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고통의 상징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씨 별세
50여년恨 온 몸에 역사로 새겨 와...후유장애와 노환으로 8일 하직
이승록 기자 leerevol@naver.com 2004년 09월 08일 수요일 00:00 0면
▲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씨 - (김동만ㆍ고성만著 - '몸에 새긴 역사의 기억'에서 발췌) | ||
진아영 할머니는 제주4.3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1월 한경면 판포리에서 경찰이 쏜 총을 맞아 턱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진 할머니는 지난 60년 가까이 제대로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해 제주4.3의 아픔을 대변해 준 상징적인 인물로 인식돼 왔다.
진 할머니는 그 고통의 턱을 감추기 위해 평생 무명천을 두르고 다녔다. 음식을 먹을 때도 물 한잔을 마실때도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음식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진 할머니는 진통제와 링거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고통을 겪으며 모질게 살아왔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4.3의 비극을 반증하듯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핍박받는 삶을 살았다.
진 할머니는 일제, 해방정국, 4.3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혼란스런 시절을 온몸으로 관통해 온 제주지역 아픔의 역사였다.
▲ 병상에 누워있는 '무명천 할머니' | ||
시대가 바뀌어 4.3특별법이 제정되고, 4.3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시절, 평생의 한을 이제야 풀 수 있는 호시절이 왔지만 진 할머니는 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8일 오전 9시5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시는 4.3과 같은 엄청난 비극과 고통이 없는 저승길로 말 없이 떠났다. 진아영 할머니의 발인은 9일 오전 9시이며, 묘지는 한림읍 대림리 성이시돌 요양원 공동묘지이다.
이승의 고통과 한을 저승에서는 부디 푸시길 바라며 진 할머니의 한 많은 삶을 기리는 허영선 시인의 시집 ‘뿌리의 노래 중 ‘무명천 할머니 -월령리 진아영’을 제주의 소리에서는 바친다. 부디 영면하소서.
무명천 할머니
- 월령리 진아영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디 희 무명천 턱을 싸맨 채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막힌 목젓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
무자년 그 날,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를
날카로운 한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당해보지 않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고통 속에 허구한 밤 뒤채이는
어둠을 본 적 없는 나는 알 수 없네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그녀의 몸의 소리를
모든 말은 부호처럼 날아가 비명횡사하고
모든 꿈은 먼 바다로 가 꽂히고
어둠이 깊을수록 통증은 깊어지네
홀로 헛것들과 싸우며 새벽을 기다리던
그래 본 적 없는 나는
그 고통을 진정 알 길 없네
그녀 딛는 곳마다 헛딛는 말들을 알 수 있다고
바다 새가 꾸륵대고 있네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
베롱한 세상
한 세상 왔다지만
꽁꽁 자물쇠 채운 문전에서
한 여자가 슬픈 눈 비린 저녁놀에 얼굴 묻네
오늘도 희디흰 무명천 받치고
울담 아래 앉아 있네
한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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