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울지 모릅니다 ‘기후변화 팬데믹’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더 뜨거워진 지구…자연재해로 본 2020년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캥거루섬 숲에서 7일(현지시간) 한 야생동물 구조 활동가가 산불 피해를 본 코알라를 구조하고 있다. 캥거루섬 | EPA연합뉴스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캥거루섬 숲에서 7일(현지시간) 한 야생동물 구조 활동가가 산불 피해를 본 코알라를 구조하고 있다. 캥거루섬 | EPA연합뉴스

호주·미 서부, 수개월 산불 이어지고 아시아는 물난리
중동 등 메뚜기떼 습격…시베리아는 6월 기온 38도까지
파리기후협약 체결 5주년…“코로나 대처하듯 대책 실행을”

호주 남부 캥거루 섬에서 야생 휴양림 관리자로 일했던 그레그 슬레이드(42)는 지난 1월 산불이 숲을 덮쳤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수십명의 직원과 방문객들을 대피시킨 후 그가 불길에 휩싸인 도로를 달려 안전한 곳에 도착하기까지 12시간이 걸렸다. 그는 곧 캥거루 섬을 떠났고 지난 10월 동부 프레이저 섬에서 새 일자리를 구했다. 그는 프레이저 섬에서 다시 산불을 맞닥뜨렸다.

탐사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프레이저 섬에서 10월 중순부터 약 8주간 산불이 이어져 섬 면적(1630㎢)의 절반에 가까운 800㎢가 불에 탔다고 보도했다. 해변 캠프파이어 불길에서 시작됐지만, 산불이 두 달이나 지속된 건 이례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호주에선 앞서 지난해 9월부터 올 2월까지 1만5000건의 산불이 전국을 휩쓸어 33명이 숨지고 건물 3000채가 잿더미로 변하는 ‘최악의 산불’을 경험했다. 코알라 6만마리가 숨진 것을 포함해 30억마리의 야생동물이 피해를 입었다는 연구 보고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고온 건조한 여름 날씨 탓에 땅과 숲이 메말라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하고, 오래 지속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 배경에 기후변화가 있다고 추정한다. 올해 11월은 호주 기상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됐다. 호주연구소의 기후·에너지 담당인 리치 머지안은 지난 11일 로이터통신에 “우리는 기후변화가 프레이저 섬이 불타는 장면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기후변화가 (산불)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호주 산불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았다. 기후변화의 위기가 생태계와 우리 삶을 위협한 한 해였다. 미 뉴욕타임스는 지난 17일 올해 기후 이슈를 정리한 인터랙티브 기사에서 “2020년은 위기의 한 해였다. 코로나19 대유행, 경제 혼란, 사회적 격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한 것은 기후변화였다”고 했다.

거대해진 산불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데라카운티에서 지난 9월7일(현지시간) 한 소방관이 산불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날 캘리포니아 소방당국은 8월15일부터 계속된 산불로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시의 10배에 달하는 면적(8478㎢)이 불탔다고 밝혔다. 마데라 | AFP연합뉴스

거대해진 산불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데라카운티에서 지난 9월7일(현지시간) 한 소방관이 산불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날 캘리포니아 소방당국은 8월15일부터 계속된 산불로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시의 10배에 달하는 면적(8478㎢)이 불탔다고 밝혔다. 마데라 | AFP연합뉴스

미국에서도 기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목격됐다. 지난 9월9일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이 산불의 영향으로 온통 어두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뉴욕타임스는 “핵겨울(Nuclear winter)이 온 것 같다”고 했고, CNN은 “기후변화가 앞으로 몰고올 일들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주 등 미 서부 지역에선 100건이 넘는 대형 산불이 발생해 30여명이 숨지고 남한 면적의 20% 이상이 불에 탔다.

어쩌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울지 모릅니다 ‘기후변화 팬데믹’

아시아에선 물난리가 이어졌다. 연초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여름엔 방글라데시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다. 한국에선 6~8월 사상 최장(54일) 장마가 이어졌고, 비슷한 시기 중국 남부에선 많은 비가 내려 5000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잦은 허리케인. 지난 11월25일(현지시간) 온두라스 라 리마에서 5등급 최강 허리케인 ‘요타’로 망가진 집 주변에 한 여성이 앉아 있다. 온두라스 시민 35만7000여명과 주택 7000여채가 허리케인 피해를 입었다. 라 리마 | EPA연합뉴스

잦은 허리케인. 지난 11월25일(현지시간) 온두라스 라 리마에서 5등급 최강 허리케인 ‘요타’로 망가진 집 주변에 한 여성이 앉아 있다. 온두라스 시민 35만7000여명과 주택 7000여채가 허리케인 피해를 입었다. 라 리마 | EPA연합뉴스

중남미에선 지난 6~11월 대서양 열대성 폭풍인 허리케인이 역대 최다인 30개나 발생했다. 특히 11월 허리케인 ‘에타’와 ‘요타’로 인한 홍수와 산사태로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 중미 전역에서 200명 넘게 숨지고, 5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유럽의 곡창지대’인 동유럽은 올봄 가뭄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올해 내내 사막메뚜기떼의 급습으로 농경지가 큰 피해를 입었다. “기후변화가 촉발한 식량안보 위협”이라는 경고음이 나왔다.

케냐의 한 지방 도로에서 주민들이 사막메뚜기떼를 뚫고 오토바이로 이동하고 있다. 사막메뚜기는 1㎢에 8000만마리가 모일 수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제공

케냐의 한 지방 도로에서 주민들이 사막메뚜기떼를 뚫고 오토바이로 이동하고 있다. 사막메뚜기는 1㎢에 8000만마리가 모일 수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제공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자연재해가 더 자주 발생하고, 더 강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이 지난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기후와 연관된 재해’는 6681건으로 이전 20년(1980~1999년) 3656건보다 82.7% 증가했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신호’도 포착됐다. ‘극한의 상징’인 시베리아 북동부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베르호얀스크에선 지난 6월20일 역대 최고 기온인 38도를 찍었다. 7월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산맥에선 빙하가 녹고 있다는 증거인 조류 현상이 발생, ‘분홍색 빙하’가 목격됐다. 러시아 북극해 해저에서 이산화탄소보다 80배 강한 온난화 효과를 지닌 메탄가스가 평소보다 400배 높은 농도로 방출되고 있다고 러시아 연구진이 지난 10월 발표했다. 가디언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형성된 따뜻한 대서양 해류가 메탄가스 방출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색깔 변한 빙하 AFP통신은 지난 7월5일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산맥에 쌓인 눈이 일부 분홍색으로 변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과학계는 조류(藻類)의 영향으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봤다. AFP통신 유튜브 화면 캡처

색깔 변한 빙하 AFP통신은 지난 7월5일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산맥에 쌓인 눈이 일부 분홍색으로 변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과학계는 조류(藻類)의 영향으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봤다. AFP통신 유튜브 화면 캡처

위기는 가까이 있는데, 각국과 국제사회의 대처 속도는 느리다는 경고와 자성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올해는 파리기후협약 체결 5주년이었다. 2015년 12월 195개국은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보다 2도, 나아가 1.5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추자”고 약속했다. 이에 각국은 2030년, 2050~2060년에 맞춰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했다. 국제환경단체 ‘기후행동추적’은 지난 1일 현재 각국 정부가 약속한 대로 탄소중립 목표를 실행하면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2.1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파리기후협약 체결을 이끌었던 로랑 파비우스 전 프랑스 외무장관은 지난 12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파리기후협약 목표를 달성하기엔 각국 정부의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다”면서 “코로나19에 대처하듯이 기후변화에 맞서서 대책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변화에는 백신이 없다”고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일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한 화상 강연에서 “인류가 자연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자연과 함께 평화를 이루는 것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고, 누구에게나 어느 곳에서나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각국이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환경 세금을 부과하는 등 정책에서 ‘녹색 스위치’를 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의 행동으로 미래 세대가 파멸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지난 10일 가디언 인터뷰에서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한 2030년이나 2050년은 너무 먼 미래라면서 구속력 있는 연간 단위의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나 각국 지도자들은 ‘우리가 충분하진 않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고 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310600015&code=610103&nv=stand&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row1_8#csidxb0ca0520e2c9577a54061d85d3d0e00 

+ Recent posts