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교수, 세월호 침몰 당일 ‘닥터헬리’ 영상 공개…“나만 비행하고 있더라”

등록 :2017-08-09 14:32수정 :2017-08-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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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강연에서
“5000억원어치 국가기관 헬기들은
팽목항에서 국민 안 살리고 뭐 했나”
상부 지시 없인 스스로 작동 못하는
불합리한 사회 시스템 맹렬히 비판
가난한 이가 더 쉽게 죽는 현실도 강조
이국종 아주대병원 센터장은 “세월호 침몰 당시 5천억원어치가 넘는 국가기관 구조헬기들이 세월호 주변에 앉아만 있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공개하며 사람이 죽어가도 상부의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사회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자료 아주대 의대 외상외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CBS) 갈무리
이국종 아주대병원 센터장은 “세월호 침몰 당시 5천억원어치가 넘는 국가기관 구조헬기들이 세월호 주변에 앉아만 있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공개하며 사람이 죽어가도 상부의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사회구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자료 아주대 의대 외상외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CBS) 갈무리
이국종 아주대 의대 외상외과 교수가 세월호 침몰 당일 닥터헬리(Doctor Heli, 의료시설을 갖춘 응급환자 이송용 헬기)에서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국가기관의 구조선과 구조헬기 등이 가라앉는 세월호 주변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자빠져 있다”고 표현하며 한국 사회 시스템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아주대학교병원 센터장인 이 교수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의 주치의로도 유명하다.

지난 7일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CBS) 797회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편(▶바로가기)에 출연한 이 교수는 세월호 침몰 현장에 출동해 닥터헬리에서 찍은 영상을 공개하며 “저는 이해가 안 가요. 이날(2014년 4월16일) 오전 11시 반에 (침몰 현장)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었어요. 배 보이세요? (세월호 주변에서) 대한민국의 메인 구조헬기들은 다 앉아 있잖아요. 왜 앉아 있을까요? 거기 있던 헬기들이 5천억원어치가 넘어요. 저만 비행하고 있잖아요. 저는 말 안 들으니까”라며 당시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는 “구조·구급은 고사하고 의료진이 탄 헬기에 기름 넣을 곳이 없었어요. 목포에 비행장이 얼마나 많은데 왜 구급헬기에 기름이 안 넣어질까요? 공무원이 나빠서 그럴까요? 해경만 나빠요? 이게 우리가 자랑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냥 우리 사회의 팩트라고요”라고 말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나태한 사회 시스템을 직격한 것이다.

자료 아주대 의대 외상외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CBS) 갈무리
자료 아주대 의대 외상외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CBS) 갈무리
자료 아주대 의대 외상외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CBS) 갈무리
자료 아주대 의대 외상외과,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CBS) 갈무리
그는 강연 중 울먹이기도 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3개월이 지난 뒤인 2014년 7월17일 세월호 현장지원에 나갔다가 복귀하던 강원도 특수구조단 소방 헬리콥터가 광주광역시에서 추락해 소방공무원 5명이 순직한 사건을 말하면서다. “그날은 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중에 비행시켜서 강원소방의 우리 파일럿들 순직하게 만들어요? 이때는 자빠져 있다가 왜 나중에…”라고 말할 때 그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당시 순직한 기장은 주택가에 추락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응급환자 구조 현실 전반을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 영국에선 의료진, 소방항공대원, 구조사들이 흙투성이가 돼서 돌아다닙니다. 그래야 중증외상 환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구조헬기가) 아무 데나 내려앉고요, 위험을 무릅쓴다고요. 목숨을 걸고 환자를 살리러 나선다고요. 영국은 중증외상 환자 신고 접수부터 의료진 도착까지 약 15분이면 커버해요. 한국에선 평균 4시간 정도 걸립니다. 런던은 구조헬기가 하루 평균 4~5회 출동하지만 대한민국의 어떤 응급의료헬기도 이만큼 뜨지 않습니다.

한국은 구조헬기가 산에 뜨면 등산객들이 김밥에 모래바람 들어간다고 민원 넣어요. 저는 시에서 헬기 프로펠러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매년 힘들어한다고 민원을 받아요. 이게 우리 자화상이에요. 미국, 영국, 일본은 구조헬기가 어디든 착륙해서 환자 살린다고요.

가난한 사람이 더 쉽게 다치고 더 쉽게 죽는 현실도 짚었다. 그는 부실한 응급진료 현실을 드러낸 <한겨레21> 보도(▶바로가기)를 예로 들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갈무리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갈무리
제 환자들의 직업은 무직, 마트 판매원, 일용직 노동자, 생산직 노동자, 학생, 음식점 배달부 등입니다. 이 중에서 끗발 날리는 직업 있습니까? 여러분의 결심은 뭔가요. ‘나는 저런 직업을 가지지 말아야지?’ 그런데 어떡하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데.

중증외상 환자는 노동자가 많아요. 이분들은 힘없는 노동자라 아무리 죽어나가도 사회적으로 여론을 형성하지 못하는 거예요. 고관대작들은 아파서 병원 가면 병원장부터 전화 오고 잘해준다고요. 이런 불합리는 안 당해보신 분은 모를 거예요. 사회안전망 구성에 문제가 있잖아요. 정의가 아니잖아요. 비참한 거라고요.

의사인 그가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이유는 다음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시를 내릴 사람은 많은데 ‘노가다’를 뛸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이런(힘든) 일은 남이 해야 하는 거죠, 그렇죠? 아니면 남이 했다가 자기한테 해가 되면 안 되니까 이런 일은 하면 안 된다고 하죠. 온갖 이유를 대서요. 이런 일이 의료계에서만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회 전반이 낫지 않으면 이 문제는 바뀌지 않아요.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6136.html#csidx0d1a029512474ec920eb7b56655ce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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