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승자병법] 칭기즈칸도 K팝 가수도 성공 비결은 '비빔밥 전략'

  •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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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6.16 03:08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
동양의 '손자병법'이나 서양의 '전쟁론'은 주로 적이 하나이고, 나의 강점과 적의 약점 중심으로 전략을 다룬다. 그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야 하는 한국처럼 초(超) 경쟁자가 넷이나 되는 경우의 전략은 무엇인가? 바로 융합전략이다. 이는 개인, 기업, 국가를 막론하고 경쟁자 중 어느 하나를 모방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강점을 융합하여 모두 앞설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남의 강점을 활용하여 남을 앞서기 위한 전략이 바로 융합전략이다.

한때 세계를 재패한 칭기즈칸과 그 후손들의 전략이 좋은 예이다. 그들은 원나라를 세워 러시아를 240년간 다스렸으며, 인도는 무굴제국을 통해 다스렸다. 무굴은 페르시아말로 몽골을 말한다. 그들의 영토는 중동, 유럽의 여러 나라 등 거의 모든 문명체계를 아울렀다. 당시 몽골 인구는 100만도 채 안 되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가? '칭기즈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저술한 문화인류학자 잭 웨더포드는 몽골군은 특유의 기동성에 중국의 화약기술, 유럽의 주조(鑄造)기술, 중동의 화염방사기술 및 심리전술 등을 융합했기에 대적할 나라가 없었다고 말한다. 융합은 별개의 물질, 아이디어, 무리 등을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핵융합은 그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몽골족은 바로 핵융합에 비견되는 융합전략으로 엄청난 군사력을 창출해서 초강대국을 줄줄이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이 부상하기 이전 세계의 3대 경제 대국은 미국·일본·독일이고, 대표적 기업경영 모델도,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이 세 가지였다. 그는 미국 기업은 경제적 차원(이윤), 일본 기업은 인간적 차원(인간관계), 독일 기업은 사회적 차원(사회 안정)을 중시한다고 했다. 그럼 한국은 이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동안 기업인이나 일반인 등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질문을 던져보면 미·일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답이 많았다.

하지만 드러커는 한국이 앞으로 대기업을 미국식으로 개혁하면 안 된다고 했다. 미국 기업은 호경기 때 잘되는 모델이라고도 했다. 일류 기업은 이 세 가지를 다 균형 있게 중시해야 하며 어느 것 하나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 융합전략이 의도하는 바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이 세 가지 모델과 우리 강점을 융합하여 미국·일본·독일 기업을 모두 확실히 앞설 수 있는 'K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미 국산 TV, 스마트폰, 조선 회사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초경쟁시대, 모방은 더는 전략이 될 수 없다. 패자의 길로 안내할 뿐이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지금은 군사력 같은 하드파워뿐만 아니라 문화, 발전경험 같은 소프트파워 전쟁시대이다. 중국은 정부가 세운 공자학원으로, 한국은 SM엔터테인먼트 등의 기업이 K팝으로 소프트 파워를 키워가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인기를 더해가는 K팝을 소프트파워로 잘 키워가는 전략 역시 융합전략이다.

얼마 전 한 국제회의에서 어느 일본인 연구소장은 K팝 가수들의 공연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일본 문화를 명문대 출신 엘리트들이 만들어간다고 하는데, 턱도 없는 소리다. 한국 K팝 가수들이 몇 차례 공연하고 가면 일본 젊은이들 문화는 확 바뀐다는 것이다. 한 일본인 음악 평론가도 말했다. 일본의 여가수들은 빠르면 10대에 데뷔해서 열심히 노래하고, 20대, 30대, 40대 등을 거치면서 비로소 일류 가수가 된다. 그러나 세계적 가수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게 된 셈인지 소녀들을 마치 공장에서 재배하듯 훈련해 데뷔 후 바로 세계 수준의 가수로 만드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유럽, 미국 등의 유명 콩쿠르를 거치지도 않은 채 말이다.

K팝은 여러 차원의 융합 결과로 나온 것이다. 우선 K팝은 가수들의 노래, 춤, 의상, 이미지, 매너, 언어, 건강관리 등이 잘 융합돼 있다. 또한 미국·일본·중국 등 여러 나라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노하우도 융합한다. 혹독한 훈련, 피나는 노력, 치열한 경쟁 과정도 융합되어 있다. 그 뿌리에는 한국 특유의 융합문화가 있다.

얼마 전 '창조계층'으로 유명한 리처드 플로리더에게 "한국 문화는 비빔밥처럼 유명 외국의 문물을 섞고(mix), 결합해서(combine), 새 맛을 창출(create)하므로 한국인의 융합전략을 'MCC전략'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주 좋다"고 했다. 한국인이 잘할 수 있는 전략도 융합전략이고, 초경쟁시대 4대 강국을 비롯해 경쟁국들을 앞서는 데 필요한 전략도 융합전략이다. 앞으로 개인, 기업, 정부를 막론하고 4대 강국 등 주요 외국의 제품, 기업 및 인재의 강점을 철저히 연구하고 핵융합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융합전략을 개발해 한국인의 시대로 만들어 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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