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우롱하는 LTE 서비스…유심칩 이동·로밍 ‘그림의 떡’
기사입력 2012.02.11 17:07:25 | 최종수정 2012.02.11 17:08:26 싸이월드 공감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LTE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통신사 대리점.

기존 통신기술보다 최대 5배 빠른 롱텀에볼루션(LTE) 스마트폰 가입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한편으론 독과점 사업자인 통신사들로 인해 시장이 혼탁해지고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LTE폰 가입자는 최근 200만명을 돌파했다. LTE 서비스가 시작된 시기는 지난해 7월이고, LTE 스마트폰은 지난해 10월에 출시됐다. 불과 2달 만에 100만명을 넘어섰고, 넉 달이 채 지나지 않아 200만명에 이른 셈이다.

문제 1. 허울뿐인 유심칩 이동 허용

국내 LTE폰 사용자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어두운 면도 상당하다. 통신 3사들이 시장지배력을 활용해 LTE에 적합한 콘텐츠 시장을 독점하려 하는가 하면 소비자 불편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3G 유심칩(잠깐용어 참조)을 LTE폰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통신사들이 LTE 요금제로만 LTE 스마트폰을 판매해 실효성이 미미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LTE폰은 3G와 LTE 통신신호를 둘 다 잡을 수 있기 때문에 3G폰에서 사용하던 유심칩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LTE폰은 LTE에 특화된 폰”이라며 유심칩 이동을 막아왔다. 이에 방통위는 “소비자 선택권 확대, 블랙리스트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3G 유심칩을 LTE 단말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통신사와 협의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제도 개선 이후에도 여전히 LTE폰에 3G 유심칩을 장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SK텔레콤 측은 “국내 LTE 스마트폰을 출고가대로 구매하거나 해외에서 LTE폰을 사올 경우 3G 유심칩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다. 하지만 해외에서 구입한 LTE 단말기는 주파수가 달라서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인성 IT칼럼니스트는 “스마트폰 단말기를 출고가 그대로 구매하면 엄청 손해를 본다. 삼성전자LG전자의 갤럭시, 옵티머스 시리즈는 같은 기종 단말기가 국내보다 해외에서 저렴하게 출시돼왔고, 국내 통신사는 보조금을 지급하며 단말기 가격을 대폭 할인해줬다. 결국 소비자들은 LTE폰을 LTE 요금제로 구매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정책을 주도한 이승진 방통위 사무관은 “올해 5월부터 블랙리스트 제도(잠깐용어 참조)가 시행되고, 스마트폰 중고거래가 활성화되면 3G 유심칩을 장착하는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며 “통신사에 신규 LTE폰을 3G 요금제로 출시하라는 것은 과도한 규제이기 때문에 강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문제 2. 서비스 안 돼도 일단 판매부터

통신 3사는 현재 전국의 시군구 모든 대리점, 판매점에서 LTE 스마트폰을 판매 중이다. 하지만 LTE 통신망이 깔린 지역은 전국에서 일부에 불과하다. LTE폰은 LTE망이 깔리지 않은 지역에서 3G 신호를 잡는다.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3G 통신서비스를 사용하면서 비싼 LTE 요금을 지불하는 셈이다. LTE 전국망 구축에 가장 앞선 LG유플러스는 전국 84개 시 이외의 군·읍·면 지역에서 LTE 통신망 구축을 진행 중이다. SK텔레콤은 이제 40여개 시에서 LTE 망을 구축했고, KT는 서울에서만 LTE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지난해 말 전국 84개 시에서 LTE 서비스를 시작했고, 앞으로 1~2달이면 군·읍·면 지역까지도 서비스가 가능하다. 반면에 경쟁사는 아직 전국 서비스가 안 되고, 군·읍·면 지역에는 투자 계획조차 밝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 LTE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LTE 서비스가 안 되는 지방에서도 LTE폰 마케팅 경쟁은 뜨겁다. 경기도 한 지역에서 SK텔레콤 판매대리점을 운영하는 김 모 씨는 LTE 스마트폰 4대를 보유하고 있다. LTE폰 판매 할당량이 과도하게 배정돼 미처 다 판매하지 못한 LTE폰을 가족과 지인 명의로 가입한 것. 이 지역은 아직 LTE 통신망이 깔리지도 않았다. 통신사 측은 “소비자들에게 최신 스마트폰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하고, 조기에 LTE 전국망을 구축할 계획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지방에서 LTE폰을 구매한 한 소비자는 “최신 스마트폰이 LTE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매했지만, 왜 3G 통신을 이용하면서 비싼 LTE 요금을 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문제 3. 자사 앱과 서비스 강요

통신사들은 LTE에 특화된 멀티미디어 서비스 등을 할인된 가격으로 제시한다. 겉으로는 LTE 사용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서비스지만, 콘텐츠 시장에서는 망 중립성에 위배되는 시장 혼탁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망 중립성이란 통신망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망을 활용한 서비스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의미. 예를 들어 인터넷 망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직접 포털사이트와 음원사이트를 만들어 사용자에게 우선 접속을 강요하거나, 그 사이트를 이용할 때마다 요금을 할인해주면 망 중립성에 위배된다. 망 중립성은 통신망의 중요한 운영 원칙으로 세계 각국에서 적용된다. 문제는 국내 통신사들이 소비자에게 LTE 서비스 가입을 유도하면서 자사 앱과 서비스를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LTE폰 요금이 비싸고,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없다는 점을 감안한 마케팅 전략이다. 이로 인해 일반 콘텐츠 사업자들은 통신사들과 다른 출발선상에서 경쟁하게 됐다.

SK텔레콤은 지난 1월 31일 자사의 LTE 가입자 100만명 돌파에 맞춰 ‘LTE 특화 요금제와 서비스’를 출시했다. 청소년을 위한 자사 교육서비스인 ‘T스마트러닝’을 이용할 때 데이터 통화료를 대폭 할인해주는 ‘LTE팅 요금제’와 ‘멜론’의 음악서비스를 이용할 때 데이터 요금을 지불하지 않는 ‘LTE 펀(Fun) 특화상품’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통신사도 마찬가지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2월 월 9000원으로 유플러스HDTV, 엠넷, 스포티비, 포트리스2 등 멀티미디어, 게임서비스 등을 최대 10GB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올해 LTE 서비스를 출시한 KT도 올레TV나우, 음원서비스 ‘지니’ 등에 특화된 요금제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문제 4. LTE 로밍은 불통

SK텔레콤의 LTE 서비스를 사용하는 신명옥 씨(26)는 “LTE에서는 데이터 요금이 비싸기 때문에 멜론이나 호핀 등을 무료로 제공하면 그 서비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른 LTE 소비자는 “자사 서비스에만 대폭 할인혜택을 줄 수 있다면 전체 LTE 요금도 낮출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국내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LTE 서비스는 3G와는 달리 로밍이 불가능하다. 현재 스마트폰으로 LTE 로밍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 SK텔레콤이 홍콩에서 USB모뎀을 활용한 데이터 로밍만을 제공할 뿐이다. LTE 로밍서비스가 안 되는 이유는 각국이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3G 주파수는 전 세계적으로 2.1㎓로 통일돼 있지만, LTE 주파수는 700㎒, 800㎒, 1.8㎓, 2.1㎓, 2.6㎓ 등으로 제각각이다. 한국은 LG유플러스SK텔레콤이 800㎒의 주파수를 사용하고, KT가 1.8㎓의 주파수를 사용한다.

해외에서 LTE 로밍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LTE폰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해외에서 3G 통신을 통해 로밍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통신사 측은 “LTE폰으로도 3G 통신을 통해 음성, 데이터 로밍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비자 불만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실질적으로 LTE 로밍이 불가능한데도 불구하고, 통신사들은 최초의 LTE 로밍서비스를 출시했다며 앞다퉈 마케팅을 벌여왔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2월 초 전 세계 220개국서 LTE 로밍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실제 내용은 LTE폰에서 3G와 2G 로밍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마찬가지로 SK텔레콤도 지난해 12월 중순 LTE 로밍서비스를 출시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스마트폰이 아닌 LTE USB모뎀의 로밍서비스다. LTE폰을 사용 중인 신명옥 씨는 “엄밀하게 표현하면 LTE폰으로 LTE 로밍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케팅을 하는 내용을 보면 이런 서비스를 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잠깐용어 유심칩(USIM Chipㆍ범용가입자인증모듈)
휴대폰 뒷면에 장착돼 있는 메모리 카드로서 휴대폰 번호, 요금제 등 가입자 정보가 담겨 있다.

잠깐용어 블랙리스트 제도
유심칩만 바꿔 끼우면 어느 단말기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 지금까지는 통신사가 단말기고유식별번호(IMEI)를 인증한 단말기에만 통신서비스를 제공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mk.co.kr / 사진 = 박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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