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한국, 30년 前 4차 산업혁명 대비할 기회 놓쳤다

  • 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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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7.02.04 03:00

    '공장자동화 개척자' 이봉진 한국정밀공학회 초대 회장

    "진짜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오지 않았어요. 시간이 좀 더 걸릴 겁니다. 급하다고 서둘러 외국 것만 따라 한다면, 진짜가 왔을 때 한국이 얻을 게 없을지도 몰라요."

    이봉진(83) 한국정밀공학회 초대 회장은 최근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위클리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독일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Industry 4.0), 즉 스마트 공장 개념은 이미 전문가들이 30년 전부터 구상해 온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려면 지금 보이는 잎이 아니라 뿌리를 봐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한국에서는 자동제어기술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때에 관련 연구를 시작해 이 분야 최고 전문가로 50년 외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자동제어, 즉 무인화(無人化) 공장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스마트 공장의 핵심 기술로 연결된다.

    이 회장은 1958년 도쿄(東京)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기계제어로 석·박사를 마치고, 박정희 대통령의 해외 과학자 유치 계획에 따라 1968년 귀국했다. 1983년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에 재직하면서 자동제어연구실장 등을 지냈다. 1976년 국산 1호 NC(수치제어) 선반, 1980년 국산 1호 산업용 로봇을 만들어냈다. 이후 공장자동화 기술의 일인자로 인정을 받으면서 1985년 세계적인 자동화 기기 생산 업체였던 일본 화낙의 생산기술연구소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이봉진
    이봉진 한국정밀공학회 초대 회장은 경기도 분당 자택에서 위클리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기술 방향을 멀리 내다보고 일관성 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정부의 리더십과 기업·교육·사회 풍토가 마련돼 있는지가 관건”이라면서 “늦었다 생각 말고,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일관성 있게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한국, 전문가 우대 안 해 뒤처져

    ―스마트 공장 등 독일에서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부각되고 있는데요.

    "독일의 4차 산업혁명 전략을 맹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짜 4차 산업혁명은 아직 오지 않았고, 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독일이 자동차 빼고 최근 제조업이 잘 안 됐으니 부활을 위해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의미도 있어요. 4차 산업혁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메카트로닉스(기계와 전자의 결합) 기술에선 일본에 비해 밀린다고 봅니다. 스마트 공장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짜내는 기술은 미국이 더 세고요."

    이 회장이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현재의 3차 산업혁명을 살펴봐야 한다. 후지모토 다카히로(藤本隆宏) 도쿄대 교수 등 일본 제조업 분석의 대가 3명이 작년에 펴낸 '모노쓰쿠리(일본식 제조업)의 반격'에 따르면 3차 산업혁명은 2가지 방향으로 진화됐다. 하나는 공장 자동화이다. 1970년대 일본의 NC기계(수치제어 공작기계)가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일본의 산업용 로봇 제조 업체인 화낙에 근무할 때 이를 발전시켜 무인화 공장을 만들어냈다. 이와 달리 하늘·지구 차원에서는 구글·아마존이 눈 깜짝할 사이에 혁신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다. 전쟁으로 치면, 일본은 지상전에 강한데 미국은 제공권을 장악한 셈이다.

    ―그럼 4차 산업혁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급하다고 서두르면 얻을 게 없습니다. 화낙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산업용 로봇 부문 세계 1위입니다. 1972년 설립됐어요. 당시 일본에서 제일 큰 컴퓨터업체였던 후지쓰에서 과장(課長) 하던 사람이 독립해 창업한 회사인데요. 지금은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회사가 됐지요. 급하다고 이것저것 하지 않고 기술의 방향을 내다보고 꾸준히 연구개발에 집중한 결과입니다.

    ―화낙 같은 회사가 4차 산업혁명 시대도 주도한다는 얘기인가요.

    "그렇습니다. 무인화 공장을 현재 수준의 네트워크 기술로 연결하는 것은 진짜 4차 산업혁명이 아닙니다. 앞으로 나노 단위의 초정밀 가공 부문과 IT 부문에서 인간이 의도하는 것을 그대로 구현해줄 수 있는 혁명이 뒤따라야만 4차 산업혁명이 올 수 있어요. 기계가 점점 더 정밀해지고 화학이나 바이오와도 연결하는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봉진
    1976년 한국에서 처음 개발된 NC(수치제어) 선반과 개발진. 맨 왼쪽은 개발 주역이었던 이봉진 당시 KIST 자동제어연구실장.
    ―한국은 길게 보는 것이 잘 안 됐다는 건가요.

    "한국의 일부 민간 기업은 잘해오고 있지만 세계 10대 산업용 로봇 회사에 한국 업체가 없다는 것은 참담한 현실이지요. 기술 개발이 정치 등 전문성 이외 부분에 너무 휘둘리니까 그런 것 같아요. 저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정권 바뀐 이후 1983년 KIST에서 쫓겨나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화낙의 스카우트 제의에 응했던 것이고요. 한국정밀공학회는 제가 일본 가기 전에 만들어놓고 간 거예요. 4차 산업혁명이 온다면서 이제서야 대비한다고 하지만, 한국은 이미 30년 전에도 기초를 세우고 발전시킬 기회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전문가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았던 거군요.

    "모든 것은 모티베이션(동기 부여)이거든요. 자기 직업에서 1등 하겠다, 좋은 회사, 좋은 나라 만들겠다는 마음이 들어야 일도 되는 거죠. 4차 산업혁명 대비하자고 하면서, 능력 없는 사람이 리더로 올라가고,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똑같이 취급하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겠지요."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요.

    "10년 20년 밀고 나가야 하는 일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조직의 리더로 앉아야죠. 4차 산업혁명이 온다는데 독일·일본에 비해 부족한 것 같으니 어떻게 빨리 따라갈 방법을 찾고 싶겠지요. 그런 움직임은 좋지만,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볼 줄 모르면 안 되죠. 누구한테 얘기 듣고 참고하는 것으로는 안 돼요. 리더가 선견지명과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픽
    도전 성공 기업에 투자비 보전해줘야

    ―정부에서도 4차 산업혁명 관련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요.

    "리스크(위험)를 지고 선도 기술에 도전하는 기업이 도전에 성공하면 투자비를 보전해주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여기저기 돈 대주는 것은 안 됩니다. 도전의 방향은 기업 하는 사람이 가장 잘 알 겁니다. 자기들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요. 관료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전쟁은 기업이 하는 거고요. 정부는 좋은 기업이 도전하다가 죽지 않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한국 공학자들이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까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기술에 대한 시(詩)를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읊을 줄 알아야 하는 거죠. 알파고나 딥러닝도 아직은 전부 기존 기술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더 발달하려면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혼(魂)에서 나오지요. 앞으로 50년의 혁신은 인간의 심오한 마음을 이해하고 끌어내는 데서 나올 겁니다. 그게 가능한 공학자·과학자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선도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2/03/2017020301585.html#csidxa22fb030c584993a428c8faa1e721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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