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혁신이라는 손님을 맞이하려면

조선비즈
  • 이원홍 블루웨일 대표
  • 입력 2019.01.09 06:00

    이원홍 블루웨일 대표.
    얼마 전 급한 미팅이 있어서 택시를 잡으려고 15분을 거리에서 기다려도 강남역 한복판에서 택시 한 대조차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옆에 계신 아저씨에게 여쭤보니, 카풀 사업 시행에 불만을 가진 택시 운전사분들께서 파업을 했기 때문이란다.

    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2013년부터 공유경제 사업을 해왔다. 우버가 201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비스를 시작해서 최근 기업가치 1200억달러 (약 약 134조 3000억원)에 달하는 성과를 만들고 있을 때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 필자는 혁신의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장소와 그러한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는 혁신을 대표하는 실리콘 밸리가 있고 싱가포르는 정부 개혁의 상징인 테마섹이 있다. 실리콘 밸리야 워낙 혁신을 대표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싱가포르의 발빠른 행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싱가포르는 국토 면적이 불과 710 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공인 투자자들을 보유하고 있고 구글과 페이스북의 아시아 본사 또한 위치해 있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공유경제 서비스인 그랩(Grab)은 ‘아시아의 우버’라 불리며, 싱가포르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진출해 비즈니스 주도권을 쥐고 있다. 그랩의 CEO인 앤쏘니는 싱가포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싱가포르로 귀화, 사업을 확장 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인데, 그랩의 대주주인 테마섹이 바로 싱가포르 정부 소유의 투자 기관이다.(참고로 테마섹이 운영하는 투자 포트폴리오 규모는 무려 275조원에 달하며, 1974년 설립 이래 평균 투자 수익률은 15%라고 한다.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상징인 셀트리온도 테마섹의 투자를 통해서 지금의 국내 정상급 바이오 회사가 될 수 있었다.)

    필자가 지난 2년여 동안 싱가포르에서 기술 사업을 운영해 오면서 직접 경험한 싱가포르 혁신의 강점은 우수한 민관 협업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위치한 것은 규제완화를 통해서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싱가포르 정부의 뛰어난 행정 능력이다. 정부 주도의 적극적인 성장 전략을 앞세워 혁신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싱가포르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싱가포르 국민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지만, 싱가포르의 기술력은 현저히 부족하고 인구 규모도 작다. 그리고 다소 리스크가 있지만 혁신적인 사업을 하려는 젊은이들이 한국에 비해서 많은 수준이 아니며, 오히려 젊은 사업가들은 새로운 사업에 도전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어떻게 싱가포르는 국내 상황보다 좋지 않은 환경 및 인적 자원으로 혁신 주도의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 수 있었을까?

    싱가포르는 외국 사업가들이 자국에 와서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결과로 창출된 부를 국내 산업의 활성화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주변의 인접국가들을 잘 활용 하고 있다.

    얼마전, 싱가포르에 방문했을때 스태시어웨이(StashAway)의 최고 투자 담당자인 프레디 림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스태시어웨이는 인간의 업무를 최소화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투자를 하는, 로보 어드바이져 특허를 가진 기업이며, 최초로 이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양국 정부의 인가를 받아 운영하는 업체이다.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그에게 구했을 때, 관련 조언과 함께 비즈니스 진행을 위해 필요한 법률 자문회사를 소개해주었다. 그가 법률 자문회사를 소개한 이유 중 하나가 한국의 금융위격인 MAS의 정책 담당자들과 싱가포르 변호사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펌들이 직접 소통을 통해 비즈니스의 가능성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며 라이센스 취득 업무를 도와주기 때문이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신산업에 관련된 규정이나 라이센스의 미비로 초래될 문제를 미연에 방지 하기 위해 법리검토를 받는 것이 아닌,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일환으로 법무법인을 이용할 수 있고 정부와 규제 전문가들이 함께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방식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으며, 자원과 인력이 부족한 나라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특화된 방식임을 느낄 수가 있게 되었다. 또한, MAS 주관으로 매년 핀텍 페스티벌을 개최해서 전세계의 기업인들을 초청하고 정부 관계자들을 이들과 연결해서 새로운 기업가치를 발굴하고 기업들이 기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해오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싱가포르 정부의 정책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려는 수많은 기업들과 창업자들의 참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후문이다.

    미국은 막강한 자원과 해외 기업 및 인재들을 바탕으로 혁신을 주도했고 싱가포르는 정부 주도하에 해외 기업이 동남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안정적인 허브를 구축했으며, 신사업 및 융합산업을 선도해서 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 동안 규제 샌드박스 도입과 관련한 노력들이 있었지만, 이것이 혁신이라고 불릴만큼 큰 성공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필자는 그 이유가 규제 샌드박스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및 역할이 국내에 한정되어 있어 해외 기업의 참여와 교류를 제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규제 샌드박스가 국내에서만 한정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해외의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도록 글로벌스탠다드에 맞는 장소, 즉 자유경제구역과 같은 곳에서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이제는 혁신이라는 손님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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