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엘지 등 제조업체가 직접 판매…‘휴대폰 유통구조’ 확 바뀐다
비싼 출고가·정액요금제
업체간 ‘짬짜미’ 구조 깨
경쟁통한 가격인하 기대
한겨레 김재섭 기자 메일보내기
» 휴대전화 구입 방식 및 내용 비교
방통위 “블랙리스트 제도 도입”

스마트폰을 포함한 휴대전화는 삼성전자, 엘지전자, 팬택, 모토롤라 등에서 만든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휴대전화를 만들기만 할 뿐 소비자에게 팔지는 못한다. 이동통신 업체들이 ‘화이트리스트’란 장치를 만들어 제조업체들의 직접 판매를 사실상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직접 소비자에게 단말기를 판매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화이트리스트를 휴대전화 가격 경쟁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규정해 폐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최재유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정책국장은 12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휴대전화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3세대 이동통신(WCDMA)에 한해 휴대전화 식별번호 관리방법을 ‘블랙리스트’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동통신 이용자들의 통신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통신비 인하와 함께 휴대전화 유통구조 개선도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통위는 정부 전담반에서 작업중인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과 별도로 블랙리스트 제도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휴대전화는 만들어지는 즉시 식별번호(IMEI)란 게 부여된다. 식별번호는 범죄 목적으로 사용되는 휴대전화의 통신망 접속을 막는 데 활용된다. 도난당했거나 분실된 휴대전화의 식별번호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남이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엉뚱하게 적용해, 이동통신 회사의 ‘화이트리스트’에 미리 등록된 휴대전화만 통신망 접속을 허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국산 휴대전화 사용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도 작용했다. 이동통신 업체들로 하여금 가능하면 가입자들에게 국산 휴대전화를 권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폰 등 외국산 휴대전화가 판을 치면서 이럴 이유가 없어졌다. 오히려 이동통신 회사들이 제조업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스마트폰 출고가를 높게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적용되는 정액요금을 비싸게 받고, 계열사를 지원하는 장치로 활용되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화이트리스트가 블랙리스트로 바뀌면, 이런 부작용이 크게 줄어든다. 우선 삼성전자·엘지전자 등 제조업체가 가전제품 매장에서 직접 휴대전화를 팔 수 있게 된다. 이용자쪽에서 보면 가입하고 싶은 이동통신 회사의 유심(본인확인장치)을 산 뒤, 가전매장이나 양판점 등에서 휴대전화를 구입해 끼우면 바로 통화를 할 수 있다. 그만큼 유통구조가 단순해지고, 이용자의 선택 폭이 넓어진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처럼 비싼 휴대전화는 이동통신 회사를 통해 24개월 약정 등의 조건으로 구입하고, 싼 휴대전화는 직접 구입해 싼 요금제를 좇아 사업자를 옮겨다니거나 선불요금제를 이용할 수 있다. 저가 단말기가 등장해 휴대전화 가격을 끌어내리고,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 시장이 활성화돼 통신비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이동통신 회사와 휴대전화 제조업체의 ‘짬짜미’로 휴대전화 출고가가 높게 유지되는 구조가 깨져, 기존 정액요금도 낮아진다. 이동통신 회사들은 스마트폰 정액요금제를 초기 스마트폰의 비싼 출고가를 기준으로 설계해왔다. 이 때문에 이동통신 회사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저항도 예상된다. 케이티(KT)는 휴대전화 값을 출고가 기준으로 매출로 잡고 있어, 휴대전화를 가전 매장에서 직접 구매하는 가입자들이 많아질수록 매출이 줄 수밖에 없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은 인기 휴대전화 독점 기회를 놓치게 된다. 에스케이텔레콤 가입자들에게 휴대전화를 공급해 매출과 영업이익의 상당부분을 얻고 있는 에스케이네트웍스는 매출과 이익의 감소를 감수해야 한다.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자체 유통망이 잘 갖춰져 있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쪽은 마다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동통신 회사 눈치가 보여 내색은 못하고 있다. 그렇지 못한 제조업체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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