 불리는 쑥. 이 쑥으로 뜸을 뜨면 가히 만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과 관찰로 확신하고 있다. 인산 선생님은 쑥뜸을 하면 산삼·죽염·홍화씨의 3대 명약도 필요 없다고 하였다.

침을 놓는 사람은 많으나 쑥뜸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침술을 활용하는 나라는 많으나 우리나라처럼 좋은 기운을 가진 쑥이 나는 나라는 별로 없다. 그 점에서도 쑥은 가히 민족의술을 세계적으로 빛낼 가장 훌륭한 소재이다. 그 대중적인 보급과 활용이 절실하다.


4. 부항요법(건부항)

부항(附缸)은 동그란 소주잔 모양으로 생긴 단지이다. 그래서 일명 「뜸단지」라고 한다. 이것을 피부 아무 곳에나 그냥 갖다대고 압축기로 두어 번 당기면 단지 내부가 진공상태가 되면서 피부를 빨아 당겨 붙게 되는데, 그 상태로 그냥 두기만 하면 된다.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이 뜸단지가 신묘한 치료효과를 발휘한다.

그 원리는 피부 표면에 진공에 의한 음압(陰壓) 충격을 가해 체내의 어혈(병든 피) 또는 산독화(酸毒化)한 노폐 혈액을 강력한 흡수력으로 피하(皮下)로 끌어내어 분해하고 청소하여 자가혈청 또는 단백체로 재생하여 정혈하는 요법인데, 그 과정에서 체내 가스 교환, 독소 제거, 혈관 청소 등의 작용이 일어나 혈액이 맑아지고 혈액 순환이 촉진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명 "진공정혈요법"이라고 한다.

인체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생명 단위인 세포 하나 하나에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여 세포들로 하여금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혈액의 역할이다. 그 혈액이 환경 오염, 특히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자연을 배반하는 무절제하고 탐욕적인 생활 습관 때문에 오염되어 탁해지고 끈적끈적해지면서 제대로 흐르지 못하게 되면 세포들에게 산소와 영양이 공급되지 못하고 세포 내에서 생성된 노폐물도 제대로 배설되지 못하여 세포들의 활성이 저하되면서 제 기능을 못하게 되고, 그러한 세포들로 구성된 신체 부위는 점차 굳거나 썩게 된다(통증·염증·종양 등의 발생).

이것이 소위 만성질환의 근본원인임에 비추어 보면, 세포에 축적된 노폐물을 단시간에 강력히 제거하고 혈액을 정화하여 병을 낫게 한다는 부항의 원리는 지극히 자명하면서 간명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간단한 기구가 어떻게 그렇게 효과적으로 피를 맑게 할 수 있는지, 실제 경험해 보면 신비롭기만 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실제 사례들을 보자.

강송식 선생님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를 나와 고등학교 영어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1978년 6월에 간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복용하고 고단백질(살코기)을 많이 섭취하면서 과로를 피하느라고 수업도 앉아서 하는 등, 주의를 철저히 하였으나,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어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 수업을 계속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두 달간 병가를 얻어 집에서 요양을 했는데, 무엇보다도 과로를 피해야 한다는 말대로 가급적 운동을 피하고 살코기 등의 영양식을 계속 취하면서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먹었다. 그렇게 한 지 40일이 지난 후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간 기능은 더욱 악화되고, 고혈압과 동맥경화까지 겹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우연히 그 해 8월호 『여성동아』에 실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명복(李明馥) 교수의 〈현대의학 끝났는가?〉라는 글에 현대의학으로는 근치되지 않는 고질병들이 자연요법으로 완치되는 예가 있다는 설명을 읽은 것이 인연이 되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는 심정으로 자연식과 운동요법을 시작하면서 부항을 뜨기 시작하였다.

20일이 지나자 피로감이 없고 몸이 퍽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 '이만하면 어느 정도 나은 게 아닐까' 싶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뜻밖에 간 기능이 정상이고 동맥경화도 거의 완치가 되고(콜레스테롤 수치가 275㎎에서 220㎎으로 줄어들었다) 혈압도 정상으로 나왔다. 한 달을 다 채우고 나서 다시 검사를 받았더니 간 기능은 최상의 상태이고 콜레스테롤은 195㎎으로 되었으며 혈압도 정상이었다.

그 후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을 병고에 시달리는 주위의 많은 분들에게 나누어주어, 그들도 부항으로 병고에서 벗어나는 것을 수없이 확인하고는 그 건강의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20여 년 동안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 부항을 비롯한 자연건강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분이 엮은, 『뜸단지 그 놀라운 힘』(큰샘, 1991년)이라는 책에 수록된 치료 사례들 중 몇 가지를 인용해 본다.

강선생님의 인척어른이 견비통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그분의 딸이 혹시나 하고 그 자리에 부항을 붙였더니 좀 시원한 것 같다고 해서 그 다음날 다시 붙여드렸는데, 5분쯤 지난 후에 피고름이 튀어나오고는 그것으로 견비통이 나아버렸다. 그런데 그 견비통은 그분이 고향인 황해도에 계실 때 동네 빨갱이로부터 몽둥이로 맞아서 생긴 것으로, 30년 이상을 고생하면서 그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침도 맞고, 뜸질도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인척어른은 위경련을 맞았다. 근처 병원에서 진통제를 맞고 딸네 집에 오셨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3시쯤부터 진통제의 효력이 떨어지면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병원에 가자고 하셨지만 그 새벽에 마땅히 갈 곳을 몰라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배에 부항을 여러 개 붙였는데, 차츰 앓는 소리가 줄어들고 잠이 드셨다.

허리가 너무 아파 앉은뱅이 노릇을 30년 이상 하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할머니는 부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길로 부항기를 구입하여 10분 정도 시술을 하였는데, 엎드리지 못하던 사람이 이튿날에는 서슴없이 엎드리고 일주일만에 거의 완쾌되었다.

소화가 잘 안되거나, 감기로 고생하거나, 입안이 헐었을 때도 부항을 해주면 빨리 회복된다. 만성 편도선염으로 약도 잘 안 듣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병원에 다니면서 의사로부터 수술을 권유받고 있던, 만 2세가 채 안된 아기는 기관지에서 겅그렁 겅그렁 하는 소리를 크게 내고 있었는데, 부항에 대하여 설명을 들은 그의 어머니가 반신반의하면서 부항기를 몇 초간씩 환부와 가슴에 3개를 붙였더니, 그 즉시 겅그렁 소리가 5분의 1 정도로 작아지고 편도선이 한번에 가라앉고 소화도 잘 되면서 잠도 너무나 잘 자게 되어, 그 어머니가 뛸 듯이 기뻐하였다.」

간염, 소화불량, 변비, 불면증 등의 장애로 병원을 들락거리던 어느 분은 부항을 사용한지 10일 만에 소화가 잘 돼, 복용하던 소화제를 끊었고, 차차 건강을 되찾아 한달 후에는 혈색이 훤해졌다.

갑상선 질환으로 몇 년을 고생하던 어느 아주머니는 병원에서 주는 약을 계속 복용했으나 완치가 되지 않자 의사로부터 수술을 권유받았는데, 약을 먹으면서 부항을 하기를 두 달을 하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았더니 의사가 수술을 연기하고 나중에는 약도 끊으라고 하였다.

평소 어깨가 심하게 아프다가 오래되자 엄지손가락을 못쓰게 되고 걸레를 빨지 못할 정도로 쑤시고 아파 고생하던 어느 아주머니에게 어깨에 부항 15개 정도를 10분간 붙이고 부은 관절에도 작은 뜸 항아리를 붙여 주었더니, 단 3번의 시술 끝에 병이 격퇴되었다.

목 부위의 암을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까지 받았으나 재발하여 목도 불편하고 입이 자꾸 굳어져 입 벌리기조차 힘들어 죽을 들고 계시던 이웃집 할아버지에게 부항과 자연식을 알려드린 결과 몸이 건강해지셨다. 식욕이 없어 항상 반찬투정을 하던 아이에게 잘 때 배에 부항 서너 개를 몇 분씩 해 주었더니 밥 달라고 하게 되더라고 한다.

서울고등학교 재직하신 조아무개 선생님은 하복부를 다친 후 하복부 통증과 전립선 이상이 고질병이 되어 요폐증(尿閉症)까지 생겨 5년간 항생제를 먹어가며 치료를 받았으나 낫기는커녕 신경성 고혈압(혈압 160∼230)까지 겹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40대 후반에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다가 강송식 선생님의 소개로 자연식을 하면서 부항을 시술하게 되었는데, 일주일만에 가장 괴로웠던 불면증이 점점 해소되어 숙면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해져 가면서, 그렇게도 많이 복용했던 약도 자연스럽게 안 먹게 되었으며, 부항을 한지 2개월 10일만에 검사결과 혈압이 90∼130으로 떨어지는 쾌유상태를 경험하여 한국일보사 강당에서 건강간증까지 했다.

서울고등학교에 재직하신 고태석 선생님은 다발성 신경염, 진행성 근육 위축증 등의 병으로 걷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하고 사지가 마비되면서 저리고 쑤시는 고통을 당하면서 양방·한약·침 등의 치료를 받았으나 계속 악화되어 팔은 물론 손가락, 발가락마저도 구부리고 펴지도 못하고, 신문 한 장도 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모든 장기능도 마비되어 대소변을 의사가 왕진하여 관장을 해서 해결해야 할 정도로 고생을 하였는데, 합병증으로 호흡곤란이 와 기관지 절개수술까지 받고 수년간 독한 주사와 약을 복용하며 초인적인 투병생활을 하던 중, 강송식 선생님으로부터 자연식과 부항을 소개받고 해본 결과, 주 2-3회의 부항을 2개월간 계속 하였더니 몸이 가벼워지고 보행과 주행이 자유스럽게 되었으며 혈압도 정상으로 안정되었고, 1년 후의 종합검진에서 이상 부위가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경주 월성국민학교 교사로 재직하신 권순자 선생님도 간염으로 휴직까지 하면서 의사의 지시대로 치료하였으나 오히려 점점 악화되는 고통을 당하다가 자연식과 부항을 시작하여 한달 뒤 병원 진찰에서 GPT·GOT가 정상이라는 판단을 받았다.

기관지 확장증으로 왼쪽 폐를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던 어느 30대 주부도 부항을 뜨고 몇 달만에 건강을 되찾았다.

일반적으로 피로회복과 건강유지를 위한 정도의 부항은 부항기를 신체 여러 곳에 3분 내지 5분 정도 붙여두면 효과가 충분하다. 거기서 더 나아가 질병 치료 목적으로 부항을 할 경우, 부항기를 신체 곳곳에 붙여두면 만성질환이 있거나 약한 내장과 연결된 부위의 피부는 자색 내지 흑색으로 변하고 계속 부항기를 붙여두면 반드시 수포(물집)가 생기는데, 그 수포를 뾰족한 기구(바늘이나 이쑤씨개)로 찔러 조그만 구멍을 낸 뒤 부항기를 계속 붙여두면 몸 안의 혈관을 막고 있던 노폐물과 피고름 등이 그곳으로 빠져나와 부항기에 고인다(발포요법). 그렇게 되면 그 부위의 질병은 없어진다.

이 때 나오는 노폐물은 황색의 액체인데, 그 부위의 병증이 심할 경우에는 누런 농(膿)이나 끈적한 덩어리 또는 핏덩어리가 나오기도 한다. 분명한 사실은 무엇이 나오든 간에 절대로 인체에 불필요한 노폐물 외에 다른 정상적인(건강한) 체액은 배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폐물은 완전히 빠질 때까지 계속 흘러나온다.

그러므로 물집이 생기는 곳에는 매일 1시간 정도씩 계속 부항을 붙여 노폐물을 완전히 빼 내는 것이 좋고, 다 빠져나오면 부항을 붙여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고 저절로 딱지가 앉았다가 하루 이틀 사이에 저절로 떨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그곳과 연결된 내장의 병은 나아버린다.

다만 부항기를 여러 개 붙였을 때 물집이 여러 군데서 나온다고 동시에 여러 곳의 노폐물을 뺄 경우, 몸이 처지고 피로한 현상이 올 수 있으므로(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된다) 동시에 노폐물을 빼는 곳은 두세 군데 정도로 한정하는 것이 좋다.

또 하나 참고할 것은, 부항요법으로 생긴 물집을 터트린 곳은 절대로 곪지 않으므로(침을 놓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약을 바를 필요가 없고, 약을 바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물집을 이쑤시개 같은 것으로 터트린다고 불결해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강송식 선생님으로부터 부항요법을 전수 받은 사람 중에는 간 주위에 부항기를 30분 정도 붙여두었더니 그곳에서 피고름이 계속 빠져 나와 30일 만에 간경화증이 완치된 사람도 있다. 나도 기침을 하고 있을 때, 강선생님의 권유로 등의 기관지 및 폐 경락이 있는 부위에 부항을 직접 떠본 결과 피·고름·노폐물 등이 섞인 것 같은 물질이 엄청나게 빠지면서 이틀간의 시술에 기침이 낫는 경험을 한 이후로 수시로 그 방법을 사용하여 몸의 상태를 조절하고 있고, 주위의 여러 사람에게도 시술을 해본 결과, 피로회복은 물론, 오십견과 각종 통증 등이 낫는 것을 직접 체험하였다. hjkook2000@yahoo.co.kr

- 다음에 계속‥

뇌종양 사형선고 환자가 이틀 만에 벌떡?!
[현직 판사가 쓰는 민중의술] 민중의술의 유형별 치료사례 <2>

▲황종국 울산지법 부장판사

울산지방법원 황종국 부장판사는 현직 판사이면서도 민중의술 살리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그는 유명한 민중의술을 시술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고, 민중의술을 시술하다 혹연 문제가 되어 사법적 판단을 필요로할 때는 관대한 처벌로 민중의술을 지켜주는 역할도 담당해왔다.

그는 "나는 12년간 병원을 다니며 앓던 콧병을 너무도 간단한 쑥뜸으로 고친 후 지금까지 22년 동안 민중의술의 경이로운 치료능력을 수없이 경험하고 확인하였다. 전신이 마비되어 식물인간 상태인 67세의 할머니가 30일간의 단식을 통하여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다."고 전하면서 "말기 간경화증으로 절박한 죽음의 고비를 몇 번 넘긴 어느 분에게 쑥뜸을 하게 하여 서너 달만에 병원에서 검사결과가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기도 하였다. 중풍으로 한방병원에 열흘 넘게 입원하였으나 증세가 점점 악화되어가던 친형님을 퇴원시켜 30분간 침을 맞고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관절과 근육을 다쳐 화장실 출입도 업혀서 하던 사람이 침을 세 번 맞고 거의 정상적으로 걸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오른 팔이 올라가지 아니하여 수십 번 병원을 드나들었으나 효과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을 잠깐 만져 채 1분도 안되어 팔을 빙빙 돌리도록 만드는 것도 보았다. 이런 사례는 끝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현직 판사가 쓰는 민중의술" 시리즈에는 황종국 부장 판사가 직접 전국을 순례하거나, 기자처럼 직접 취재-체험한 내용을 기록한 전통-민중의술의 기록이다. (편집자 주)


제1장. 민중의술의 유형별 치료사례

'의사가 아닌 일반 민간인들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의술'을 흔히 민간의술이라고 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일반 민중들 속에서 자생하여 발전하였고 시술방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민중의 건강을 돌보는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의술이었던 점에서 '민중의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민주적이고 통합적인 의미를 띄는 민중의술이라는 용어가 더 친근감이 있어 보여 앞으로 이 용어를 쓰고자 한다.

민중의술의 뛰어난 특장을 내가 직접·간접으로 체험하고 지켜본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민중의술에 대하여 왜곡된 시각을 가진 모든 견해는 근본적으로 민중의술에 대한 체험과 이해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하에서는 그 이해를 돕기 위하여 부분적으로는 비교적 소상하게 적는다.

그렇게 하더라도, 여기에 드는 치료사례들은 민중의술의 대해(大海)에서 포말과 같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민중의술의 다양한 영역과 치료효과를 모두 알리기 위해서는 방대한 조사와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 그 일을 하는 것은 원래 국가의 몫인데, 우리나라는 그런 일에 관심조차 없다

1. 단식

내가 민중의술을 처음 접한 것은 사법시험을 합격하던 해인 1982년 4월에 우연히 단식을 하게 되면서였다. 서울대학교 정문 앞, 관악파출소 맞은 편에 있는 연립주택에서, 간판도 없이 단식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김수웅(金秀雄) 선생님. 그 때는 제대로 몰랐으나, 뒤돌아보니 그분은 참으로 명의였고 예지자였다.

그 때 나와 같이 단식을 한 환자 중에 67세 된 할머니가 있었다. 전신이 마비되어 호스를 목에 꽂고 혀가 굳어 말도 못하는 채 식물인간처럼 병원에 누워있는 것을, 그 자식들의 간청으로 단식원에 옮겨 놓고 30일간 음식을 끊고 생수만 마시는 완전단식을 시키고 지압·부항·관장·찜질 등의 보조요법을 시술하여 30일만에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을 내가 직접 지켜보았다. 또 20대의 처녀가 천식으로 말을 거의 못하는 상태에서 단식원에 들어와 보름간의 단식으로 완전히 회복되는 것도 보았다.

선생님은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와 남미로 이민을 가려고 처음에 침술을 배웠다가 병 고쳐주는 재미에 빠져 다양한 의술을 익혀 여러 저명인사들의 난치병을 고쳐주기도 하였다는데, 자신의 경험으로는 단식이 가장 완전한 치료법이라고 하였다.

당뇨병에 만성간염·만성신부전증 등의 일곱 가지 합병증으로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장한빛 씨는 퇴원하면 3주 내에 죽는다며 퇴원을 만류하는 의사들에게 죽어도 병원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퇴원을 한 후 먼저 단식으로 몸을 추스르고 살아났다. 그 후 그는 십여 년간 전국을 떠돌면서 경향 각지에 숨어 지내며 죽어 가는 생명을 살려주고는 홀연히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도인·기인과 향토 명의들을 많이 만나 그들로부터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병을 완치하고 의술의 이치를 터득하였다.

그 결과, 현대의학이 불치·난치·고질병으로 간주하고 있는 많은 질환들에 대한 현대의학적 접근방법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현대의학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알리는 행위야말로 이 시대의 민중에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여 1999년 말에 이에 관한 3권의 저서를 출간하였는데, 그 제일성(第一聲)은 소위 현대의학이라는 서양의학은 근본적으로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부산 초읍동에 있는 천룡사(天龍寺)라는 절의 주지 효종(曉鐘)스님은 19세 때인 1979년경에 부산대학교병원에서 골수암이라는 진단과 함께 15일 내지 3개월밖에 못산다는 선고를 받고는 그 길로 지리산으로 들어가 동굴 등에서 완전히 자연생활을 하면서 3년간 하루 5되의 물(산에서 나는 생수)과 큰 숟가락에 고봉으로 두 숟가락의 죽염만 먹고 완치한 체험을 필자에게 들려주었는데, 그렇게 해도 기진하지 않더라고 한다. 스님의 말씀으로는, 밀양의 어느 절에 있는 보살도 3년간 죽염과 물만 먹고 유방암을 고쳤다고 하였다.

전라도 광주에 사는 윤준호 씨는 24세 때 내시경 검사 결과 위암으로 위가 벌집같이 되어 낫기 힘들겠다는 진단을 받고 전남대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리산 청학동의 갱정유도회에 계신 어느 분으로부터 사주(四柱)에 토기(土氣)가 부족하니 산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듣고는 그분을 따라 삼랑진에 있는 거문산으로 들어가 물도 먹지 않고 10일간 단식을 하였는데, 항문으로 코 같은 고름이 많이 빠져 나왔고, 그 다음에는 연한 생 쑥을 즙을 내어 먹고 참솔잎을 썰어서 불린 콩과 같이 씹어 먹는 생식을 3개월 가량 하였더니 위암이 낫더라고 내게 전해 왔다.

뒤에 보게 될, 『밥따로 물따로 음양식사법』의 저자 이상문 선생님으로 하여금 '생명의 법'을 깨닫는 단서를 열어준 박도섭이라는 분의 체험담을 재미삼아 옮겨본다.

박씨는 6.25전쟁 때 철원전투에서 총알이 뒷머리를 스치는 바람에 뇌를 다쳐 병원으로 실려갔다. 3일 후에 의식을 회복했으나 수족을 움직일 수 없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코에 연결된 한 가닥 호스가 그의 생명을 보존시키는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그런 상태로 병원 침상에서 8년을 보낸 박씨는 결국 앉은뱅이 신세로 퇴원을 하였다. 그러나 병신이 된 것도 비참했던 데다 가뜩이나 어려운 집안 살림에 가족들한테 짐만 된다고 생각한 박씨는 굶어죽기로 하고 곡기와 물을 끊고 누워서 목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지 13일째쯤 되었을 무렵, 육체는 엉망이 되었지만 정신은 오히려 반짝이는 유리알처럼 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런 상태가 되자 신기하게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지고, 되려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십여 년 동안 석고처럼 단단하게 굳었던 다리가 그때부터 부드러워지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놀라움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씨는 두 손을 이용하여 바닥을 기어다니다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한 발 두 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매일 파고다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던 박씨는 그 공원에서 매일 영생을 설교하던 김영수라는 사람으로부터 어느 날, 하루에 저녁 한끼만 먹고 물은 밤에만 마시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대로 해 본 결과 과연 몸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 그래서 중간에 16일간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다시 단식을 한 것을 포함하여 약 100일간 그 방법을 실행하였더니 다리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김영수씨는 금년 95세의 나이로 지금도 경기도 여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계신데, 농사일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을 만큼 정정하시단다. 시력과 청력은 물론 정력도 이삼십 대 젊은이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물론 그 비결은 그가 성경 통독과 체험을 통해 얻은 식이요법에 있다. 지금도 4∼5일에 한 끼만 먹을 정도로 소식을 실천하고 있고 물도 될 수 있으면 밤에만 마시는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몸이 건강할 때 혈액의 pH는 7.3∼7.5로 약알칼리성이다. 혈액이 산성화할수록 pH는 약해진다. 약알칼리성 혈액일 때는 병균이 번식하지 못하지만 pH가 7.0 이하의 산성으로 기울면 병균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날뛰게 된다. 몸을 본디의 정상 상태인 약알칼리성 체질로 바꾸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단식이다.

2. 침술

파스퇴르유업 회장이자 민족사관고등학교 설립자로 유명한 최명재 씨가 2000년에 서귀포 롯데호텔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다가 욕탕 속의 뜨거운 물에 데어 전신에 2∼3도 화상을 입고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여 2억5천만원의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3차례에 걸친 피부이식수술에도 불구하고 화상의 후유증으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고생한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다(조선일보, 2002년 11월 16일자, 35면). 최회장이 침술의 위력을 진작 알았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호텔 측도 그런 거액의 배상금을 지출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안타깝다.

침으로 화상을 치료하는 방법은 구당(灸堂) 김남수 선생님이 1994년에 논문으로 발표한 것인데, 그 방법이 지극히 간단하여 침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누구든지 할 수 있고, 그 효과가 즉시 나타나며 완벽하다는 것이 경이로운 장점이다.

그 방법은 화상 입은 곳에 아무 데나 군데군데 침(요즘 흔히 쓰는 가느다란 호침)을 꽂아두면(침을 꽂아두는 것을 유침이라 한다) 된다. 경혈 자리를 몰라도 된다. 화상은 통증이 제일 괴로운데, 침을 꽂아 놓으면 우선 통증이 한 시간 이내에 없어진다. 그러면서 진물이 나지 않고, 시술 전에 진물이 났더라도 서서히 없어진다. 사흘 정도면 딱지가 앉고, 수일 내로 완전히 낫는데, 흉터가 전혀 남지 않는 것이 신묘하다.

구당 선생님은 아랫배와 양쪽 다리가 데어 음모가 다 빠질 정도의 4도 화상을 입은 여자 환자를 침으로 완치한 사례를 발표하였는데, 처음 침술원에 와서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두 사람에게 붙들린 채 침을 맞은 환자가 5분 후부터 몸부림이 가라앉기 시작하여 한 시간이 되니까 잠이 들었고,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는 하나도 아픈 기가 없다고 하면서 돌아간 후로 모두 아홉 번 침을 맞고는 완치되었다고 한다.

침으로 화상을 치료한다고 하니, 처음에는 특히 양의사들이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구당 선생님에게 침뜸을 배운 양의사들이 임상사례를 발표했는데, 어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4도까지의 화상도 10일 이내에 완치되었고 3도까지는 전혀 흉터가 남지 않는 것을 환자 치료를 통하여 확인하였다고 발표하면서, 자신이 침술을 배운 후 100명 이상의 화상환자를 침으로 치료하였는데 모두 완치되었다고 하며 검증이 달리 필요없다고 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유명 종합병원의 정형외과 의사는 침을 활용한 후 환자가 3배로 늘고 약을 처방하는 비중은 1/3로 줄었다고 한다.

나의 당질(堂姪)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20여년간 손을 심하게 떨고 살아왔다. 병원에서 파킨슨씨병이라고 진단을 받아 의사가 처방한 양약을 수개월 복용하는 등 이런 저런 방법을 써보았으나 아무 효과도 못 보아 포기하고 있었다.

1999년에 한침(재래침)을 한다는 어느 30대 전반의 젊은이가 나를 찾아 왔다. 초면에 어떤 사람인지 잘 알 수가 없어서 먼저 당신의 의술을 증명해 보라고 했더니 어떤 환자든지 불러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당질을 불러 치료를 받게 했다. 간단하게 진단을 해 보더니 간이 나빠서 오는 일종의 풍(간풍)이라고 하면서 간 질환이 없느냐고 물었다. 조카는 B형 간염을 오랜 동안 지니고 있었음을 실토했다.

한쪽 손과 팔에 몇 군데, 그것도 입은 옷 위로 한번씩 침을 찌르고 빼는데(한침은 굵고 길어서 효력이 강하여 보통 유침을 안하고 찌르고 바로 뺀다)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침자리도 정확히 찾아보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침을 놓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침자리가 눈에 보인단다. 그러고는 간단한 생활 섭생법 세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 날 저녁부터 당장 처방대로 한 조카는 하루도 되지 않아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그 젊은이는 그 자신이 20대에 디스크를 앓았는데 2년여 동안 누워서 고생하며 병원치료 등을 포함한 온갖 방법을 써보았으나 못 고치고 있다가 어느 아주머니에게서 한침을 한달 반 가량 맞고는 완치된 후 그 아주머니에게 한침을 배웠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는 그 젊은이에게서 치료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고, 그 젊은이도 한 푼의 치료비도 받지 않고 그로부터 10년 넘게 환자들을 치료해 주고 있다. 진정한 의술이 어떤 것인지, 인술(仁術)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런 분들을 의료법의 박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성함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마산에 사는 어떤 분이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하고 간다. 12년 전 직장에서 공을 차다가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유명하다는 척추전문병원에 갔다. 요추 4·5번이 많이 협착해져 디스크가 탈출되어 신경을 누르고 있으니 수술을 해야한다고 하였다. 수술에 대한 믿음이 없어 수술은 하지 않고 약 먹고 주사 맞고 견인 등의 물리치료만 꾸준히 받았다. 그러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두세 달 동안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직장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유명하다는 병원, 한의원 등을 전전했다. 그러나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6∼7년이 지났을 때쯤, 샤워를 하고 거울을 무심히 보았을 때 몸이 완전히 C자를 이루며 왼쪽으로 휘어져 있었고, 종아리는 오른쪽보다 왼쪽이 확연하게 가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웃사람으로부터 어느 시골에 침과 뜸으로 용하게 치료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면서 혹시나 하고 찾아갔다.

첫날 2분 정도 치료를 받고 일주일 후 두 번째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C자로 휘어져 있던 몸이 반듯하게 되었고, 굽었던 허리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 왔다. 정말로 너무 신기했단다. 석 달 정도 치료를 받았는데 90% 정도 치유가 되어 활기찬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분은 내게 묻는다. 양의사·한의사들에게 10년 이상 치료받아도 별 차도가 없던 요통(디스크탈출증)을 석 달 정도의 치료로 거의 완쾌시켰으니 과연 어느 쪽이 참 의사냐고. 오히려 한의사들이 침뜸을 배우려고 그곳에 오는 것을 많이 보았단다.

그 후로는 민간의술을 용하게 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다닌단다. 산골에 사는 어느 할머니도 그래서 만나게 되었다. 아주 어릴 적에 할아버지에게 직접 배웠다는 침술을 하고 있었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증 환자였다. 대침으로 머리부터 몸 팔 다리를 쿡쿡 찔러 내려오다가 복숭아뼈 바로 위를 찌르니 검은 피가 펑펑 나왔는데, 그곳에 쑥뜸을 떠 주더란다.

청주대학교 법과대학의 유재형(柳在馨) 교수는 운동을 하다가 엄지와 검지에 마비가 와서 3개월여 양·한방을 전전하다가 못 고치고 용하다는 침구인에게 가서 침을 세 번 맞고 완치된 후, 침·뜸·사혈(瀉血)요법 등을 배웠는데 그 후로는 본인과 가족들이 치료를 위하여 병원에 가는 일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한 가정에 이러한 의술을 익힌 사람이 1명만 있으면 의료비와 환자를 대폭 줄일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서울로 오는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 한 일본인 승객이 안색이 창백해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동반한 여자는 울고불고 승무원들은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 것을, 마침 그 비행기에 동승해 오던, 내가 잘 아는 후배가 조금 배운 수지침과 수지뜸으로 간단하게 고쳐준 일화가 있다. 침술의 단순하면서도 다양하고 뛰어난 효과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에 지켜 본 사례 하나. 가까운 지인 한 분이 가게 개업일을 며칠 앞두고 의자에 올라서서 내부 장식일을 하다가 의자가 쓰러지는 바람에 옆으로 넘어졌다. 의식을 잃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고관절 근육 인대를 다쳤단다. 병원의 치료법으로는 몇 개월 꼼짝없이 입원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개업일이 코앞에 다가와 그럴 처지가 못되었다. 곧바로 침술로 유명한 한의사에게 가서 침을 맞고 왔다. 그러나 극심한 통증 때문에 눕고 앉고 일어서는 일체의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 쑥뜸을 하여 다소 효과는 보았으나 기동이 심히 어려워 업혀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침 가게 공사일을 같이 하던 사람이 보기에 안타까웠는지 침을 잘 놓는 사람을 데리고 왔다. 한번 시술을 받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2번 시술에 목발을 짚고 스스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3번 시술을 받고는 목발 없이 걸어다녔다. 4번 정도 시술을 받고는 뛰어 다녔다. 기적이 아니면 천우신조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당연히, 침을 놓아준 그 분은 한의사도 침구사도 아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아다녀 잘 만날 수도 없는 분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민중의술의 비애를 곱씹게 하는 참으로 서글픈 사연이 있었다. 편의상 그 분을 K라고 하자.

K는 다섯 살 때에(지금부터 근 45년 전이다) 부산 초량동에 있는 소림사라는 절에 갔다가 「차우(茶)」라는 중국인 스님을 만났다. 그 스님은 당시 81세로서, 중국 소림사에 계시다가 중국이 공산화되는 바람에 자유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이주하신 분이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의 숨소리만 들어도 병을 알 정도였다고 한다.

스님은 처음 보는 K에게 "참으로 오랜만이다" 하셨다(두 사람은 전생에 도반이었는데, 스님은 첫눈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차우 스님은 K에게 중국무술과 함께 중국에서 스님들에게만 비전되어 오는 침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5살 때 급성 맹장염을 앓는 여동생에게 침을 놓아 고쳐준 것이 침술로 병을 고치기 시작한 첫 사례였다. 27세까지 22년간 무술을 익혀 고수가 되었다. 거기다 25,6세 때 동의보감 원전을 소장하고 있다는 어느 '거지교수'에게서 한국침을 1년 정도 배웠는데, 더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하여 그만두었다.

30대에는 대만에 체류하면서 그곳에 온 일본 오오사카 어느 양의 병원의 원장을 만나, 일본 침술에 능통한 그 사람과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의술을 교류하여 일본침에도 능숙하게 되었다. 한·중·일의 침법을 장점만 취하여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본인의 집요한 노력과 기도가 뒤따랐다.

침만 쓰는 것이 아니라 쑥뜸도 하고 부항도 한다. 웬만한 병은 만져서 고치기도 한다. 약초에 대하여도 스승으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아 대가가 되었다. 산삼이 50여종이 된다는 사실과 산삼은 이파리부터 시작하여 뿌리까지 씹어먹는 것이 제대로 먹는 것임을 J로부터 처음 들었다.

그는 환자가 처음 방에 들어오면 그 걸음걸이로써 어디에 어떤 병이 있는지 알아내어 버린단다. 정신을 집중하면 환자가 어떤 경위로 언제부터 어떤 병을 앓게 되었으며 지금 상태가 어떤지도 알아낸단다. 환자를 직접 보지 않더라도 타인을 통해서 환자의 상태에 대하여 이야기만 들어도 알 수 있단다. 그러니 환자의 말을 들어볼 필요도 없이 바로 치료를 하기도 한다.

어느 대학교 국악과에 재직하고 계신 교수님이 30여년간 중이염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고쳐달라고 내가 전화를 하였더니 대뜸 하는 말이, "그건 중이염이 아닙니다"였다. 사람도 보지 않고 병력도 들어보지 않고 바로 그런 말이 튀어나오길래, "그럼 무슨 병입니까" 하였더니, "피리를 불 때 무리를 해서 힘을 주는 바람에 생긴 증상인데 꼭 중이염 같은 현상이 옵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원래 환자의 몸에 전혀 손을 대지 아니하고, 즉 아무런 가시적인 작용도 가하지 아니하고 바로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20대 후반일 때, 병명도 모른 채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처녀가 사람들에게 들려서 찾아온 적이 있었다.

누워있는 그 처녀를 쳐다보고는 일어나서 걸으라고 하였다. 처녀는 어리둥절하였다.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걸으라고 하였더니 어리둥절해 하다가 걸었다. 그렇게 몇 번 하고 나서 처녀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 뒤 처녀는 결혼을 하였고 아들을 나았다. 그 아들이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다.

그런데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병을 고치자 사람들이 도대체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진맥도 하고 침도 놓는 시늉을 하게 되었다. 이 분은 '도로써 병 고치는 법'에서 보게될 의신(醫神)에 해당된다. 침 자리를 찾는 데도 주저함이 없어 물어보았더니, 침 놓을 자리에는 손가락을 대면 엄지와 검지에 감각이 둔해지는 마비 비슷한 반응이 온단다.

그는 양의사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서울에서 손꼽는 병원 신경외과 의사의 어머니를 고쳐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뇌혈관이 터져서 의식이 마비된 상태에서 수술을 받고 6일만에 깨어난 후 한쪽 다리를 못쓰게 되어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그 어머니에게 침을 세 번 놓고 걸어다니게 만들었다.

부산의 어느 대학병원 임상병리학과 주임교수의 어머니는 파킨슨병과 만성 디스크를 앓고 있는 72세의 노인이었는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을 침을 한번 놓아 즉석에서 걷고 대화가 가능하도록 하여주었다. 그 의사 본인은 목 디스크를 앓고 있었는데, 일주일만에 완치시켜 주었다.

부산의 유명 병원에 입원해 있던, 뇌종양으로 3일밖에 못산다는 환자를 침도 안 쓰고 손으로만 만져서 2일만에 산소호흡기를 떼게 하고, 대화를 자유롭게 하고 걸어다닐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100여 일을 더 살게 하였다. 간암으로 1주일밖에 못산다고 선고받은 환자는 그의 치료를 받고 4개월째(2004년 6월 현재) 살아있다. 그는 일곱 명의 의과대학 교수를 고쳐주었다.

그는 유명한 의과대학의 신경외과 교수들을 모아놓고 똑 같은 증세로 걷지 못하는 환자 3명을 눕혀놓은 채 그 의사들에게 환자의 발가락을 움직이게 해보라고 하였다. 발가락이 두개만 움직이면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아무도 해내지 못하는 것을 그는 장침을 찔러서 그 자리에서 발가락이 움직이고 걷게 하였다. 잘난 양의사들의 말씀, "눈으로 직접 보니 안 믿을 수는 없고, 원리는 이해가 안 된다"고 하였다나. 환자에게, 낫는 것이 중요한가,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가?

그가 주섬주섬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오른팔의 삼중혈(손목에서 위로 5㎝ 정도 되는, 맥이 뛰는 자리) 자리와 그로부터 1㎝씩 아래로 두 군데에 만년필 꼭지머리 크기의 쑥뜸을 위로부터 1회씩 3회 반복하면 정신병이 치료되고, 기침은 오른팔 삼중혈에 볼펜 머리 크기로 한번만 뜨면 된다는 신기한 내용도 들어있다. 하여 그는 신의(神醫)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는 돈 한푼 받지 않는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르면 소문이 너무 빨리 퍼져 금방 환자들이 몰려든다. 하루는 270명의 환자를 치료해주기도 하였단다.

내가 그에게 그의 빛나는 의술을 책으로 펴내어 널리 보급하고 계승시키자고 제의하였더니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의술이 하도 뛰어나니 한의대 교수 몇 명이 가르침을 청하였다. 3년 정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책을 펴낼 생각으로 컴퓨터로 그의 의술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였다. 꼬박 7년이 걸려 완성된 내용을 디스켓에 담아 출판사 여직원을 불러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 여직원이 사무실로 가던 도중에 날치기를 당하여 그 디스켓을 잃어버렸다.

어쩔 수 없어서 낙심해 있는데(디스켓 내용을 따로 복사해 두지 않은 것이 실수이지만) 몇 년 뒤 우연히 책방에 가보았더니 자신이 저술한 디스켓의 내용을 자신에게서 배운 3명의 한의대 교수가 각자의 이름으로 나누어서 따로따로 책을 출간했더란다. 날치기를 교사한 주인공이 누군지 명백히 드러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충격을 받아 그날 이후로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단다.

그의 의술도 확인해볼 겸 중풍을 앓고 있는 나의 친형님과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 형수의 치료를 부탁하였다. 70세인 형님은 그리 심하지 않은 중풍으로 과거 두어 번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는데, 이번(2004년 6월)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동의의료원에 입원하였다.

소식을 듣고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열흘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전에는 입원하면 조금씩 차도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점점 안 좋아진다면서 풀이 죽은 목소리로 구원을 요청하였다. 병원에 같이 가서 형님을 살펴본 K는 단번에 원인을 찾아내고는 퇴원하면 3일, 늦어도 5일 이내에 재발 없이 완치하겠다고 자신하였다. 퇴원을 주저하는 형님을 설득하여 퇴원케 한 다음날 K와 함께 형님 집으로 갔다.

형님은 방향신경이 고장났는지, 걸음을 걸으면 똑바로 가지 못하고 게걸음을 치듯이 한쪽으로 쏠려 걷다가 넘어지는 현상과 함께 머리가 아프고 산란한 증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30분 동안 침을 맞고 일어나 걸어보라고 하자 똑바로 걸었다. 머리 아프고 산란한 증상도 사라졌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있었다. K가 머리에 침을 놓으면서 머리를 어디에 강하게 부딪친 것 같은데 그런 적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형님은 그런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였다. K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한데, 꼭 머리를 부딪친 느낌이 오는데"하고 있는데, 형님이 오랜 기억을 더듬어낸 듯 오래 전에 전봇대에 얼굴을 심하게 부딪쳐 뺨으로 선혈이 낭자하고 뺨의 감각이 마비되어 며칠간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하였다.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으니 한 30년쯤 되었단다.

K는 바로 그때 다친 충격이 머리 속으로 들어가 박혀 있다가 이제야 밖으로 나오면서 신경을 누르고 고통을 가져오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30여 년 전의 사건을 머리에 침을 꽂아보는 감각만으로 찾아내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어쨌든 형님은 3일간 침을 맞은 후 입원 당시의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단지 몸에 기운이 없는 것을 빼고.

형수는 일시 정차한 상태에서 차 뒤를 다른 차에게 추돌 당하였는데, 차는 폐차를 할 정도로 부서졌지만 외상은 없는 상태에서 양병원을 거쳐 한방병원에 20여일 입원하여 침을 맞고 부항도 뜨고 있었으나, 어깨와 허리가 아프고 어지러우며 머리 속이 산란하여 고통스러운 현상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몸을 만져보고 침을 놓아본 K는 신경 두 가닥이 오랫동안 눌려있어서 치료에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형수가 10년 전에도 큰 추돌사고를 당한 바 있었는데, 그때 다친 것이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은 채 있는 상태를 K가 찾아낸 것이다. 두 번째 침을 맞은 지금 형수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다.

K는 침만 잘 놓는 것이 아니라 약을 비롯한 의술 전반에 걸쳐 대단히 능통하다. 천부적인 소질과 감각을 타고났고, 그것을 어릴 때부터 발견하여 키워준 스승을 만났으며, 여기에 바른 마음으로 오로지 의술을 갈고 닦는 노력과 그 의술을 사심 없이 베푸는 자세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늘이 내려준 지혜안까지 겸비하였으니, 가히 당대를 대표할만한 의인(醫人)이자 기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가 이러한 의술로 자신의 아버지를 치료한 일화는 소설보다도 더 기막힌 일대 신기한 사건이다. 아버지는 부산대학교병원, 현대아산병원, 국립의료원 등지에서 모두 말기 폐암으로 진단 받고 6개월밖에 못산다는 선고까지 받았다. 즉시 거처를 부산에서 시골로 옮겼다. 전통 초가집을 개조하였다.

방바닥을 구들까지 파내고 황토를 새로 바르고 벽도 흙으로 새로 발랐다. 천정도 헐어내고 새로 단장하였다. 아궁이를 세 군데로 내었다. 방안에는 지장수를 담은 항아리 한 개만 놓았다. 아버지를 방안에 모시고 방문을 밖에서 모두 못질하였다. 세 군데 아궁이로 불을 지폈다. 방이 못 견딜 정도로 뜨거워졌다 싶으면 불을 죽였다가 조금 식으면 또 지피기를 며칠간 반복했다.

음식은 아무 것도 넣어주지 않았다. 밖에서 불러서 대답이 들리면 사정없이 불을 땠다. 불러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일주일 정도를 그렇게 하였다. 큰 소리로 불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피비린내가 진동하였다. 환자는 방안의 엄청난 열기 속에서 그 동안 지장수만 마시면서 견디다가 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뿜어내고 토해내고 쏟아낸 채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억지로 소금물을 한 잔 먹이고 소금물로 전신을 닦아낸다. 의식이 돌아오면 솔 숲 길을 산책시킨다. 그리고 기타 등등…. 그리하여 아버지는 완쾌되어 지금 19년째 살아 계시다. 경남 산청에서 넓은 과수원을 경영하면서. 이 치료법을 그는 경북 문경에 사는 어느 할머니에게서 배웠단다. 이 땅의 민중의술이 어떤 것인지, 그 실체의 일단을 전율이 일 정도로 치열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종합대학교 재단 이사장은 중풍이 왔는데, 재단 산하에 있는 한의과대학의 교수들과 의사들에게 치료를 맡겼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다가 어느 재야 침구인을 소개받아 그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완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한의과대학의 교수와 의사들을 모아놓고 그 재야 침구인 더러 강의를 하라고 하였단다. 자존심이 상했을 교수와 의사들이 시큰둥 하는 바람에 강의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한다. hjkook200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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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포기한 환자는 죽기만 기다려라?
[현직 판사가 쓰는 민중의술] 의사가 못고치는 환자, 어떻게 하나? <1>

울산지방법원 황종국 부장판사는 현직 판사이면서도 민중의술 살리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그는 유명한 민중의술을 시술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고, 민중의술을 시술하다 혹연 문제가 되어 사법적 판단을 필요로할 때는 관대한 처벌로 민중의술을 지켜주는 역할도 담당해왔다.

그는 "나는 12년간 병원을 다니며 앓던 콧병을 너무도 간단한 쑥뜸으로 고친 후 지금까지 22년 동안 민중의술의 경이로운 치료능력을 수없이 경험하고 확인하였다. 전신이 마비되어 식물인간 상태인 67세의 할머니가 30일간의 단식을 통하여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다."고 전하면서 "말기 간경화증으로 절박한 죽음의 고비를 몇 번 넘긴 어느 분에게 쑥뜸을 하게 하여 서너 달만에 병원에서 검사결과가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기도 하였다. 중풍으로 한방병원에 열흘 넘게 입원하였으나 증세가 점점 악화되어가던 친형님을 퇴원시켜 30분간 침을 맞고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관절과 근육을 다쳐 화장실 출입도 업혀서 하던 사람이 침을 세 번 맞고 거의 정상적으로 걸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오른 팔이 올라가지 아니하여 수십 번 병원을 드나들었으나 효과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을 잠깐 만져 채 1분도 안되어 팔을 빙빙 돌리도록 만드는 것도 보았다. 이런 사례는 끝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현직 판사가 쓰는 민중의술" 시리즈에는 황종국 부장 판사가 직접 전국을 순례하거나, 기자처럼 직접 취재-체험한 내용을 기록한 전통-민중의술의 기록이다. (편집자 주)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강연 중인 황종국 판사. ⓒ브레이크뉴스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돈일까? 사랑일까? 출세일까? 신앙일까? 화목한 가정일까? 좋은 직장일까? 모두다 필요한 것이지만, 돈이 권력도 사고 사랑도 사고 출세도 사는 세상, 돈으로 못하는 것이 없는 오늘날의 고도 상업주의 사회에서는 단연 돈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 같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2003년 1월 전국의 20살 이상 성인 1200명을 조사하여 발표한 「2003년 한국사회 국민의식과 가치관에 관한 조사연구」에서는 뜻밖에도 경제력을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사람이 11.1%밖에 되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사람이 6.5%, 신앙을 든 사람이 5.2%, 안정적인 직장을 꼽은 사람이 2.8%, 자녀성공을 꼽은 사람이 2.6%이었다. 의외다. 그럼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꼽았을까? 바로 ‘건강’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70.2%이었다.

한신대 신학연구소가 2003년 2~3월에 걸쳐 전국의 1천명(종교인과 비 종교인이 각 절반씩)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 결과에서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건강’을 든 사람이 44.4%로, ‘행복한 가정생활’(31.4%)보다 높았고, ‘신앙생활’(6.2%), ‘좋은 친구’(3.5%), ‘남을 돕는 것’(3.5%), ‘좋은 세상 건설’(3.3%) , ‘돈이 많은 것’(3.1%), ‘좋은 직업’(1.9%), ‘휴식’(1%), ‘존경받는 것’(0.7%) 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겨레신문, 2003. 4. 25.자, 31면

서양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암스테르담 대학의 어느 교수와 호주 국립대 어느 교수가 2004년 7월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도한 바 있는데, 돈이나 가족보다 건강이 행복감을 느끼는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는 바, 건강은 돈보다 3배 정도 행복감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두 교수는 돈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데도 사람이 돈을 위해 애쓰는 이유는 끝없는 욕망 때문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 아무리 사회가 물질에 미쳐 비뚤어져도, 역시 육신을 가진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병들어 고통 당할 때 돈이 무슨 소용이던가. 그러니 병만 고쳐주면 내 전 재산의 절반, 아니 다 주겠다는 절규도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뜻한 가족이 있고 사랑이나 우정까지 있으면 다소의 위로는 되겠지만 역시 건강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병으로 고생해본 사람은 누구나 절감하는 바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 있으리요’ 하는 마가복음의 말씀을 들먹거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의사는 병을 얼마나 고치나?

건강이 깨어진 것이 병이다. 병이 나면 누구나 의사에게 간다. 그런데 의사가 병을 다 고쳐 주는가? 의사가 병을 다 고쳐주면 사람들이 건강을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치지도 않을 것이다.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쉬우면 건강의 소중함을 잘 못 느끼기 때문이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건강을 잃으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즉, 의사에게 가도 병이 잘 낫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의사들이 병을 어느 정도 고치는가? 의사 자신의 말부터 들어보자.

전 세계적으로 1천만부 이상 팔렸다는 유명한 책 『뇌내혁명(腦內革命)』을 쓴 일본의 저명한 의사 「하루야마 시게오」(春山茂雄)라는 사람이 있다. 한국계 2세로서, 대대로 동양의학을 가업으로 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네 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침구와 지압술을 배우고 여덟 살 때 침술사 자격을 취득하였다는 사람이다. 그는 임상경험을 통하여 동양의학이 병을 치료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절감하였으나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해내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하여 동경대 의학부를 다녔는데, 서양의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동양의학의 효능에 관해 한층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야마토(大和) 시에서 260여 개의 병실을 가진 ‘전원후생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위 책의 서문에서 오늘날 병원에서 의사가 고칠 수 있는 질병은 전체 질병의 20% 정도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80%는 의료비만 물 쓰듯 낭비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하루야마시게오 저, 반광식 역, 뇌내혁명(腦內革命), 사람과 책(1996), 머리말 1면. 우주초염력(CESP)으로 어떤 병이든 쉽게 고치고 있는 정명섭 선생님도 “현대의학이나 과학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은 20% 정도다” 라고 하고 있다(그의 저서, 『우주초염력』, 진세계사, 2003년, 34면 참조).

텔레비젼(EBS TV)에서 동양의학을 강의한 바 있는 저명한 한의사 김홍경은 2001년 1월 2일 방영된 강의에서 의사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고 하면서 의사가 병을 고치는 비율이 25% 정도밖에 되지 않고 30%가 되면 명의(名醫) 소리를 듣는다고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이러한 비율은 이 사회에서 유통되고 있는 속설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결국 양의사, 한의사를 막론하고 질병의 20% ~ 30% 정도밖에 고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말이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우스개 비슷한 말까지 한다. 의사가 질병의 20%를 고친다는 말을 듣고 의사들이 웃더란다. 실제로는 20%도 못 고치는데 20%나 고친다고 하니까-.

예방전문 의학자들에 의하면 우리 인체 내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은 3만여 가지에 달하는데 그 중에 2만여 가지는 지금까지 거의 치료가 안 되는 것들이고 불과 만 여 가지가 매우 부분적으로 치료되어질 수 있다고 한다.

의사가 못 고치는 환자는 어떻게 하나?

그러면 의사가 고치지 못하는 환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치료를 포기하고 그대로 고통 당하다 죽어야 하는가? 스스로 치료방법을 연구 개발해서 자기 병을 자신이 고쳐야 하는가? 혹시 의사 아닌 사람이라도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이 있는지 수소문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가?

여러분 각자가 의사의 치료능력 밖에 팽개쳐진 환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치료를 포기하고 그대로 고통 당하다 죽으라고 하는 것은 생명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므로 그런 요구를 할 수도 없거니와 들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스스로 치료방법을 연구 개발해서 자신이 고치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의 환자와 그 가족들의 능력을 넘는 것일뿐더러 병에 지친 환자들에게 그럴 의욕을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무리이다. 결국 제일 가까운 대안은 의사 아니라도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이나 방법이 있는지 수소문해서 찾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고 가장 쉽고 상식적인 태도이다. 예로부터 ‘병은 소문을 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에 대하여 이 나라의 법률이나 제도는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지 아는가? 현행 의료법 제25조 제1항 전단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의료인이란 조산원·간호사도 포함하는 것이지만, 그 주축은 의사이다. 쉽게 말해서 의사 아니면 의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의사가 되려면 6년제 의과대학이나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면허를 받아야 되니, 결국 우리 나라에서 환자를 치료하려면 6년제 의과대학을 나와서 면허를 취득한 사람이 아니면, 그가 하늘이 내려준 신의(神醫)라 하더라도 남의 병을 치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위반하면 형벌로 처벌받는다. 돈을 받고 영리를 목적으로 치료행위를 하였으면 징역형과 벌금형을 같이 받게 되는데,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게 되어 있다(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제5조). 이 말은 환자에게는 아무리 명의가 있더라도 의사 아닌 사람에게 가서 치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엄한 형벌의 위협 하에 명령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법률의 명령에 찬성하는가? 남의 일 같으면 혹여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지’ 하면서 찬성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질병의 고통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 중에서. 그러나 여러분 자신이, 또는 여러분의 부모가, 배우자가, 자식이 의사에게 가도 치료되지 않는 병을 앓고 있다면, 그것도 그 병으로 인한 고통이 심하다면, 과연 법을 지키기 위해서 치료를 포기하겠는가? 그러한 명령을 사회구성원 일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형벌이라는 위협수단을 사용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이런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도대체 의사도 아니면서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이 있어봤자 얼마나 된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자, 그러면 논쟁을 벌이기 전에 먼저 병원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치료능력과 치료효과를 알아보자.hjkook2000@yahoo.co.kr

- 다음에 계속‥


2006/11/20 [06:00] ⓒ브레이크뉴스
정말'''''선구자 이다
수선화
06/11/24 [22:17]
정말 의사 한의사는 못 고치는 병 많다.
아니 단언컨데 못고친다.
알랴한 영어 몇자 적으면서 고침다 허풍떤다.
감기 하니 고치룰 모르는게 의사요. 침 제대로 놓는 한의사가 몇 인가
요즘 유선에서 보는 중국의술(중의학) 태생은 우리 것 같다는 느낌받는다.
얼마전 KBS에서 방송된 환경스폐셜(독) 2 주일간 보면서
첨단의학(제약 또는""")
결국 먼 옛날 조상들이 치료한 방법을 연구한 결과라 하였다.
페니실린은 버드나무 추출물'' 우리나라 은행잎''' 징그러운 뱀의 독이
마취제로 이용되고 제주도엔 할머니들이 나무 잎사귀로 관절염(붓기)
치료제로 이용한다고 보여 주었다.
판사님 알고 있는것 같다''''(검색하여 홈페이지를보니)

의술 의학 아니 우리나라의료 현실을 직시(直是)하고 먼 곳을 가리키굈는것 같다.
앞으로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섏젙 ??젣
손도 못댔던 불치병 고쳐낸 '토종 권태훈'
[현직 판사가 쓰는 민중의술] 민중의술 유형별 치료사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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