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은 있으되 화살이 없는 ‘사드’, 어디에 써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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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종대의 군사

북한 미사일과 사드 레이더


북한이 중거리미사일(IRBM)인 화성-12호를 발사하고 이틀이 지난 5월16일. 국회 국방위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은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궤도, 발사 속도와 하강 속도, 미사일 형상과 중량 등 기술 정보에 대해 “분석이 필요하다”며 확답을 피했다. 우리 국방부가 분석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 미사일이 신형 엔진을 장착해 최대 고도 2100킬로미터, 이동거리 800킬로미터를 비행했다는 사실을 발사 동영상과 함께 공개했다. 북한의 발표는 전날 일본 언론이 전한 추정치와 정확히 일치했다. 우리 정부의 정보력 부재가 드러난 가운데, 북한은 21일에도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틀 뒤인 23일 미국 태평양사령부는 이를 준중거리미사일(MRBM)이라고 발표했다. 이때도 우리 국방부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에 대한 기술정보를 확보하지 못하고 판단에 혼선을 빚고 있었다.

날로 종류가 다양해지는 북한의 미사일은 야구에서 투수가 다양한 구종을 보유하는 것과 같다. 빠른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갖춘 투수는 타자가 대비하는 데 혼란을 주어 타자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 북한은 올해 들어와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제외한 거의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선보이고 있다. 단순히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와 같은 사정거리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비행방식(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연료의 종류(액체, 고체), 발사대 종류(이동식, 고정식), 신형 엔진 장착 여부 등 여러 변수를 다양하게 조합하는 형형색색의 전술이다. 이렇게 되면 한·미·일의 대응은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우선 북한 미사일이 미 본토 타격용인지, 태평양의 미 전진기지를 타격하기 위한 것인지 발사 목적을 가늠하기 어렵다. 북한 미사일 요격을 태평양사령관이 직접 지휘할 것인지, 주일미군사령관이나 주한미군사령관이 할 것인지를 즉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동맹국의 협조를 구하는 데도 상당히 복잡하고 정치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현란한 투구에 삼진을 당하는 타자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 이전에 이미 배치된 사드

이 때문에 미국은 한·미·일의 미사일방어체계를 단일 지휘관에 의해 운용되는 통합공중미사일방어(IAMD) 개념으로 통합하려 하고 있다. 4월26일에 성주에 사드 체계 일부가 배치될 무렵 해리 해리슨 미 태평양사령관은 상원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서 “통합공중미사일방어 구축을 위해 한국, 일본, 호주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며 “(성주에 배치한 사드도) 수일 내 작전운용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성주에 배치되는 사드의 목적이 대한민국의 안전이라기보다 태평양사령부가 중국과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범지역적 통합미사일방어의 전략구상 속에서 이뤄진 배치라는 뜻이다. 다양한 구종의 투구를 좀더 빠르게 분석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려는 타자의 심리와 같은 이치다.

사드와 관련해 2016년 미국 의회에 제출된 오바마 대통령의 예산제안서에서는 “세계 어느 곳이라도 항공기로 운용되며, 전개한 지 3시간 만에 작전운용이 가능한 야전 무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4월26일의 사드 배치에 대해 태평양사령관이 배치 즉시 작전운용이 가능한 상태로 돌입할 것을 예고한 만큼, 북한이 5월 중순 연이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성주에 배치된 사드 포대의 극초단파레이더(X-밴드)는 당연히 북한 미사일을 감시하고 있어야 했다. 사드 포대는 올해 3월6일 발사대 2기가 오산 미 공군비행장에 들어온 것을 필두로 4월23일까지 모두 한국에 반입된 상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29일이 되어서야 성주에 배치된 2기의 발사대 외에 4기가 추가로 한국에 반입되었다는 사실을 “충격적”이라고 받아들인 모양이지만, 이미 그 한 달 전에 사드 포대는 전부 한국에 전개된 상황이었다. 이렇게 긴박하게 전개되는 사드의 배치 양상에 대해 중국은 면밀한 관찰과 함께 추가 대응까지 고려했다. 국제정치의 거대한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 대통령만 그 과정을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북한, 5월 이후 잇달아 미사일 발사
사정거리, 연료·발사대 종류 등
다양한 조합의 실험 진행하는 중
한민구 “레이더가 탐지했다 들었다”

성주 배치 레이더엔 고압전류 연결 안돼
북 미사일 발사 순간 가동조차 안된 듯
한 발에 100억원 넘는 요격탄 도입 여부
발사대 논란에 가려 조명받지도 못해


집권하자마자 주변 4국에 특사를 보낸 문 대통령은 선거 때 표방한 바와 같이 한반도 사드 배치를 주변국, 특히 중국에 대해 외교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5월 중순에 중국에 특사로 다녀온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 대통령에게 “(사드 배치와 관련된) 한국 상황과 중국 인민의 뜻에 따라 한국 정부의 우려사항을 해소할 것”이라는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의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다. 이 말은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우려에 한국 정부가 진정성을 보인다면 한국 정부와 충분히 대화하고 경제 보복 등 현안 문제를 풀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특사로 갔던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이 사드 배치 과정의 절차적 문제를 미국에 제기하자 미국 정부도 “잘 이해한다”고 응답했다. 이런 사실을 보고받은 문 대통령은 비록 성주에 사드 포대의 절반이 배치되어 있지만, 나머지 추가 배치에 대해서는 주변국과 충분히 협의하면서 협력적 방식으로 해법을 내야 한다는 입장을 굳혔을 것이다.

‘가속’하려다 ‘과속’사고 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추가 배치될 4기의 사드 발사대가 이미 경북 성주 인근에 와 있다는 보고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은 “재검토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것 아닌가”라는 압박을 받았을 법하다. 더욱이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의 진상 파악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환경영향평가를 생략하고 사드 배치 강행의 프로세스가 전혀 통제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지난 정부 김관진 실장이 이끌던 청와대 안보실은 새 정부에 일체의 인계도 하지 않고 안보실의 컴퓨터는 다 지워버렸다. 국방부는 여전히 지난 정부를 답습하며 제 갈 길 가겠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4강 주변외교고 뭐고 문 대통령이 지난 정부의 비협조로 인해 외교·안보에서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입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기서 진상 조사 지시는 단순히 사드 문제에 대한 국방부의 고의적인 보고 누락 경위를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 대통령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도록 외교·안보 정책의 집행을 정상화하겠다는 데로 나아간다. 청와대는 보고 누락 경위를 조사한 데 이어, 기형적이고 비정상적으로 진행된 사드 배치에서 환경영향평가 등 준법 절차가 누락된 사실을 지목하며 이를 정상화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드러났다. 신속한 사드 배치와 초기작전능력(IOC)을 확보하겠다는 태평양사령부의 의도와는 달리 5월에 북한의 연이은 발사 상황에서 성주의 사드 레이더는 북한 미사일을 탐지하는 데 어떤 기여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5월16일의 국방위에서 한민구 장관은 필자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성주에 배치된 미군 사드 포대의 엑스밴드 레이더는 가동되지 않았느냐”고 하자, “미군 엑스밴드 레이더도 북한 미사일을 탐지했다고 들었다”고 답변했다. 미군이 뭘 탐지하고 식별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다만 “들었다”는 이야기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탐지라면 미군의 엑스밴드 레이더보다 우리가 갖고 있는 그린파인 레이더나 세종대왕함의 스파이 레이더가 탐지거리가 훨씬 넓기 때문에 미군의 레이더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그간 국방부의 설명에 의하면 엑스밴드 레이더는 탐지가 목적이 아니고, 극초단파로 적이 발사한 미사일의 탄두를 몇 센티미터 단위로 그 형상을 정확히 식별할 뿐만 아니라 궤도를 추적하는 레이더라고 했다. 심지어 국방부는 사드 레이더가 너무나 성능이 우수해서 진짜 탄두와 미끼 탄두를 구별하는 능력까지 갖고 있다고 했다. 미사일 요격을 위한 레이더는 사격통제장치와 연동된 초정밀 레이더여야 한다. 이 정도 탐지 수준이라면 성주의 사드 배치는 잘한 일이 아니라 아예 쓸데없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국방부는 사드 포대가 한·미가 공동으로 운용하는 자산이라고 말해 왔는데, 미군이 탐지했다는 허접한 수준의 정보를 들어서 아는 정도라면 더더욱 그 배치의 당위성은 희박하다.

더 이상한 것은 성주에 배치된 고출력 레이더에는 아직 고압 전류가 연결되지 않아 정상 가동이 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순간에는 가동조차 되지 않았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에서 “사드 배치를 가속화”한다며 부지 조성도 되지 않은 기지에 비정상적으로 들여온 사드는 ‘가속’이 아닌 ‘과속’ 사고를 내고 말았다. 환경영향평가가 되지 않아 고압 전류도 공급받지 못한 사드는 제대로 된 포상을 구축하지 못하고 야지에서 충격을 흡수하는 알루미늄 받침대 위에 임시로 거치되어 있다. 발사대가 2기냐 6기냐 하는 논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발사대 안에 들어갈 한 발에 100억원을 호가하는 요격탄은 제대로 들어왔느냐는 문제가 될 것이다. 이 문제는 발사대 논란에 가려 아직도 국방부가 제대로 밝히지 않는 중요한 대목이다. 활은 있는데 화살이 없다면 이 무기는 도대체 무엇에 쓰는 무기인지 더욱더 아리송하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올해 국방예산에서 사드 요격탄 생산을 위한 예산을 최소한으로 배정했으며, 3억6000만달러에 이르는 사드 예산은 대부분 시스템 업그레이드 비용으로 소모될 예정이다. 군사적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고 배치 자체가 목적이 된 사드에 대해 “정상적인 작전능력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고 해야 정확한 답변인데 한 장관은 왜 정상적으로 “탐지했다”고 답변한 것일까?

미국 미사일방어국장의 때 아닌 방한

‘알박기’로 무리하게 들여온 사드가 북한 미사일 방어에 유용한 무기라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잘 가동되고 있다”고 대답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 대답이 아니라면 4월26일에 기습 배치된 사드의 정당성은 일거에 허물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당성이 결여되고 군사적 합리성도 없는 사드의 조기배치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졌는지 그 전모를 밝히는 데 앞으로 청와대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 문제는 성주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의 데이터가 언제 태평양사령부 차원에서 동북아 미사일방어를 위한 통합미사일방어 시스템에 연결되는가이다. 지금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는 성주 사드 포대의 레이더 가동 여부가 아니다. 그 레이더의 데이터가 지휘통제관리시스템(C2BMC)을 통해 태평양사령부에 전송되고, 태평양사령관이 성주 사드 포대에 직접 교전명령을 하달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 여부가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대목이다.

사드를 성주에 배치하고 작전가동하도록 하는 당사자는 태평양사령관이지만 통합미사일방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정책적 기술적 책임자는 바로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국(MDA)이다. 6월4일 방한한 제임스 시링 미사일방어국장은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청와대 안보실장을 방문하여 사드 배치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고 돌아갔다. 만일 사드가 대한민국 방어를 위해 미국이 제공하는 무기라면 한국 내에서 진행되는 절차적 논란에 그가 끼어들 이유가 없다. 한국이 싫다고 하면 사드를 도로 가져가든지, 한국 국민의 뜻에 맡기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5월31일에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딕 더빈 미 상원의원이 바로 그 말을 했다. 그러나 예정에 없이 시링 국장이 급히 방한하면서 미국은 다시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우리 정부에 설득하는 양상이 펼쳐지고 있고,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해 “사드 배치를 철회할 뜻은 없다”고 응답하고 있다. 다만 정상적인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지금의 사드 과속사고를 정상화하는 시간을 벌겠다는 의미다. 그래서 6월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는 정상회담 의제에서 제외됐다. 한-미 간 치열한 심리전은 어떻게 귀결될까? 바야흐로 동북아 통합미사일방어와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라는 거대한 게임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문재인 정부에 맡겨진 관리 책임의 무게가 막중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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