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념삼천

프로파일 낯설은 그리움  2019. 12. 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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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부성불’,’즉신성불’,’일생성불’을 나타내는 일념삼천

이 십계호구 법리의 안목은 구계의 중생의 생명에 불계가 갖춰져 있다는 것, 즉, 구계의 중생이 모두 평등하게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데 있습니다. 불계를 갖추지 않은 구계도 없을 뿐더러 구계를 떠난 불계만의 부처도 없습니다.

범부’는 보통 사람을 뜻합니다. 십계호구라면 보통 사람의 몸에 부처의 경애를 열수 있습니다. 이것을 ‘범부즉극(凡夫卽極)’ 혹은 ‘범부즉불(凡夫卽佛)’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대성인은 “범부즉불이고 불즉범부이며”(어서 1446쪽)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불은 인간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부처의 경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인간 세계와 동떨어져 어떤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범부의 몸 그대로 최고의 인간성을 열어 나타내는 것이 대성인의 성불관입니다. 이와 같은 성불을 ‘즉신성불’이라고 합니다. 즉신성불은 “몸 그대로 부처가 된다”라는 뜻으로, 중생이 구계의 범부 몸을 바꾸는 일 없이 부처의 경애를 얻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법화경 이외의 경전에서도 ‘성불’을 설하긴 했지만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중생이 악인이었다면 선인으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으며, 여성이었다면 남성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습니다. 즉 악인이나 여성이 그 몸 그대로 성불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사를 되풀이하면서 불도수행을 하여(역겁수행), 범부(구계)의 경애를 벗어나야 부처의 경애에 도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법화경 이외의 경전에서는 십계호구 즉 일념삼천의 법리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구계와 불계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고 여겨 왔습니다. 그에 반해 법화경에서는 십계호구를 설함으로써 성불은 ‘부처라는 특별한 존재로 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계의 몸에 ‘불계의 생명을 연다’는 의미라고 설했습니다.

어서에는 성불의 ‘성(成)’에 대해 “성(成)이란 연다는 의의이고”(어서 753쪽)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모든 부처를 부처로 만든 근원의 법이 바로 ‘남묘호렌게쿄’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근원의 법과 하나가 된 대성인 당신의 생명을 남묘호렌게쿄의 어본존으로 도현하여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남묘호렌게쿄의 어본존을 신수함으로써 누구나 스스로 생명에 불계를 용현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니치칸 상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본존을 신수하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한다면 우리의 몸이 즉 일념삼천의 본존, 연조(蓮祖) 성인이니라.” 어본존을 신수하고 광선유포의 실천과 신심을 관철한다면 범부의 몸 그대로 흉중에 대성인과 똑같은 부처의 생명을 용현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범부의 몸 그대로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즉신성불’과 일생 동안에 성불할 수 있다는 ‘일생성불’은 모두 같은 법리를 표현한 말입니다.

▶ ‘번뇌즉보리’, ‘생사즉열반’

이 즉신성불의 법리를 다른 각도에서 설명한 말이 ‘번뇌즉보리’ ‘생사즉열반’입니다.

소승교의 사고방식으로 본다면, 범부는 번뇌(탐, 진, 치 등 심신을 괴롭히는 마음의 작용)를 단절해야 비로소 깨달음(보리)을 득하여 성불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번뇌는 어디까지나 생명 그 자체에 본래 갖춰져 있는 작용이며 번뇌를 완전히 끊는다는 것은 현실의 생명활동을 중단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권대승교에서는 일단 번뇌즉보리에 대해 설하고는 있지만, 구계를 떠나야 비로소 부처가 된다고 설하므로, 실질적으로보면 소승교와 같은 깨달음의 사고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소승교나 권대승교의 가르침대로 본다면 부처는 현실 세계의 존재와 사뭇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반해 법화경에서는 범부가 겪는 번뇌를 단절하는 일 없이 즉시 부처의 보리(깨달음)를 얻을 수 있다고 밝힙니다. 물론 번뇌즉보리는 고뇌나 미혹이 그대로 깨달음(보리)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의구전〉에 “번뇌의 장작을 태워서 보리의 혜화가 현전하니”(어서 710쪽)라고 있듯이, 고뇌에서 도피하지않고, 신심을 근본으로 번뇌에 정면대응해서 싸웠을 때, 번뇌가 연이 되어 깨달음의 지혜가 나타나 번뇌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생사즉열반은 어본존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면 생사로 인해 얻은 괴로움 때문에 고통스러운 생명 경애를, 깨달음을 통해 안온한 경애(열반)로 열어 나타낼 수 있다는 뜻이며 번뇌즉보리와 더불어 즉신성불을 나타내는 법리입니다. 이 ‘번뇌즉보리’,‘생사즉열반’의 법리를 근본으로 했을 때 모든 고뇌를 자신의 성장과 행복의 인(因)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체득할 수 있습니다.

▶ 일념과 삼천의 관계

대성인은 일념삼천을 설명한 천태대사의 《마하지관》을 어서에서 인용하셨습니다. 이 《마하지관》에 위와 같이 쓰여 있고 통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통해 - 순간의 마음에 십계가 갖춰져 있다. 각각의 일계에 또 십계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백계가 된다. 그리고 그 일계에 삼십종의 세간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백계에는 즉 삼천종의 세간이 갖춰져 있다. 이 삼천의 제법은 일념의 마음에 있다. 만약 마음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가령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거기에 삼천의 제법이 갖춰지 것이다.〉

즉, 우리의 ‘일념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 ‘삼천의 제법’이 갖춰진다는 것이 여기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무한한 가능성을 나타내는 일념삼천의 법리

‘삼천의 제법’은 앞서 삼천의 구성에서 이야기한, 전 우주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현상입니다. 《마하지관》에서는 우리의 생명이 이 삼천을 갖추었음을 설명합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 순간순간의 생명에 전 우주가 갖춰져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일념은 삼천의 제법에 “빠짐없이 널리 미친다”는 것도 쓰여 있습니다. 즉, 일념삼천은 순간의 생명에 전 우주가 갖춰져 있다는 면과 반대로 순간의 생명이 전 우주까지 널리 미친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요컨대 순간순간 우리의 생명에 ‘무한한 가능성’이 내재해 있다는 희망의 원리가 일념삼천의 법리입니다.

▶ 십여시

우리가 매일같이 독송하고 있는 법화경 방편품 제2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곧 능히 제법실상을 구진하셨느니라. 소위 제법의 여시상, 여시성, 여시체, 여시력, 여시작, 여시인, 여시연, 여시과, 여시보, 여시본말구경등이니라.”

하나하나 설명하면 여시상의 ‘상(相)’은 표면에 나타난 모습, 형태입니다. ‘성(性)’은 우리 내면에 있는 성질, 성분입니다. ‘체(體)’는 주체 또는 본체입니다. ‘상, 성, 체’로 구성되는 삼여시는 현상의 본체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하의 각 여시가 기능면을 나타냅니다.

‘력(力)’은 내재한 힘, 잠재적인 능력. ‘작(作)’은 내재한 힘이 외부 세계에 나타난 작용. 이른바 ‘력’과 ‘작’은 잠재(潛在)와 현재(顯在)의 관계입니다.

다음의 ‘인, 연, 과, 보’는 생명이 변하는 인과의 법칙을 나타냅니다. ‘인(因)’은 결과를 초래하는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 ‘연(緣)’은 결과를 초래하는 변화의 보조적 원인. ‘과(果)’는 인과 연이 결합하여 생긴 직접적인 결과. ‘보(報)’는 그 결과가 형태로 나타난 것. 그리고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이란, ‘상’에서 ‘보’에 이르기까지 구여시가 십계의 모든 것과 일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 십여시는 지옥계면 지옥계의 십여시로서, 불계면 불계의 십여시로서 각각 서로 다른 작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십여시 각각의 모습은 십계 각각의 생명 경애에 따라 다릅니다.

▶ 삼세간

삼세간은 오음세간, 중생세간, 국토세간의 세가지를 말합니다. ‘세간’은 차이 또는 차별을 뜻하는 말로 십계의 차이는 이 세가지 차원으로 나타납니다.

오음세간의 오음은 색음, 수음, 상음, 행음, 식음으로 중생의 생명을 구성하는 다섯가지 요소를 말합니다. 오음의 ‘음’은 ‘집적(集積)’이라는 뜻입니다. ‘오음가화합’이라고 해서 모든 중생은 이 오음이 모여 성립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색음’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측면입니다. ‘수음’은 지각기관인 육근(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을 통해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는 심적 작용. ‘상음’은 받아들인 것을 마음에 떠올리는 작용. ‘행음’은 상음을 토대로 떠올린 것을 다시 행위로 연결시키는 마음의 작용. 즉, 의사(意思)나 욕구와 같은 작용. ’식음’은 색음, 수음, 상음, 행음의 작용을 통괄하는 근본의 심적활동 즉 인식, 식별하는 마음. 요컨대 중생의 심신이 오음이며, 오음의 작용이 십계에 따라 다른 것을 ‘오음세간’이라고 합니다.

이 오음이 하나가 된 것이 각각의 중생이며, ‘중생세간’은 중생에게도 십계의 차이가 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중생이 살고 있는 국토, 환경에도 중생의 생명 경애에 따라 십계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을 ‘국토세간’이라고 합니다.

▶ 일념삼천의 구성

‘일념’은 우리의 순간순간의 생명을 뜻합니다. 이 일념에 모든 현상과 작용을 의미하는 삼천의 제법이 갖춰져 있다는 것을 설한 법리가 바로‘일념삼천의 법리’입니다. ‘삼천’은 십계호구와 십여시, 삼세간을 모두 합한 말(백계×십여시×삼세간=삼천)인데 십계와 십여시, 삼세간이라는 각각 서로 다른 각도에서 생명을 파악한 법리를 하나로 합해 우리 생명의 전체관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일념삼천의 법문에 의해 생명이 종합적으로 파악되었고 모든 중생이 동등하게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 십계호구

십계는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수라계, 인계,천계, 성문계, 연각계, 보살계, 불계의 열가지 생명 경애를 말합니다. 이들 열가지 생명 경애는 십계의 모든 중생에게 빠짐없이 갖춰져 있습니다. 즉, 인계의 중생에게도 지옥계의 중생에게도 보살계의 중생에게도 각각 십계의 생명이 갖춰져 있습니다. 이처럼 십계 각각의 생명에 십계가 갖춰진 것을 ‘십계호구’라고 합니다.

□일체중생의 성불을 밝힌 십계호구의 법리

법화경 이외의 모든 경에서는 십계를 상호 간에 완전히 격리된 별개의 세계로 인식했고 이를 고정화해 왔습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타파하고 십계의 어떤 중생이라도 불계를 나타내어 성불할 수 있다는 변혁의 가능성을 설한 법리가 법화경의 십계호구입니다. ‘삼천’의 수량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십계호구를 보자면, 십계의 각각에 십계가 갖춰져 있으므로‘백계’라고 표현합니다.

[출처] 일념삼천|작성자 낯설은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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