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박현모의 '세종 리더십'] 사물 개개의 특성 살린 세잔의 그림에서 세종의 통치철학을 보다

  • 박현모·한국형리더십개발원 대표

    • 크게
    • 작게

    입력 : 2013.12.21 03:04

    중용 실천한 황희,
    道家的 인물 맹사성 예법에 밝은 변계량…
    이질적 인재를 통합해 훌륭한 정책 펼쳐
    최신 지식 섭렵 등… 세종·세잔 공통점 많아

    박현모·한국형리더십개발원 대표
    박현모·한국형리더십개발원 대표
    올 한 해 가장 뜻 깊은 일을 들라면 미국에서 세종대왕 리더십에 대해 강의한 것을 꼽을 것이다.

    조지메이슨대와 프린스턴대에서 열흘간 세종 리더십 시리즈 강좌를 하면서 외국인들은 약간 다른 대목에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 학생들은 한글 창제나 측우기 발명에 대해서는 시큰둥했다. 대신 백성을 대하는 세종의 태도, 예를 들어 감옥의 죄수가 추위로 비명 횡사하지 않도록 보살피는 모습이나, 여자 노비에게 출산 휴가를 주는 자상한 마음씨에 큰 반응을 보였다. 조선에서 살려고 집단으로 국경을 넘어온 외국인들에게 세밑 잔치를 열어 주고 관직까지 하사하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소개할 때는 "정말이냐"면서 놀라워했다. 강좌를 마치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찾았다. 프랑스 화가 세잔(Paul Cezanne)의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필자는 엉뚱하게 세종의 정치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첫째, 세잔은 사물에서 반사되는 빛을 주로 그리던 종래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정물의 부피감과 배경의 공간적 깊이를 드러내 사물 개개의 특성을 살려냈다. 마찬가지로 세종은 인재의 개성과 신념을 존중하되 그 이질적인 인재들의 아이디어를 '합금'해서 뛰어난 정책을 만들어내곤 했다. 원칙을 강조한 '법가적' 인물 허조와 중용을 실천한 '유가적'인 황희, 소를 타고 다니며 피리를 불었던 '도가적' 인물 맹사성, 그리고 문장과 예법에 밝은 '불가적' 인물 변계량은 각자의 특장점을 발휘하면서 어전 회의라는 용광로에서 훌륭한 정책들을 만들어냈다.

    둘째, 세잔은 부피감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소실 원근법(receding perspective)'을 사용했다. 사과를 그릴 때 윤곽선을 직접 그리기보다는 사과의 가장자리가 깊숙이 침잠해 들어가는 것을 묘사해서 저절로 윤곽이 드러나게 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구름을 잘 그려서 달을 저절로 드러나게 하는 한국화의 '홍운탁월(烘雲托月)법'과 흡사하다. 마찬가지로 세종은 인재들 역량을 한정 짓지 않았다. 인재들 말을 끝까지 경청하여(烘雲), 그들 마음속의 진실된 바람이 저절로 솟아오르게 했다(托月). 그다음에 세종이 한 일은 그 진실된 바람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었다. 과학기술 분야의 장영실, 음악 분야의 박연, 그리고 북방 영토 분야의 김종서가 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인물이다.

    셋째, 세잔이 최신 그림 기법을 배우는 데 열심이었던 것처럼 세종은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최첨단 과학 및 음운학 지식을 섭렵하여 창조적인 성과를 냈다. 메를로 퐁티는 "세잔은 파리에 있을 때 매일 루브르 박물관에 가 '과학적인 화법', 즉 평면이나 기하학적 연구 등 새롭게 개발된 그림 기법을 터득하려 했다"고 전했다. 그런 그가 수백 번의 반복 작업을 하면서 되물었던 질문은 '내가 대상을 잘 그렸나' 하는 게 아니라 '과연 내 그림의 취지(significance)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비춰질 것인가'였다고 한다. 세종도 자기 정책의 취지가 왜곡되지 않고 신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인가를 더 깊이 묻고 사색했다.

    세인트 빅트와르 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소나무들 사이로 발그레 상기된 듯한 산을 그린 세잔의 '세인트 빅트와르 산'을 보는 순간 필자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세잔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면 늘 자신의 고향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의 이 산을 찾곤 했다고 한다. 30여년간 수백 번도 더 그 산을 찾아가서 계절마다 달라지는 수백·수천 가지 모습을 스케치했고, 그중 30여 장 그림이 남아 있다는 설명을 듣는 순간, 문득 '세종실록'을 떠올렸다. 정치가 안 풀릴 때면 세종은 늘 궁궐 밖을 나와 백성들을 만났다. 백성들의 말을 들으면서 국가는 왜 필요하며, 국왕은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확인하곤 했다.

    불현듯 나의 세인트 빅트와르 산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평생 되돌아가 읽어야 할 학문의 산은 어디일까? '세인트 빅트와르 산'을 보면서 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종실록'은 상상력의 샘 깊은 물이요, 리더십 콘텐츠의 무한한 광맥이다. 그런데 만약 20여 년 더 '세종실록'을 거듭 읽고 그 속의 무한한 리더십 이야기를 계속해서 퍼 올린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세종실록 속 100가지 리더십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겠다는 다짐을 한 것은 바로 세잔의 그림 앞에서였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