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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후]“쫄지 마세요, 가카”
최병준 |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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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놀라웠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나는 꼼수다>(나꼼수) 공연 말이다. 오후 늦게까지 비가 내린 데다 기온이 뚝 떨어져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날씨에 5만명이나 몰려와 공연을 봤다. 덜덜 떨며 공연을 보고 온 후배에게 왜 갔느냐고 물어봤다. “통쾌하잖아요.”

바로 그 다음날, 가슴이 탁 막히는 뉴스가 편집국에 들어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애플리케이션(앱) 심의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팟캐스트 <나꼼수>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못 듣고 못 보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방통심의위가 SNS와 앱을 심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먼저 트위터나 페이스북 이용자가 서로 팔로나 리트윗을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SNS를 공공기관이 나서서 규제해야 할 ‘공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적으로 나눈 대화에 정치·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내용이 있다고 해서 접속을 차단하겠다거나 계정을 삭제한다는 생각은 군사독재 시절에나 볼 수 있는 검열을 떠올리게 한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어 위헌 소지도 있다. 음란물 유포, 명예훼손 같은 문제가 생겨 긴급하게 차단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 해외에서는 공공기관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가 자신의 약관에 따라 결정한다고 한다. 사업자 역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네르바 사건’을 겪은 이명박 정부가 SNS와 앱 규제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인터넷에 경제위기에 관한 글을 올렸다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2009년 구속됐던 ‘미네르바’ 박대성씨는 전기통신위반법 47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고 지난해 10월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그런데도 온라인 공간의 통제 시도는 계속돼왔다. 검찰은 얼마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허위사실 유포 등에 구속수사 방침을 밝혔다가 여당으로부터 “정치도 모르는 정치검찰”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왜 SNS와 앱을 규제하려고 안달할까. 정부가 SNS·앱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나경원 전 의원이 연회비 1억원짜리 피부과에 다녔다는 의혹이나 이명박 대통령이 아들 이름으로 내곡동 땅을 산 사건은 <나꼼수> 같은 앱을 통해 급속히 퍼져갔다.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은 부산에서 실시간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상황을 중계했다. 시위와 집회, 투표 권유 등도 SNS를 통해 이뤄졌다.

지금은 시민들이 보고 싶은 것을 찾아서 보는 시대이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공중파 방송을 통제하면 시민들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시민 개개인이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팟캐스트 <나꼼수>의 다운로드 건수는 한 달에 2000만건이나 된다고 한다. 시민들이 <나꼼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앱 자체가 힘을 가진 매체여서가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저질러놓은 말도 안되는 ‘사고’ 때문이다. 보수언론들이 ‘작게, 그리고 다르게 다루는’ 뉴스에 대해 ‘직설’을 쏟아내니까 시민들이 퍼나르는 것이다.

여당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날치기 통과시켰고, 한 여당 의원의 비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디도스 공격을 하도록 해커에게 시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 보좌관과 현 정권 실세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이 상황에서 SNS와 앱을 규제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시민들의 입을 막겠다는 시도로 비친다.

지난 4월부터 거침없는 독설을 퍼부어온 <나꼼수> 출연자들은 스스로에게 “쫄지 마”라고 외쳤다. 지금은 상황이 바뀐 듯하다. 이제 “쫄고 있는” 쪽은 조바심에 SNS와 앱까지 규제해보려는 집권세력처럼 보인다. 이들은 갈수록 악화되는 여론에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참패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이제 시민들이 <나꼼수>식으로 한 ‘말씀’ 드려야 하는 걸까. “가카, SNS와 앱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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