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화제! 이사람]차범근 수원삼성 감독
동아일보 | 기사입력 2007-09-23 03:17 | 최종수정 2007-09-23 04:19 기사원문보기
[동아일보]

《당시 유럽 최고 리그였던 독일 분데스리가를 휩쓴 ‘갈색 폭격기’가 K리그의 명감독이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세월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차붐’ 차범근(54) 수원 삼성 감독도 그랬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축구스타 차범근.

그가 지도자로 11년 반 동안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하며 세월이란 명약을 통해 최고의 감독으로 변신해 가고 있다. 2004년 수원 삼성을 맡아 K리그 최강팀으로 변모시킨 차 감독을 20일 경기 화성시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차붐’이 변했다

스타플레이어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스포츠계의 정설은 사실 주위의 기대가 너무 큰 탓에 나온 얘기다. 기대가 크다 보니 실망이 큰 경우일 터. 스타 출신 감독이 자기 눈높이에서 너무 성급히 성적을 내려다 보니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많다. 차 감독도 분명 시행착오를 거쳤다.

“젊었을 때는 패기와 모험심이 넘쳤지요. 시간이 지나니 그때 볼 수 없었던 게 보이더군요. 이제 좀 더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합니다.”

차 감독은 자신이 변했다고 인정했다. 2004년 팀을 맡자마자 K리그 우승컵을 안았고 2005년 하위권으로 처졌지만 2006년 준우승, 올해 상위권 성적을 거두며 꾸준하게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는 원동력은 변화의 힘이다.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춰 지도하고 주위를 돌아보고 고민하고 결정하는 여유가 팀에 활력을 주고 있다. 이용수 KBS 해설위원은 “행동이 부드러워졌고 얼굴 표정엔 여유가 넘친다”고 평가한다.

○축구에 대한 열정

“스피드가 없으면 팬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왜 재밌습니까.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게 플레이가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차 감독은 선수들에게 빠른 템포를 강조한다. 태클을 당해 넘어졌어도 바로 일어나 뛰라고 한다. 경기를 일부러 지연시키는 선수는 호되게 혼난다. 훈련도 빠른 템포에 맞춰 실전처럼 치러진다. 비싼 돈 내고 경기장을 찾는 팬들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차 감독은 키커 등 독일 축구잡지와 TV, 비디오 등을 통해 유럽 축구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적용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의 컴퓨터엔 축구에 대한 자료로 가득 차 있다.

○팬을 위한 축구

“어찌됐든 관중석으로 뛰어든 안정환이 전적으로 잘못했습니다. 선수는 팬을 위해 뛰어야 합니다. 스탠드가 비어 있어 일부 팬의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특수한 상황이었죠. 유럽에서는 팬이 꽉 차 들리지가 않아요. 그래도 경기 외적인 것 가지고 비난하는 팬은 유럽엔 없습니다.”

▲ 촬영·편집 : 변영욱 기자

이관우, 백지훈에 이어 올해 안정환까지 영입한 이유는 팬 서비스 차원이다. 스타가 있어야 팬들이 즐겁기 때문이다. 스타플레이어들이 박진감 넘치는 공격 축구를 보여 준다면 스탠드는 자연스럽게 찬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평균 관중 3만 시대를 열고 싶어요. 현재 2만2000명쯤 되는데 이 정도면 제가 1979년 프랑크푸르트에 처음 갔을 때하고 같아요. 선수들이 뛸 맛이 나야 해요. 팬들의 응원이 있어야 선수도 신나고 선수가 잘해야 팬도 신나는 법이죠.”

○K리그 발전하려면

“대표 선수 몇 명 있다고 강팀은 아닙니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선수층이 얇아요. 한두 명이 부상으로 빠지면 전력에 큰 공백이 생겨요. 요즘 FC 서울도 그렇잖아요. 선수층이 얇다 보니 구단 간의 실력차가 유럽처럼 크지 않아요. 외국인 선수만 잘 뽑으면 약체도 바로 강호로 바뀌는 구조입니다. 결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K리그에서 뛰는 게 가장 좋은 훈련입니다. K리그 위주의 대표팀 운영이 한국 축구를 발전시킬 수 있죠.”

차 감독은 선수를 잘 키우는 유소년 시스템을 강조했다.

“제가 17년 전 축구교실을 만들면서 유소년 축구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프로팀들이 유소년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프로리그 창설 25년째, 월드컵 4강국이라는 게 의심스럽습니다.”

차 감독은 1990년 차범근 축구교실을 만들어 유소년 축구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차 감독은 한국 선수의 몸값 거품에 대해선 “시장 논리로 보면 된다. 얇은 선수층 속에서 구단들이 저마다 특정 선수를 원하니 선수 몸값이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사령탑은 아직

“허허∼. 제가 대표팀 감독을 다시 하긴 힘들지 않겠어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2차전에서 네덜란드에 0-5로 진 뒤 벨기에전을 남겨 두고 갑자기 경질된 악몽은 아직도 차 감독을 괴롭히고 있다.

“대표팀 감독은 지도자라면 누구나 꿈꾸고 있는 목표입니다. 하지만 전 아직은 생각이 없습니다. 수원 삼성을 통해 팬들에게 기쁨을 주는 역할로 만족합니다.”

○3대가 축구인

요즘 차 감독은 맏딸 하나 씨가 낳은 외손자 정의영(2) 군과 인터넷 화상 대화를 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홍콩에 사는 손자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예뻐 죽겠어요. 얼마 전엔 축구클럽에 가입했어요. 우린 3대가 축구를 하고 있는 거죠. 두리(독일 코블렌츠)도 빨리 결혼해야 하는데 아직 생각이 없다고 해 걱정이에요.”

차 감독은 올 추석을 선수들과 보내야 한다. 부인 오은미 씨가 최근 소속팀을 옮긴 두리를 돌보기 위해 독일로 갔고 막내 세찌(21)도 스위스에 있기 때문이다.

“감독이 선수들 지도하는 게 가장 큰 기쁨 아니겠어요. 추석 때 선수들과 즐겁게 보낼 겁니다.”

차 감독은 축구 얘기할 때 가장 행복한 표정이 나온다.

화성=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사진=변영욱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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