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다"…쿠팡이 들춰낸 한국식 규제의 민낯
입력2021.03.15 10:09 수정2021.03.15 11:11
한국 대신 美 증시 선택한 쿠팡
혁신 막는 규제 찾는 계기 돼야
조재길 뉴욕 특파원
사진=연합뉴스
작년 미국의 최대 쇼핑 축제인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중 몇 가지 상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해봤다. 메이시스 백화점 등에선 ‘코로나 사태 속 주문 폭주로 배송까지 수 주일이 걸릴 수 있다’고 안내했다. 실제 주문한 지 한 달여 만에 받은 상품도 있다.
온라인 매장인 아마존에도 같은 시기에 주문을 넣었다. 빠른 건 하루 만에, 늦어도 3~4일을 넘기지 않았다. 미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아마존이 47%(작년 말 기준)를 점유한 결정적인 배경 중 하나다.
아마존은 배송 효율을 높이려고 인공지능(AI) 기술과 자동화 로봇(키바)을 대거 도입했다. 로봇만 4만5000여대가 일하고 있다. 도시 인근엔 대형 풀필먼트 센터를 110여 개 지었다. 자사 및 입점업체 상품을 선별·포장하고 재고관리까지 일괄 처리하는 곳이다. 2019년 80만 명을 고용했던 아마존은 1년 만에 50만여 명을 추가 채용했다. 세금과 일자리 측면에서 미국 내 최대 효자 기업이다.
지난 11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나스닥 빌딩 앞 거리 모습. 뉴욕=조재길 특파원
지난 11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한국 기업 최초로 직상장한 쿠팡은 아마존을 벤치마킹했지만 아마존보다 한 발 앞선 서비스로 주목 받았다. 차별화된 포인트는 새벽 배송과 집앞 반품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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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까지만 주문을 넣으면 이튿날 오전 7시 전에 집에서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 버튼을 몇 번 눌러 집에서 반품·환불이 가능한 점은 아마존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서비스다. 쿠팡의 한국 시장 점유율이 13%에 불과한데도 시가총액이 831억달러(12일 기준)에 달한 건 이런 혁신성을 인정 받은 덕분이다.
쿠팡의 결실은 ‘한국적 특수 상황’을 극복하고 이룬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는다. 이 회사 ‘로켓 배송’은 “국토교통부 허가를 받지 않은 무면허 물류 사업”이란 논란에 시달렸다. 자체 화물차로 배송하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이란 논리다. 법원에서 합법 판결을 얻기까지 수 년이 걸렸다.
미국 증시를 선택한 데 대해서도 지지 여론이 더 많은 듯하다. 한국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했다는 것 외에 글로벌 스탠다드의 중요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쿠팡이 한국 거래소에 상장했다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는 전략을 짜는 데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는 대주주 지분이 3%로 제한된다. 정부 영향권에 있는 국민연금은 상장기업 주식을 매입한 뒤 스튜어드십코드로 기업 압박에 동참하고 있다. 국회는 노사 갈등이 첨예한 한국 상황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거론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1994년 일찌감치 차등의결권을 허용했다. 쿠팡과 같은 혁신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쿠팡 지분을 10.2%밖에 갖지 않은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76.7%의 절대적 의결권을 확보한 배경이다. 미 증시 상장으로 오히려 흔들리지 않고 경영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미국 내 의류 소비의 약 75%가 전자상거래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게 마스터카드의 통계다. 디지털 경제의 발달로 혁신 기업은 앞으로도 많이 출현할 것이다. 하지만 거미줄 같은 규제가 버티고 있는 한 한국에서 나가려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
한국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도 허용하고 있는 승차공유 서비스를 규제하는 소수 국가 중 하나다. 4차산업 아이콘이란 평가 속에서 일자리를 1만2000여 개 창출했던 타다 서비스는 ‘타다 금지법’이 제정되며 좌초했다. 대형 마트는 전통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명분에 밀려 월 2회 강제 휴무해야 한다.
우물 안 개구리식 규제 폭주는 혁신 기업을 해외로 내몰고 질 좋은 일자리를 없앨 뿐이다.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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