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인사이트] 중국 선전은 어떻게 짝퉁 본산‘ICT 성지로 변했나

[중앙일보]입력 2017.08.15 01:00 | 종합 22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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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터넷, BAT 시대가 저물고 TMD 시대가 시작되다.” 최근 중국 인터넷 업계에 나도는 말이다. TMD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콘텐트 제공 회사인 터우탸오(Toutiao·今日頭條), 최대 O2O(Online to Offline) 사이트인 메이퇀(Meituan·美團·大衆点評), 인터넷 자동차 콜서비스 회사인 디디(Didi·滴滴出行) 등을 일컫는다. 이들이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BAT) 등을 밀치고 업계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의 불꽃 튀는 혁신 경쟁이 이젠 BAT 넘어 TMD 시대 열어

실리콘밸리와 다른 중국 혁신엔 시장과 생산력, 정부가 바탕이 돼

선전 시내 버스 60% 전기차 3년 후 100%로 늘릴 방침

터우탸오 얘기를 해 보자. 요즘 중국 광고업계는 터우탸오 등장으로 판도가 바뀌고 있다. “최대 광고매체인 중국중앙방송(CC-TV)의 광고가 예년보다 30%가량 줄었는데, 그 포션을 가져간 회사가 바로 터우탸오다라는 말이 나온다. 휴대전화에서 이 회사 앱을 다운받아 설치해 보면 그 경쟁력을 금방 알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골라 그것 위주로 소식을 전해준다.
 
물론 악성 콘텐트를 걸러내는 일에 사람 손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사용자의 검색을 바탕으로 최적의 콘텐트를 찾아내고 보내주는 건 100% AI가 합니다. 우리는 콘텐트 회사가 아니라 기술개발 업체입니다.”
 
베이징 터우탸오 본사에서 만난 이 회사 코파운더 장난(張楠·27)의 설명이다. 사용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5초 이내, 관련 기사를 송출하는 데 10초 정도 걸린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네이버가 일부 뉴스에 대해 AI를 막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위력이다. 그는 사이트를 방문하는 하루 방문객 수는 6600만 명, 그들은 하루 평균 76분을 사이트에 머문다고 말했다. 20123월 설립된 터우탸오는 현재 2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업체로 성장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메이퇀은 지난 2~3년 진행된 ‘O2O 전쟁의 승자다. 한때 5000개가 넘던 이 분야의 경쟁 업체들을 모두 평정했다. 그 넓은 중국 대륙의 지역별 맛집, 여행 정보 등을 제공한다. 2015년 소비자들의 평가로 음식점 순위를 정하는 다중뎬핑(大衆点評)을 손에 넣으면서 이 분야 영향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디디추싱 역시 자동차 콜 업계에서 벌어지던 치열한 전쟁의 승리자다. 콰이디(2015), 우버(2016)를 차례로 인수하며 업계를 제패했다. 시장의 유일한 강자인 이들에게 투자금이 몰려들면서 ‘BAT를 능가할 무서운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질문이 바로 중국은 과연 혁신이 가능한 나라인가라는 것이다. ‘중국 혁신의 속성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BAT는 과연 무슨 혁신을 이뤘나? 검색엔진을 처음 개발한 것도 아니요, 전자상거래란 시스템을 만든 것도 아니다. 그들이 새로 개발한 기술이나 서비스는 없다. 혁신 2세대라는 TMD 역시 마찬가지다. AI를 선도하는 건 미국이요, 자동차 인터넷 콜 서비스는 우버가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을 혁신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컨실팅 회사 매킨지의 해석은 주목할 만하다.
 
중국 혁신의 핵심은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의 창출이 아닌 기존 기술·서비스의 상업화(Commercialization)’에 있다. 대규모 시장이 받쳐주고 있기에 가능한 얘기다.”
 
중국은 기술과 시장을 결합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보이고 있다는 게 매킨지의 해석이다. ‘기술과 시장의 결합’, 그게 중국 혁신의 첫 번째 속성이라는 지적이다.
 
두 번째 속성은 기술과 생산력의 결합이다. 지금 중국 혁신을 이끌고 있는 도시는 선전이다. 화웨이, 텐센트, 드론 제작업체 DJI 등 혁신 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 ‘IT제품에 관한 한 없는 게 없다는 화창베이(華强北)도 그곳에 있다.
 
선전은 1980년대 이후 중국 최고의 제조업 생산단지였습니다. 그러나 과거 이곳에는 아이디어가 없었습니다. ‘산자이(山寨)’, 가짜의 도시라는 악명을 얻었던 거지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선전으로 아이디어가 몰려들고 있습니다. ‘산자이의 본산이 ICT의 성지로 둔갑하고 있는 거지요.”(최문용 네이버랩스 선전대표처 총경리)
 
선전의 크고 작은 공장들은 다양한 규모의 시제품을 만들어줄 수 있다.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1주일 안에 시제품이 뚝딱 만들어진다. 10개를 만들어주는 화창베이의 창업가가 있고, ‘글로벌 다이궁(代工·대리 생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폭스콘은 한 달에 100만 개도 공급할 수 있다.
 
선전 하이테크 단지인 난산(南山)에 자리 잡은 액셀러레이터 잉단(硬蛋)에 들어가니 전시장에 낯익은 로봇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조기교육 로봇이다.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그림책도 보여주고, 수학도 가르쳐준다. 지난해 중국 혁신 브랜드로 꼽혔던 제품이다.
 
로봇 제작회사인 융이다(勇藝達)는 평범한 다이궁완구 생산업체였습니다. 저희 지원을 받아 완구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주입해 완전히 딴 회사가 됐지요. 지금은 미국·인도·사우디 등 세계 각지로 수출도 합니다.”
 
천징인(陳靜茵) 전시관 관장의 설명이다. 기술과 생산력의 결합이 평범한 다이궁 업체를 4차 산업혁명 기업으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셋째는 IT와 정책의 결합이다. 흔히 혁신은 민간부문의 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도 혁신 대열에 참여한다. ‘인터넷 플러스’ ‘중국제조 2025’ 등 정책을 수립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와 민간이 짝짜꿍하면서 혁신을 이끌어간다.
 
중국 전기자동차 업체 BYD를 보자. 이 회사 역시 출발은 다이궁비즈니스였다. 지금도 삼성 스마트폰의 커버를 BYD가 만든다. 그렇게 축적한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배터리로 넓혔고, 결국 전기자동차에 이르게 된 것이다.

DA 300

 


 
정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선전 시내를 운행하는 버스의 60%는 전기차다. 3년 후 100%로 늘린다는 게 선전 시정부의 방침이다. 물론 전량 BYD가 공급한다. 가솔린 엔진에서는 뒤졌지만, 전기자동차에서는 미국을 넘어서야 한다는 중국 정부의 정책이 모두 BYD에 투사되고 있다.
 
화웨이가 오늘의 글로벌 회사로 성장한 데는 정부의 직간접 자금 지원이 결정적이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렇게 IT기술은 정부와 결합돼 시장을 만들고, 파이를 키워간다. 탄탄한 시장과 무궁한 생산력, 그리고 정부 정책이 IT와 결합되면서 지금 중국에서는 중국식 혁신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애초부터 청년들의 혁신적 아이디어로 무에서 유를 일구어낸 실리콘밸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혁신 DNA.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차이나랩 대표



[출처: 중앙일보] [차이나 인사이트] 중국 선전은 어떻게 짝퉁 본산‘ICT 성지로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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