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는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가 차원의 재난 대응훈련, 재난 발생 시 컨트롤타워 운용, 피해자 가족과 관계맺기, 안전전문가와 전문센터 육성 등을 통해 국가 재난 대응 시스템의 문제점을 짚고 그 대안을 모색해볼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기획취재 : 이주빈 강성관 선대식 최지용 강민수 소중한 기자
사진: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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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이렇게 못 하나 지난 2011년 5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이 아즈마 종합운동공원에 차려진 후쿠시마 이재민 피난소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 피난소 내에는 포장박스로 개인공간을 확보해 놓았다. 포장 박스에는 "힘내라 일본"이라고 쓰여져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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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14일째인 지난 4월 30일.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진도체육관에는 대낮에도 환한 조명이 켜져 있다. 맑은 날에도 체육관으로 빛이 잘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밤새 구조작업 소식에 귀 기울이며 잠을 못 이룬 실종자 가족들이 체육관 바닥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운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체육관 스탠드에 오르면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인다. 가족들은 눈치라도 보듯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사고 초기부터 인터넷에서는 진도체육관 모습과 상반되는 장면의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 2011년 일본 동북부 대지진 이후 이와테현 체육관에 만들어진 이재민 피난소의 모습이다. 천으로 가림 막을 설치해 피해자 가족별로 생활공간을 마련했다. 매번 재해 때마다 혼잡하고, 열악한 피난소의 모습이 익숙한 우리와는 상반된다.

누리꾼들과 신경정신의학계 전문가들은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게도 사적인 공간과 충분한 휴식공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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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체육관 생활 지난 4월 30일 아직 가족의 생사확인조차 못한 실종자 가족들이 탈진해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바닥에 몸을 누인 채 링거를 맞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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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22일 오전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군 실내체육관 모습. 프라이버시 확보는 커녕 쉬기도 힘든 열악한 환경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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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부도 지난 4월 22일 진도체육관의 칸막이 설치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후로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조처가 이뤄지지 않았다. "가족전체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요청한 가족들이 없다"는 게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의 설명이다.

"가족들이 요청할 경우 설치가 가능하느냐"는 질문에는 "절차를 확인해 봐야 한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실종자 가족 측은 "칸막이를 설치한다는 건 수색작업을 장기화 하려는 정부의 의도"라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정부를 향한 불신이 겉잡을 수 없이 팽배해진 것이다.

진도체육관의 '칸막이 논란'은 사고 발생 후 2주 동안 정부가 실종자 가족을 대하는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고 초반 국가적인 재난사태임에도 실종자 가족들에게 정확한 정보전달이 이뤄지지 못했다. 생활 지원 대책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뿐 아니라 생존자,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대책 역시 문제가 제기된 이후 수습하기에 급급했다. 그 사이 가족들은 정부를 불신하게 됐다.

결국 정부는 더 많은 인원을 구조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뿐 아니라, 피해자 가족들을 달래고 위로하는 '골든타임'도 놓친 것이다.

가족들과의 소통 부재... 사고 10일 지나서야 민원 담당자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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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도 처음에는 이랬다 지난 2011년 3월 21일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발생한 이재민들이 수용된 사이타마 체육관의 임시 수용소 모습.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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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 칸막이로 개인공간 확보 지난 2011년 8월 8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일본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 아즈마종합체육공원 내 실내체육관에 설치된 이재민 피난소를 방문했을 때 모습. 대나무로 보이는 칸막이 구조물이 설치돼 있고 담요 등으로 가려 개인공간을 확보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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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는 가족들을 지원하는 각종 부스가 마련돼 있다.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경기도, 경기도교육청, 안산시청 등 정부부처와 지방정부에서 가족 지원을 위해 많은 인력을 투입했다. 의약품과 긴급진료를 위한 의료진들과 심리상담 시설 등이 설치됐다. 또 여러 자원봉사단체가 가족들의 식사를 제공한다.

그러나 가족들을 위한 서비스 제공은 원활하지 않은 모습이다. 민간이 맡고 있는 가족들의 식사나 의료지원, 의류 세탁, 통신, 교통 수송 등의 분야는 큰 문제가 없다. 반면에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분야에서는 많은 허점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희생자, 실종자 가족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면서 기본적인 역할에서도 낙제점을 받았다. 초기 사고 현황, 구조상황과 관련해 정부는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팽목항에서 만난 한 단원고 학생 실종자 가족은 "잠수부가 몇백 명, 배가 수십 척, 헬기가 수십 대가 동원 됐다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다 드러났다"라며 "정부는 가족들을 기만하고, 감추려고만 했지 뭐 하나 제대로 설명해 주고 알려 준 게 없다"라고 비판했다. 일차적으로 사고와 구조 관련한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가 가장 먼저 제기한 불만이었다.

가족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은 사고 발생 이후 상당기간 지속됐다. 진도체육관에서 만난 또다른 실종자 가족은 "뭘 얘기 할 게 있어서 공무원들을 찾아가면 다 자기 업무가 아니니까 담당자를 알아본다며 한참 걸린다"라며 "그것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될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진도체육관 실내에 '가족지원 상황실'을 마련하고 희생자 신원확인, 단체생활 편의를 위한 각종 행정시스템을 지원하고 있지만 가족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장례를 비롯해 사후 처리 과정에서도 아무런 역할이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가족의 시신을 확인하고 장례를 준비하던 유가족 조아무개씨는 "신원 확인한 후에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가 다 책임지고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한다고 했는데 왜 아무 얘기가 없나 의문스러웠다"라며 "서울로 이송하고,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장례를 마칠 때까지 5~6단계를 거치는데 그걸 다 가족들이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사고 10일째인 지난 4월 25일에서야 각 업무분야별 담당자 명단과 직통연락처를 가족들에게 제공했다. 또 희생자 가족이 희망할 경우 가족별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1:1 지원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이것 역시 사고가 발생한 지 11일 만에 나온 조처였고, 이미 170여 명의 희생자 시신이 수습된 뒤였다.

정부는 가족들에게 필요한 제도를 마련해 놓고도 시행에서 미숙함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가 제공하는 긴급가족돌봄서비스다. 사고 희생자와 실종자, 생존자의 가족들의 심리치료를 비롯해 집안 청소, 자녀의 등하교까지 지원하는 제도이지만 이 제도를 이용하는 가족은 많지 않다. 이 역시 가족들이 지원을 요청해야 작동되고, 서비스를 신청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가족들의 얘기다.

진도체육관에서 만난 실종자 가족 박아무개씨는 "2주 동안 집을 떠나 생활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정부가 뭘 도와줬는지는 모르겠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일주일 지나고 나서 아내하고 교대로 집에 다녀왔다. (집이) 엉망이었다"라며 "정부에서 지원해준다고 하는데, 한 번 찾아와서 묻기는 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경황이 없을 때였다"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긴급가족돌봄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배치된 인력들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현장의 가족돌봄서비스 담당자는 "사고 셋째 날부터 현장에 부스를 차리고 가족들을 지원하고 있다"라며 "초반에는 신청하시는 분이 거의 없었고, 우리가 다가가서 설명을 드려도 신청하시는 분은 많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안산은 진도보다 많은 분들이 신청해서 서비스를 이용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라며 "일단 가족들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 노력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가족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건 아쉽다"라고 말했다.

미국·일본은 재난유형 구분 없이 통합 지원체계 구축

결국,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은 이번 참사에서 가족을 잃게 되는 슬픔에다가 사태 수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고스란히 입었다. 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정부의 역할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미 재난대책과 컨트롤타워 부재를 지적받은 정부다. 가족지원에 있어서도 같은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재난 시 가족지원은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정부는 이를 책임질 컨트롤타워도, 매뉴얼도 없었다.

현재 현장에서 가족지원업무를 총괄하는 곳은 해양수산부다. 최초 안전행정부가 중앙재난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컨트롤타워를 세웠지만,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이후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해수부 중심으로 재편됐고, 가족지원 분야까지 총괄하게 됐다. 그러나 해수부가 2014년 작성한 <국가안전관리 집행계획>에는 재난 시 이재민이나 피해가족을 지원하는 구호계획을 찾아 볼 수 없다. 애초에 해수부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다.

업무분야로 보면, 여성가족부나 보건복지부에 주요한 역할이 부여돼야 하지만 이들은 재난상황에서는 보조적인 위치에 그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가족 생활지원, 보건복지부는 의료지원 분야만 담당한다. 전문성을 가지고 가족 지원 계획을 시행할 중심 부서가 없는 것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총괄을 맡고 있지만, 결국 대부분의 업무는 다른 부처와 협의를 통해 집행해야 한다"라며 "워낙 큰 사고가 발생했고 정부의 초동 대처에는 부족함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에는 재난 시 가족지원을 체계적으로 펼칠 수 있는 매뉴얼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기본법으로 이재민 지원에 관련한 내용이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자연재해의 경우에만 국한돼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같이 인적·사회적 재난에 적용할 만한 법령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진도와 안산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했지만 이 역시도 자연재해 상황에 맞춰져 있어, 지역에서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재해유형에 상관없이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관계 법령을 갖추고 있다. 자연재난뿐 아니라 인적·사회적 재난에도 동일한 지원을 할 수 있는 체계가 잡혀 있는 것이다. 또 이들 국가는 재난 시 구호역할을 하는 컨트롤타워도 명확했다. 미국은 국토안보부의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재난 피해자 구호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일본은 노동후생성이 구호업무를 담당한다. 중앙정부의 담당 부처가 구호 업무 전반을 총괄하고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다.

생존자와 가족들의 심리치료,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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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무능에 격분한 가족들 세월호 침몰사고 16일째를 맞은 1일 오전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정홍원 국무총리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수색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이해를 구하자, 격분한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의 안일한 대처를 질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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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에게 필요한 지원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의 경우 전국민이 큰 충격을 받은 만큼, 다행히 가족들의 정신적인 심리치료에도 관심이 높다. 생존자들과 그의 가족들,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에게 구체적인 심리치료 방안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속속 계획을 내놓고 있다. 그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설치 계획을 눈여겨 볼 만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9일 매년 30~40억 가량의 예산을 투여해 최소 3년간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세월호 실종자 및 희생자 가족, 구조된 승선자, 지역주민들에게 ▲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우울, 불안 등 초기진단 ▲ 고위험군에 사례관리 ▲ 개인상담 및 집단 프로그램 ▲ 24시간 콜센터 운영 등의 서비스를 지원한다. 가정방문을 통한 심리지원서비스와 희생자 가족모임 지원 계획도 내놓았다.

이러한 계획은 이전에 발생한 재난 사고와 비교하면 진일보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예산과 운영 기간이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앞서서도 천안함 사건, 해병대캠프 사고, 경주리조트 붕괴사고 등 인적·사회적 재난이 발생했고, 이후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상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는 이러한 재난 피해자들의 심리치료를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지난 2006년 작성된 FEMA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1999년 13명의 학생의 목숨을 앗아간 콜롬바인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인적·사회적 재난에 맞춘 체계적인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사건의 1차 접촉자(피해학생 및 목격자), 2차 접촉자(피해자 가족), 3차 접촉자(일반 학생)까지를 대상으로, 최대 10년 동안의 계획이 담겼다. 이후 9·11테러, 뉴올리언스 홍수사태에서도 이런 심리치료 프로그램이 적용됐다.

한국 역시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기로 인적·사회적 재난 시 피해자와 가족에게 체계적인 지원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발표한 새로운 재난대응체계 구상에 사고 피해자를 위한 대책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설령 그러한 체계를 갖추려 한다고 해도, 이를 추진할 연구자나 전문가 자체도 부족한 상황이다.

14년 전 부일외고 수학여행 중 교통사고로 18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고를 겪은 김은진씨는 "유사한 고통을 오래전에 그들(단원고 학생) 나이에 겪었고 어쩌면 평생 그들이 견뎌야 할 고통의 무게를 약소하게나마 공유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겪은 생존자와,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적폐를 청산하는 것만큼이나 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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