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4차산업혁명 낙오자…뼈깎는 캐치업 전략이 돌파구

2017-03-26 18:00:07 

◆ D-CHECKING 코리아 ① ◆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 이용가능성 조사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6점을 받아 전체 평균(5.9점)에도 못 미쳤다. 최상위권은 핀란드 미국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등 구미 선진국이 차지했고 일본도 6.2점으로 우리를 훨씬 앞섰다. 정보기술(IT)강국이라 자부하며 첨단 기술에서 나름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온 자기평가와 객관적 실력 사이엔 꽤나 큰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실제 10개 내외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에서 한국이 존재감을 보이는 분야는 모바일·인터넷·앱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영역의 글로벌 톱 업체들을 보면 한국 업체는 사실상 전무하다.

인공지능의 경우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AI브레인 등 미국 업체들이 1~5위를 석권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3D 프린팅도 마찬가지다. 로보틱스에선 일본이 잘나간다. 화낙, 야스카와, 가와사키, 나치 등 상위 5개 업체 중 4개가 일본 기업이다.

전통산업에서 그랬던 것처럼 4차 산업에서도 캐치업(catch-up) 전략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기반기술은 하루아침에 구축하기가 어렵고 중장기 육성 전략이 필요하다. 매일경제와 롤랜드버거가 함께 만든 `제2한국 보고서`는 기반기술 성격에 따라 4가지 차별화된 캐치업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인공지능(AI)-민관 파트너십

인공지능 성능을 결정하는 것은 알고리즘 역량과 데이터의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기본은 데이터다. 딥러닝과 같은 기계 학습 방법에 기반한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에 기초한 학습을 통해 성능이 발전되고 정교화된다. 데이터 확보 차이가 결국 기술 격차로 이어지는데, 시장에 먼저 진출해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인공지능 상위 3대 기업은 데이터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구글은 인터넷 및 모바일 환경에서 엄청난 양의 공공 데이터(public data)를 확보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아마존은 고유 서비스를 통해 수집되는 개인 데이터(private data)가 중심이다. 이들 선점기업을 개별 기업 단위에서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다. 민관 파트너십을 통해 데이터 볼륨을 키우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중국은 이미 작업에 착수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빅데이터·딥러닝·뇌 스마트 기술 등 19개 과제의 국가공정실험실 설립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인터넷 `빅3`가 모두 참여하기로 했다. 칭화대 베이징항공항천대 등 학계, 중국정보통신연구원 중국전자기술표준화연구원 등 정부 산하기관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한국도 지난해 9월 지능정보사회추진단을 출범시키고 중장기 대책을 발표하긴 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브로드밴드·사물인터넷-인프라 확대

이들 기술은 관련 제품 및 서비스 개발에 인프라스트럭처 확장 및 안정성 확보가 중요하다. 성능과 가격에서 경쟁력이 있는 센서, 저렴한 데이터 통신 비용, 데이터 보안 기술 등이 주요 경쟁력이 된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넓은 유저 베이스를 기반으로 인프라를 구축한 미국 사업자들이 독보적으로 앞서 나가고 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IBM 구글 등이다. 국내 업체가 이들 기업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건 냉정하게 말해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국내 기업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사용기반 확대에 주력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사물인터넷은 센서와 네트워크가 양대 축인데 센서 기술은 미·중·일이 선점했다. 우리는 네트워크 인프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사물인터넷은 대용량 고속 전송을 주목적으로 하는 기존 통신과 달리 다량의 저용량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전송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연결 대상 사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때 다른 통신데이터들과 충돌이 없어야 하고 송수신에 따른 에너지 소모도 적어야 한다. 네트워크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국가가 사물인터넷의 테스트베드 지위를 선점할 것이다. 브로드밴드는 인터넷 접속 속도 세계 1위인 현재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목표다.

소셜네트워크·모바일 인터넷 앱-본 글로벌(Born Global)

"싸이월드가 실리콘밸리에서 출발했더라면 페이스북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변대규 휴맥스 회장 겸 네이버 이사회 의장의 말이다. 1999년 설립된 싸이월드는 SNS라는 개념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한때 가입자가 3000만명에 달했고 온라인 친구 `1촌`, 온라인 화폐 `도토리`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시가총액이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 했을 때 거기는 이미 페이스북이 생겨난 뒤였다. 국내에서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밀려 지금은 존재감조차 없어졌다. 싸이월드가 망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작용했겠지만 `우물 안 개구리`로 안주한 나머지 글로벌 시장 선점의 기회를 놓친 게 뼈아팠다. 네이버 메신저 서비스 `라인`은 글로벌화로 성공한 케이스다. 국내에서 카카오톡에 밀리자 일본으로 진출한 것이 주효했다. 지금은 일본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가입자가 2억명이 넘었다.

소셜네트워크나 모바일 인터넷 앱은 국경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미국의 페이스북 이용자들과 국내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이 전 세계에 통용되는 이 시장에서는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하는 게 중요하다. 이른바 `본 글로벌` 전략이다.

빅데이터·로보틱스·3D 프린팅·웨어러블-시장 조성

신기술과 시장의 관계는 닭과 달걀의 관계와 비슷하다. 새로운 기술이 이전에 없었던 시장을 만들기도 하고 시장의 필요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로봇이나 3D 프린팅은 4차 산업혁명의 대표 기반기술에 해당하지만 아직 충분한 시장이 형성되지는 못했다. 시장이 작다는 것은 투자 위험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혁신적 상품을 만들어내도 이를 구입할 소비자가 없다면 망한다. 따라서 투자를 꺼리게 되고 시장 참여자는 적고 기술의 진보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엔 정부가 인위적으로 초기 시장을 조성해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의 로봇 신전략이 이에 해당한다. 아베 정부는 2025년까지 노약자 생활 지원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 940만대를 보급하기로 했다. 2020년까지 2조4000억원 규모 시장을 만드는 것이 1차 목표인데 정부는 민간과 손잡고 1조원의 마중물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일단 이 정도 시장이 구축되면 그다음에는 시장 스스로 작동하면서 기술 발전을 자극하고 진전된 기술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전략이 주효한다면 세계 로봇시장이 발화하는 시점에는 일본 업체들이 시장을 제패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국 정부의 로보틱스 지원정책은 원천기술 및 부품 개발에 집중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기술 개발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선후관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 노원명 논설위원(팀장) / 박용범 차장 /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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