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종현 SK회장 유고

심기신 수련의 세계

제1부­기의 세계


● 수술을 받고 나서

나는 지난해 큰 수술을 받았고 아직 몸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다. 이런 내가 건강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혀 예상치 않은 상태에서 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고 수술까지 받게 됨으로써 일시적으로 충격이 컸다. 아무리 나이는 어쩌지 못한다고 하나 누구보다도 건강에 자신이 있었기에 병원의 진단 결과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재차 검사를 했으나 역시 같은 결과가 나왔으며, 꼼짝없이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 고비에 나는 일생의 동반자를 잃기도 했다. 운명이 가혹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지만 내게 준비된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사람의 생명이란 욕심대로 가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깨달음도 새삼 가지게 됐다.

지금의 나는 생각지 못했던 폐암 수술로 건강에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다. 그동안 지나치게 건강에 자신감을 가졌던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 것일까? 그러나 만약 「심기신(心氣身) 수련」을 모르고 오늘까지 왔다면 암이 던진 일격에 쉽게 무너져버리고 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10년만 더 일찍 기(氣)를 알아 나이 쉰이 되기 전에 수련을 시작했더라면 암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한 가닥 아쉬운 마음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어떠한 건강법도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하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불사(不死)가 아니라 심신이 고루 건강하게, 마음 넉넉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난 10년여 동안 수련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건강에 자신감을 가지고 기업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고, 지금 또한 건강의 회복에 강한 의욕을 낼 수 있는 것이 모두 수련 덕택이다.

한편 건강의 소중함은 건강을 잃어본 사람이 더 잘 안다는 말이 있다. 수술을 한 뒤 말 그대로 건강의 소중함을 더욱 실감했으며, 동시에 그동안 내가 해온 기 수련을 통한 건강관리에 더 큰 애착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수련을 거르지 않는다. 질병은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아서 치료해야 하지만 내 몸의 자생력을 기르는 것은 병에 걸리기 전이나 후나 모두 내 스스로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건강관리에서 생명력관리로

생활이 윤택해지고, 또 산업사회의 발달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됨에 따라 건강 관리(Health Care)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사람들은 건강관리라 하면 몸을 먼저 생각한다. 각종 스포츠를 통해서 체력을 높이고, 의사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질병을 예방하는 차원의 건강 관리를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몸 위주의 건강 관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우울증이나 노이로제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심인성(心因性) 질환이 현대인을 괴롭히고 고혈압이나 암, 당뇨 같은 현대병들도 정신적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은 몸과 마음을 한몸에 지닌 존재다. 따라서 몸 하나만 떼어서 보지 말고 마음을 같이 볼 수 있어야 한다. 심신(心身)을 함께 돌보아야 건강에 균형을 이루게 되고, 병 없이 오래 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심신일원론(心身一元論)에 바탕을 두고 기(氣)를 활용하여 생명력을 키워가는 것을 「심기신(心氣身) 수련」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심기신 수련은 단순한 몸 관리보다 건전한 생명력 관리를 하는 수련 체계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지난 10년 동안 「심기신(心氣身) 수련」을 꾸준히 해왔으며, 그룹 안에도 담당 부서를 두어 임직원들에게 수련을 권장해 왔다.

그룹 임직원들에게까지 수련을 권하는 것은 좋은 것을 되도록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더해서, 임직원들의 건강 관리가 기업 경영에 매우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기업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하자면 사업 능력에 못지 않게 체력이 중요하다. 흔히 그룹 총수쯤 되면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쉬고 싶으면 얼마든지 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 지휘관은 부하보다 더 부지런해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나서기 싫은 자리에도 가야 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만나야 하며, 늘 빠듯한 일정에 따라 강행군을 해야 하는 것이 기업하는 사람이다.

나는 부모에게서 비교적 튼튼한 몸을 물려받았고, 젊었을 때부터 스포츠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했기 때문에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는 어쩔 수 없어 50대 후반으로 접어들어서는 체력이 차츰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럴 즈음에 기를 알고 심기신 수련을 시작했던 것이다.

수련 효과는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는 데서부터 나타났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혈액 순환이 잘 되고, 소화기를 비롯한 각 기관의 움직임이 좋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을 덜 자고 무리를 해도 머리가 아프다거나 피곤하다는 느낌이 적었다. 피곤하다 싶다가도 수련법을 활용해서 잠깐 몸을 추스르면 활력을 되찾기 어렵지 않았다.

몇 해 전에 남미에 갔을 때의 얘기이다. 서울에서 칠레까지는 28시간을 가야 한다. 12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LA에 도착해서 보니 3시간 후에 칠레의 샌디에이고행 비행기가 있었다. 그것을 타고 다시 12시간을 가야 하는 것이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부하 직원의 권고를 무시하고 헬스클럽을 찾아갔다. 거기서 체조로 40분 정도 땀을 흘리고 사우나를 한 다음 바로 칠레행 비행기를 타고 이튿날 아침 6시에 도착했다. 골프 약속이 있는 10시까지 호텔에서 체조와 호흡을 했다. 하루를 스케줄대로 보내고 나서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 일정에 맞추느라 6시간만에 일어나야 했지만 몸은 개운했다.

서울로 돌아올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이 베푸는 만찬이 저녁 10시에 끝나서, 밤 1시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한 다음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서울로 와야 했다. 뉴욕 공항에 도착하니 다음 비행기까지 2시간 30분이 남아 있었다. 호텔방을 하나 빌려서 체조하고 목욕한 후에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서 7시간을 잤는데도 5시간이 남아서 명상도 하고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었다.


● 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까닭

사람들은 기업 총수인 내가 10년 이상 이런 수련을 하고 있다니까 궁금한 것이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의 나에 대한 궁금증은 대체로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언제부터 왜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가? 둘째, 그 동안 어떠한 수련 과정을 거쳤는가? 셋째, 기와 단전호흡에 대해 얼마나 깊이 알고 있나? 넷째, 도대체 어느 경지에 와 있으며,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할 것 같은가? 다섯째, 수련이 건강 관리에 얼마나 효과가 있으며 현대의 여러 건강 관리법들과 어떤 차이가 있나?

나는 애초에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이 수련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하고 보니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되고, 수련이 깊어질수록 더욱더 건강 관리에 좋다는 것을 알아 계속하게 됐다.

나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수련을 권하고 기의 존재를 소개했다. 대부분 흥미를 가지고 받아들였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많았다.

『최회장처럼 과학을 존중하는 사람이 어째서 그처럼 비과학적인 것을 하느냐?』

이처럼 부정적인 반응도 나오는 것이다. 과학적인 사고에 젖은 현대인들에게 기가 무엇인지를 이해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직접 느껴보고 수련 효과를 경험해보기 전에는 누구도 존재를 선뜻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기에 대해서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모르는 사람조차도 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대체로 인정하는 것 같다. 그만큼 동양 문화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고, 동양의 전통적인 세계관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기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1979년 무렵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이 분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지 않았다. 지금은 수련한다는 사람만이 아니라 의사나 과학자들 중에도 자신의 전공과 관련해 기를 연구하고 응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 기를 경영에 활용한다면?

그 당시에 나는 개인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기업의 경영인으로서 기에 주목했다. 우선 기를 잘 활용하면 인적 자원을 개발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누구나 기를 수련하면 차력사처럼 될 수 있는지?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기를 경영에 활용해서 성과를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 경제는 과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업 경영도 서구식 방법론을 채택하고 있다. 기를 경영에 활용한다면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경영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1979년 당시 우리 그룹에서는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SKMS, 즉 그룹의 경영관리체계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에스케이-맨십(SK-Manship)」이 중요한 요소로 들어 있다.

기업 경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사람이며, 어떻게 사람의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인식 위에서 만든 SK맨십은 패기(覇氣)·경영 지식·경영에 부수된 지식·사교 자세·가정 및 건강 관리, 이 다섯 가지 덕목을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갖출 것을 직원들에게 요구하는데 그 중에서도 패기를 으뜸 가는 요소로 본다.

기업은 대개 좋은 학교를 나오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을 직원으로 뽑는다. 그러나 아무리 아이큐가 뛰어나고 머리 속에 든 것이 많아도,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정면으로 달려들어 돌파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그 좋은 머리에 든 것이 경영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다.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max-profit)를 추구해야 하고, 언제나 경쟁에서 우위를 지켜야 살아남는다. 이것이 시장경제 체제 속에 있는 기업의 운명이다. 「2등을 하면 어떠냐」라거나 「여건이 좋아지기를 기다리자」 같은 소극적인 발상으로는 기업이 발전할 수 없다.

또 경영 지식을 잘 갖추었다 하더라도 일을 무서워하고 피하려는 마음가짐으로는 안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머리가 좋은 사람들 중에는 그 좋은 머리를 이용해서 어려운 일을 피해나가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구정물이 괸 웅덩이를 보면 본능적으로 몸을 빼듯이 어려운 일을 보면 저절로 움츠리고 피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이를테면 손에 물 안 묻히고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학력도 좋고 머리도 좋은 직원이 회사에 들어왔는데 시간이 얼마쯤 지나자 부서장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부서 안에서 겉도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상관을 잘못 만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싶어서 다른 부서에 그를 보냈다. 그러나 새로 옮겨간 부서에서도 인정을 받는 데 실패했다. 어느 회사에서든 윗사람은 일을 스스로 찾아내서 하는 부하를 아끼게 마련이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맡겨준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데만 능숙하다면 다른 직원들의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소외시킬 수밖에 없다.

경영 지식을 잘 갖춘 직원이 일을 무서워하지 않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한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 직원은 능력과 패기를 함께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패기란 무엇인가?

우리 국어사전들은 패기를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이루어낼 만한 자신을 보이는 기백(氣魄)」이라고 풀이한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한다. 즉 「승부욕을 가지고 남보다 뛰어나려는 왕성한 의기(義氣)」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는 의기」 등의 뜻이다.

경영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고 해결하려는 마음가짐을 패기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일과 싸워서 이기려는 기질(氣質)이다.

모든 구성원이 경영 지식에 더해 패기까지 갖춘다면 회사 전체가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패기를 SK맨십의 하나로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패기를 SK맨십 속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한 다음에는 패기의 수준을 실제로 어떻게 높여나가느냐가 과제가 됐다. 경영 지식은 프로그램을 잘 짜서 훈련하면 높일 수 있다. 패기도 경영 지식처럼 훈련을 통해 높여나가려면 어떤 연수 방법을 채택할 것인가?

한때 유행했던 극기 훈련이나 지옥 훈련 같은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업에서 일을 하는 데는 일을 슬기롭고 유연하게,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극기 훈련으로는 그런 자질의 배양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그런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기도 곤란할 뿐더러 나도 그런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만 만들어놓고 실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죽은 관념이 돼버린다. 직원들의 체질 속에 어떻게 패기를 심고, 이를 길러나갈 것인가? 패기를 훈련한다는 것은 서구식 경영 기법에서는 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므로 새로운 규범을 찾아내고 만들어야 했다.

고심 끝에 일단 훈련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패기를 사고 방식·행동 방식·일 처리 방식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사고는 적극적으로, 행동은 진취적으로, 일 처리는 빈틈없이 하는 것으로 패기의 훈련 방향을 정했다.

그래도 미흡함이 남았다. 위와 같은 세 가지 방향 자체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하겠으나 그 셋이 모여 과연 패기라는 것을 형성할 수 있느냐? 현장에서 보면 직원들은 세 가지의 내용 하나 하나는 잘 이해하면서도 셋을 통합하여 패기라는 개념으로 연결짓는 데는 곤란을 겪었다.

패기는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 개념이다. 영어에 ambition이나 aspiration 같은 개념이 있지만 패기라는 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패기는 동양의 고유한 기(氣)의 개념을 내포한 말이어서, 영어권에는 이런 개념이 없다. 그렇다면 기(氣)는 무엇인가?

나도 그렇고 SKMS를 만들려고 모인 사람 중에 누구도 기에 대해서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패기를 말하기 위해서는 기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 기를 알기 위하여

그래서 경영기획실에서는 기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학자들도 만나고 선(禪), 요가, 명상, 단전호흡(丹田呼吸) 등 여러 수련 방법과 내용들을 조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손길승(孫吉丞) 경영기획실장(현재 SK그룹 회장)은 기를 가장 잘 터득할 수 있는 방법이 단전호흡이라고 보고했다.

그때부터 나는 단전호흡에 관한 전문 서적을 읽고 거기에 나오는 용어를 익히며 책에 적힌 대로 동작도 따라 해보았다. 이왕에 알아보기로 한 것이니까 철저히,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그 존재를 느끼고 알고 싶었다. 그러나 책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었다. 혼자서 이해하고 따라 하기에는 내용이 까다롭고 소화하기 어려운 말들이 많았다.

단전호흡을 보급하는 단체가 여러 곳인데, 단체에 따라 가르치는 것에 차이가 있어 손실장은 직원들을 몇 군데에 나누어 보내서 각각 그곳의 수련법을 경험하게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손 실장 자신도 그 중 한 곳에 다니며 직접 기를 체험했다.

손 실장은 그런 다음 나에게도 전문가한테 직접 지도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면 아무래도 이해가 빠를 것 같았다. 그래서 전문가를 초청해 수련을 시작한 것이 1986년 여름의 일이다. 석 달 동안 배워보기로 했다.


● 신기한 체험

과연 나도 기를 느낄 수 있을까? 수련을 시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의문일 것이다. 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체질적으로 또는 기질적으로 특별한 사람만의 영역은 아닐까? 스스로 경험해보기까지는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나도 같은 의문을 가지고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집으로 선사(禪師)나 사범(師範)이 찾아와서 가르쳐주기로 했다.

지도를 받는 첫날이었다. 수련은 준비 운동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나중에 보니 도인체조(導引體操)라는 것이었지만, 이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한다는 설명 없이 그냥 따라 하게 했다.

서서 하는 동작과 앉아서 하는 동작, 그리고 누워서 하는 동작을 시키는 대로 30분 남짓 했다. 사전 지식이 없는 까닭에 맨손체조와 다른 점을 못 느꼈다. 다만 평소에 잘 안 쓰던 관절까지 다 써서 하니까 끝날 무렵에는 땀이 많이 났다.

다음은 호흡을 시켰다. 반듯이 누워서 단전(丹田)이 있다는 아랫배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코로만 숨을 쉬도록 했다. 단전의 자리로 기를 모으면서 해보라고 하는데, 기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여서 그런지 잘 되는 것 같지 않았다. 20분 하는 동안에 몇번씩 깜빡 잠이 들기도 했다.

그 다음은 명상(瞑想)이었다. 반가부좌(半跏趺坐)로 앉아서 몸 각 부분의 힘을 빼고 몸 안에서 기를 돌리라고 했다. 이것도 20분 정도 하는데 역시 쉽게 익숙해지지 않고, 앉아 있는 동안 다리가 몹시 저렸다. 어떤 자세로 해야 옳게 하는 것인지 모른 채 하려니 20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서 마무리 체조를 5분 내지 10분 정도 했다. 모두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이틀이 지났다. 수련을 끝내고 나면 몸은 개운해졌지만 기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흘째 가서는 기를 꼭 느껴봐야겠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사범에게 물었다.

그 날 명상을 할 때 기를 느끼는 시도를 했다. 사범의 말인즉, 몸에 힘을 빼고 반가부좌로 앉아 무릎 위에 놓인 양손의 손가락 끝을 하나씩 응시하며 거기서 무엇을 느껴보라고 했다. 그렇게 한 손가락 끝을 응시하며 한참 앉아 있으려니 맥박이 뛰는 듯한 느낌이 희미하게 왔다. 이어서 다음 손가락을 응시하면 같은 느낌이 오고, 그렇게 차례로 느낌이 와서 마지막에는 열 손가락에서 지끈지끈하는 느낌이 생겼다. 사범은 그것이 바로 기를 느끼는 시작이라고 했다.

다음에는 두 손바닥을 가슴 앞으로 올리고 양 어깨와 팔꿈치에서 힘을 뺀 채 눈을 감고 마음으로 두 손이 붙으라고 명령을 내리도록 했다. 명령을 내리는 것을 염(念)을 한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하니 두 손바닥이 서로 붙으려고 하는 인력(引力)이 느껴졌다. 거의 붙으려고 할 때 이번에는 반대로 서로 떨어지라고 명령을 내리면 서로 밀어내는 힘이 느껴졌다.

이렇게 손바닥을 밀고 당기는 힘이 기의 작용이라고 했다. 이는 자석을 다른 극끼리 놓으면 서로 붙고, 반대로 같은 극끼리 놓으면 밀어내는 것과 같았다. 같은 실험을 반복할수록 짧은 시간에 기를 더 쉽고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기를 알려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기를 느끼고 보니 어제까지 길게 느껴졌던 20분이 금방 지나갔다.

신기했다. 수련을 시작한 지 사흘 만에 마침내 나도 기를 느낀 것이다. 아주 특별한 노력을 한 것도 아닌데 기를 느끼게 됐다. 이처럼 직접 몸으로 기를 느끼게 되자 수련에 더 흥미를 갖게 됐고, 동시에 기에 대해서 깊이 알아보자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 동안은 현대 과학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한번도 이런 세계에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일단 내 몸 안에 기가 존재함을 느끼니 의식이 달라졌다.

수련을 시작한 지 사흘째에 기를 느낀 나는 한 달쯤 지난 다음 진동을 경험함으로써 기의 존재를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날, 명상을 하는 시간에 두 손 사이에서 기를 움직이게 하다가 두 손바닥을 딱 붙이는 순간 몸이 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몸이 내 의사와 관계없이 들썩거리고 전후좌우로 움직였으며 앉은 상태로 팽이처럼 돌아가기도 했다.

온몸에 있는 기가 마음의 지시를 받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임으로써 생기는 현상이 진동이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어떻게 왔는지 몰랐지만 곧 이해하게 됐다.

사범은 애초에 나더러 『인도에 있는 무슨 연못의 꽃을 상상하며 마음을 모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다. 온몸에 있는 기를 단전에 집중시킨 다음 멋대로 움직여보라고 명령하면 됐다.

진동은 기의 흐름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수련 초기에는 불시에 일어나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다. 이는 기의 흐름이 갑자기 왕성해졌을 때 생기기 쉬우며 흐름을 막고 있던 곳이 뚫릴 때에 올 수 있고, 또 진동하면서 막힌 곳이 뚫리기도 한다.


● 하나를 알면 열이 궁금하다

기가 존재하는 것을 느끼는 것과 그 실체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느낌은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불확실한 것으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기를 느끼고 신기하다고 생각했지만, 곧 여러 형태의 의문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맨 먼저 떠오른 의문은 이것이 정말 기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기가 맞다면 도대체 그 속성은 무엇이며, 몸에서 하는 역할은 어떤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교실 안에서 수업을 받는 학생들 중에는 다른 아이들은 가만히 있는데 유달리 질문이 많은 학생이 있다. 그런데 그런 학생이 꼭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다. 아무 질문도 않고 수굿이 앉아 있는 학생들 중에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얼마든지 많다. 선생님이 보기엔 그런 학생이 훨씬 더 대견할 것이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질문이 많은 학생이었다.

수련이 거듭될수록 의문이 많아졌다. 호흡을 통해 몸 안에 받아들인 기는 어디에 존재하느냐? 기를 몸에 충만하게 해야 된다고 하는데 얼마나 가져야 충만하다고 할 것인가? 기를 몸 안에 잘 돌려야 한다는데 어떻게 하면 잘 돌릴 수 있는가? 선사나 사범이 열심히 설명해주었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새로운 의문을 더해주었다. 깊이 물어볼수록 난해한 용어와 개념이 계속 튀어나와 의문을 더 증폭시켰다.

나는 어떤 일이든지 철저히 이해하기를 원하는 편이다. 이해와 실천이 병행해야지 이해 없는 실천은 좀체로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르면 파고들어서 끝끝내 알아내야 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내 취향에 비해서 수련을 지도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동작은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치를 설명하는 데에는 소홀했다. 이치를 깊이 따지기보다는 예부터 전해오는대로 따라 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것은 이 분야가 머리보다는 느낌이, 이론보다는 체험이 앞서기 때문인지 몰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 앞에서 황당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를테면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하고, 사람에게 감사한다』고 말하며 절을 하라고 시키는 것이었다. 기를 처음 느꼈을 때도 몸을 깨끗하게 씻고 절을 하라고 했다. 나는 존재하는 기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절을 시키느냐며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막았다.

이러는 과정에 의문을 푸는 것을 사람보다는 관련 서적들에 더 의존하는 버릇이 붙었다. 덕분에 이 책과 저 책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읽고, 연구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책은 중국 사람이 쓴 것, 일본 사람이 쓴 것, 또 우리나라 사람이 쓴 것 해서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 중에 허황된 방향으로 서술한 것들은 버리고 내용이 비교적 조리있게 가다듬어진 것들을 골라 읽었다.

책을 읽으면 대개 7할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3할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되는 부분은 수련에 바로 적용해서 실험을 해보았으며, 그렇게 해서 통하는 것이 있을 때는 기분이 매우 통쾌했다.

이처럼 기의 존재를 알고 책에서 읽은 것을 실험을 통해 하나하나 풀어가는 자세로 수련을 하니까 수련하는 것이 더 재미있어졌고, 이해하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 그룹사장들에게 권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침에 잠에서 깨어서 30분 남짓만 체조를 해도 몸이 홀가분해졌다. 호흡과 명상에도 익숙해졌다. 1회 호흡의 시간이 길어지고 차 안에서나 사무실에서도 활용하게 됐다. 단전으로 기를 받아들여 축기하는 것도 잘 되지만 산소를 많이 마시게 되니까 20분만 해도 피부색이 뽀얗게 됐다.

나는 평소에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도 받고 수영이나 테니스, 조깅, 등산 같은 운동을 하면서 건강 관리에 힘써왔다. 그런데 한 달 정도의 수련만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몸 상태가 좋아진 것이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다음부터는 내 스스로 공부하고 찾아낸 방법을 통해 수련 시간 외에 안구 돌리기와 잇몸 마사지 같은 방법으로 눈, 코, 입, 귀 등을 관리했다. 그래서 40대 후반에 쓰던 안경을 도로 찾아 쓸 만큼 시력이 상당히 회복되었고, 신문의 사설 정도는 안경 없이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치아의 상태도 의사가 감탄할 정도로 좋아졌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주량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간밤에 웬만큼 마셔도 취기가 빨리 가시고 이튿날 멀쩡하니까 술을 마시는 것을 겁내지 않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내관법(內觀法)을 익힘으로써 몸의 표면은 물론이고 내부까지 이완과 긴장을 시켜주게 됨으로써 건강에 더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내관을 통한 이완과 긴장은 신체 내부 각 기관이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효과를 낸다. 따라서 신체 기관의 기능이 오래 정체함으로써 생기는 돌연변이의 가능성을 대폭 줄일 수 있어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비롯한 성인병을 상당 부분 예방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실제로 근래에는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그 효과를 입증한 임상 실험 결과도 나왔다.

내관에 이어 소주천(小周天)이란 것도 하게 되었다. 소주천이란 우리 몸의 경락 중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을 따라 기를 돌리는 것이다. 꾸준한 수련의 성과로 언제라도 운기를 하면 온몸에 기가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이 수련이 건강 관리에 좋다는 믿음이 더욱 굳어졌다. 각종 스포츠와 현대 과학의 여러 건강 관리법에 플러스 알파로 이것을 병행한다면 도교에서 말하듯이 불로장생은 몰라도 무병장수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하루도 수련을 빼놓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이것을 나 혼자서 즐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룹내 각 회사에 사범을 파견하여 제일 먼저 사장들부터 배우도록 권했다. 이어서 따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수련장도 만들어 일반 직원들에게도 수련할 것을 권장하고 주변 친지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권했다.

이처럼 건강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심기신 수련이 내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수련을 통해 기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애당초 기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수련을 시작한 나로서는 기가 우리 몸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하며 작용하는지 알게 된 것 자체가 또한 커다란 수확이요 보람이다.


● 한국인의 삶과 기

수련을 시작하고 난 뒤에 새삼 깨닫게 된 것이지만, 우리의 일상 언어에는 기(氣)라는 개념이 무척 많이 들어 있다. 어려운 형편에 처해 풀이 죽으면 「기가 꺾였다」고 하고, 곤경에서 벗어나 한숨을 돌리게 되면 「기를 편다」고 한다. 상황이 급박해 위기에 몰리면 「기가 질리거나 죽는다」고 하며,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을 때는 「기가 차거나 막힌다」고 한다.

공기·용기·생기·정기·총기·오기·기운·기백·기개·기상, 이런 식으로 기 자가 들어간 낱말을 나열하자면 한참이 걸릴 것이다. 그만큼 기가 우리 생활과 밀접하며 우리 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뜻이리라.

실제로 기는 언어 생활과 더불어 우리의 삶 속에 다양하게 자리잡고 활용돼왔다. 침술이나 뜸, 경락을 이용한 지압 같은 동양 의술은 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옛 사람들은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하여 건물 앞에 해태를 놓기도 했지만 요즘 사람들도 집을 지을 때 기의 흐름을 고려하여 문은 어디로 내라든가, 향(向)은 어느 쪽으로 하라든가 하는 말을 하고 있다.

불교의 선(禪), 그리고 선도(仙道)나 요가의 수행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 역시 기 사상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과거에는 병법과 무술에서도 기를 활용하여 병사들을 교육시키고 훈련시켰는데 그 영향은 오늘까지 어떤 모습으로든 남아 있다.

이런 점은 중국과 일본도 다르지 않다. 중국인들에게는 기 사상이 더욱 보편적인 것이며, 일본인들에게도 기는 익숙한 개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동양의 기 사상은 언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일까? 기에 대한 관념이 생긴 연원을 이야기할 때 그 기원을 4000~5000천년 전으로 보기도 하지만, 문헌에 따르면 약 2000여년 전에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것으로 돼 있다.

도가에서는 기를 만물을 생성시키는 주체로 본다. 노자(老子)는 『도(道)에서 기가 나와 음(陰)과 양(陽)으로 나뉘며, 그 음과 양이 이룬 화합체에서 만물이 나온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기가 들어오면 생명이 시작되고, 기가 떠나면 생명이 끝난다. 장자(莊子)는 하나의 기가 천하를 통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창했다.

한편 유가의 시조인 공자(孔子)는 혈기(血氣), 식기(食氣), 사기(士氣)라는 실용적인 개념에 기를 원용했고, 맹자(孟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라는 말 속에 「우주와 사람의 몸에 충만돼 있는 기(氣)」라는 관념을 담음으로써 좀더 적극적으로 기에 대해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시 말해 노자와 장자는 만물의 생성과 운행 원리를 구명한다는 근본적인 입장에서 기를 적극적으로 주창했고, 실천적 윤리를 강조한 공자와 맹자는 기의 실체를 인정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인간 세계의 실천 윤리를 밝히는 데에 주력했던 유가가 나중에 성리학자들이 나올 때까지 기의 존재를 부수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에 섰다면, 일찍부터 사물의 법칙(law of matter)으로서 도(道)를 구명하려 했던 도가는 만물의 생성 원리를 밝히는 입장에서 기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명시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도가의 기 사상은 도교에 의해 계승되고 발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양 철학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도교에서는 우주 만물이나 사람이나 모두 하나의 원리에 따라 운행한다는 만물일원론(萬物一元論)을 내세우며 기를 그 운행의 주체로 놓고 음양오행설로써 그 운행 법칙을 설명하였다.

노자와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도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에 의해 우주의 운행이 어떤 질서에 따라 이루어지며 인간 또한 하나의 소우주라는 인식이 등장하여 우주론(cosmology)이라는 철학적 입장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고대에는 동서양이 우주와 인간에 대해 유사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서양에서는 우주 삼라만상에 대한 자연의 법칙(law of nature)을 구명하는 일은 신과 종교에 맡기고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과학 발달에 전념해왔다. 이에 비해 동양에서는 대자연의 운행 원리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힘을 기울이며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동양 문화를 형성했다.

그러나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면모를 띠고 있기에 현대인들에게는 비과학적이고 신비적인 것으로 비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대화 이후 서양 문물이 대세를 이룬 가운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어서 기에 대한 교육이 없었고, 체계적으로 알아볼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 보이지 않으나 있는 세계

그런데 실제로 기가 과연 무엇인지 누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까? 기의 존재는 현재로는 실증 과학의 방법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invisible) 만질 수도 없는(intangible) 것이 기의 속성이다.

일부에서는 기를 생체(生體) 에너지라고 부르며 전기적인 성질 또는 자기적인 성질을 띤 어떤 것이라 하기도 하며, 이를 입증해보려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아직 기의 실체를 증명하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므로 이 시점에 섣불리 기를 정의하는 것은 바른 태도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한편 사람에 따라서는 선한 기가 있고 나쁜 기, 즉 사기(邪氣)가 있다고 하며 또 탁기(濁氣)라는 표현도 쓴다.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것은 기를 인격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를 은연중에 반영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를 기독교의 성령(holy spirit)과 비교해서 설명하려는 시각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기독교에서 성령은 인격적인 존재지만 기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는 기 자체는 선하고 악함이 없고, 맑고 탁함도 없다고 본다. 다만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에게 착하고 악함이 있으며, 맑고 탁함이 있을 뿐 아니겠는가. 또 다섯 손가락에서 나오는 기가 다 다르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확인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기는 기다』라고 말한다. 생체 에너지가 아닐 뿐더러 전기나 자기도 아니다. 적어도 현재까지 실체가 밝혀진 그 어떤 것과도 다른 존재다.

나는 기가 우리 몸 안에 있으며 이를 활용하면 몸과 마음을 균형있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기를 이것이다 하고 눈앞에 보여줄 수는 없으나 내가 몸으로 직접 느끼듯이 다른 어느 누구도 느낄 수 있다.

기 수련의 기본은 기를 단전에 받아들이는 것과 받아들인 기를 몸 안에서 돌리는 것이다. 곧 축기(蓄氣)와 운기(運氣)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수련의 성패가 달려 있다.

이 과정에 나는 기가 마음과 몸 사이에 존재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책에서 심기신(心氣身)이라는 용어를 보면서 과연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것이 바로 심기신이었다. 즉 기는 마음과 몸 사이에 있으며, 마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마음에 의해 조절된 기는 몸과 상호 작용한다. 이처럼 마음과 기와 몸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 심기신인 것이다.

이와 같은 나의 입장은 기의 존재를 경험론적, 유상론적(唯象論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현상의 배후에 실체나 본질이 있는 것은 부인하지 않지만 사람은 다만 그 현상만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상론의 입장이다.

나는 단전(丹田)에 받아들인 기를 마음을 집중하여 몸의 각 부위로 보내면 기가 대뇌의 지배를 받는 수의근(隨意筋)은 물론이고 자율신경계의 불수의근(不隨意筋)과도 상호 작용을 한다는 것을 체험했다.

이로써 나는 『기가 마음에 의해 조정돼 몸과 상호 작용을 한다(Mind controls Ki, Ki interacts with body)』고 말한다.

더불어 기를 활용하면 우리 몸과 마음을 동시에 균형있게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몸 따로 마음 따로 하던 건강 관리를 몸과 마음을 함께 관리하는 생명력 관리의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도 인식했다.


● 과학을 넘어서는 현상들

1980년 정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운 날씨였으나 평소처럼 조깅을 했다. 그런데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서 기분이 좋았는데 땀이 식은 뒤에 몸에 이상이 느껴졌다. 얼굴이 붓고 두드러기 비슷한 현상이 생겼다. 병원에 갔더니 동상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고 서구인에게 많이 볼 수 있는 증상이라고 했다. 유감스러운 것은 오늘처럼 의학이 발달한 시대에 이 별것 아닌 증세의 원인과 치료법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로 기온이 많이 내려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얼굴이 붓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더 괴로운 것은 아주 찬 물이나 얼음물,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먹으면 입안이 붓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같은 증세라고 했다.

의사는 추운 날 외출하지 말고 찬물에서 수영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조깅 한 번 잘못한 탓에 병자 아닌 병자가 되고 말았다. 불편을 호소하는 나에게 의사는 사람의 체질이 7년에 한 번꼴로 바뀌는데, 다행히 그 때 이 병이 나을 수도 있으니 희망을 가져보자고 위로했다. 그러나 7년이 지났는데도 증상이 없어지지 않았으며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 고생스러워서 한방 치료도 받아봤는데 역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당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피부과 과장인 이성락(李成洛) 교수에게서 연락이 와서 갔더니, 진단을 해보고 나서 페니실린으로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뜻밖의 소리를 했다. 그런데 먹는 페니실린으로는 안 되고 한 달 동안 몇 차례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그것도 개발 초기의 페니실린이라야 한다고 했다.

페니실린은 1928년에 발견되었으며 1945년부터 치료제로 개발돼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구닥다리 페니실린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나을 수 있다니 그런 다행이 없었다. 영국과 독일의 의학 잡지에 나와 비슷한 증상에 대한 치료 사례가 실렸는데 왜 페니실린이 효과가 있는지는 그 쪽 의사들도 못 밝힌 상태라고 했다.

나는 기대 반 의심 반의 심정으로 페니실린을 맞기 시작했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는 미심쩍은 생각을 버리지 못했으나 정말로 주사는 효력을 발휘했다. 10년 가까이 괴롭히던 고질병이 어느덧 떨어져나간 것이다.

인삼의 경우도 그러하다. 흔한 예긴 하지만 인삼은 약재로 쓸 뿐만 아니라 몸에 좋다 하여 차로 끓여 마시고 음식에 넣어 먹기도 한다. 이처럼 인삼의 효능은 널리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이 그 점을 인정하고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효능을 내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사포닌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사포닌 성분은 도라지에도 함유되어 있으므로 인삼만의 특이한 효능이 사포닌에서 비롯된다고 보기가 어렵다. 만약 이 성분을 추출해서 이용할 수 있다면, 버드나무에서 해열제 성분을 뽑아 만든 아스피린이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듯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생약은 상당히 많다. 은행잎에는 벌레가 살지 못하는 것에 착안하여 은행잎 추출물을 복용하였더니 혈액 순환이 좋아졌다는 결과가 나와 이를 SK제약에서는 약으로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물론 그 효과를 일으키는 성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효능에 대해선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언젠가 눈에 다래끼가 났었다. 안대를 하자니 불편했고 안 하자니 남 보기가 흉해서 안과를 찾아갔다. 염증이 생긴 것이니 항생제로 다스리면 될 줄 알았으나 그렇게 하면 염증이 굳어서 오래 가게 되므로 바람직하지 않으니 곪아서 터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다래끼가 나면 자연히 아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느 한의사가 침 한 번으로 낫는다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걸 들었다. 그 후에 다시 다래끼가 났을 때 그 한의사를 찾아갔다. 그는 가는 침을 내 코끝에 놓았고, 양쪽 새끼발가락 끝에서 침으로 피를 약간씩 뽑아냈다. 그랬더니 두세 시간 지나니까 아물려고 그러는지 눈이 가렵다가 잠을 자고 나니 말끔히 나았다.

1980년대 초 다른 경제인들과 함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길에 동행했던 때도 같은 경험을 했다. 나이지리아를 방문했을 때 공기가 탁해서인지 도착 다음날 다래끼가 생겼다. 그 눈을 하고 공식 행사에 나서기가 어색하고 민망해서 혼자 돌아와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일행 중에 침을 놓는 사람이 없었기에 한의사가 하던 방법을 쓸 수도 없었다. 그런데 동행한 관리 중에 마침 뜸을 뜰 줄 아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뜸 기구를 가지고 와서 내 양 새끼발가락 끝에 뜸을 떴다. 세 시간 정도 지나자 가려웠고 다음날 아침에는 말끔히 나았다.

침이나 뜸으로 다래끼가 낫는 이유를 아직은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더욱이 탈이 난 곳은 눈인데 침이나 뜸을 놓는 곳은 어째서 발가락인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방법으로 다래끼가 낫는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이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우리는 흔히 이 과학 시대에 과학으로 밝히지 못할 것이 없는 줄로 알기 쉬우나 실제로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무척 많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엄청난 오만이며, 그 자체가 무지(無知)의 소산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 과학의 새로운 움직임

근래에 서구에서는 동양의 사상과 고유 문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심리학과 철학을 비롯한 인문 분야와 예술 분야를 중심으로 동양 문화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꾸준히 확대돼왔으나, 이것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것은 중국이 서구를 향해 문호를 개방한 1970년대 후반부터다.

특히 침술과 같은 동양 의술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면서부터 과학 분야에서도 동양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오늘날 발전의 한계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서양의 과학만능적 사고가 동양의 정신 세계에서 반성과 함께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이라는 것이 매우 깊이 발달한 것 같지만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인간의 삶 전체를 놓고 보거나 우주적인 범주에서 보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한계를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과학자들이 물질의 구성 요소를 탐구하면서 분자, 원자, 핵, 전자 등을 발견했고 나아가 핵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로 양자, 중성자, 중간자 그리고 최근에는 쿼크라는 입자까지 밝혔지만, 이런 것들로 물질의 근원이 구명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연구를 하면 할수록 깨닫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물리학과 동양 사상(The Tao of Physics)』이라는 책으로 소개된 카프라 교수는 서구의 과학만능적 사고 방식이 지닌 한계를 꿰뚫어보고 있다. 동양 사상과 동양적 사고 방식이 근본적으로 과학적 원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존 과학계에 사고의 지평을 넓히라고 역설하는 그의 주장은 서구 지식인 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신과학(New Age Science 또는 New Science)」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흐름이다. 신과학은 1960년대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현대 문명에 대한 반성 위에서 태동한 신문화의 한 흐름이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New Science라 하여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움직임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추세다. 다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계에서는 신비적 환상을 조장한다는 측면에서, 과학계에서는 실증적 영역을 벗어난다는 측면에서, 이를 외면해온 것도 사실이다.

서구의 과학 발달사를 볼 때, 데카르트의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과 환원주의(還元主義)는 과학 발달의 기반이자 근거였다. 따라서 과학은 그 실증적 영역 안에서 분석적이고 축소지향적인 방법론을 통해 오늘날의 첨단 문명을 이루어왔다. 특히 의학은 데카르트 이후 사람의 육체를 단순히 물질로 바라봄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이르러 과학 발달에 한계를 인식하게 되자 서구에서도 유상론적 관점에 기반을 둔 동양적 가치와 사고 체계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 신과학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생물학과 의학 분야에서는 신과학적인 접근에 의한 연구 성과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신과학의 가장 큰 특징은 도가와 같은 동양 사상 원리를 수용하여 환원주의를 넘어서는 전체론(wholism)을 옹호한다는 점인데, 이것은 사람을 심신일원적(心身一元的)인 존재로 파악한 「전체는 모든 부분의 총합 이상이다」라는 슬로건에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돌이켜보면 데카르트가 물심이원론을 체계화할 당시에도 몸과 마음이 상호 긴밀하게 작용한다는 반론이 있었다. 즉 「뇌내피질(腦內皮質)에서 심신 사이의 상호 작용이 일어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실증주의가 지배하던 당시의 대세 앞에서 사그라들고 말았던 것인데, 오늘날 신과학으로 되살아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환원주의적 방법론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기존 과학의 지평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신과학적 조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편에 선다. 다만 신과학이라는 명칭이 기존 과학을 낡은 유산처럼 인식케 할 여지가 있고, 과학적 방법론과 사고 체계의 권위와 가치가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 적절한 명칭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준과학, 영어로는 quasiscience라고 하자고 제안한다. 라틴어에서 온 quasi는 quasiwar(준전쟁), quasiofficial(준공식적)처럼 접두어로 사용되는 말이다.

과학의 세계는 폐쇄적이어서는 안 된다. 기존 관념이나 명분에 매여서 무작정 외면하거나 배척하기보다는 서구 문화와 동양 문화를 적절히 접목하여 지속적인 발전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취할 슬기로운 태도다.

이런 취지에서 볼 때 양의학과 한의학의 접목은 우리나라 의학계가 중요하게 생각할 과제다. 양의학과 한의학의 근본이 다르며, 과학적이니 비과학적이니 하며 서로 배타적인 경지에 있으므로 이런 일이 말처럼 수월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준과학이란 개념을 도입한다면 서로 견해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을까 한다. 지금까지의 벽을 허물고 열린 자세로 서로의 장점을 받아들여서 이를 발전 틀로 삼는다면 시너지 효과를 한껏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건강 관리에서도 과학적인 서양 의술과 심신일원론에 입각한 동양의 생명관을 접목시킨다면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닌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보아 생명력을 관리하는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환자의 처지에서는 양의학과 한의학이 한 병원에서 서로 협조하여 시술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는 상품이든 의술이든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맞춰가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준과학은 과학적으로 증명은 못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을 다루는 분야다. 또 연구가 계속돼 언젠가 실체가 구명된다면 그 역시 과학이 되므로, 준과학의 영역에서는 그 속의 현상을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마도 21세기는 과학과 준과학이 공존하면서 인류 문명의 영역을 더욱 확장해가는 시대가 될 것이다.

제2부­단전과 마음, 그리고 영혼


● 단전(丹田)의 위치

기를 활용하는 수련에서는 단전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단전은 일반적으로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런데 이 셋의 위치를 말할 때는 사람이나 유파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상단전은 뇌 안에 있다는 주장과 양미간의 중앙에 있다는 주장이 있다. 중단전의 위치도 심장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양 젖꼭지 사이의 가운데로 보는 사람이 있다. 하단전도 마찬가지다. 배꼽 밑 7㎝에서 10㎝ 사이의 피부 표면에 있다는 의견과 그 안쪽에 있다는 의견으로 나뉘며, 10㎝보다 더 아래쪽이라는 등 여러 주장이 있다.

이처럼 단전의 위치에 대한 의견이 나뉘는 것은 기(氣)나 경락(經絡) 또는 삼초(三焦)처럼 단전 또한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두고 그 위치가 어디냐를 해부학적으로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며 기능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도교나 선도의 설명에 따르면, 단(丹)은 사람의 생명력을 높이는 「약(藥)」이며 단전(丹田)은 그 약이 자라는 밭이다. 단전의 성격을 이렇게 이해하고 수련을 해보면 그 각각의 위치와 기능, 그리고 「영혼백(靈魂魄)」과의 관계를 감지할 수 있다.

내가 수련을 통해 인식한 바로는 정수리의 백회혈(百會穴)과 낭심과 항문 사이의 회음혈(會陰穴)이 수직이 되도록 바로 앉은 상태에서, 그 수직선이 지나가는 곳에서 세 단전을 감지할 수 있다. 나는 이 백회혈와 회음혈을 잇는 수직선을 내 임의대로 정좌선(定座線)이라고 부른다.

세 단전의 위치를 더 자세히 말하면, 인당이라고 불리는 양미간의 한가운데에서 머리 속으로 들어가는 수평선을 그었을 때, 그 수평선이 정좌선과 만나는 곳에 상단전이 있다. 중단전은 양 젖꼭지 사이의 한가운데에서 가슴 속으로 들어가는 수평선이 정좌선과 만나는 곳에 있다. 그리고 배꼽 아래 약 7㎝ 지점에서 아랫배 속으로 들어가는 수평선이 역시 정좌선과 직각으로 만나는 곳에 하단전이 있다.


● 세 단전과 영·혼·백

이와 관련해 우리는 일상적으로 영혼(靈魂)이라는 말과 혼백(魂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여기에서 보듯이 동양의 생명관은 사람에게 영과 혼과 백의 존재를 인정한다. 도교나 선도에서는 이 셋을 세 단전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여기며 영은 상단전에, 혼은 중단전에, 백은 하단전에 위치한다고 본다.

이런 수련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상단전과 중단전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벽에 부딪히게 된다. 영혼백의 존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단전으로 단전호흡을 해서 축기를 한다는 데까지는 어느 정도 수긍하기가 쉽지만 상단전과 중단전, 그리고 단전과 영혼백의 관계에 이르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쉬운 말로 해서, 아랫배에 힘을 주면 힘을 쓸 수 있다거나, 뱃심이 좋아야 몸이 튼튼하다는 것으로 하단전의 역할에 대해서는 그 나름으로 웬만큼 짐작할 수 있으나 상단전과 중단전은 「그런 것이 있다」 정도 외에는 어디에도 구체적인 설명이 없으며, 간혹 누가 설명해준다 하더라도 구름 잡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영과 혼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상단전과 중단전이다. 영과 혼은 서로 어떻게 다르며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세 단전의 기능과 영혼백의 기능, 그리고 그 관계들을 내 나름으로 정리하는 데 역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의문이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상단전은 영(靈)이 있는 곳이며, 영은 사람의 지적 활동과 신경계를 총괄한다. 중단전은 혼(魂)이 있는 곳이며, 혼은 사람의 욕망과 감정 활동을 총괄한다. 하단전은 백(魄)이 있는 곳이며, 백은 몸의 기운을 잡는 중심부로 움직이고 생각하고 말하는 데 소요되는 기력을 공급한다. 그리고 상단전의 영과 중단전의 혼이 합해서 마음을 이룬다.

영어로 영이나 혼을 가리키는 말로 spirit과 soul이 있지만 어느 것이 영을 뜻하며 어느 것이 혼을 뜻하는지 불분명하다. 또 마음 또는 마음의 작용을 가리키는 말로 mind라는 표현을 쓰는데 mind와 spirit 또는 soul의 관계도 명확하지 않다. 이처럼 영어의 표현이 명확하지 못한 것은 영혼과 마음에 대한 현대 과학의 이론이 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 영혼과 마음

영이나 혼 그리고 이 둘과 마음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언어 생활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머리를 많이 써서 정도가 지나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해결법이 잘 안 나올 때는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머리를 쓰면 정력이 소모되어 몸에서 힘이 빠지고 따라서 기가 빠지게 된다. 이처럼 머리를 쓰는 곳이나 아프다고 느끼는 곳이 상단전이며, 여기에 영이 자리잡고 있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 같은 사람의 일곱 가지 심리 작용을 가리켜 칠정(七情)이라고 한다. 그리고 재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 같은 다섯 가지 본능적인 욕구를 오욕(五慾)이라고 한다. 이 칠정오욕 중에서 하나라도 지나치게 느끼면 가슴앓이가 생긴다. 너무 모자라도 그렇지만 너무 넘쳐도 가슴에 긴장감이 돌고 심하면 압박감과 함께 답답함을 느낀다. 이렇게 가슴앓이를 하는 곳이 중단전이며, 여기에 혼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머리를 써서 골치가 아프거나 감정이나 욕심에 치우쳐서 가슴이 아프거나 하는 것을 한마디로 「마음 고생」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마음은 영과 혼으로 나뉘어 상단전과 중단전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아직 귀도 열리지 않았고 눈도 보이지 않으니까 마음이 있을 수가 없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점점 눈도 보이고 귀도 열리면서 우선 가장 가까이 있는 엄마부터 확인하기 시작하여 좋으면 웃고, 싫으면 울고 하면서 마음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지능이 형성되고, 희로애락이 생기고 칠정과 오욕이 생긴다. 지능이 발달하면서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함과 더불어 의지도 생기고, 자기 자신을 형성해간다.

이렇게 사람이 소아기에서 시작하여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차례로 거치는 동안에 의식이 각자에 따라 독특하게 발달해 간다. 이렇게 의식이 발달하는 과정은 마음이 발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마음이 우리 몸 어디에 들어 있느냐고 할 때 우리는 먼저 뇌 안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때는 spirit이나 soul보다는 brain이라는 표현이 합당한데, 이 brain은 영과 혼 중에서 영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영(靈)이라 하면 대개 굉장한 통찰력이 있어서 미래를 내다볼 수도 있고, 귀신하고 접해 신통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어떤 것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특이한 능력을 발달시켰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지 않을 때 보통 얘기하는 영은 뇌의 활동이다.

이 영은 원래 상단전에 있지만 몸 안의 어느 부위에라도 갈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몸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특이한 능력을 발달시키지 않았더라도 시도해볼 수 있다.

마음 수련의 한 가지로 정좌를 하고 자기 모습을 자기 몸 밖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기의 힘을 빌려 영을 몸 밖으로 옮겨서 앞쪽에서, 또 옆에서, 그리고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이것이 「유체 이탈(幽體離脫)」이라는 것으로, 처음에는 몸 가까이에서 시작해서 10m, 20m, 100m로 간격을 넓혀간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나가 있으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할 위험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영이 몸 밖에 있는 동안은 지능이나 기억력이 없어졌다가 영이 돌아오면 회복된다.

흔히 유체 이탈을 하면 신비한 세계를 본다거나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경험을 한다고 하지만 그런 것은 이른바 신기(神氣)가 발달한 사람들이나 그런 것을 원하는 사람한테는 가능한 일일지 모르지만 내 경우에는 그런 것은 없었다.

영이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사실 그 자체일 뿐이고 더 이상의 느낌이나 생각이 없었다. 그 이상의 욕심을 가져서 무엇하겠는가?

영이 상단전을 떠날 수 있는 것에 비해 혼은 중단전에만 머무르고 몸 안팎 아무 곳에도 못 옮겨간다. 혼은 기가 몸에서 다 빠져서 죽음에 이르렀을 때만 몸 밖으로 이탈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매우 놀랐을 때 『혼비백산했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혼이 날아가고 백이 흩어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때 영이 어떻게 된다는 말이 없는 것은 살아 있을 때도 몸을 벗어날 수 있는 영의 특징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만약에 영이 몸 밖으로 이탈했을 때 혼이 몸에 남아 있지 않고 날아갔다고 하면 영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 아닐까? 이렇게 보면 영과 혼은 역시 불가분의 관계로서 둘이 합해서 마음을 유지한다고 할 수 있다.


● 마음의 건강

사람에게서 몸을 뺀 나머지를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도교의 양생법에서는 마음을 상단전에 있는 영과 중단전에 있는 혼으로 나누며, 또 선천적으로 타고난 잠재의식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표면의식으로 나눈다. 즉 영과 혼이 합해 마음이 되며, 이 마음의 작용은 잠재의식과 표면의식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마음을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의 관점에서 쓸 때와 종교나 윤리학의 관점에서 쓸 때는 각각 그 가리키는 바에 차이가 있다. 다같이 「마음이 병들었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그 병의 내용이 다른 것이다.

현대 심리학의 눈으로 보면 많은 사람이 비정상이라고 한다. 한국인 네 사람 중 한 명은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것이 최근에 나온 보고서 내용이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가벼운 증세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 인구의 7∼8할이 우울증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현대 산업사회가 발달을 거듭하여 사회 구조와 운용이 복잡해지면서 각종 스트레스나 심리적 갈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스트레스나 갈등은 마음의 병으로 자리잡게 되고, 그것은 대개 몸의 이상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심리적 이상 증세로 불안증, 우울증, 공포증, 열등의식 등을 들 수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건강 진단을 받는 것을 차일피일 미룬다든지, 진단을 받고 나서도 결과를 보러 가길 꺼린다든지 하는 것도 근래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안증의 하나다. 우울증은 신체적 여건에서 온다고도 하며, 질투심이나 열등감 등의 합병증과 같은 증상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마음의 병은 어떻게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가? 일본의 하루야마 시게오라는 의사가 쓴 『뇌내혁명(腦內革命)』이라는 책이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저자는 원래 한의사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의학에 흥미가 있었고, 나중에 동경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저자는 한의학과 양의학을 다 공부했는데, 이 분 역시 동양의학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었으나 서양 의학에서는 몸만 발달시켰다고 비판한다.

『뇌내혁명』에서 말하는 이야기의 근본은 뇌에서 엔돌핀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것이 많이 나오도록 하면 병도 없고 몸에 좋다는 것이다. 또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거꾸로 몸에 해로운 호르몬이 나와서 병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러니 병 없이 오래 살려면 마음을 늘 밝게 가지고, 잘 웃고, 즐겁게 행동하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사람의 마음이 그냥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많이 웃고 즐겁게 행동하는 것 자체가 만병통치의 근원이 되고, 병이 나지 않게 한다는 것이지만 이야말로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 즐겁게 산다는 것이 사람으로서 제대로 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을 너무 많이 가져도 안 되고, 고민을 지나치게 해도 안 된다는 식으로 여러 가지를 조언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그렇게 하고 살기는 힘들다.

성공이나 성취에 집착하면 마음에 뒤틀림이 생기고, 그것이 병으로 발전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정말로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명예에도 욕심이 없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산다면 그저 오래 살기 위해 사는 것이지, 사람다운 삶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일상 생활에서 일도 하고, 그를 통해 성공도 하고 성취도 하면서, 그러면서도 즐겁게 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가슴앓이와 중단전

언젠가 화신백화점으로 유명했던 박흥식 사장을 만나 식사를 하면서 5·16 이후에 부정축재자로 몰려 부당하게 고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억울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남산 한 바퀴 돌고 잊어버렸지』라고 대답했다. 어떻게 그런 마음의 여유를 낼 수 있었던 것일까?

영등포에 땅을 많이 가졌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날 느닷없이 그린벨트 제도가 생기고, 그 땅이 그린벨트에 묶이는 바람에 억울해서 화를 끓이다가 결국 1년 만에 죽었다.

사실 돈을 버는 것도 힘들지만 번 돈을 지키기가 더 힘들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번 돈을 무엇에 다 써야 되겠다고 할 때인데, 의미없이 그냥 쓰다가는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하루에 100만원씩 써 보라고 하면 요새 돈 씀씀이로 보아서 가능하겠지만, 하루에 1000만원씩 쓰라고 하면 돈 쓰다가 지쳐 죽게 된다.

이완 수련을 하다 보면 가슴 한 부분이 결리거나 아플 때가 있는데, 가슴앓이라는 것으로, 감정에 문제가 생기면 이것이 생긴다. 가슴이 바로 중단전이다. 가슴앓이가 한 번 생기면 이완을 해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지독하게 굳은 상태로 며칠을 견뎌야 겨우 풀 수 있다.

가슴앓이는 세균이 침범한 것도 아니고, 밥을 못 먹어서 영양 실조에서 온 것도 아니고, 과로에서 온 것도 아니다. 오직 마음에서 온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학교에 다닐 적에 보니까, 남녀가 연애를 하는데 date, steady date, I love you, 이렇게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처음에 호감을 가지고 date를 해서 좋아지면 다른 사람과 date를 하지 않는 steady date를 하게 되고, 그것이 발전되면 I love you가 되어 결혼으로 발전하거나 말거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I love you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면 『너 없이는 못 살아』 하는 상태가 되는데 이것도 병이다. 그러다가 뜻대로 되지 않고 사랑이 어긋나면 가슴앓이가 생기고, 그것이 평생 갈 수도 있다.

이때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가를 살펴보면, 남녀가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date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고, steady date도 아니고, 아마 I love you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가 본다. 사랑도 병이라는 유행어도 있었지만, 『난 너를 사랑한다』 하면 이것은 병의 시작이니까 조심해야 한다. 심리적으로 볼 때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거든 I love you도 결혼하고 난 뒤에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마음 다스리기

『너 없이는 못 살아』 하는 상태는 남녀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이든 명예든 취미 생활이든 하나에 빠져서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면 역시 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자신의 성취나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이 집착으로 변하면 병이 된다. 그런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평소에 자신의 마음을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학교 시절에 사회와 예술 과목에 약했고 과학은 좋아했다. 이렇게 사람은 커가면서 어딘가 편벽해진다.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약한 부분에서 결벽증이 생기거나 기피증이 생기며 여러 가지 부작용이 빚어진다. 만약에 그런 것이 위협을 준다면 그 사람은 늘 불안에 떤다. 조급해지고 모르는 병이 생기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생긴 이것을 누가 고쳐 주느냐? 정신 심리학 공부를 많이 한 의사가 분석을 해서 당신은 어디가 나빠서 어떻게 치료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원인은 자신이 찾는 것이지 의사가 쪽집게처럼 꼭 집어서 찾아주기는 어렵다. 내가 내 몸을 관리하듯이 마음도 내가 찾아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심기신수련은 스스로 주치의가 되어 자기 마음을 관리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매일 명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뒤틀림이 없는지 점검하고, 뒤틀림을 보는 즉시 그때 그때 바로잡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 환경부터 내 입맛에 맞게 바뀌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여건이 맞아야 마음에 여유도 생길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이 뒤틀려 있으면 아무리 여건이 좋아져도 그것이 좋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매일 적당한 운동을 해주어야 육체적인 건강이 유지되듯이 마음의 건강 또한 꾸준히 관리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 콤플렉스 극복법

사람의 몸은 보통 때에는 대뇌의 의식에 의해 지배되고 통솔된다. 그런데 대뇌의 의식을 어느 한 곳에 집중시키고 있다가 점점 그 강도를 줄여나가면, 마침내 의식이 끊어져 대뇌에서는 아무 작용도 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대뇌의 의식 작용을 멈추게 한 상태에서는 자율신경이 대뇌를 지배하게 된다.

다음에는 자율신경을 지배하는 중추, 즉 중단전에서 가슴속으로 2/3쯤에 위치하는 태양신경총에 의식을 집중한 다음, 이 의식을 줄여 무의식 상태로 들어가면 우리 몸에서는 태양신경총만 작용하게 된다. 이것은 표면의식을 태양신경총에 두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표면의식이 제로(zero) 상태에 이르게 된다.

표면의식이 제로 상태에 이른다는 것은 잠재의식 상태, 즉 자신의 본래 마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나 불안감 등 마음의 뒤틀림을 볼 수 있으며, 그 원인이나 기원을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그것들을 치료하거나 예방하여, 마음을 건강하게 가꿀 수 있다.

나는 오랫동안 노래를 못하는 것이 콤플렉스였다. 초등학교 때 음악 시간에 여선생이 풍금을 치면, 노래를 불러 그것이 음악 점수가 되곤 했다. 나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니 음악 시간만 되면 그냥 화가 났다. 노력해보았지만 워낙 소질이 없어서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음악에는 노래하는 실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음(五音)과 고저장단(高低長短), 그리고 악보 보는 법 같은 이론도 있었다. 이 이론들을 수업 시간에 가르쳐주었더라면 내게는 음악 시간이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론은 가르쳐주지 않고 노래만 부르게 했다. 물론 초등학교 때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날 이때까지 노래하는 것은 싫다. 어디서 잔치할 때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라고 하면 슬며시 빠져나온다.

『노래 잘하는 사람은 자랑이 되겠지만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구!』

이것이 바로 열등의식의 표현으로, 마음의 뒤틀림이다.

표면의식이 제로 상태에 이르면 거기에서 하나만 생각한다. 내가 콤플렉스가 있다고 느꼈으면 그것이 언제 생겼는가를 가만히 생각하고, 또 그것이 지금 어떻게 움직여 내 몸을 해치고 있나를 살펴본다.

나는 이제 노래 못하는 것으로 내 몸을 해치지는 않는다. 노래방 안 가면 그만이고, 가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면 된다. 노래 콤플렉스에서는 벗어난 것이다.

그런데 콤플렉스에는 열등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월 콤플렉스(superiority complex)도 있다. 남에게 지면 못 견뎌서 결과적으로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월 콤플렉스다.

나는 대기업의 회장이니까 내 나름으로는 조심한다고 하지만 남의 눈에는 내 우월 콤플렉스가 보일 수 있다. 권한이 많으니까 권한을 함부로 부린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때에도 역시 표면의식을 제로 상태로 만든 다음 과연 그런가, 그런 것으로 인하여 몸의 건강 관리에 지장이 있나 없나를 살펴볼 수 있다.

표면의식을 태양신경총에 두는 수련으로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의 힘, 즉 대뇌와 복뇌의 힘이 합쳐지게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사람이 자기 수준 이상의 초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심기신수련에서는 몸을 이완시키고 긴장시키는 데 이를 이용한다. 몸의 피부 근육은 물론 내부 기관의 신축까지 손쉽게 하는 것이다.


● 초능력과 수련자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 가지기 힘든 것을 동경한다. 초능력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부터 기를 활용하는 수련에서는 초능력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다. 육구신통(六具神通)이 그 대표적인 보기이다. 몸의 다섯 가지 감각 작용과 마음의 작용이 합해져, 우주 자연의 묘(妙)와 서로 통하게 되면 신통력이 생기고, 그것이 발전하면 초능력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 수련을 하면 여러 가지 능력에서 보통 사람 이상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 몸이 위에 뜨는지,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남의 병도 알아내는지 알고 싶어한다. 나는 위로 뜨지 못하고,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거나, 남의 병을 볼 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런 것들을 부러워한 적이 없다.

이 경우에는 특히 기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문제다. 염력(念力)이니 투시(透視)니 해서 신기한 것만 찾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 수련에 대해서 잘못된 상식과 인식을 갖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기 수련을 소개하는 사람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요즘 나오는 책들을 보면 모호한 말들만 잔뜩 써놓고 자기가 가장 유식한 것처럼 자랑하면서도 진짜 중요한 문제, 즉 어떻게 현실적으로 기를 활용하는가 하는 방법은 제시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초능력에 대한 관심은 지역적으로 동양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인도나 히말라야 같은 곳들만이 아니라, 아랍권과 서구에서도 일찍부터 초능력에 대한 얘기가 많이 전해온다.

기 수련으로 초능력을 기르려면, 몸 위주 또는 마음 위주로 수련 방향을 특정화해야 한다. 양정(養精)에 치중하여 몸 위주로 수련한다면 차력사와 같은 능력을 갖추거나 변신이나 분신, 축지법, 비행법, 장풍 등과 같은 무도술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또 양신(養神)에 치중하여 마음 위주로 수련한다면 투시(透視)나 투청(透聽), 염력(念力), 미래 예지 같은 능력과 과거를 알아내는 숙명통(宿命通), 그리고 남의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讀心術)이나 타심통(他心通)과 같은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기 수련과 관련하여 초능력에 대한 얘기는 많이 나오지만, 그런 능력을 기르는 방법이나 이론이 구체적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대뇌에서 통할하는 표면의식과 자율신경이 통할하는 잠재의식을 일치시키면 사람의 능력이 비약적으로 커질 수 있으며, 이런 이치를 활용해서 강도 높은 수련을 오래 하면 누구나 초능력에 도달할 수 있다.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심기신수련을 통해서도 누구든지 오랜 기간 정성을 기울인다면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실용적인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초능력의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왜, 무엇 때문에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초능력을 길러야 하는가?

되풀이하여 강조하지만, 심기신수련의 목적은 자신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관리하여 생명력을 높이는 데에 있다. 누구라도 피치 못할 이유가 있거나 선천적인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초능력을 가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특별한 힘을 길러서 차력사가 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남의 운명을 점치거나 병을 고쳐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초능력을 기르기 위한 수련은 오히려 심신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도가나 선도에서도 금기시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심기신수련은 몸과 마음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갖추고 중용의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최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기 문화가 주술적이고 신비적인 경향을 띠고 전해져왔기 때문에 많은 현대인들이 기에 대해 거리감을 가지거나 외면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술성이나 신비성은 기의 속성이 아니며 기를 활용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달려 있다. 심기신수련을 하는 사람은 오로지 중용의 자세로 심신의 단련을 통해 자신의 생명력을 키워간다는 목표를 잊지 않아야 한다.


● 생활과 함께 하는 수련

옛날부터 양생훈(養生訓)이라 해서 전해오는 것이 있다. 많이 먹지 말라, 많이 얘기하지 말라, 많이 생각하지 말라, 성행위도 많이 하지 말라, 하는 것들이다.

지금도 이런 말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말이 설득력 있던 시대는 40, 50살만 되어도 노인 대접을 받고 환갑까지 사는 것도 힘들던 때였다. 몸을 많이 쓰면 힘이 빠져나가는데, 그 시대에는 빠져나간 힘을 보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영양학과 생리학, 의학이 고도로 발달했으며, 인간의 평균 수명이 70살에서 80살로 넘어가고 있다.

옛 사람들은 성행위를 많이 하지 말고, 하더라도 사정을 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정액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액의 주성분은 고단백질이다. 계란 얼마 또는 고기 얼마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인데, 옛날에는 막연히 생명력의 일부가 소진된다는 인식을 가졌었다. 물론 무분별한 성행위는 그때나 지금이나 피해야 하는 것이지만, 성을 수련의 방해 요소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던 날, 그는 새벽에 몽정을 하고 깜짝 놀라 눈이 떠졌다고 한다. 하필이면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그는 이제 다 틀렸다고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두자 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런데 잠에서 다시 깨어난 그는 어느 날 못지 않게 가쁜한 컨디션으로 마라톤에 나갈 수 있었고 우승을 했다. 성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염려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좋은 예다.

사람이 활동하면 기가 빠져나가고 에너지가 소모된다. 기는 호흡과 함께 받아들여 축기와 운기를 해줌으로써 다시 채워줄 수 있는 것이고, 에너지는 영양만 알맞게 공급해주면 된다.

우리가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자는 것은 건강한 생활인이 되고 사회인이 되자는 것이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신선처럼 지내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 같은 세상에 전통적 양생법을 고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뿐더러 될 일도 아니다. 다만 그런 전통적 방법론에 담긴 의미를 재해석하여 현대 생활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바꾸어야 한다.

예컨대 사람이 늙어간다는 대자연의 섭리는 그 무엇도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화를 늦출 수는 있다. 단순히 시간상으로만 늦춘다는 것이 아니라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생명의 길이를 연장할 수 있다. 이는 순리를 거역하는 것, 즉 역천(逆天)이 아니며 전통적인 양생법을 왜곡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심기신수련에 임하는 자세는, 전통적 양생법의 취지와 방법들을 현대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프로그램 속에 수용하면서,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으로 생명력을 키워가는 것이어야 한다.


● 小食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옛 사람들의 양생훈 중에 많이 먹지 말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것도 무조건 적게 먹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식이요법들을 보면 대개 지방의 섭취를 최대한 억제하라는 지침이 따른다. 지방의 섭취를 줄이고 고단백질의 섭취를 늘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단백질은 무엇인가? 고단백질이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아미노기(-NH2)와 카복실기(-COOH)가 치밀하게 중합된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그 구성이 조잡하고 간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저단백질이라 한다.

음식을 예로 들면, 생선과 콩과 아메바류에 속하는 해파리 냉채 같은 것이 저단백질이고, 닭고기와 돼지고기, 소고기 등이 고단백질이다. 이 중에서도 소고기는 고급 고단백질에 속하고, 개고기는 더 고급에 속하며, 효소의 일종인 뱀의 독은 최상급의 고단백질이라 한다. 그렇다면 뱀의 독이 몸에 가장 좋다는 말인가?

전분의 경우도 밤에 들어 있는 것은 고급에 속하고, 곡물에서 나오는 것은 중간급이고, 감자에서 나오는 것은 하급이라 한다. 사실이 이러니 만날 밤만 먹어야 할까? 아마 질려서라도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쌀도, 보리도, 감자도, 밥도 다 먹어야 한다. 좋다고 하는 한 가지만 먹으려 들면 오히려 몸에 해가 될 것이다.

먹는 것에 관한 한 나는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에 나쁘니 사탕은 안 된다, 아이스크림도 안 된다 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좋지 않다. 살이 좀 찐 사람이 아이스크림 서너 숟갈 먹었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심심해서 사탕 하나 먹는 것도 별 문제 없다. 운동을 많이 하면 당뇨병 환자도 사탕 한두 개 정도는 먹어두는 게 좋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한 가지 영양소를 지나치게 섭취한다거나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 식습관이다. 다시 말해 먹는 것 역시 중용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요컨대 전통적인 양생 방법이나 규범을 그대로 답습하는 정도로는 현대인의 생명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 심기신수련은 옛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보완하여 현대 생활에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생명력 관리법이다.


● 초보자를 위한 심기신 수련

현대인들은 누구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바쁘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충분히 돌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고, 또 심리적으로 건강에 제대로 관심을 쏟을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기신수련은 하루에 1시간 20분 내지 30분씩 시간을 투자하여 최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만일에 이만한 시간을 한꺼번에 내기 어려우면 하루에 두 번 또는 세 번 틈이 나는대로 나누어 해도 무방하다.

또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수련의 특징이다. 넓은 공간이나 도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며 복장도 특별한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이해가 용이하고 수련의 즐거움을 쉽게 누릴 수 있는 건강법, 그러면서도 시간과 장소에 매이지 않는 건강법이 되도록 배려하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빠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심기신수련이다.

심기신수련은 생명력을 최대로 강화시켜 몸과 마음을 병 없이 건강하게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상 생활에서 소모된 기를 다시 보충해서 축기(蓄氣)를 하고, 그 기가 잘 흐르도록 운기(運氣)를 해야 한다. 결국 심기신수련은 기를 느끼고, 축기와 운기를 원활하게 하는 수련이라고 할 수 있다.

심기신수련에는 체조, 호흡, 명상의 3가지 방법이 있다. 선도(仙道)에서는 이를 각각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심(調心)이라고 한다.

심기신수련은 마음으로 기를 조절하여 기가 몸과 상호 작용을 하게 하는 과정이므로, 항상 마음과 기와 몸 즉 심기신(心氣身)을 함께 활용하여 수련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체조에서는 시간을 단축하고 수련의 편의를 돕기 위해, 일반 체조처럼 마음과 기를 활용하지 않고 몸만 써서 하는 동작(몸 체조), 기를 활용하지 않고 마음과 몸을 써서 하는 동작(심신 체조), 마음과 기와 몸을 모두 활용하는 동작(심기신 체조)으로 구분해 놓았다(같은 동작에 대해서도 3단계로 나누어 해보면 각각의 효과를 비교할 수 있다).

초보자는 먼저 심신을 활용해본다. 초보자는 기를 알지 못하고 기를 느끼기도 쉽지 않으므로 먼저 몸과 마음만을 활용하는 심신 수련을 한다.

체조에서 우선 일반 체조처럼 몸만 움직여서 해본 다음, 몸과 함께 마음을 활용하는 2단계의 심신 체조를 해본다. 호흡에서도 그냥 무의식적으로 호흡하는 단계에서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에 마음이 따라가는 식으로,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여 심신 호흡을 해본다. 마음을 집중하는 것은 용을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편안한 상태에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명상(冥想)에서도 마음과 몸을 같이 활용한다. 명상을 한다 하면 무슨 대단히 심오한 주제에 몰두하거나 무념무상에 빠져들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몸 각 부분의 상태를 하나하나 마음으로 점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몸에 집중(심→신)하여 체조와 호흡과 명상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이 몸에 집중해 있을 때 기가 따라서 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즉 마음이 기를 움직여 몸과 상호 작용하게 한다(심→기→신)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기감(氣感)이 특별히 예민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물론이고 보통 사람도 마음의 집중도만 높이면 어렵지 않게 이를 체험할 수 있다. 기를 느끼는 것은 꼭 이런 방법이 아니라도 별도의 수련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기를 느끼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마음과 기와 몸을 함께 활용하는 심기신수련에 들어간다. 체조를 할 때 심신을 활용하는 단계에서 심기신을 함께 활용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호흡과 명상을 할 때도 역시 심기신을 모두 활용한다. 심기신수련에서는 체조와 호흡과 명상이 독립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수련이 깊어지면 체조와 호흡은 필요 없고 명상만 해도 된다는 말도 있지만, 이는 마음과 기와 몸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생명력을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체조와 호흡과 명상을 균형 있게 해야 한다.

심기신수련의 요체는 첫째, 기를 느끼고, 둘째 기를 모으고(축기), 셋째, 기를 몸 안에 돌리는(운기) 것이다. 항상 마음과 기와 몸을 밀접하게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마음을 집중하여 수련을 하면 누구든지 기를 받아들일 수 있고, 그 기를 몸 안에 원활하게 소통시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수련 정도가 높아질수록 심기신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지기 때문에 좀더 빨리 기를 모으고 돌릴 수 있게 된다.

초보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를 느끼고, 다음에 축기와 운기가 짧은 시간에 잘 될 수 있게 하는 데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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