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피디아-페로몬 브릿지] 나도 모르게 유혹 당하는 세상, 알고보니 주위에 온통…

[중앙일보] 입력 2011.05.24 10:05 / 수정 2011.05.24 10:51

▶페로몬 브릿지(pheromone bridge) :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논리로 무장해서 제압해도 그건 그 때 뿐이다. 논리는 또 다른 논리에 제압되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성공하는 시대다. 정치도, 마케팅도 페로몬을 브릿지 삼지 않으면 힘든 시대가 됐다. 남녀 간의 사랑도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면 지속되긴 힘들다. 어떤 상황에서, 그 누가 됐든 인간 감성의 다리를 잇지 못하면 실패하는 셈이다. 바야흐로 유혹의 시대다. 중앙일보 온라인 편집국은 이를 페로몬 브릿지로 정의한다.

기도. [일러스트=강일구]
“여왕개미님이 말씀하신다. 오늘은 비가 올 것 같으니 빨리 줄을 지어 다른 곳으로 피신하라.” 1950년 미국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 (생물학)교수는 개미들이 의사소통을 할 때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내뿜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삼국시대부터 여성이 사슴향 주머니를 가슴에 품은 것도 똑같은 이치이다. 우리 주변에 유혹의 향기는 넘쳐난다. 공기 같은 것이다. 숨을 쉬면서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이게 지금은 경영에, 정치에, 비정부기구(NGO)의 전략에, 대학의 신입생 유치에…. 안 쓰이는 곳이 없다. 처음 논문을 발표한 윌슨 교수가 살던 시대와 달리 이젠 페로몬을 모르면 기업도, 정부도, 가정의 가장도 살기 힘든 시대라는 얘기다.

반면에 페로몬을 알면 팍팍한 세상에 다리를 갖게 된다. 따지고 보면 창업이라는 것도 페로몬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페로몬이 어느새 삶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있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널린 페로몬=현대인은 페로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어떻게 유혹하느냐에 따라 억만금을 주고도 못사는 사람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 제대로 잡았을 땐 기다리고 있는 대가가 크다. 희망과 위안을 받을 수 있고 목표를 따라잡을 수 있다.

유명 작가 필립 코틀러는 저서 ‘마켓 3.0’에서 “고객의 영혼을 사로잡는 기업이 성공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수십여 가지의 감정을 잘 요리해야 영혼, 즉 이성과 감성이 혼합된 마음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 바 '감동 경영'이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부동의 업계 1위가 된 건 사람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마케팅의 기본 요소인 4P는 Product(물건), Price(가격), Place(장소), Promotion(홍보)이다. 여기에 People(사람)을 더했다. 사람의 니즈(Needs)를 연구한 결과 바쁜 현대인은 뜨거운 커피를 손에 쥐고 나가길 원했다. 슬리브를 씌워줬다. 그러면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원했다. 일하면서 쉴 수 있는 회의룸, PC 등 편의시설을 제공해줬다. 스타벅스는 뉴요커와 뉴요커의 이미지를 갖길 원하는 이들을 유혹하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매출도 따라왔다. 커피에 페로몬 브릿지를 가미한 스타벅스의 전략은 누구나 마시는 커피로 세계 1위 기업이 되게 했다.

마음과 마음이 국경을 넘어 맞닿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일이 있다. 올해 초 리비아 사태가 터졌을 때 중국은 꿈쩍하지 않았다. 리비아 제재와 관련, 중국은 언제나처럼 몽니를 부렸다. 이런 몽니도 한 사람의 진정성에 무너졌다. 주유엔 리비아 대사다. 그는 “카다피는 나의 평생 친구였지만, 법정에 세워야 합니다. 유엔이여 부디 우리를 살려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안보리는 만장일치로 제재안을 결의했다.

정치판에선 여러 형태의 눈물이 페로몬 브릿지가 되기도 한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의 눈물’ CF가 그랬고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눈물 연설이 그랬다. 지난 대선에선 이명박 후보가 할머니를 부둥켜안은 채 눈시울을 적시는 광고도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섬세한 눈물을 활용한 것이다. 눈물이 표로 이어지는 페로몬 브릿지 역할을 한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김연아 선수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IOC위원과 외신들은 그를 쫓아다니기 바쁘다. 김연아 선수의 일거수 일투족이 평창의 홍보 페로몬인 셈이다.

◇페로몬 브릿지의 윤활유는 소통=서로에게 페로몬 브릿지가 잘 연결되기 위해선 소통이 필요하다. 높게만 보이던 CEO가 어느새 파워 트위터러란 이름으로 대중에게 대가왔다. CEO와 대중 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친근해졌다. 이는 개인은 물론 기업의 브랜드 가치로 연결된다. 브랜드가치는 '브랜드 페로몬'으로 고객에게 다가서는 촉매제가 되는 셈이다.

㈜두산 박용만 회장과 소프트뱅크 손정의 사장은 트위터로 페로몬 브릿지를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유머엔 유머로, 질문엔 답변으로, 비난엔 사과로 대화를 나눴다. 박 회장은 두산그룹에 지원한 한 구직자가 “불합격 공지를 다른 방법으로 표현해달라”고 요청하자 “바로 조치하겠습니다”라고 답하며 바로 수정 지시를 내렸다.

손 사장은 의연금 100억엔 기부가 지연돼 “거짓말 한 게 아니냐”는 글이 올라오자 “준비가 늦어져 죄송하다. 무력한 나에게 화가 난다”며 개인적인 고충도 털어놨다. 이에 트위터러는 소통 방식에 대해 호평했다. 140자의 끈으로 인해 서로의 페로몬에 매료됐다.

페로몬을 잘못 이해하고 엉뚱하게 쓰는 경우도 있다. 최근 청와대가 각종 인사를 할 때 출생지와 출신 고교를 빼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출신 지역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해 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위급의 지역논란이 이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그런데 인사 검증 단계에서 지역을 고려하지 않는 게 아니라 발표 때만 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는 고소영(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 편중) 내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오히려 출신 배경을 상세히 설명해야 할 판에 ‘눈 가리고 아웅’했다. 검색 한 번이면 공인의 신상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세상인데 말이다.

UCO마케팅그룹 유재하 대표는 “일방적인 주입이 아닌 공감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이 느껴져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며 “지금껏 보여주지 않은 방식으로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면 더 긍정적인 페로몬 브릿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