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40대에 甲富된 벤처투자 귀재 "제2 애플, 중국에서 나올 것"

  • 오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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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4.03.15 03:06

    '중국의 소로스' 에릭 리 청웨이캐피털 대표
    "美는 부익부 빈익빈 심해‐ 신분 상승 기회 많은 中이 더 우월"
    中이 美보다 발전적 체제, 中고위 권력층·기업가 대부분 평범한 가정 출신 대학생 대부분…
    中, 이미 창조경제 진입, 글로벌 비즈니스 초기인데 시가총액 100억달러 넘는 혁신적…
    유망한 벤처기업 가려내려면, 기업가의 자질이 가장 중요 지속성 있는 성장 가능성과…

    에릭 리 청웨이캐피털 대표
    에릭 리 청웨이캐피털 대표
    서울대 경영학과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기업가가 되겠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를 조사한 자료는 없지만, 지난 2012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159명 중 창업한 사람이 4명(2.5%)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과는 뻔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중국의 대표적 벤처 투자자이며 '중국의 조지 소로스'란 별명을 갖고 있는 에릭 리(李世默) 청웨이캐피털(成爲資本) 대표는 "만약 중국 최고 대학에 가서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본다면 학생들은 너도나도 '기업가가 되겠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다음번 애플이 중국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는 이유다. 그는 "알리바바(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가 크게 성공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10억이 넘는 중국인이 모두 자기 사업체를 갖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기업, 특히 IT 기업은 놀라울 정도로 기업가 정신이 살아 있습니다. 이들은 대단히 혁신적이고, 중국의 커다란 내수 시장은 이들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이들은 이제 막 글로벌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문턱에 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도 어마어마합니다. 애플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미국 UC 버클리로 유학 갔고, 스탠퍼드대에서 MBA를 딴 뒤 혼자 힘으로 벤처캐피털 회사를 세워 40대에 갑부 반열에 올랐다. 그가 투자한 35개 회사 가운데는 시청자가 약 7억명에 달하는 '중국의 유튜브' 유쿠(優酷), 중국 최고 비즈니스 호텔 체인 한팅(漢庭)호텔, 중국 거대 석유 기업 앤톤(安東) 오일이 있다.

    최근 조선일보가 주최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그는 한국 기업 중에서도 "온라인 게임 기업 '넥슨'처럼 기업가 정신이 살아 있고, 잠재력이 큰 회사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게임 등 디지털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패션 분야는 세계시장에서도, 최소한 아시아 시장에선 반드시 선두에 설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에릭 리 청웨이캐피털 대표
    주완중 기자
    에릭 리<사진>씨는 중국 체제 옹호론자이자 미국 체제 비판론자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10여년간 중국 기업의 눈부신 발전을 지켜보면서 ‘중국의 체제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즈니스의 견인차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2년 뉴욕타임스에 ‘왜 중국 정치 모델이 더 우월한가’를 기고해 전 세계적으로 파문을 일으켰고, 이듬해 TED 강연에선 “자유민주주의를 보편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서양의 오만”이라고 해서 다시 한 번 정치 논쟁의 불을 댕겼다.

    그는 미국 체제가 통념과는 달리 신분 상승 기회가 오히려 적다고 비판한다.

    “미국에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지요. 이러한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지금 중국의 고위 권력층을 보면 대부분이 평범한 가정 출신입니다. 중국 최고 권력 기구인 정치국 회원은 25명인데, 불과 5명만이 부와 권력을 가진 집안 출신이고, 나머지는 그저 평범한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불과 한 세대 만에 무명씨에서 중국의 톱 리더까지 계층 상승이 이뤄진 겁니다. 또한 알리바바나 텐센트(게임 업체이며 카카오톡의 2대 주주이기도 하다) 같은 중국의 수많은 창업가는 모두 평범한 가정 출신입니다.”

    기자는 최근 세계 경제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대런 애스모글루 MIT 교수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과 관련한 질문을 던져봤다. 책의 핵심 요지는 기회의 균등과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이른바 ‘포용적 체제(inclusive institutions)’를 가진 나라는 지속적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비(非)포용적 체제를 가진 나라는 경제 발전이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포용적 체제와 비포용적 체제의 대표 사례로 각각 미국과 중국을 들었다. 에릭 리는 “나도 그 책을 읽어봤고, 주장하는 바에 대체로 공감한다”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문제는 저자가 포용적 체제와 비포용적 체제로 제시한 국가의 예를 완전히 거꾸로 들었다는 겁니다. 저는 미국의 체제야말로 대단히 비포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익부 빈익빈이 된다는 점에서요. 반면 현재 중국의 정치 체제는 역사상 가장 포용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포용적 체제의 조건 중 하나로 사유재산권 보장을 꼽았습니다. 그 점에선 서구 체제가 더 도움된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까?

    “그건 복잡한 문제입니다. 물론 재산권 보장은 사업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하죠. 그런데 보장할 사유재산권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면 사유재산권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엔 중국 사회의 시스템은 비교적 개인 소유권을 잘 보장하고 있으며, 미래를 위한 기업의 혁신에 정부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볼 때 비교적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유재산권과 비즈니스의 상관관계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며, 그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중국 고위층의 부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미래의 중국이 지금까지처럼 무명씨의 신분 상승을 보장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그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패가 중국의 가장 큰 리스크인 것은 맞습니다. 그건 매우 복잡다단한 문제이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해결책은 어느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 역사상 가장 엄격한 부정부패 척결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부정부패로 체포되는 관료 수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

    “중국의 체제, 미국보다 ‘포용적’이다”


    에릭 리씨에 따르면, 서구 세계가 중국의 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가 주도하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조만간 벽에 부딪혀 구소련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보는 ‘즉각적 붕괴 학파’, 다른 하나는 중국 역시 언젠가는 시장을 개방하고 민주주의를 도입해서 서구 선진국과 똑같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평화적 진화학파’다.

    하지만 중국은 둘 중 어느 한 쪽의 예상도 만족시키지 않은 채 제3의 길을 걷고 있다고 에릭 리씨는 말했다. 그러한 체제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도 높다. 미국의 싱크탱크 Pew 리서치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약 30년간 중국인들의 국가 정책 방향에 대한 만족도는 지속적으로 8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5년 전에 비해 지금의 삶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70%가 “만족한다”고 했다. 만족도가 불과 20~30%대에 불과한 서구 선진국들과 대조되는 결과다.

    그는 “지금의 중국 체제가 전 세계에서 혁신을 아주 잘 뒷받침해주는 국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IT 기업을 보십시오. 혁신 정신 없이 중국 IT 기업 같은 곳이 탄생할 수 있을까요? 예술은 또 어떻습니까? 그림 값이 7자리 숫자를 넘는 전 세계 최고 현대미술가 35명 가운데 10명이 중국인입니다. 이것이 과연 혁신이나 창의성 없이 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중국이 벌써 창조경제로 접어들었고, 중국의 경제, 정치 체제가 창조경제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벤처캐피털 업계에 막 들어온 1995년만 해도 사람들은 ‘중국에선 절대 시가총액이 100억달러가 넘는 IT 회사는 나오지 않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중국은 혁신의 땅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죠? 지금 시가총액 100억달러가 넘는 회사는 중국에 널려 있습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를 포함해서요(텐센트는 홍콩 증시에 상장했으며, 시가총액이 12일 현재 1500억달러를 넘는다. 알리바바는 아직 상장하지 않았지만 상장할 경우 시가총액이 1000억달러를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애플(약 4800억달러)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향후 5년 내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회사는 중국의 IT 업체가 될 겁니다. 또 세계 톱 5위 안에 들어가는 기업 중 2~3개도 중국 회사가 될 겁니다.”

    “사람에게 문제가 있으면 절대 투자하지 마라”

    에릭 리씨는 벤처캐피털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 우연이라고 했다. 중국 비즈니스 중심지 상하이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기업가가 되길 원했지만,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안 뒤 꿈을 포기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벤처캐피털 업계에 대해 알게 됐죠. 벤처캐피털리스트는 기업이 성장하는 걸 볼 수 있고, 성장하도록 힘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지만, 기업가들처럼 사람들을 다루는 법에 능숙하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그게 제가 이 일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그는 ‘될성부른 떡잎’을 간파해서 중국 유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7년 전, 에릭 리씨가 온라인 비디오 사이트 유쿠에 투자했을 당시만 해도 이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유쿠는 유튜브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큰 온라인 비디오 사이트로 성장했다. 약 7억명에 이르는 시청자에, 시가총액도 70억달러 가까이 된다. 중국 전역에 체인 1000여개를 가진 한팅 호텔 역시 에릭 리씨가 투자를 시작한 6년 전엔 중국 내 호텔 수가 40개에 불과한 작은 업체였다.

    ―전도유망한 기업을 가려내는 당신만의 기준은 뭔가요?

    “저는 세 가지를 봅니다.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만약 투자를 해야 하는 사람의 자질에 문제가 있을 경우엔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에게서 가능성이 엿보인다면 부수적 조건이 별로 탐탁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결점은 고쳐 나갈 수 있습니다. 제가 투자를 결정했을 때 유쿠는 그저 사업에 대한 개략적 구상을 적어 놓은 종이 한 장밖에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계획이란 것조차 변변치 못했지요. 그들이 가진 것은 그저 종이 한 장과 기업가 정신이 전부였습니다. 그걸 보고 전 그들을 지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유쿠는 순전히, 아니 ‘순전히’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상당 부분 사람을 믿고 투자한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지속성이다. ‘내가 투자하려는 기업이 얼마나 오랫동안 한 업종, 같은 일을 오래하면서 성장해 나갈 여지가 있을까?’를 살펴보는 것이다. 에릭 리씨는 셋째 조건을 ‘장벽(barrier)’이라고 표현했다.

    “많은 사람이 성장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품고 중국으로 옵니다. 하지만 성장 그 자체로는 부(富)를 창출할 수 없습니다. 저는 부는 이 ‘장벽’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당신은 경쟁자가 당신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장벽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당신의 경쟁자가 될 수 없도록 사업 면에서 지속성이나, 남다른 제조법이나, 사업 노하우나 브랜드 같은 걸 갖고 있어야죠. 저는 몇 년 전 휴대폰 기기에 들어가는 스피커와 마이크로폰 같은 음향 장치를 제조하는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이곳은 지금 이 분야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어요. 탁월한 기술로 다른 업체들의 진입을 막은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중국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성공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로 다른 시장에서 통했던 공식을 중국에 그대로 써먹는 것을 꼽았다.

    “많은 글로벌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사업할 때도 표준화된 방식과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고,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이 점이 현지 시장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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