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를 든 시민 60만.. 세월호 추모 열기 확산

휴일 나들이 대신 조문… 연령 불문 ‘숙연한 행렬’경향신문 | 김여란·최인진 기자 | 입력 2014.05.01 22:24 | 수정 2014.05.02 00:56

서울광장에서도,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서도 아침부터 줄을 섰다. 1일 전국의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는 아침부터 추모객들로 붐볐다. 휴일인 노동절을 맞아 나들이 대신 분향소를 찾은 가족과 연인, 친구, 동호회 회원들의 줄이 이어졌다. 시험을 끝내고 온 학생들도 많았다. 이날까지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 수는 2일 오전 발표되나 안산 24만명, 서울광장 9만명을 넘었고 전국 지자체에 마련된 78개의 분향소를 합치면 60만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중간고사가 막 끝난 햇볕 좋은 날에, 서울광장 잔디밭에 앉은 두 소녀는 말없이 바닥만 봤다. 단짝인 박현정양(15)과 박채영양(15)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30분을 기다려 조문을 마치고도 아이들은 분향소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수영 수업을 해봐서 물 먹을 때 느낌을 알아요. 그 고통을 알 것 같아서 와봤어요. 제 또래들이잖아요. TV에서는 많이 봤는데 시험기간에는 뭘 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어요."





1일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조문하기 위해 제단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안산 | 사진공동취재단

서울광장 분향소에는 이날에만 오후 5시 기준 시민 9000여명이 찾았다. 지난달 26일부터는 총 9만여명이 다녀갔다. 고인들에게 인사하기 위해서 1시간을 기다리는 시민들로 광장은 가득했지만, 보통 광장에 어울리는 웃음과 말소리는 없었다. 어린아이들 몇몇만이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웃었다. 분향소 제단에 꽃을 바치고 묵념을 하고 나온 시민들은 대부분 눈시울이 붉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시민들은 광장 한편의 '추모의 벽' '노란 리본의 정원'에 못다 한 말을 적었다.

어머니와 함께 온 김동현군(9)은 "형아들 누나들 더 많이 살 수 있는데 못 살아서. 형아 누나들 대신 내가 잘할게"라고 썼다.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게 이렇게 부끄러운 일임을 처음 깨달았구나."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남은 제 인생을 바치고 봉사하는 자세로 살겠습니다."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해." 시민들이 엿새 동안 매놓은 노란 리본 4만여개는 빽빽한 벽이 되고, 광장 안 나무 밑동을 둘러싸고 나부꼈다.

한 초등학생은 추모의 벽 게시판에 천사 그림을 그려넣었다. "보통 천국에는 다 천사들이 있잖아요. 언니 오빠들 있는 하늘나라에서 어디가 좋은 델까 생각하니까, 천국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나온 이철씨(39)는 "할 수 있는 게 이뿐이라 나왔다. 정부는 희생당한 아이들에 대한 조치보다 선원, 국무총리 등 총대 메고 잘못을 무마하는 데 집중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7년 전 젊은 아들을 잃었던 김일만씨(68)는 합동분향소에 왔지만, 조문도 노란 리본에 한마디 적는 일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는 "그냥 한번 보러 오고 싶었다. 그 부모 심정들을 내가 아니까…. 그 마음이 내 마음이라, 뭐라고 써붙이고 싶으면서도 붙이면 뭐하나 싶다"고 말했다.





안산에선, 국화로1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 시민들의 조문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안산시에 마련된 정부 합동분향소에도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지난달 23일 합동분향소를 개설한 이래 이날까지 25만1000명이 다녀갔다. 추모 문자메시지도 9만2400여건이 도착했다. 분향소 옆에 마련된 게시판에는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는 검은 리본과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이 빼곡히 들어찼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은 TV로만 보던 아이들의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충북도청 분향소에서는 한 조문객이 지난달 30일 제단에 애절한 심경이 담긴 편지와 저금통을 놓고 가기도 했다. 곰 모양의 저금통에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는 글귀를 적은 노란 리본이 매어져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친구들이 떠나면 안되는 길인데 그 길을 떠나고 있네요. 어른이어서 미안하고 죄송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 김여란·최인진 기자 peel@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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