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술25]전기 저장했다 쓰는 '집채만한 배터리'…블랙아웃 없는 날 앞당깁니다

양수발전, 납축전지 이어 리튬이온전지까지
심야시간 전력 저장했다가 필요할때 꺼내 써
신재생에너지·스마트그리드 활성화 앞당겨
  • 등록 2018-09-10 오전 5:30:00

    수정 2018-09-10 오전 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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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서울 노원구 하계동 장미아파트에 전력 사용 증가에 따른 변압기 과부하 탓으로 전기공급이 끊겨 한 주민이 실내온도 31.6도를 가리키는 온도계 옆에서 부채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요즘 대한민국은 대규모 정전사태를 의미하는 ‘블랙아웃’의 공포에 휩싸이곤 합니다. 전력 사용량이 역대급으로 치솟으면 으레 블랙아웃을 얘기합니다. 실제 2011년 이른바 9·15 정전 사태로 약 753만가구가 정전을 겪었고, 총 재산피해만 620억원에 달했습니다. 전세계로 눈을 넓히면 더 심각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2003년 8월 14일(현지시간) 미국의 경제수도 뉴욕을 비롯한 동북부 지역에 역대급 블랙아웃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3일간 이어진 대규모 정전상태로 항공기를 비롯한 교통 마비, 상업 및 산업시설 가동 중단으로 총 60억달러(6조7000억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했죠.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주목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같은 배경 때문입니다.

◇‘물’ 같은 전력을 모으는 방법은?

전력에는 재고(창고에 쌓여있는 물건)가 없다고 표현합니다. 일반적으로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은 ‘물과 같이’ 흐르며, 한번 흐를 때 사용하지 않으면 그대로 소모되어 사라지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력을 다른 물건들과 같이 창고에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바로 꺼내 쓸 수 있다면, 블랙아웃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겁니다.

ESS는 말그대로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기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저장방식에 따라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 물이나 공기를저장했다가 이를 활용해 필요할 때 전력을 생산하는 물리적 방식과 전력 자체를 전지에 저장했다가 사용하는 화학적 방식이 그것입니다. 물리적 에너지 저장으로는 양수발전과 압축공기저장 등을 들 수 있으며, 화학적 에너지 저장으로는 2차전지(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충전을 통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전지)인 리튬이온전지, 납축전지 등이 대표적입니다. 다만 요즘에는 흔히 ESS 하면 리튬이온전지 등의 화학적 에너지 저장장치를 의미합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스마트폰·전기차 이어 ESS도 리튬이온전지 바람

ESS의 대표격인 리튬이온전지는 전지의 음극판을 금속인 리튬으로 만든 전지를 말합니다. 다른 2차전지에 비해 용량이 크고 수명이 현저하게 길어 ESS에 제격이라 가장 많이 쓰입니다. 특히 ESS 시장의 판도는 최근 스마트폰 개발과 전기자동차의 보급과 맞물려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1991년 소니가 개발한 리튬이온전지는 무게와 크기, 그리고 수명 측면에서 납축전지 대비 훨씬 우수한 성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리튬이온전지는 납축전지 대비 5배 이상 높은 에너지밀도를 갖고 있어, 같은 양의 에너지를 구현한다고 가정하면 무게는 4분의 1, 부피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수명 역시 납축전지가 리튬이온전지 대비 절반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리튬이온전지는 납축전지가 사용하는 납과 카드뮴, 황산 등 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기도 합니다. 다만 가격이 비싼 단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상황은 급변합니다. 전기자동차 시대 개막을 앞두고 전세계 각국이 전기자동차용 리튬이온전지 생산능력 확보에 적극 나서면서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와중에 2016년 폭스바겐이 배기가스 인증 서류를 조작한‘디젤게이트’가 발생하면서 전기자동차 시대 개막을 더욱 가속하기도 했습니다. ESS용 리튬이온전지는 전기자동차용와 동일 생산라인에서 제조가능하기 때문에 ESS 단가 역시 함께 하락하게 된 셈입니다. 2010년 1kWh 당 1000달러 이상에서 2017년 이후 200달러대로 급격히 떨어진 상황입니다.

이미 2000년대 이후 새로 설치되는 ESS는 대부분이 리튬이온전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5년간 신규 설치된 ESS 중 리튬이온전지 비중은 66%였고, 2017년 신규 설치된 ESS 중 리튬이온전지 비중은 85%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세계 ESS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만해도 2017년 신규 설치된 ESS 중 95%가 리튬이온전지이기도 했습니다.

전지 기술개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전력 계통형 대형 ESS와 주거용 ESS를 대상으로 다수의 실증사업을 진행중입니다. 특히 효과가 입증된 영역을 중심으로 캘리포니아주 등에서는 전력회사의 ESS 설치 의무화 등 구체적인 수준까지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일본 NGK와 도쿄전력은 2006년 나트륨황 전지 상용화에 성공해 ESS 시장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1년 정부에서 에너지 저장기술 개발 및 산업화전략을 마련해 2020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30%를 목표로 총 6조 40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마트그리드·신재생에너지 핵심 ESS, 미래기술 중심으로

ESS 활용도는 미래에 더욱 확대될 전망입니다. 인류의 미래가 걸린 지구온난화 등 환경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전력을 똑똑하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전세계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똑똑하게 효율적으로 전력을 사용하기 위한 스마트그리드에 ESS는 핵심 기술로 꼽힙니다. 스마트그리드란 똑똑한(Smart) 전력망(Grid)라는 뜻으로, 기존 전력망에 정보통신기술(ICT)을 더해 전력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사물인터넷(IoT)와 빅데이터 등을 통해 소비자의 전력 사용 패턴을 파악해 적정한 전력을 공급하는 식입니다. 즉 전력이 필요한 시점에 적정 양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ESS가 갖춰져야하는 셈입니다.

이에 더해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확산 역시 ESS의 중요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태양광과 풍력은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해가 뜨거나 바람이 불어야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그동안 활용성이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ESS를 덧붙여 활용하면 이같은 문제 역시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햇빛이 잘들거나 바람이 많이 불 때 전력을 많이 생산해 ESS에 저장해두면, 필요할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그리드와 신재생에너지가 정착되면 국가 전체가 일부 지역에 몰려있는 발전소에 의존하던 전력 공급의 방식도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발전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대규모 발전 및 송전설비 증설을 위한 크나큰 비용을 투입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지역갈등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 내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짓고, 여기서 생산한 전력을 스마트그리드를 통해 독립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각 지역별로 전원이 분산됨에 따라 안정적인 전기공급이 가능해지고, 신재생에너지의 효율적인 이용도 가능하게 되는 셈입니다.

태양과 바람으로부터 얻은 깨끗한 전력을 저장했다가, 이를 필요한 시점에 원하는 양만큼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스마트에너지. 이는 바로 ESS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ESS가 미래기술로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현대일렉트릭이 지난 4월 울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에 구축해 본격 가동에 들어간 세계 최대 규모 산업용 ESS 센터 전경.현대일렉트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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