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는 법

"75세의 남자 환자가 나흘 전에 위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어제부터 헛소리를 하고 뭐가 보인다며 수액을 막무가내로 뽑는 등 이상 행동을 보입니다."

외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진찰을 의뢰한 환자였다. 이 환자는 수술로 위암 조직을 잘 제거했다. 그러나 고령에다 당뇨병도 있어서 중환자실에서 한동안 집중 치료를 받아야 했다. 중환자실에 갔더니, 환자는 허공을 보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지금 몇 시예요?"
"몰라."
"그럼 낮이에요, 밤이에요?"
"밤일걸."
"여기가 어디죠?"
"병원인가? 집인가?"

환자의 시간과 공간 감각은 저하되어 있었고, 아침 10시인데도 밤이라고 생각했다. 환자는 수술 후 섬망(delirium)1)에 빠진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환자실 정신증(ICU psychosis)의 특징적인 증상을 보였다. 환자의 시간 개념을 보정하고 잡아 줄 수 있는 외부 환경 변화가 없는 공간에 있다 보니 감각 박탈이 일어나서 시간 감각이 사라진 것이다.

중환자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자. 낮이나 밤이나 24시간 환한 빛이 일정하게 넓은 병실을 비춘다.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하고, 들리는 소리는 단조로운 심장 모니터 소리뿐이다. 어느 방이든 똑같은 기계가 똑같이 배치되어 있다. 개인 사물은 일절 들일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흰옷이나 수술복을 입고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이런 상태에서 2~3일 지나다 보면 서서히 생체 시계의 리듬이 흐트러지고 시간 개념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환경이 단조롭고 자극이 없기 때문에 내부에서 본능적으로 자극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환청이나 환각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자극을 경험하려 애쓴다.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이 경험하는 환각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차선책이다.

시간 감각과 환경

시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같은 외부 환경의 변화, 생체 시계의 변화, 호르몬의 변화와 같은 내적 환경이 모두 필요하다.

인간의 생체 시계(zeitgeber)2)를 조절하는 중추는 시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3)에 위치한다. 쌀알만큼 작은 한 쌍의 신경절인데, 햇빛이 없더라도 한동안 정확히 작동한다. 생후 몇 개월이 지나면 죽을 때까지 인체에 시간을 통보하는데, 대략 24시간 30분 정도를 하루로 인식한다. 생체 시계는 아주 정교하고 몸의 대사 작용과는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망한 사람의 시교차상핵을 분리해서 배양액에 보관하면, 며칠 동안은 시간에 대해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양광이다. 해가 뜨고 지는 자극만큼 시간 감각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장치는 없다. 태양광이 우리의 시간 감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청년이 무모한 실험을 감행했다. 1962년 7월, 당시 23살이던 프랑스의 미셸 시프레라는 청년은 시계 없이 남알프스의 빙하 동굴로 들어갔다. 몇 주 동안 130미터 깊이의 동굴에서 태양광이 완전히 차단된 채 혼자 시계 없이 생활했다. 시프레는 자신만의 감각에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상으로 전화해서 언제 잤고 식사했는지 보고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식사할 때까지 10분이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외부에서 보고받은 바로는 무려 30분이나 지난 상태였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잠시 낮잠을 잤는데, 8시간이나 잤다.

시프레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 감각은 혼동이 일어났지만, 보고를 받은 친구들이 기록한 바에 따르면 생체 시계는 정확하게 작동했다. 수면과 기상을 포함한 하루의 생체 주기는 24시간 30분이었고, 대략 16시간 정도 깨어 있었다. 그러나 9월 14일에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시프레는 놀랍게도 8월 20일이라고 생각했다. 주관적으로 태양광 없이 계산했더니 25일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즉, 외부의 환경에서 적절한 자극이 없거나 급격한 환경 변화가 있을 때 시간에 대한 주관적 인식의 리듬이 흔들리고 깨지기 쉽다는 사실은 이후에 반복된 실험에서도 여러 번 입증되었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는 산업에 적용되었다. 양계장에서는 인위적으로 전등을 켜 놓는 시간을 조절해서 암탉들이 알을 빨리 낳도록 유도한다. 반면 백화점이나 카지노에는 창문이나 시계가 없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파악하기 어렵게 해서, 짧은 시간 머물렀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꽤 많은 시간 동안 머무르도록 유도한다.

농경 사회에서는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그러나 산업 사회로 접어들고 20세기에 세계가 하나로 묶이면서, 더 이상 농경 사회적 시간 리듬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시간과 관련한 건강 문제가 발생했다. 병원이나 공장처럼 24시간 가동되어야 하는 곳에서는 근로자의 3교대가 일상화되었는데, 근로자의 시간 감각이나 생체 주기에 이상이 생기고 건강이나 만성 수면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스튜어디스와 같이 자주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시차 적응도 문제다. 50년 전만 해도 없던 문제들이 지금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셈이다.

시간의 상대성과 주관성

시간과 관련한 또 다른 문제는 '상대성'과 '주관성'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면서 "좋은 사람과 보내는 30분은 5분처럼 빨리 지나가지만, 지루한 기차 여행은 5분도 30분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듯이, 시간 관념은 주관성이 작용하는 상대적인 감각이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의 체(Peter Che) 교수는 1초 동안 모니터에서 서서히 커졌다가 사라지는 검은 원을 보여 주고, 그중 하나의 원은 어느 정도 커지고 나면 빨간색으로 변하도록 설정했다. 원은 같은 간격으로 커졌다 사라졌는데, 피험자들이 느끼기에 빨간색으로 바뀐 원은 다른 원보다 2배 정도 오래 머물렀다고 평가했다. 예기치 않은 사건은 주의를 끌고 정보 처리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기 때문에 뇌에 더 많은 정보가 입력되는 만큼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빨간색으로 변한 원이 몇 개인지 정확히 기억했다.

뻔한 하루보다는 재미있고 즐거운 날, 많이 혼난 날이 오래 기억에 남고, 기억할 거리가 많으니 빨리 지나간 듯 긴 하루가 된다. 이와 같이 주관적으로 집중력을 요구하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을 접하는 경우, 그 순간에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고, 지나고 난 다음 회상하면 꽤 오랜 시간 머무른 듯 느끼는 패러독스가 생긴다. 이런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기억의 앨범을 만든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일도 없고, 경험한 일만 또 일어난다. 그래서 나이 든 어른들은 흔히 "시간이 화살과 같이 빨라서, 벌써 1년이 지났군"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는 법 본문 이미지 1

시간 지배하기

1초란 원소 기호 133인 세슘이 91억 9,263만 1,770번 움직이는 시간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생체 시계는 아주 정확하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복잡한 인간의 마음은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시간을 주관적으로 줄였다, 늘렸다 하며 인식한다. 이에 따라 마음의 조바심과 여유, 우울함과 행복감도 영향을 받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시계를 보며 무조건 바쁘다고만 하면서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보이는 토끼처럼 바쁘게 재촉하기만 하면, 시간에 지배당하고 만다. 정작 나중에 오랫동안 남아 인생을 기억하게 해 줄 소중한 추억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그렇고 그런 일상만이 노도와 같이 밀려왔다가 밀려간다. 나중에 인생의 앨범을 살펴보면, 찍기는 많이 찍은 것 같은데 건질 사진은 몇 장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을 잘게 쪼개서 계획적으로 보낸다고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시간의 노예가 되기 쉽다. 그보다는 시간의 주관성과 상대성을 이해하고, 시간에 쫓기듯이 끌려가지 않으며, 항상 새롭고 집중할 대상을 찾아내면 한정된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면 시간이 빨리 흐르며 지루함과 권태를 느낄 겨를이 없고, 몇 년 후 돌이켜 볼 때 시간을 알차게 사용한 것처럼 느낄 것이다.

각주

  1. 1 섬망 : 뇌의 기능 저하로 착각과 망상을 일으키고, 헛소리나 잠꼬대를 하거나, 몹시 흥분했다가 불안해하기도 하는 등 심한 감정 변화를 보인다.
  2. 2 생체 시계 : 동식물의 다양한 생리, 대사, 발생, 행동, 노화 등의 주기적 리듬을 담당하는 기관
  3. 3 시교차상핵 : 시신경 교차점 위에 있는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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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는 법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2012. 6. 30.,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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