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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미래학자 3인이 보는 '메가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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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4.04 03:27 / 수정 : 2009.04.14 15:51

■ 43세의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

그 똑똑하다는 앨 고어(Gore) 전 부통령이 연설문을 맡기고 수석 대변인으로 삼은 사람이라더니, 이 43세의 젊은 학자는 과연 야무지게 말을 잘했다. 차세대를 이끌 대표적 미래학자로 꼽히는 다니엘 핑크(Pink)는 대화하는 상대방의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명쾌하고 명랑하고 명석한 문장들을 인터뷰 내내 뿜어냈다.

―당신이 보기에 지금의 경제 위기는 왜 왔는가?

"아무도 큰 그림을 보지 못했거나, 혹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각만 봤을 뿐, 아무도 조각을 맞출 줄 몰랐거나 외면했다. 감당 못할 주택담보대출이 증권에 얹히고, 전 세계로 뿌려지는 과정에서 모두들 부분 부분에만 집착해 있었다. 그러다가 지탱 불가능해진 것이다."

―조각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이콘셉트(high-concept)를 중시하고 개발해내야 한다."

―하이콘셉트가 무엇인가?

"예술과 감성까지 아우른 통섭과 종합의 능력이다."

―당신이 저서 '새로운 미래가 온다(A Whole New Mind)'에서 말하는, 텍스트(text·본문 구절)에만 매몰되는 좌뇌(左腦)보다, 콘텍스트(context·맥락)를 감지하는 우뇌(右腦)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뜻인가?

"정확하다. 당신의 설명이 더 좋네. 내 대답을 그걸로 대체해 달라(웃음). 우리 모두 이 우뇌의 능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이 우뇌 능력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용하지 않은 근육과 같다.우뇌의 능력, 그러니까 공감(共感)하고 디자인하고 스토리텔링하는 것은 인간이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능력이다. 이런 자신감을 갖고 노력하면 누구나 개발할 수 있다. 21세기형 학교 교육은 이런 우뇌 능력을 개발시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왜 중요한가?

"가장 큰 이유는, 이제 우리에게는 팩트(fact·사실)들이 너무나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런 팩트들을 스토리로, 문맥으로 엮어내지 못하면 팩트는 증발된다. 스토리는 영화 산업·게임 산업 등 많은 산업의 기초이다. 인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직장에서 귀가했을 때 배우자가 '오늘 어땠어?'하고 물어보면, 컴퓨터를 켜고 파워포인트로 설명하는가? (웃음) 아니다.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저런 일이 있었고, 그다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스토리를 말한다. 그게 자연스럽다."

―글로벌 위기가 끝나면 세계는 어떤 미래에 직면하는가?

"G20 회의 등을 통해 큰 논쟁을 거친 끝에 세계적으로 새로운 금융 규제의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매우 중요하다. 그다음에 예전보다 훨씬 확대된 투명성이 구현될 것이다. 금융 부문은 예전보다 작아질 것이다. 예전의 미국처럼 거인 같은 금융 분야는 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종사할 것이다."

―이 위기가 없었다고 가정했을 경우와 비교할 때, 이 위기 때문에 미래는 확 달라지나?

"흥미로운 질문이다. 이 위기는 분명 흔적(imprint)을 남길 것이다. 미국에서 자유 시장은 절대적인 신봉의 대상이자 구세주 같았다. 1990년대 중반에는 (정부의 개입을 상대적으로 지지하는) 민주당 출신의 클린턴 대통령도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자유 시장이 대세(大勢)인 시절이었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앨런 그린스펀 같은 인사도 자유 시장이 모든 걸 할 수 없다고 토로할 정도다. 자유 시장에 대한 신봉은 무너졌다. 정부의 시대가 오고 있다. 순수한 의미의 자유 시장 시대는 갔다."

그는 여기서 목소리의 톤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G20 정상회의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G20 정상회의를 통해 각국 최고 지도자들은 자유 시장의 적절한 역할은 어디까지이고, 또 정부의 적절한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선을 긋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이에 대한 2010년대의 대답은 2000년대나 1990년대와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예전과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또 뭐가 있나?

"이번 위기로 전 세계가 얼마나 꽁꽁 서로 묶여 있는지 알게 됐다. 10년 전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10년 전에는 서울의 위기가 미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미국의 상황도 한국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아주 즉각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친다. 증시를 보라. 미국민이 아침에 일어나서 아시아 증시 결과를 살핀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해야 하고, 고든 브라운아소 총리와 대화해야 한다. 어느 나라도 고립해서 지낼 수 없다. 모두 다 연결돼 있다. 좋은 점도 있다. 미국 어린이와 젊은이가 한국 음악을 듣고 한국 영화를 본다. 엄청난 지식의 교류(cross-pollination)가 생기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빨리 흐른다. 좋은 사물도 빨리 흐르고 나쁜 사물도 빨리 흐른다. 서로 묶인 게 싫다고 이 글로벌 시스템의 문을 닫아버리면 좋은 사물도 흐르지 못하게 된다. 문을 닫을 수도 없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위기 덕분에 아마도 지금은 전혀 무명인 인사가 5년 이내에 세계적 유명인사로 떠오를 것이다. 지금은 어느 회사에 있거나 창고에 있다가 엄청난 혁신자로 돌변해 나타나 우리 모두의 화제가 될 것이다. 위기는 늘 그렇게 누구에게는 기회니까…."

―귀하는 저서에서 풍요(Abundance)와 아시아(Asia), 자동화(Automation) 등 '3A'를 패러다임 변화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 풍요는 확연하다. 한국이야말로 극적인 사례이다. 당신 할아버지의 삶과 당신의 삶을 비교해보라. 경기 침체에 따라 아시아와 자동화는 부각될 것이다. 기업들은 더 처절하게 경비 절감을 추구하면서 가장 싸게 생산하는 법을 찾다 보면 아시아의 가치는 더욱 두드러진다. 자동화도 침체 때문에 가속화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부분보다 통섭과 감성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우뇌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특히 경기 침체의 심리적 위축 때문에 사람들은 지갑을 잘 열지 않고 있다. 이럴 때는 제품의 미세한 작은 개선으로는 지갑을 열게 할 수 없다. 매우 두드러지고 가파른 개선, 즉 우뇌를 동원한 혁신이 있어야 소비자의 지갑을 열 것이다."

―귀하가 말하는 하이콘셉트를 위한, 우뇌형이 되기 위한 인재의 조건은 무엇인가?

"우선 디자인이다. 디자인이란 이제 기본적인 비즈니스의 필수 교양이다. 이제 당신은 디자인이란 언어를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경험이든, 기능은 기본이고 디자인으로 더 강력하게 호소해야 한다."

여기서 그는 기자가 인터뷰를 녹음하고 있던 작은 MP3 겸용 녹음기를 가리켰다.

"이 기계도 예쁘고 상큼하지 않은가?"

―삼성 제품이다.

"그렇지. 절대 미국 제품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웃음). 삼성전자도 아주 흥미로운 사례다. 예전에는 가장 싼 물건이란 이미지가 있었다. 이런 이미지를 디자인을 통해 바꾸면서 경쟁자들을 제쳤다. 이런 풍요의 사회에서 싼 가격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남기란 매우 어려운 게임이 됐다. 디자인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하이콘셉트의 두 번째 조건은 스토리다.

"스토리는 아까도 말했듯 사실들을 엮어 문맥을 만들어내면서 감성적 충격을 강하게 하는 것이다. 스토리에서 차별화라든지, 강력한 마케팅이라든지, 비즈니스 리더십 등이 창출된다.

셋째, 조화(symphony)다. 이건 '큰 그림으로 생각하기'다. 조각들을 맞춰 결합시키고, 패턴을 찾는 것이다. 조각을 결합해서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창조해내는 것이다. 아웃소싱하기 매우 어렵고 자동화하기도 매우 어려우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제 누구나 이렇게 조화의 사고(思考)를 할 줄 아는 전문가를 원한다. 좁고 막힌 사고의 전문가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좁고 막힌 사고의 전문가가 글로벌 경제 위기라는 재앙을 불러일으킨 것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어느 분야에서든 더 넓고 큰 시야를 갖고, 더 큰 그림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전문가를 원한다."

그는 마치 원고를 좔좔 왼 명배우처럼, 막힘 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넷째, 공감(empathy)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고 다른 사람의 심장으로 느낄 줄 아는 능력이다. 판매나 디자인 모두에 필요한 능력이다. 이것도 아웃소싱하거나 자동화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노년층을 위한 디자인이나 제품을 보자. 젊은 디자이너는 일부러 시야가 좁아지는 안경, 민첩성을 떨어뜨리는 장갑을 끼고 체험을 해본다. 그래야 소비자를 위한 진정한 디자인과 진정한 제품이 나온다.

다섯째, 놀이(play)다. 웃음과 유머, 게임, 기쁨을 갖고 있는 인재를 뜻한다. 이런 요소는 이제 필수적이다."

―한국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계획을 세우지 마라."

―미래학자가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충고하나?

"그렇다. 스무 살에 이걸 하고 그래서 다음에 이걸 하고…, 하는 식의 계획은 내가 볼 때 완전히 난센스다. 완벽한 쓰레기다. 그대로 될 리가 없다. 세상은 복잡하고 너무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 그래서 멋진 실수를 해보라. 실수는 자산이다. 대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멋진 실수를 통해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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