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학생 등 1만8400명 ‘풀뿌리 시국선언’ 뜨겁다
등록 : 2013.07.25 19:51수정 : 2013.07.25 22:44
부산교구 신부들 26년만의 외침
‘정의는 죽지 않는다.’
25일 천주교 부산교구 신부들이 전국 15개 교구 중 처음으로 26년 만에 발표한 국가정보원 규탄 시국선언문 제목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처럼 신부들이 부산 중구 대청동 가톨릭센터에 모였다. 이들은 부산교구 전체 신부 350여명 가운데 은퇴한 원로신부와 외국에 나간 신부 등을 제외하고 활동중인 신부 250여명 중 절반가량인 121명이다.
이들은 “국정원이 대통령선거에 불법 개입한 것도 모자라 국기문란 행위를 덮기 위해 국가기밀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고 새누리당이 대화록을 불법으로 입수해 대통령선거에 이용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4·19 혁명과 부마항쟁, 6월 민주항쟁과 같은 민주시민의 항거에 부닥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부산교구에 이어 광주대교구 신부 200여명도 다음주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기로 했다. 광주대교구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과잉진압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바 있다.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 열기가 1987년 6월 민주항쟁만큼이나 뜨겁다.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이 번져온 지난 한달가량 뜻을 모은 이들은 대학생·교수·청소년·전문직을 비롯해 천주교 신부들까지 모두 1만8400여명이다.
1987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4·13 개헌 추진 중단 선언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은 4월부터 두달간 5500여명이 참여했다. 당시 시국선언은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다른 점도 있다. 시국선언에 나선 이들은 더욱 젊어졌으며 지식계층의 주도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자발성이 더욱 눈에 띈다. 87년 시국선언은 대학교수로부터 시작됐지만 올해 시국선언은 지난달 20일 비운동권으로 꼽히는 서울대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제안하는 성명 발표에 나서며 비롯했다. 특히 87년과 달리 올해는 고교생 등 800여명의 청소년이 시국선언에 나섰다. 부산교구 신부들의 시국선언에도 87년 시국선언을 주도했던 정의평화위원회나 정의구현사제단이 나서지 않았다. 지난 20일부터 사흘간 자발적으로 전자우편과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온 신부 121명이 뜻을 모았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다음 아고라에서 국정조사 청원 운동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10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활발한 시국선언과 달리 거리에 나와 직접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은 줄었다는 지적도 있으나, 이는 정치·사회적 상황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풀이가 나온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87년 당시에는 물리적 폭력이 심했지만 지금은 공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과 정당들이 많아졌다. 거리에 나오지 않아도 목소리를 낼 통로들이 많아지면서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공론장을 통해 해결되지 않을 때는 어떤 식으로든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장대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은 “지금도 주말마다 꾸준히 시민들이 광장에 나오고 있다. 생활밀착형 이슈가 아닌데도 이 정도의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국회 국정조사 등 향후 추이에 따라 분노가 크게 폭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유빈 정환봉 기자, 부산 광주/김광수 정대하 기자 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