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들어선 뒤…“한 집 걸러 암 환자”
충남 당진시 석문면 교로2리 마을 어귀에서 바라본 당진 화력발전소. 그 사이로 765㎸·154㎸ 등 각종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어지럽게 이어져 있다. |
송전탑 갈등, 환경 불평등 문제다
충남 당진시 교로 2리…“개구리 소린지 도깨비 소린지, 웅~웅”
80여가구 150여명 주민 중 지난 10년간 암 사망 주민이 30여명
경남 밀양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765㎸ 고압 송전탑은 이미 전국에 902기가 설치돼 있다. 송전선로의 길이는 모두 457.3㎞에 이른다. 강원도에 가장 많은 333기가 들어섰고, 충남 265기, 경기 252기 차례다. 주민들은 길게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송전탑 곁에서 살아왔다. 처음에는 그저 ‘전기를 실어나르는 시설’이라고만 생각했다. ‘마을 발전의 신호탄’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한겨레> 취재진이 10~11일 찾아간 강원도 횡성과 충남 당진, 경기도 안성 일대 송전탑 주변 주민들의 삶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이곳은 어쩌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밀양의 내일’인지도 모른다.
“송전탑만 생각하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아무래도 맨몸으로 그냥 나가야 하는 건가 봐.” 충남 당진시 석문면 교로2리에 사는 김금임(75·여)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씨의 텃밭에서 겨우 40여m 떨어진 곳엔 765㎸ 송전탑이 위압적으로 서 있었다. “개구리 소린지 도깨비 소린지, 웅~웅~ 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워요.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특히 더해. 집에선 양쪽으로 송전선이 가니까 밤에 누우면 잠을 못 자겠어요.” 김씨는 지쳐 보였다.
교로2리에서 3㎞ 떨어진 곳에 있는 ‘당진화력발전소’는 현재 모두 8기의 발전소를 가동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시작한 765㎸·154㎸의 두 갈래 송전선이 브이(V)자 형태로 이 마을을 지난다.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보면 765㎸ 선로까지의 거리는 약 300m, 154㎸ 선로까지는 약 400m다. 게다가 2015년까지는 민간사업자인 ‘동부발전’이 추가로 2기의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별도의 365㎸ 송전선이 또 이 마을에 들어설 예정이다. 임관택(55) 이장은 “우리 마을은 밀양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송전탑을 추가로 세운다는 건 사실상 주민들은 다 죽으라는 이야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이 지역에 송전탑이 완공된 1999년 이후 암환자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80여가구 150여명의 주민 중에서 현재 암 투병 중인 주민이 9명, 지난 10년 동안 암으로 사망한 주민은 30여명이라고 한다. 지난해 폐암 수술을 받은 김금임씨는 “아무래도 송전탑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는 이 마을 어른들 모두 건강했는데, 갑자기 암환자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지난 5월 폐암 판정을 받았다는 김명각(76)씨와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말 그대로 ‘한 집 걸러 암환자’라고 했다. “저기 교회 사모님도 2년 전 폐암으로 죽었고, 파란 지붕 집에 사는 김씨 부인도 60도 안 되는 나이에 폐암으로 죽었어요. 이 앞에 하얀 집 아저씨는 얼마 전에 암 수술을 했고….” 김씨는 자포자기라도 한 듯 ‘암’을 되뇌었다.
철탑 바로 아래에서 농사 짓고
수백m 거리에 마을 있는 곳도
“새들이 하루 몇 마리씩 떨어져” 67개 지역서 암 발병도 높은데
정부는 “상관관계 없다” 말만
한전 보상금 놓고 주민 갈등도
산업통상자원부의 용역 보고서인 ‘전국 고압송전선로 주변 지역주민 암 관련 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보면, 154㎸·345㎸의 송전선이 지나는 67개 지역 주민의 암 발병 위험도는 다른 지역에 견줘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전력공사(한전)는 줄곧 “고압 송전선의 인체 위험성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태도다.
송전탑 주변 주민들은 경험을 배반하는 정부와 한전의 설명을 못 믿는다.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유동1리의 김영하 이장은 “송전탑이 들어선 뒤 암으로 4명의 주민이 죽었고, 지금도 52살밖에 안 된 주민이 폐암에 걸려 있다”며 답답해했다. 횡성군 갑천면 병지방1리 주민 정아무개(56)씨도 “가족 중 처음으로 아버지가 폐암에 걸려 5년 전 돌아가셨다. 그 뒤로 송전탑을 바라보기만 해도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그의 집은 765㎸ 송전탑에서 150m 떨어져 있다. 횡성군 청일면·갑천면 일대의 송전탑은 2003년 완공됐다.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도 심상치 않다. 유동1리에서 만난 김종필(46)씨는 “765㎸ 송전탑 바로 아래 축사가 있는데, 새끼 돼지나 송아지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평생 모아 산 논 서마지기가 거기(송전탑 주변) 있는데 깨를 심어도 콩을 심어도 다 시들어버려서 지금은 아무것도 못해. 그게 전분데….” 병지방1리 주민 김길화(75)씨의 말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아니나, 동식물에 대한 악영향은 개연성이 있고 앞으로 검증돼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전에 속았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의 마음의 상처는 더욱 깊고 치명적이다. 김길화씨는 “한전이 아무런 문제 없다고 하더니만…. 그게 들어서면 처음엔 여기가 시내가 되는 줄 알았지. 지금은 보기만 해도 겁나 죽겠어”라고 말했다.
송전탑 탓에 마을 간 갈등도 빚어졌다. 당시 병지방1리 이장이었던 신아무개(69)씨는 “우리 1리 주민들은 반대 데모를 열심히 했고 2리는 구경만 했는데, 한전이 준 1억4000만원의 ‘마을발전기금’을 두 마을이 나눠 받아 갈등이 심했다”고 말했다. 이웃들 사이의 틀어진 관계는 아직도 회복되지 못했다. 김순태(54)씨는 “보상금을 이렇게 써야 한다,
저렇게 써야 한다면서 주민들 간에 언쟁이 심했다. 돈을 다 쓰고 나니까 좀 잠잠해졌지만, 그때 싸웠던 사람들은 아직도 서먹해한다”고 말했다. 김금임씨는 “동부화력 건설에 찬성하는 주민 한두 명이 있는데, 마을에서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미비한 보상과 모호한 불안, 구체적 피해가 교차
하는 지점에서 송전탑 인근 주민들은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남아 있을 수도, 그렇다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날 수도 없는 현실 때문이다. 교로2리 임관택 이장은 “팔 수도 없고, 대출도 못 받는 것이 전국 송전탑 주변 땅의 공통적인 현실”이라고 했다.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신안성변전소’ 인근에 있는 쌍지리 사동마을 주민 손춘웅(66)씨는 2년 전 요도암 판정을 받고 한쪽 신장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신안성변전소에서 4년 동안 경비로 일하기도 했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송전탑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생각은 못 했어. 그냥 나이가 들었으니 병을 얻었나 보다 하고 한전에 물어볼 생각도 안 했지. 그런데 이상해. 변전소에서 일할 때 보면 하루에도 몇 마리씩 새들이 죽더라고. 죽어서 떨어진 것도 있고, 아직 살아 있는데 버둥거리는 새들도 있고. 모르겠어요. 이사를 가보려고 해도 땅이 팔리길 하나, 다른 데 가서 먹고살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진 안성 횡성/글·사진 송호균 서영지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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