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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을 시행한 후 국내 일반 소비자들의 스마트폰 구매 비용이 미국, 일본 등 외국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최신형 스마트폰 중에서도 소비자부담이 많게는 4배 이상 차이가 나는 기종도 있었다. 단통법 실시가 국내 소비자들을 '국제 호구'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늘어난 부담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시장도 얼어붙는 추세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단통법이 시행된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일주일 동안 이동통신 3사의 일일 평균 가입자는 44만5000건으로 집계됐다. 9월 평균인 66만9000건에 비해 33.5% 감소한 수치다.

단통법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어떤 형태로든 통신사에서 지급할 수 있는 보조금 한도가 30만 원을 넘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대리점 보조금까지 합쳐도 34만5000원이 지원 한도다.

시행 첫주엔 소극적인 규모로 보조금을 지급하던 이통사들이 지난 7일부터는 모델별로 3~5만 원 정도 지원 폭을 늘렸지만 그동안 수십만 원씩 할인을 받아왔던 소비자 입장에서 성에 차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의 새 스마트폰인 '갤럭시 노트4'를 구매할 계획이던 소비자 김성훈(29)씨는 "휴대폰 가격이 너무 비싸졌다"면서 "출시 십여 일이 지나도록 아직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고 털어놨다.

현재(10월 10일 기준) 이 기종을 가장 싸게 파는 곳은 KT다. 2년 약정으로 월 프리미엄 9만7000원 이상 요금제를 사용하면서 요금할인을 받으면 김씨는 71만3000원대에 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출고가가 95만7000원이니 이통사 지원이 24만 원가량 붙는 셈이다. SKT, LGU+ 등 다른 국내 이통사들이 지급하는 보조금 수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갤럭시 S5, 일본 2년 약정 조건보다 기기값 4배 비싸

그러나 미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사정은 급변한다. 김씨는 "당장 미국만 봐도 2년 약정을 걸면 30만 원대에 갤럭시 노트4를 구매할 수 있다"면서 "도대체 내가 왜 미국 소비자들보다 이 제품을 2배 가까이 더 주고 사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이통사인 버라이즌은 홈페이지에서 2년 약정으로 가입할 경우 299.99달러(한화 32만869원)에 갤럭시 노트4를 팔고 있다. 미국은 부가세가 없는 대신 주별, 도시별로 적게는 0%에서 많게는 10% 내외까지 판매세가 붙는데 이만큼만 덧붙여 내면 된다.

LG전자의 최신형 모델인 G3는 2년 약정시 버라이즌 판매가가 99.99달러(한화 10만6950원)이다. 반면 한국에서 이 모델을 2년 약정으로 구입하려면 적어도 65만9000원은 줘야 한다.

한국, 미국, 일본 중 삼성전자 갤럭시 S5를 2년 약정으로 구매했을 때 소비자 부담이 가장 적은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 이통사인 au는 타 통신사에서 2년간 이동해오는 조건으로 가입하면 이 기종을 1만6200엔(한화 16만738원)에 판다.

한국 소비자가 국내 이통사에서 2년 약정을 하고 내는 돈에 비하면 1/4 정도다. 보조금 지급 혜택이 가장 적은 기기변경 조건으로 구입해도 한국보다 14만 원가량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한국 소비자들이 받는 보조금은 일본, 미국 소비자들에 비해 한참 적은 수준이지만 이것도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단통법 실시 이후에 가입한 소비자들이 휴대전화 보조금을 많이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매달 7만 원 이상을 내는 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 3만 원 이하 월 요금제를 쓰는 소비자는 9만7000원짜리 요금제 사용자에 비해 심하게는 1/6 정도 수준으로 보조금이 줄어든다.

반면 미국은 대략 월 60달러(한화 6만4380원)가 넘는 요금제를 쓰면 휴대전화 보조금을 차별없이 지급받을 수 있다. 일본 역시 소비자가 월 6500엔(한화 6만4549원)이 넘는 요금제를 사용하면 보조금을 온전히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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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통법 첫날인 지난 1일. 종로의 한 휴대전화 대리점 앞을 행인이 지나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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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1만 원 내리면 이통사 순이익 많게는 9.5%까지 ↑

단통법 전에는 한국에서 갤럭시 S5를 일본보다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 지난 6월 10일 자정 전후로 국내 온라인 휴대폰 대리점에서는 갤럭시S5, 갤럭시노트3가 '공짜폰'으로 풀렸다. 8만 원 이상의 고가 요금제와 부가서비스를 3개월가량 유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단서가 없는, 누가 봐도 소비자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 대리점에서는 G3를 팔면서 웃돈을 얹어주며 소비자를 잡기도 했다.

이런 일이 벌어졌던 이유는 이통사들 사이의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인 6월 11일 집계된 번호이동 건수는 10만1199건. 방통위가 시장 과열 기준치로 제시하는 2만4000건의 4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결국 시장이 과열될수록 판매는 활발해지고 소비자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반면 단통법처럼 이통사의 자유로운 경쟁을 막는 규제가 생기면 소비자 편익은 제한적이 된다.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에 보조금이 1만 원 인하되거나 단말기 판매대수가 5% 줄어들면 SK텔레콤, KT, LGU+의 순이익은 각각 3.7%, 8.3%, 9.5%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다른 국가의 이동통신 서비스를 이용중인 소비자들 중 일부는 단통법의 내용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취재 중 일본 오사카시에서 만난 세토 모토히로(37)씨는 "보조금이 규제가 된 만큼 약정기간 동안 소비자가 누리는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좋아지느냐"고 물었다. '아직 그런 내용은 없다'고 답하자 그는 "그럼 소비자만 불쌍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미국에서 일리노이주에서 유학 중인 이아무개(34)씨는 "한국 시장의 문제는 어디서 휴대전화를 사느냐에 따라 가격변동이 너무 크다는 점 아니냐"면서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해서 경쟁 수준을 낮춰버리는 건 이상한 해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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